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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삶 Dec 11. 2021

취중견담醉中犬談(단편)

단편소설 1.

“이보세요, 제 말 좀 들어보세요.


아니 글쎄 내가 계란을 사러가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조류 독감인지 뭔지 때문에 계란값이 너무 비싼거야. 한참을 고르다가 우라질, 밥 먹기도 힘드네 투덜거리니까 그 앞에 앉아 있던 눈 쫙 찢어진 아줌마가 부리부리하게 쏘아보더라고. 너만 먹고 살기 힘드냐? 뭐 이런 뜻이었겠지. 하긴 그것도 그래. 나날이 물가는 오르지, 코로나 때문에 회사는 간당간당하지, 염병할, 망할 전염병 때문에 세상이 망해가고 있다고. 당신 같은 공무원들은 내 심정을 모를 거야. 우리가 피똥싸고 모은 세금으로 편하게 밥만 축내고 있으니.


내가 틀린 말 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보지 말아요. 나도 오죽 힘드니 이래.


나한테 c라고 오래 안 동생이 있어요. 어릴 적부터 똑부러진다고 동내서 칭찬이 자자했다고. 공부도 잘해서 좋은 학교도 들어갔어. 이름만 들으면 알만한 데야. 내가 지금 당장 생각이 안 나서 그렇지, 말하면 당신도 아마 아, 하고 무릎을 딱 칠거라고. c, 얘가 클 때 고생을 좀 하긴 했는데 그렇지 나중에는 고깃집을 하나 차렸거든요? 그런데 될 놈은 된다고 대박이 난거야. 우리 동기 중에 c만큼 잘된 얘가 없어. 결혼도 얼마나 잘했는데.


그런데 세상사 참 알 수가 없단 말이지. 이번에 이리저리 일도 꼬여서 그리 잘나가더니 확 기울어진 거지. 온 식구가 거리에 나앉게 생겼어. 다행히 그러기 전에 돈을 어디다 꿔서 막았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그럴 뻔 했다는 거야. 전번에 술 마시면서 그러더라고. 세상이 좆 같애, a, 세상이 왜 나에게 이러는 지 모르겠다고. 그래도 아직 남보다는 살 만하다고 넌 네가 사장이라 잘릴 일도 없지 않냐고 했더니 눈을 부라리면서 차라리 퇴직금이라도 받고 잘렸으면 좋겠대. 네가 뭘 아냐고. 울컥해서 뭐라 하려다 말았어. 술에 취해서 눈이 맛이 간 게 사람도 치겠더라고. 저 잘나갈 때는 사람 좋은 척은 다 하더니 어려워지니까 본 성격 나오는 거 아니겠어. 불쌍하기도 하고 뭐 나라고 해 줄게 있어. 나도 돈 없는 건 마찬가지인데. 근데 씨발 왜 나한테 화풀이냐고. 내가 만만해? 하, 그런데 항살 잘나던 애가 술에 꼴아서는 저러는 걸 보니 또 안됐고. 그 날 술 값은 내가 냈지 뭐. 욕 먹고도 호구 짓 하는 건 나 밖에 없을 거야.


그러니까 내 말은, 이게 다 코로나인가 뭔가 때문이라고.


갑자기 별 요상한 병이 돈다고 뉴스에서 떠들더니만 이게 순식간에 확 번졌잖아. 이런 적이 아예 없던 일도 아니니까 유행처럼 또 시끄럽다가 들어가겠거니 했지. 당신도 그러지 않았어요? 그 전에도 사스인가 뭔가 한 철 왔다가는 아이돌 노래처럼 종종 있었잖아. 애들 휴교하고. 전 세계가 난리인데 우리나라 같은 조막만한 나라야 뭐.


그래도 K 방역이니 뭐니 외국에서 칭찬도 받고 그랬지. 썩 잘 한 건지는 모르겠는데 여기보다 심각한 곳도 쎄고 쎘다고 하니까. 이제 보니 선진국이니 뭐니 하는 것들도 별 것 아니야. 참 보면 가관이야, 가관! 난세에 인물 난다더니 BTS도 종종 신기록 세웠다고 막 그러잖아. 걔네 노래가 뭔지 아냐고? 몰라. 머리 노란 애들이 잘났다니까 그냥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우리 나라가 옛날에 비해 참 잘나지긴 했어. 그렇지? 하하하! 아니 뭐, 그냥 그렇다는 거지. 내 나라 자랑이면 내 자랑이지 그게…… 어? 국뽕? 그건 또 무슨 말이야. 하여간 요즘 사람들 이상해. 뭘 말하면 삐뚜름하게 보고 여혐이다, 꼰대니 뭐니.


