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고 따뜻한 연말

by 몽당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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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4일.

원래 내 취미는 사진 찍기였다. 지금은 카메라가 고장 난 뒤로, 핸드폰으로만 찍고 있지만. 고등학생일 때엔 다큐멘터리 사진집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생 때 사진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부터 사진을 많이 찍었다. 필름 카메라를 사용했고, 내가 직접 동아리 암실에서 현상과 인화 작업을 할 만큼 좋아했었다. 아이를 낳은 뒤로는 일상생활의 많은 것을 사진에 담았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낮 동안 찍은 사진을 보는 것이 큰 위안이 되기도 했다.

여전히 사진들은 그 마법을 발휘해서 나를 그때의 시간으로, 그 장소로 데려다 놓는다. 사진들을 보다 보면, 그 순간의 공기, 소리, 냄새, 온도 등의 감각적인 느낌들이 다시 살아나는 듯하다. 그 마법에 힘입어 생생해진 기억 속에서 나는 잠시 타임머신을 탄다.

비록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이라 해도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가장 소중한 것, 관계가 남아 있다. 나는 사진을 통해서 관계가 평면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다. 이럴 때 시간은 더 이상 일직선으로 흐르지 않게 되고, 중첩되어 현재까지 쌓인 결과물이 된다. 그 무수한 중첩 속에서, 나는 사진을 통해 과거를 몇 번이고 다시 산다. 똑같은 되풀이라 해도, 때로 새로운 길을 통해 다른 기억과 새로운 심상으로 연결되곤 한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지 않은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사느라 바쁜 동안에 나는 카메라를 고치지 않았고, 그저 핸드폰으로 인증샷만을 남기곤 했다. 한꺼번에 컴퓨터로 옮겨진 사진들은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거의 없었다. 다시 시간이 일직선으로 흐른다. 과거는 빠르게 멀어져간다. 어제 일도 흐릿하다. 그게 정상이라고 바쁜 세상이 내게 말한다.

이 책을 만들면서 과거 사진들을 보니 어쩐지 다시 카메라를 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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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9일.

드디어 이사를 했다. 이사한 뒤 첫 동네 산책이다. 우현이는 늘 다니던 유치원에 갔고, 석민이와 지아와 나는 산책에 나섰다. 새로운 동네에서의 첫 산책. 석민이는 네발자전거를 타고 나섰고, 나는 지아를 유모차에 태우고서 따라나섰다.

우리 아파트와 옆 아파트 사이에는 긴 가로수 길이 놓여 있다. 두 아파트의 오래된 가로수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어서, 마치 잘 조성된 공원 길 같은 인상을 준다. 또 양쪽의 화단에 여러 식물이 심겨 있는, 잘 가꾸어진 길이다. 바닥은 보도블록이 깔려 있고, 너비가 차가 다닐 수 있을 만큼 널찍하지만 차는 다니지 않는다. 그래서 통행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양쪽 끝에 각각 중학교가 하나씩 있어서, 교복 입고 무리 지어 다니는 학생들이 길을 더욱 생동감 있게 해준다. 많은 동네 사람이 오며 가며 마주치게 되는 길인 것이다.

이 길에서 우리 아이들은 걸음마를 익히기도 하고, 뛰어다니며 유치원에서 만들어 온 연을 날리기도 하고, 자전거 연습을 하기도 했다. 또 강아지 산책을 시키기도 하고, 여름이면 몇 번이고 왔다 갔다 하며 매미를 잡기도 했었다. 단풍이 들기 시작할 때부터 낙엽이 질 때까지는 키 큰 나무가 많아서 가을 정취를 느끼며 산책했고, 눈이 많이 온 날에는 아파트답지 않게 겨울왕국 풍경처럼 변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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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정리가 아직 다 안 된 데다가 넓은 거실이 휑하긴 하지만, 아이들은 낯설어하지 않고 금방 적응해 나가는 것 같다. 끊이지 않는 웃음소리가 집 안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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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1일.

형의 등원 길에 따라나섰다가, 유치원 앞에서 집에 안 돌아가겠다고 엉엉 우는 석민이. 울다가 갑자기 콜라를 사달란다, 그러면 집에 갈 거라고. 콜라를 사주니 언제 울었냐는 듯한 표정이다. 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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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이가 하원을 한 뒤, 우현이도 함께 동네 구경을 나왔다. 이번엔 아파트 밀집 지역 바깥의 큰 도로까지 좀 더 나와 봤다. 우현이, 석민이, 지아가 태어난 우리 산부인과가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늘어선 도로 건너편으로 보였다.

유치원에 우현이를 데리러 오거나,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러 종종 왔었기에 동네 자체가 낯설진 않았다. 이전에 살던 동네에 비해 구도심의 느낌이 물씬 났다. 오래된 느낌이 나긴 했지만, 그런 만큼 상권이나 교통 인프라 등이 잘 갖춰져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큰 도로의 끝 저편으로 청량산이 크게 보였다. 간척지에 세워진 이전 동네에선 볼 수 없던 풍경이다.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큰 가로수 길을 지나 아파트 단지로 들어서서 우리 동으로 향하는데, 어둑어둑한 가운데 까치 소리가 소란스레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커다란 나무의 가지들에 까치 여러 마리가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이리저리 깡총거리고, 날아다니는 까치들은 아마 지금도 우리 동네에 수십 마리 살고 있을 텐데, 처음엔 이처럼 낯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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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는 어느새 잡고 설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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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

주말이 되자 아빠도 동네 산책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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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0일.

물건들에 제 자리를 찾아주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사이에 빠르게 며칠이 흘러갔다. 아이들은 이제는 놀이마다 참여하고 싶어 하는 지아에게 적용할 새로운 규칙을 생각해 내느라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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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1일.

유치원 등하원길을 엄마와 함께 걷게 되어 기분 좋은 우현이. 유치원에 데리러 가니까 무척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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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3일.

해가 질 녘까지 밖에서 놀고 싶어 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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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4일.

우현이는 잠에서 막 깬 지아와 놀아주다가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지아가 입술로 ‘부’ 소리를 내며 침을 계속 튀겨서였다. 그걸 보고 너무 웃어서 배가 아프다고 하면서도 계속 웃으며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그러고 보면 우현이도 웃음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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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이사 온 집에서의 첫 크리스마스 이브. 조촐하지만 행복한 크리스마스 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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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7일.

나무에 물 주는 일이 뭐라고 이렇게 신이 났을까. 형제가 나무에 물을 주라고 시켰더니, 서로 장난을 치느라 웃고 난리다. 참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식물을 돌보는 것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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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30일.

아빠와 함께하는 초코 쿠키 만들기.

초코 쿠키를 너무 좋아하는 우현이, 세상 행복.





2015년의 이야기를 마치며



2015년은 많은 일이 있던 해였다.

따스한 봄에 막내가 태어나기도 했고,

겨울에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하기도 했다.


동생이 하나 더 생겨서 부담감이 컸을 우현이,

갑자기 생긴 동생에게 엄마를 뺏겨서 속상했을 석민이,

많이 웃고 재롱을 부려서 가족들에게 큰 행복을 준 지아,

모두 열심히 자랐다.


아빠도 엄마도 각자 수고스럽던 한 해였다.


살아가며 가끔 힘이 빠질 때가 찾아오면

2015년의 기억들이 버팀목이 되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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