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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삶 Aug 18. 2021

나는 나의 전장을 선택했다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는 법

일 욕심이 많은 나는 일의 성과에 따라 우울과 행복이 좌지우지 되는 경향이 컸다. 


예전 본격적으로 지금의 일을 시작했을 20대 중반의 나는 더더욱 그랬다. 초심자의 행운인지, 나의 크게 대단할 거 없는 재능 덕분인지 첫 시작부터 나의 일적 성과는 다행히도 크게 나쁘지 않았다. 대박은 아니더라도 그 다음을 기대할 만 했다. 자연스레 그 ‘적당한 성과’가 나의 기본적인 기대치가 되었고 이후 더 좋은 결과물이 당연할 것이라 여겼다. 계속하야 멈추지 않는 주식상장이 당연할 거라 믿는 애송이 중소업체처럼 말이다. 


하지만 성과라는 것은 꼭 좋은 결과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건 당연한 삶의 진리이다. 설사 개인의 능력치가 멈추지 않고 성장한다 한들, 결과물은 타인의 인정과 필요, 상황에 따라 결정되기에 나의 ‘노오력’은 절대적 성공 키가 될 수 없다. 네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남이 아니면 아니라는 얘기다. 기분이 나쁜가? 부정하고 싶은가? 재수 없게 니가 뭘 알고 함부로 말하냐고? 하지만 분명 사실이다. 우리가 말하는 성공은 결국 남이 정해주는 성공이다.


그러니 인생은 말짱 운이 다라는 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닌 셈이다.


나 하나도 내 마음대로 하기 힘든데, 타인을 어떻게 내 마음대로 움직이겠는가? 저 쪽이 명백히 갑인데. 나는 순종적으로 엎드린 을로 전락하고 말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이리 생각하고 만다. 아니, 내 인생 내가 사는 건데 남이 정해주는대로 살다 가는 게, 남의 인정 하나에 목매며 허덕이는 게 맞는 건가? 생판 타인이 너 잘했어, 라고 한 마디 던져주면 행복하고 야유하면 불행하다고? 뭐 이런 개 같은 인생이 다 있담.


내가 가장 혐오하고 싫어하는 것이 있다면, 나의 주도권을 타인에게 빼앗기는 것이다. 아주 사소하다 여긴 거라도 후일 돌아보면 그것을 타인에게 넘겨서 뒤끝이 좋았던 적이 없다. 결과물이든, 내 기분이든. 내 인생의 키와 핸들은 나만이 가질 수 있고 그걸 지키는 것이 내 평생의 사명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왜냐하면 이 핸들을 누가 쥐고 있느냐에 따라서 나의 만족도와 행복도가 바닥과 천장을 왔다갔다 했기 때문이다. 설사 내가 바보짓을 해서 모든 것을 망쳤다해도 마찬가지다. 다음에 안 그러면 되니까. 다만, 내가 어떻게 할 새도 없이 타인에게 휘둘려서 내키지도 않은 어딘가로 방향키를 돌렸다면. 이보다 찝찝하고 뒤숭숭할 수가 없다. 게임이 시작하기도 전에 기권 당한 기분과 흡사할 것이다. 그 지독한 패배감, 모멸감, 수치심.


쉽게 예를 들어보자.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성과물이 좋고 나쁘고에 따라 성적이 판가름 난다, 보통은.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작품적인 완성도, 성실함, 노력, 기타 등등보다 문화 콘텐츠의 흥행성적은 당시의 트렌드, 독자 선호도에 따라 판가름난다. 내가 이만하면 기대할 만하다 한 것이 기대 이하거나, 아니면 큰 노력 없이 그냥 쓴 글이 큰 성과를 내거나, 창작자도 결과를 예측하기 힘든 것이다. 물론 모자란 경험치로 대충의 흐름을 읽을 수는 있다. 그러나 세상은 점점 개인화되고 있고, 시장이 커질 수록 트렌드의 변화는 빨라지고 있으며, 삶은 더 복잡해지고 있다. 앞으로 점점 더 할 것이다. 


나는 그런 빠른 변화를 따라가기에는 엉덩이도 무겁고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내 적성에도 맞는 지 모르겠다. 더불어 내가 원하는 것도 아니다.


내 글의 첫 독자이자 마지막 독자는 항상 나 자신이다. 사실 그래야 제대로된 것이 나온다. 진짜배기말이다. 일단, 나는 그랬다. 


독자분들의 호평은 그 과정에서 얻은 참으로 운이 좋은 보너스 같은 것이다. 물론 작가는 독자가 있기에 존재한다. 그 분들의 존재에 감사해야한다. 모순적이지만 이와 같은 고민도 결국에는 나 자신에게 쓰는 편지를 타인도 읽어주기를 바라는 글쟁이의 변태적인 속성 때문이 아니겠는가. 돌아와서, 요지는 이렇다. 내 처음이자 마지막 비평가를 실망시킨다면 다른 이들도 내게서 고개를 돌릴 것이다. 당연한 진리다. 


물론 삶이란 항상 순리대로 흘러가지 않아서, 나는 만족하는데 타인은 별로거나, 나는 별로인데 타인은 환호하는 경우도 있다. 둘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이루는 것이 베스트이겠지만 그건 녹록치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장기적으로 보기로 했다. 내가 먹고 살만하다는 전제하에, 가장 까다롭고 욕심이 많으며 나에 대한 기대치가 큰 내 안의 비평가를 만족시키는 길을 걷기로. 당장 급할 게 있는가? 어차피 그 까탈스러운 독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나는 평생 글을 써야 할 것이다. 그 긴 여정에서 이따금 운이 따라준다면 타인의 인정이 따라올 때도 있겠지. 어쨌건 최종 목적지는 타인이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이웨이하기로 했다(사실 원래도 그러긴 했다). 


정확히 말해, 나는 타인의 최소한의 인정만을 갈구하기로 했다. 나의 실력이 향상되고 있느냐 아닌가 판가름하는데에 필요한 객관적인 시선과 평가, 스스로를 우물 안 개구리로 만들지 않기 위한 소통, 그 외에 내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는 재판관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다. 내가 어제보다는 낫나? 한 번 했던 실수를 또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닌가. 작년보다 더 나 다운가? 나는 무엇을 원하고 아쉬워하는가. 내가 좋아하고 잘 하는 건 뭘까?

물론 쉽지 않다. 어쩌면 타인에게 맞추는 것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인간은 타인을 보기는 쉬워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건 어려워하니까. 


하지만 내 적성에는 타인에게 맞추는 것보다는 나에게 맞추는 게 더 쉬워 보였다. 사실 조금 재미있기도 하다. 나는 모순적이고 때론 위선적이며 가끔은 괜찮을 때도 있지만 이상하고 조금은 피곤하다. 아무튼 나는 이런 내가 좋다. 나에게 더 잘 해주고 싶고 어제의 나보다 내일의 내가 더 나은 인간이기를 기도한다. 


나는 더듬더듬 내가 정한 길로 앞으로 걸어가는 내 스스로가 자랑스럽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이 있을거라는 확신이 있다. 언젠가 그 끝에 다다랐을 때, 제법 만족스러울거라는 그런 기대와 확신.


그래서 나는 아직 실패하지 않았다. 성공을 향하여 나아가는 중이다.

나는 나에게 맞는 길과 방향을 찾았고 내 전장을 선택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 갖은 노력을 다 했음에도 그대 또한 실패했다고 생각하는가? 당신의 실패는 그 스테이지 안에서의 실패일 뿐이다. 당신의 전장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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