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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엠 Aug 25. 2020

(26) 세상은 넓고 술은 많다

이번 차례의 글을 시작하기 위해 마르티니(Martini, 와인에 허브와 향료를 더해 만든 프랑스산 리큐르의 한 종류)에 San Pellegrino 밀감맛 드링크를 섞은 저만의 칵테일을 만들었습니다. 앞서 리즈씨의 식음예찬을 이어 이번엔 제가 사랑하는 마실 것, 특히 알콜이 들어간 음료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저는 지금 독일에 살고 있습니다. 유학을 위해 굳이 독일을 선택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맥주 또한 뺄 수 없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고 지금에 와서 고백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맥주를 사랑합니다. 특히, 라거 맥주를 좋아합니다. (여기에서 영국이 아닌 독일을 선택한 이유가 나오네요.) 에일 맥주의 쌉쌀하고 향긋한 맛도 일품이지만, 맥주의 원료인 보리의 구수한 맛을 한껏 살린 라거를 저는 더 좋아합니다.  


에일과 라거의 가장 큰 차이는 발효 방식에 있습니다. 에일은 상면발효, 라거는 하면발효 공법을 이용하여 만들죠. 상면발효는 말 그대로, 맥주 원료의 발효가 통의 상면에서 일어나는 상태고, 하면발효는 그 반대로 맥주의 발효가 통의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상태를 말합니다. 덕분에 에일은 가볍고 씁쓸한 맛, 그리고 라거는 깊고 구수한 맛을 내게 됩니다. 


또한 우리가 아는 파울라너나 호가든은 보리가 아닌 밀로 만든 맥주로, 독일에서는 바이첸(Weizen) 맥주라고 부릅니다. 어느 식당이나 비어가르텐을 가도 가게가 엄선한 라거와 바이첸은 항상 메뉴판에 있습니다. 마치 꿀물같은 화사하고 그윽한 색깔을 띠고 마시면 꽃이나 과일 향기 같은 향기로움이 입안에 감돕니다. 또한, 하우스 맥주를 만드는 브루어리에선 계절별로 한정 맥주를 내놓기도합니다. 독일 음식은 질렸음에도 제가 정기적으로 독일음식점을 가는 이유는 맛있는 맥주를 마시기 위함입니다.


식초에 절인 생선을 크림소스에 곁들여 먹는 요리와 맥주





유럽에 와서 또 한가지 알게 된 맛이 있습니다. 사실 제가 한국에 있었을 시기만 해도 한국에서 저렴하고 맛있는 와인을 마시기가 힘들었고, 와인이 맛있다는 경험은 한번도 하지 못한 채 유럽에 왔습니다. 그러나 유럽은 와인의 본고장입니다. 와인은 맛있습니다. 값에 상관없이 맛있는 와인은 맛있습니다. 


처음으로 와인이 맛있다 느낀 건, 아는 분 집에 초대받아 독일 와인을 마셨을 때 입니다. 처음 보는 라벨, 게다가 독일 레드와인이어서 과연 맛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그날 마신 와인은 맛있었다는 말 이외엔 표현할 방법이 없는 훌륭한 와인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와인이 유명한 곳에 가면 반드시 와인을 곁들여 마시기 시작하였고, 저렴하고 맛있는 와인의 세계에 푹 빠지게 되었습니다. 


와인은 알다시피 크게 화이트와인과 레드와인으로 나뉩니다. 레드 와인은 적포도를 껍질 채 으깨어 만든 와인으로, 사용하는 포도 품종에는 카베르네 소비뇽, 메를로, 피노 누아, 시라즈 등이 있습니다. 겉보기엔 같은 포도처럼 보이지만, 어떤 포도의 품종을 쓰냐에 따라 레드 와인의 성격은 많이 달라집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인 보르도와 부르고뉴의 차이 또한 1차적으로 포도의 품종에서 나옵니다. 보르도는 주로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등의 품종의 포도를 이용해 깊은 맛의 와인을 만드는 반면, 부르고뉴는 오로지 피노 누아 품종의 포도만을 이용해 씁쓸하면서도 투명하고 가벼운 와인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나 제가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 와인은 꼬뜨 뒤 론(Côtes du Rhône) 지방에서 시라즈 품종의 포도로 만든 와인입니다. 후추가 들어간 육요리와 잘어울리고 그냥 마셔도 진하고 강렬해서 입에 착 붙습니다.) 


