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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삶 Nov 15. 2021

힘을 빼자.

​너무 애쓰며 살 필요 없다.


요즘 사람들은 전부 열심히 산다. 바꿔말하면 지나치게 힘이 들어가 있다. 나 또한 긴장과 쓸데 없는 욕심으로 못이 뻣뻣한 채로 잔뜩 뭉친 다리로 낑낑거리며 뛰어가던 사람으로서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에 공감한다. 나무늘보로 태어났어도 치타로 살라고 채찍질하는 정글 같은 곳이다, 어른이고 사회라는 건. 


방금 전, 늘어지게 낮잠을 자다가 친구의 전화를 받고 깼다. 새로 산 냉장고에 대한 애정이 어린 훈수-불량으로 반품을 고민하고 있었다-를 늘어놓던 그녀는 내 나긋나긋한 말투에 ‘뭐야, 자고 있었어?’하고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그때 시간은 낮 열두 시 남짓. 월요일 한창 대부분의 사람이 바쁠 때이기에 나는 씨익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응, 낮잠.’

‘별일이네. 너 이렇게 느긋한 거 오랜만에 본다. 항상 워커홀릭 모드였잖아.’

‘하하, 그런가?’


나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내 주변 친구들은 항상 바쁘고 열심히 사는 사람의 이미지로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정작 나는 일 년 중 반 이상을 노닥이며 살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달리는 기차 안의 풍경은 정적인데 밖에서 보면 그토록 빠른 것이 없지 않은가. 아마 그런 게 아닐까 생각했다. 타인이 보기에 나는 여유가 없고, 항상 조급했으며, 오늘보다는 내일을 살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 자문해보자. 과연 내일을 향해 달리기만 하는 삶을, 과연 나는 원하는가? 나를 행복하게 하는 삶의 형태인가? 나에게 맞는가?


사실 그렇지 않다. 나는 내면에 열정이 있는 사람이지만 천성적으로 느리고 천천히 걷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도록 고여 있는 웅덩이는 답답해하나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며 찰랑거리는 넓은 호수는 좋아한다. 빠른 강물은 멋있지만 물살이 급하면 느긋하게 발을 담그기도 힘들고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광활한 바다는 아름다워 동경하고 하얀 포말이 이는 파도를 이따금 보고 싶지만, 거기에 뛰어들어 수영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을 물로 비유하자면 나는 숲처럼 넓고 잔잔한 호수가 되고 싶다. 잠시 고여도 썩지 않고, 작은 물고기들을 가슴에 품은 비췻빛의 쉼터. 내게서 새어나온 물줄기가 여러 강줄기로 나뉘어 바다로 흘러가는 푸른 수원. 


요즘들어 나는 매일 되뇐다. 


내일보다는 오늘을 살자고.


예전에는 하루 동안 내내 글을 못 쓰거나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초조하고 죄책감이 들었다. 오늘도 공쳤네. 난 뭐했지. 한심하다. 스스로 혀를 찼고 다른 열심히 매일매일 사는 친구들이 대단해 보이고 내 게으름을 비판했다. 하지만 그게 뭐? 매일을 열심히 사는 건 대단한 일이지만 그게 효율성 있는 하루인지 알게 뭐이며 또한 그런 성실함이 내게도 효과가 있는가? 만족할만한 성과가 나오고, 내가 지속할 수 있는 방식인가?


성실한 하루하루를 보내는 노동자는 과연 언제나 옳을까?


답은 No다. 산업혁명 시대야 그랬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4차산업으로 진입하고 있는 시대이고 직업이 고도로 다양해졌으며 또한 함부로 재단하기 힘든 제각기 다른 삶과 취향이 있다. 작업적 효율도는 천차만별이다.


성실함, 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는 건 내가 아니었을까. 


나를 제일 잘 아는 건 나라고 했으면서, 정작 내가 나를 존중하지 못한 건 아닐까?


내 직업에는 출퇴근이 없고 창작 또한 창작자마다 전부 다른 루틴과 방식이 있다. 공통적인 뭔가는 있더라도 이야기를 얽어가는 방식은 다 다르다는 얘기다. 이것은 고유의 성향과 관련되어 있기에 함부로 칼을 대어 깨버리거나 재단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이는 하나부터 열까지 플롯을 정하고 써가는 작가가 있고 어떤 이는 즉흥적인 방식이 아니면 글을 쓰지 못한다. 누군가는 아침에 제일 잘 써지고 또 누군가는 저녁에만 글이 나온다. 

창작이라는 같은 분야에서도 이토록 다른데, 내 루틴이 타인과 다를 수밖에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닐까. 


