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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삶 Aug 28. 2021

일 외에 나를 지탱할 것들이 세가지는 필요하다.

-당신의 영혼 인바디는 어떻게 되나요?

현대인에게, 아니 인간에게 직업과 일이란 삶의 필수요소다. 금전적인 것을 제외하더라도 우리는 스스로 ‘필요시’되고 싶어하고 나 자신을 직업적 성취로 증명하고 싶어한다. 직업이 일견 그의 모든 것을 정의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일을 신성시하고 우선시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하지만 그 ‘일’이라는 것이 과연 나의 일상과 자아, 감정을 전부 지탱할 수 있을까?


답은 불가능하다, 이다.


제아무리 유능한 워커홀릭이더라도 일에만 치중한 삶은 한계가 온다. 건강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말이다. 인간은 복잡하고 섬세한 동물이라 더 세심한 케어와 관심, 그리고 그의 영혼을 지탱하기 위한 여러 개의 다리가 필요하다. 그렇다. 걸을 줄 아는 다리 두 짝은 기본이고, 점점 갈수록 영혼의 무게가 버거워질 만큼 무거워질 테니 몇 가지의 다리가 더 필요한 것이다. 


사람마다 인바디 치수가 다르듯, 영혼의 인바디도 제각각이라, 지방과 같은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있던지, 근육과 비슷한 능력과 현명함, 체수분과 같은 명예욕이라던가 뭐 여러 가지가 수치가 있지 않은가. 어떤 사람은 건강한 삶으로 지방이 적고 적당한 근육을 갖춘 튼튼한 영혼을 가지고 있을 수도 누군가는 생각 없이 집어먹은 탐욕으로 그게 빠지지 않고 뒤룩뒤룩 쪘을 수도 있다. 후자 같은 경우에는 자아가 뒤뚱거리며 힘겹게 걸을 테니 아마 행복도를 유지하기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래서 영혼의 살을 빼는 다이어트를 해보라, 가 아니다. 본인 건강은 본인이 챙기는 거니까 그거야 각자 알아서 하겠지. 중요한 건 제 아무리 삶을 건강하고 성실하게 꾸려온 자라도 ‘제 3의 다리’, 제 4의 다리‘가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열심히, 즐겁게 일하는 것만으로 행복하고 건강하기엔 삶은 너무 무겁다.


앞서 ‘성공, 꼭 해야 하나?’ 챕터에서 나는 능력주의의 허망함을 이야기했고 그다음 ‘나는 나의 전장을 선택했다’에서 일의 성과에 따라 행복이 좌지우지되는 건 비효율적이고 어리석다는 내 견해에 대해 말했다. 


이것은 그것들과 같은 맥락에 해당할 것이다. 일은 잘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 슬프게도 노력이나 재능이 출중해도 운이 안 따라주면 성공 끄트머리도 갖기 힘들 수도 있다. 이러한 세상사는 개인이 통제할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일과 상관없이 계속 자아가 가동하고 에너지를 발산, 얻을 수 있는 여러 보험이 있어야 한다. 굳이 인생의 가치와 삶이 추구해야 할 방향성 같은 거창한 명언들을 주절거리지 않아도 효율성 측면에서 일 외의 ‘다른 뭔가’에 대한 필요성은 당연한 일이다. 


내가 이 생각에 대한 힌트를 얻은 것은 효리네 민박이라는 한 예능 프로에서였다. 거기서 타는 붉은 노을 같은 그녀, 이효리 씨가 아이유 양과의 대화 중 말하길, ‘사람은 일 외에 나를 지탱할 게 세 가지는 필요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번쩍거리는 충격을 느꼈고 그 간 내면에서 막연히 느껴왔던 결핍과 갈증의 해답을 얻었다. 그렇다. 일적 자아만으로 나는 항상 만족하고 행복할 수 없다. 그것은 너무 불완전하고 불안하다. 


나는 ‘불안’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확실하지 않은 것도 질색이다. 그렇다고 틀에 박힌 것도 좋아하지 않지만, 얼기설기 엮여 규칙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해도 나만의 균형 감각을 갖추고 있다면 그로 만족한다. 어찌 되었건, 나만의 무게 중심이 확고한 게 중요한 것이다.