화이트 와인에 쓰는 포도도 다양합니다. 대표적으로 화이트 와인이 많이 생산되는 알자스 지방의 와인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알자스 와인은  대부분 단일 품종의 포도만을 사용해 와인을 만든 후 와인 이름에 포도 품종을 붙입니다) 피노 그리(Pino gris), 뮈스카(Muscat), 리슬링(Riesling), 샤르도네(Chardonnay), 그리고 제가 가장 사랑하는 게뷔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 화이트 와인에 사용되는 포도도 그 가짓수가 무척이나 다양하고, 각각의 품종 마다 다른 맛을 냅니다. 


알자스 지방의 리슬링 와인. 맛있습니다. 


이탈리아나 프랑스처럼 와인이 지나치게 유명한 곳에서 무슨 와인을 마셔야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레스토랑 직원이나 셰프가 추천해주는 와인을 마시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레스토랑이라면 반드시 요리와 잘 어울리는 맛있는 와인을 구비해 놓기 때문이죠. 일류 레스토랑에서는 와인 전문가인 소믈리에가 와인의 추천을 도와주기도 합니다. 





때로는 맥주를 마시기엔 너무 배부르고 와인보다는 더 차갑고 가볍게 마실 수 있는 술이 당길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칵테일을 마십니다. 위스키, 보드카, 럼, 진, 데킬라 베이스 중 가장 마시고 싶은 베이스를 머릿속으로 생각한 후 그날 그날 마시고 싶은 맛을 메뉴판에서 고르죠. 칵테일은 베이스 리큐르와 부재료의 조합에 따라 수천 수만가지의 다양한 레시피가 존재하기 때문에 언제나 한 가지의 술 만을 고르는 건 즐거우면서도 힘든 일입니다. 저는 진 피즈(진+레몬+탄산수)나 마르가리따(데킬라+라임+소금), 모히또(럼+민트+라임+탄산수)를 주로 마시고, 메뉴판이 시원찮을 때는 무난한 어패롤 스프리츠(어패롤+화이트와인+탄산수+오렌지)를 시키고는 합니다. (마티니를 칵테일의 정석이자 칵테일의 최고봉이라고 하지만, 사실 진과 베르무트를 섞은 칵테일이어서 가볍게 마시기엔 좀 센 편입니다.) 


무더운 여름 날의 칵테일. 왼쪽부터 순서대로 데킬라 선라이즈, 스위밍 풀, 섹스온더비치. 이런 롱드링크도 좋아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칵테일을 꼽으라면 그래스호퍼를 고르고 싶습니다. 화이트 카카오 리큐르와 민트 리큐르, 생크림을 셰이커로 섞은 칵테일인데 민트초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조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맛이라 자부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각 잡고 하는 바가 아니면 자주 볼 수 없는 칵테일이란 게 단점이지만요. 





작년 옥토버 페스트에서 마셨던 호프브로이 맥주.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갈 수 없겠죠. 


작년엔 옥토버 페스트를 다녀왔습니다. 네, 그 맥주 축제요. 술과 맥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번 쯤은 가봐야 할 축제죠. 가서 하는 일이라곤 맥주 마시는 일 밖에 없지만 그래도 즐겁습니다. 맛있는 술을 마시는데 그 이상의 재밌는 일이 무엇이 필요합니까! 맛있는 술을 마시는 재미는 인생에서 포기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내일의 일이 비극이 될지 희극이 될지 그 누구도 모르지만, 지금 손에 쥔 술잔은 디오니소스의 황홀경에 도취될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줍니다. 현세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슬픔과 기쁨이 술을 마시고 도취한 그 찰나의 순간에만 존재한다는 점에서, 왜 그리스인들이 디오니소스를 술의 신이라 칭송했는지를 알게 됩니다. 오늘도 저는 주신 디오니소스의 은혜에 감사하며 술잔을 하늘 높이 들어 건배를 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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