물론 내 비교 대상이 된 이들 중 다수도 작가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트렌드 분석을 하고 인기작을 연구하며 매일 아침 작업실로 출근해 글을 쓰는 사람이 여럿이다. 그들은 정말 열심히 산다. 감탄이 나오고 존경심이 들 정도로. 하지만 꾸준함, 항상 창작에 대한 끈을 놓지 않을 것을 제외하면 난 그들과 같은 성실한 창작 노동자로 살고 싶지 않다. 자유분방한 걸 좋아하고 똑같은 반복 행위에 질색하는 뇌를 가진 내게는 맞지 않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결국 다름의 차이다. 게으르고 성실하고와는 다르다고 나는 결론 내렸다. 또한, 꾸준함과 매일 창작에 대한 실마리를 잡고 있는 것은, 가만히 고민해 보니 나는 이미 그렇게 살고 있었다. 


외려 뭔가를 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 는 고정관념과 압박 때문에 정신없이 달리느라고 나를 돌보지 못했다. 내 안에 쌓여 가는 사념과 생각들, 바뀌어가는 사고방식, 좀 더 깊어진 가치관들을 다듬고 정돈해야 하는데 어질러 진 채로 내버려 두었다. 그러니 하루하루가 혼돈이고 엉망인 채로 시간만 낭비했겠지. 이건 방임이다. 내 스스로에게 화가 나는 건 정작 중요한 걸 보지 못한 채 ‘나’를 내버려두고 원인을 바깥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뭐든 실상은 가만 보면 참 단순하기 그지없다.

답은 항상 가까운 곳에 있고, 정작 본인은 마지막에서야 발밑의 그것을 찾아낸다. 참 정석적인 클리셰다.

내가 이 이야기의 작가라면 너무 진부하다고 혀를 찰 텐데, 현실은 픽션보다 더 진부하다.


그리고 뻔히 나와 있는 답을 빨리 찾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필요 이상으로 힘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종이접기를 할때도 나는 어려운 도면의 접기는 곧잘하다가도 아주 간단한 것은 외려 못하고 끙끙거렸다. 당시 나는 공간지각 능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지만 그것 뿐만이 아니라, 그 때의 나도 지나치게 모든 일들을 어렵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약 반년 전부터, 어쩌면 그전부터 내도록 나는 막연하게 내게 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고 이것은 해가 갈수록 구체화되다가 ‘더 나다운 것을 찾을 것’에서 ‘나다운 게 뭐지?’ ‘현재의 내가 나답지 않아진 이유는 뭘까’ ‘나는 점점 발전하는 것 같은데 왜 이따금 만족스럽지 않고 초조할까’ 와 같은 상념을 거쳐 ‘현실은 완벽하지 않으니 과욕을 부리지 말고 여유를 가질 것’에서 최종적으로 ‘힘을 뺄 것’으로 바뀌었다. 


힘을 빼라. 이것은 영역을 막론하고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욕심과 부담이 들어가면 힘이 들어가서 나 다운 것이 나오지 못한다. 그러면 결과도 좋지 못하다. 사람들은 귀신같이 ‘부담스러운 것’을 알아보는 재능을 가졌다. 노래든 춤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글이든. 설사 운동이나 일이라도 똑같다. 인간의 모든 경제적 활동에는 최소한의 창의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창의성이, 내 안의 잠재력이 가장 강력하게 발휘될 때는 힘을 뺄 때이다. 자연스러워야 한다. 내가 나답고 자연스러워야 나만의 흡인력과 매력이 발휘된다.


게으른 자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는 말은 이와 일맥상통하는 말이다. 나답고 자연스러운 자는 누구도 이길 수 없다. 사실 현재의 나는 이기고 지는 것보다는 내 스스로에게 인정받고 싶다. 내가 봐도 나 자신이 만족스럽고 족했으면 한다. 인간적으로든 창작자로서든. 그 누구보다도 내 칭찬을 받고 싶다. 그래서 노력…은 적당히 하고 우선 나와 대화를 많이 하고 나를 더 보살피고 알아가고 싶다.


 오랜만에 쓰는 이 글도 ‘힘을 빼라’라는 주제는 한 달도 전부터 정해져 있었는데 선뜻 글이 나오지 않았다.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도 어쩐지 손이 무거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전이라면 게으름을 부린다며 죄책감을 가졌겠지만 나는 그냥 그저 두었다. ‘우리 집 소’가 하고 싶지 않다는데 억지로 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뭔가 이유가 있겠지. 아직 자연스럽게 나올 준비가 되지 않았다거나. 헌데 오늘은 집안일을 하다가 돌연 컴퓨터를 키고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기까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술술 참기름 바른 듯 미끄러지게 나와서 지금 기분이 너무 상쾌하다. 이슬 맺힌 숲을 나만의 속도로 달리고 있는 기분이다. (물론 오늘은 미세먼지가 심해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아, 확실히 알았다. 나는 나다울 때 가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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