햇볕은 쨍쨍했고 모래알은 반짝였던 6월.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by 손두부

“딸랑딸랑~”


경쾌한 도어 벨 소리와 함께 약국 안으로 들어서면 세명의 반가운 얼굴들이 나를 맞이해준다.

모기 하품하는 소리로 늘 조곤조곤 설명해주시는 한국인 J 약사님,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깔 좀 있는 히스패닉 센 언니 G약사님,

그리고 살랑살랑 늘 웃는 어씨스턴트 노랑머리 언니, Ms. A까지.

우리는 이제 한 달에 한번 만나면~ 좋은 친구~다.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서 대화를 하다 보면 두 번씩 말 안 해도 서로서로 눈치껏 다 알아듣는 센스 터지는 그들은 내가 고통스러운 순간에 묵묵히 나를 격려해줬던 친구들이다.


미국에서의 병원일은 보험도 그렇고 약 타는 일도 그렇고 좀 답답한 구석이 많은데 모든 의료진과 스텝들의 협력이 없으면 일이 산으로 가기 일쑤여서 곤란한 경우가 많다.

그 한가운데서 길을 잃고 서있던 나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도와줬던 사람들이라 늘 고마운 맘이 앞선다.

깊은 얘기를 할 필요조차 없는 약국 사람들과 만나 이렇게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된 것은 나에게 유명한 학원 원장을 만나 아이의 학교 결정에 좋은 정보를 얻는 필요한 관계보다 더 소중한 인연이다.


한때 나는 늘 우울에 가려져 마주치는 모든 이들에게 눈빛으로 말했다.

‘나는 지금 매우 우울해. 그러니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마. 나한테 말 걸지 마.’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지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라면, 아픔이라는 이유로 시작된 만남이지만 즐겁고 의미 있는 만남으로 만들자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약이 준비되는 동안 카운터에 팔꿈치를 기대고 서서 이런저런 수다를 떤다. 새로운 약에 대한 정보며, 보험회사가 최근 커버해주는 약에 대해 바뀐 규칙이며, 약값이 왜 스토어마다 다른지에 대한 얘기며, K-pop에 빠진 Ms. A을 위해 어디서 굿즈를 살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며, 패션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토픽은 언제나 새로웠다.


하루는 G가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서 다른 손님들이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여기 오는 베트남 엄마가 하나 있어. 그녀는 늘 우울한 표정으로 오지. 매우 말랐고 머리는 항상 부스스해. 난 그녀를 이해해. 그녀는 지금 완전히 지쳤어. 그녀의 아이는 너의 아이와 비슷한 나이의 사내아이야. 그 아이의 증상도 약도 모두 너의 아이와 같아. 오늘도 오전에 그녀와 손을 잡고 울었어. 난 그녀가 너무 걱정이 돼.”

내가 여태껏 알고 있는 G를 볼 때 그녀는 지금 가십거리로 그 손님에 대해 내게 얘기하는 것은 아님이 확실했다. G는 정말로 걱정스러워하고 있었다. 얼굴도 모르는 그녀를 생각하면서 나도 마음이 아팠다.

G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근데 넌 저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늘 웃지. 네가 들어오면 기분이 좋아져. 네가 좀 더 보험회사 사람들에게 공격적 이면 좋겠다는 바람 외에는 넌 정말 다 잘하고 있는 것 같아. 너는 어떻게 극복을 한 거니?

오늘 너는 심지어 옷을 큣하게 입고 왔다고.”


‘으.. 응?.... 극복?’

나는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뭔가 말은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마도 그녀는 상담이 필요할 것 같고(그 당시 나도 받고 있었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며 결국엔 뻔한 조언만 하고 말았다.

그때 J 약사님이 약봉지를 들고 나왔다.

나는 사인을 하고 인사를 하며 문을 나섰다.

모두가 내게 인사를 했다.


“Have a nice day!”


좋은 하루 보내세요. 좋은 주말 보내세요.

이곳 영어친구들은 특히 가게 점원이 손님에게 물건을 건네주며 헤어질 때마다 이렇게 인사를 한다. 의례 하는 별 의미 없는 인사겠지만 그날 내 귀에는 그 말이 이상하게도 단어 하나하나가 머리에 박혀 곱씹게 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그래. 내일도 아니고 모레도 아니고 오늘. 오늘이 좋으면 된다.

"You too!"

나는 그제야 웃으며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힘을 줘 문을 열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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