이게 다 여자들이 목소리가 커져서 그래. 옛 말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있어. 하 참, 있어 봐. 말 다 끝나고 말해보라고. 아이고, 거기 옆에 앉은 젊은 여자 분. 인상쓰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보세요. 내 말은, 이게 남녀차별이니 그런 게 아니라,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뜻으로 하는 말이야. 원래 조그만 문제도 현미경을 대고 보면 커지는 거고 문제시하면 문제가 되는 거야. 나도 인정해. 날 봐봐. 내가 왜 모르겠어. 이 세상이 여자로 나서 살기에는 너무 좆 같은 걸. 내 동생 남편이 바람 나가지고 그 애한테 별 지랄을 한 걸 생각하면 속에서 열불이 나는데. 쓰레기는 그 새끼인데 이혼해서 양육비 받아봤자 개 코딱지만하게 받고. 가정 폭력으로 신고해봤자 경찰이란 게 하는 게 뭐야. 아주 엊어 터지다가 죽어야 겨우 신고 접수나 되지. 여자 혼자 산다고 그러면 별별 놈들이 우선 눈부터 희번뜩거리고. 스토커가 따라다니다가 칼로 쑤셔야 신문에 나잖아. 부당하게 화 내고 참을 만한 일들이 얼마나 부던히 많아. 별 개쓰레기 같은 놈들 때문에 여기 멀쩡한 남자들이 같이 욕 먹지.


아들 키우는 입장에서 참 마음이 그래. 무섭기도하고. 아들인데 무슨 걱정이냐고? 아니, 이 사람아. 요즘 여자애들만 걱정이 아니라 자칫하면 사회에서 매장되는 것도 남자애들이라고. 재수없게 오해라도 사봐. 끝장이지. 이번에 연예계 떠들썩한 거 못 봤어? 미투라고 신고 넣고 나중에 철회해봤자 이미 남자쪽은 인생 나가리됐는데 그게 옳은거야? 어? 옳은거냐고. 그래, 참다 터졌으니 억울한 사람들 한 풀어줄 기회인 건 맞는데, 사상자는 없어야 되는 거 아니겠어.


여자들도 세상 무서운 거 알고 알아서 몸 조심해야해. 방범창도 달고 밤 늦게 안 다니고. 치마도 짧게 입고 다니지 말고. 요즘은 아주, 다 벗고 다니더만. 그러면 안 볼라고 해도 다 보고 다니겠다. 아, 솔직히 그렇잖아요. 남자들이야 본능인데 뭘 어쩌겠어. 본능을 조절해야 인간이다, 이런 소리 말아요. 인간이라고 해봤자 다 검은 머리 짐승이니까. 아가씨는 아직 어려 몰라서 그래. 내가 틀린 말 한 건 아니잖아. 나는 현실을 말 하는 거야, 현실을. 이론적으로는 그 쪽 말이 맞는데, 여기 깜방 들어가는 사람들이 그런 이성이 있는 놈들이면 애초에 안 들어왔다고. 저기 아저씨도 수긍하는 눈이네. 어쩔 수 없지. 꿀단지 안고 꿀벌이랑 말벌 사이에서 살아갈라면 방충망이라도 입고 다니는 게 현명하다 이런 뜻이야, 내 말은.


하여간에 이게 다 법이 지랄이라 그래. 국회의원 놈들은 삼시세끼 밥만 먹다가 그냥 퇴근하나봐. 허, 자기네 월급을 자기들이 올리는 걸 보고 내가 그냥 웃었다니까. 한 절반은 깎아야 되는데. 쓸모 있는 법은 개정이 한 십 년은 걸리고 별 자질구레한 건 금방 생겨. 표 얻으려고 쇼하는거지.


젊은 애들이 헬조선, 헬조선하는 게 썩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야.  


요즘 애들 못이 뻣뻣해서 싸가지 없는 말도 잘 하는데, 좀 가엾어. 금이야 옥이야 키워놓으면 뭘해. 취직도 안 되어서는 공무원 준비나 하면서 부모님 등꼴이나 빼먹지. 노력을 안 한다 뭐다 문제가 아니라고. 어릴 때부터 커서까지 코피 터져라 공부하는 애들 삐까천지인데 이 난리인거 보면 어디 하나가 사회가 망가지거나 문제가 생겨서 이러는 거 잖아. 나도 가끔은 맞는 말을 한다고. 그게 그 애들 문제겠어. 태어나보니 세상이 좆 같은 걸 뭐 어떡해. 그러니까 연애도 안하고 결혼도 안하고 애도 안 낳지. 큰 일이야, 큰 일. 우리나라 저출산 문제가 세계 최고인거 알아요? 이러다가 한국인이 멸종을 하겠어. 어떡하냐고. 아주 세상이 이래저래 개좆같애. 우리 나라 망한다고 애 낳으라고 멱살 잡고 흔들 수도 없고. 홀로서기도 못해서 빌빌거리는 애들한테 뭐 어쩌겠어.