당시, 스물일곱? 여덟이었나…. 언제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아무튼 2@살이었다), 취미가 본격적인 일이 되고 나니까 내 삶은 지금껏 없던 균형의 상실로 휘청거리고 버거워하고 있었다. 항상 글을 쓰거나 이야기를 상상하고 스토리 얼개를 짜는 게 나의 취미이자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이었는데 그게 직업이 되어버리니까 나랑 놀아줄 친구가 없어진 기분이었다. 예를 들자면 베스트 프렌드가 갑자기 하루아침에 직장 상사가 된 기분? 세상에, 예시지만 끔찍하다.


게다가 이 직업이 출퇴근이 없으니까 일상과 업무 시간의 영역이 분간이 안 갔다. 언제 일을 하고 언제 쉬어야 하는 건지? 따지고 보면 계속 그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설사 내 글 생각이 아니더라도 드라마와 영화, 웹툰, 소설을 읽고 요리를 하다, 산책을 하다 엉뚱한 상상을 한다. 결국, 그것조차 일과 연결이 되니 환장할 노릇이다. 그럼 나는 대체 언제 쉬는 건지? 하루 24시간 계속 누수가 진행되고 있었다. 어찌 틀어막을 수도 없이 질질 새는 체력과 에너지들. 유능한 심리상담사조차 이 부분에서 큰 도움을 주지 못했다. 나는 이 밸브를 조절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몇 년이 흐른 지금은 괜찮으냐고? 그때보다는 나아졌다. 아예 새는 물탱크가 커진 건지, 누수 되는 구멍을 어찌어찌 틀어막아 조금 덜 새는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일을, 그러니까 이야기와 글쓰기를 내 삶에서 잠깐이라도 차단시키기 위해서라도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운동을 시작했던 것도 그와 비슷한 이유였고 한창 뮤지컬과 연극 등의 공연에 빠진 것도 어쩌면 그런 욕구의 다른 표현일지도 몰랐다. 현장감이 생생한 공연을 보고 있으면 거기에만 몰입해서 다른 생각 따위는 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여행도 비슷한 작용을 했다. 낯선 곳을 홀로 걷다 보면, 혹은 가족,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그 순간에만 집중하게 된다. 어릴 적 그만둔 그림도 그렸다. 이건 다른 방면의 스트레스 해방에도 퍽 도움이 되었다. 계속하기에는 어쩐지 귀찮아서 하다 말다를 반복했지만.


다시 돌아와서, 내게 퍽 영감을 주었던 그녀 이효리는 자신을 지탱하는 게 요가와 남편, 그리고 차라고 말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니즈와 삶의 색을 가지고 있는가가 그 세 가지에서 느껴졌다. 요가는 정신의 수련과 성숙, 신체적 체력을 수양하는 운동이고 그녀의 배우자는 가정의 안정감을, 차는 글쎄, 기동성을 제공하는 온전한 내 소유이기에 그러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추측해 볼 뿐이었다. 어쨌건 나 또한 그런 것들이 절실했기에 홀로 분석해보며 나는 그럼 어떤 게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4년 여가 흘렀지만, 아직도 나는 찾는 중이다. 운동은 아직 미정이며 비슷한 걸로는 산책과 방 청소, 빨래 같은 게 있겠고, 인간적인 관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 아, 근 몇 년간 내게 중요하고 새로운 인연이 생기거나 기존 인연이 깊어져서 정서적인 유대와 안정을 전보다 더 크게 느끼고 있다. 기동력- 혹은 자유에 해당하는 건 여행 정도일까. 


지금은 아직 이 정도다. 앞으로 더 나아지길 기대하고 있다. 그래도 두 다리 외 곁다리 세 개가 불안정한 주제에 이렇게 잘 걷고 있다는 게 어디인가.  


아참, 오늘 아침 불현듯 생각한 게, 매일 이렇게 일기인지 에세이인지 모를 이걸 끄적인다면 이것도 나의 새로운 다리가 되어주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나는 결국 뭔가를 말하고 표현하면서 해방감을 느끼는 사람인 모양이니까. 내게 다리가 되다 만 것들은 무수히 많지만-그림, 다도, 요리, 종이접기 기타 등등- 이것만큼은 꾸준히 자라주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쓸모가 있겠지.


여러분의 삶을 지탱하는 다리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어떤 이에게는 덕질이, 또 다른 이에게는 춤이 그의 활력소라면, 그대는 무엇이 당신의 동반자인가-굳이 사람일 필요가 있을까-? 


한번 쯤은 고민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레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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