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뮤지엄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
작년에 개관한 포도 뮤지엄에서 두번째 전시가 막을 올렸다. 포도뮤지엄의 소개글을 보면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열린 문화공간'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만큼 우리 사회가 놓치기 쉬운 '다양성과 포용성 (diversity and inclusion)'에 대한 전시를 풀어가고 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그러나 우리가 사랑으로>으로 매주 시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쩌면 '사랑'이라는 키워드는 '다양성과 포용성'으로 가기 위한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핵심적인 가치이자 현재 우리 사회에 만연한 차별적인 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이며 전시를 보고 난 후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 같았다.
이번 전시에는 7명의 작가의 작품으로 구성 하였으며 미디어아트, 설치미술, 참여미술 등 다양한 형태의 미술 장르를 선보이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요코 오노와 요즘 핫하게 떠오르는 스위스 조각가 우고 론디노네 등 전시가 매우 알차게 구성되어져 있다.
뮤지엄에 들어서면 큰 스크린에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어딘가를 이동하는 사람들 '디아스포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대륙을 실으로 엮어서 마치 비행기가 이동하는 경로처럼 우리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또 끊임없이 연결되고 이어지고 있다. 이것을 보니, 마치 석사 유학을 위해 영국으로 떠났을 때가 생각이 났다. 한국에서 영국은 꽤 멀어보이지만 거대한 세계지도 속에서 짧은 실 하나에 불과해 보인다. '디아스포라'라고 하면 뭔가 거대한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한국 내에서 도시 간 이동 또한 개인적인 이주의 역사이다.
끊임없이 움직이는 비행기 전광판처럼 우리는 어디론가 늘 끊임없이 이동한다. 계속해서 움직이는 전광판을 보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은 마음마져 들었다.
이 거대한 설치작품 <주소>는 택배 상자 140개를 겹겹이 쌓아올려 만들었다. 알프레도 & 이자벨 아퀼리잔은 부부이자 듀오 아티스트로, 필리핀에서 호주로 이주했다. 하나의 유닛에는 필리핀 이주 노동자들이 해외로 떠날 때 부친 생활용품들과 고향의 가족들이 보내준 물건들로 가득 넣어 작품을 구성하였다. 작가 본인이 이주하는 경험을 살려 일상적인 생활용품으로 재료를 구성했다는 점이 '이주'라는 단어가 직관적으로 떠올랐다.
정연두의 <사진신부>의 작품은 매우 체험적이며 감각을 일깨우는 작품이었다. 오른쪽 사진의 공간에 들어셨을 땨 처음 여기는 온실인가? 라는 의문이 들만큼 습하고 더웠으며 흙 냄새와 달달한 사탕수수의 냄새도 났다. 이 공간 안에는 두개의 비디오가 반복적으로 상영되고 있었고 갑자기 제주도에서 훌라춤을 추는 사람들이 나왔다.
<사진신부>는 20세기 초 하와이로 이주한 7천명의 조선의 남자 노동자들이 조선에서 아내를 데려오기 위해 사진을 보내었고, 이 사진을 보고 결혼을 결심하고 하와이로 이주한 조선의 소녀들은 뜨겁고 광할한 사탕수수밭과 혹독한 노동이었다.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이주를 결심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결혼'이라는 이유로 이주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사회속에서 늘 이동하곤 했다.
내가 생각했을 때 가장 하이라이트 작품은 요코 오노의 <Add Colour (Refugee Boat)>가 아닐까 싶다. 예술작품에 아우라에 압도 당하는 경험도 예술을 감상하는 방법 중 하나지만 개인적으로 내가 직접 예술 작품을 만들어 간다는 점에서 참여예술 (participatory art)은 언제나 즐겁고 설렘을 주는 것 같다.
이곳에 들어가기 앞서 뮤지엄 직원이 안내문을 먼저 읽어보라고 했고, 내용에 동의하면 실내화 덧신과 파란 페인트을 주었다. 막상 페인트를 받아드니 뭘 써야할지 모르겠지만 '사랑과 평화' 그런 뻔하고도 추상적인 단어를 적었던 것 같다.
1층의 전시가 끝나고 2층으로 오면 요즘 핫한 조각가 우디 론디노네의 <고독한 단어들>을 만날 수 있다. 삐에로 분장을 한 실제같은 인형들이 다양하고 사실적은 표정으로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었다. 이들의 표정을 보고 있으니 나도 이렇게 편하게 누워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옷과 과한 화장 사이에 표정은 몹시도 피곤해보이고 지쳐보이는 자세로 묘하게 애잔한 느낌이 들었다. 순간 '이 삐에로들도 전시를 보고나니 괜히 피로해진건가?' 라는 생각이 들만큼 뭔지 모르게 늘 피곤함을 느끼는 현대인의 생활이 생각나기도 했다.
우디 론디노네는 <고독한 단어들> 말고도 포도뮤지엄 입구에 있던 <롱 라스트 해피, 2020>와 <사랑이 우리를 만든다, 1999>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무지개색을 통해 추측할 수 있듯이 작가 본인의 성 정체성이 드러나고, 포도 뮤지엄에서 강조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마이너리티를 포용하는 포도뮤지엄의 '다양성과 포용성'의 키워드를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었다.
포도뮤지엄이 개관하고 두번째의 특별전시인데, 다음 새로운 전시가 매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