집 값은 좀 높아? 평생 개미 새끼처럼 한 푼도 안 쓰고 일해도 서울에 코딱지만한 집 하나를 못 산다고. 한 숨 자고 일어나면 또 올라있고 또 올라있고. 이래서야 돈 원래 많은 놈들만 계속 잘 살고 없는 놈은 없어서 못 살고. 일해서 버는 것보다 돈이 돈 버는 게 빠르다고. 뭐 나도 우리 아버지 살아계실 적에는 좀 잘 살았어요. 건물도 하나 있고, 좋은 대학도 나왔고. 그 망할 빚만 아니었으면….. 지금보다 훨씬 잘 살고 있었을 거야. 집은 당연하고 건물에 세나 받으면서 편하게 살고 있을거라고. 아니, 내가 지금 능력이 없는 게 아니고. 내 직업란 써둔 거 못 봤어요? 시기가 이 지랄이라서 그렇지!


카악, 퉤. 시발 공기도 좆 같이 탁하네. 뭐? 담배? 이봐요, 내 직업이 있는데 내가 그런 몸에 안 좋은 걸 하겠어요? 끊은 지 십년은 됐다고 십년! 내가 호흡기가 좀 안 좋거든. 우리 아버지도 폐암으로 돌아가셔서. 이 놈의 나라는 시발 풍수지리가 문제인지 공기도 좆 같아.


올해 겨울은 봄인지 시베리아인지 하루걸러 하루가 헷갈리고 아 못나가고 하늘이 참 파랗다싶어 창문을 열면 미세먼지 때문에 목이 컬컬하고. 그래도 코로나인지 석탄인지 뭔지 때문에 중국서 공장을 안 돌리니까 숨 쉴만 하더라고. 하아, 나 어릴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봐요, 지금 키보드 두드릴 때가 아니야. 지구 환경이 심각하다는 거 알아요?


지구 온난화 들어 봤죠? 온도가 1도만 오르면 남극이고 뭐고 빙하가 다 녹고 북극곰도 죽고 열대우림도 다 우거지가 되고 서식지고 뭐가 없는거야. 바다도 밍숭맹숭 따뜻해져서는 생태계가 망가진다고. 그럼 인간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기후 난민에 전쟁에 아주 심각한 재앙이 벌어질거에요. 사람도 체온이 41도가 넘으면 체온 조절 기능이 망가지는데 지구는 안 그러겠냐고. 무식하게 산업화니 발전이니 지랄을 하다가 소 잃고 외양간 고치고 있는 거에요.


바다엔 플라스틱들이 굴딱지처럼 떠다닌다는 뉴스가 십년 전쯤엔가 나온 것 같은데 사람들은 이제야 부랴부랴 일회용품을 쓰지 말아야 된다는 둥 환경을 보호해야 된다는 둥 개소리를 지껄이고 있지. 그렇게 말하는 자기들이 매일 먹고싸면서 집밖으로 쏟아내는 쓰레기는 생각도 안하고 말이야. 차라리 대가리를 깨부수고 자살을 하지 그래. 누구는 매달 그린피스 후원도 하고 물 아까워서 오줌 싼 변기물도 재활용하고 주말마다 자전거 타고 다니면서 자연보호를 실천하고 그러는데, 나 혼자 이러면 뭐해. 바뀌는 게 없잖아, 바뀌는게.


코로나고 뭐고 이 지랄도 다 자연이 우리를 벌하는 겁니다. 야생 동물 서식지까지 인간이 밀고 들어가니까 갖은 병이 다 옮아와서 해마다 전염병 이 지랄 하는 거라고요. 듣고 있어요? 사람이 진지하게 중요한 얘기를 하는데.


하, 진짜. 내가 말해 뭐해. 인간은 정말 태어나봤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생명체야. 차라리 쇠똥구리가 더 쓸모 있지. 가끔은 말이에요. 인간으로 태어나 사는 게 환멸감이 들어요. 응? 그렇잖아요? 사회에 불필요한 인간 하나 보다 멸종위기종 한 마리가 더 가치 있을 수 있다고.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이 그래요. 물론 사람 생명이야 중요하죠. 그렇지만 현실이 그렇다고.“


긴 시간 A의 일장연설과 넋두리를 흘러 듣던 B는 졸린 개처럼 축 쳐진 눈썹을 벅벅 긁더니 처음으로 되물었다.


“그래서 의사란 양반이 술 먹고 사람을 칩니까?”

“아니, 그건 실수라고 했잖아요.”

“실수라도 사람 쳐놓고 도망가면 실수가 아니죠.”


멸종위기종보다 못한 사람 하나를 친 죄로 감옥에 가게될 A를 향해 냉소적으로 대꾸한 형사 B는 커서가 깜박이는 화면에 추가 범죄를 적어넣었다.


음주운전 도주치상죄 및 공무집행방해…


딸깍, 페이지가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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