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번의 여름

by 몽당

2015년 7월.

가장 아름다운 여름이란 우리가 처음처럼 살아가는 여름일 테죠.
'두 번 다시'란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여름.
-김연수, 『우리가 보낸 순간』



7월 1일.

둘째와 셋째를 데리고 아파트 앞 놀이터에 나왔다. 미끄럼틀 지붕 아래 벽면에 아이들의 낙서가 빼곡하다. 흠... 하나, 둘 낙서가 늘어가던 우리 집의 어느 벽면 같다. 지금은 도배를 새로 했지만. 문득 궁금했던 질문이 다시금 마음속에 떠오른다. 낙서는 인간의 본능일까?


손을 가진 영장류는 많은데, 그림을 그리는 건 어째서 인간뿐일까?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그림을 그리는 것, 나아가 낙서를 하는 것도 인간의 본능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많은 엄마들이 겪었듯이, 나 역시 우리 집 하얀 벽에 마구 그어진 낙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무리 혼을 내도 몰래 집안 여기저기에 낙서를 했다. 그 때문에 이쪽저쪽 벽을 여러 번 도배를 하고, 페인트칠을 다시 했다.


친정 엄마는 "벽에 하얀 전지를 붙여놓고 거기에만 낙서해도 된다고 가르쳐. 너 어릴 때도 그렇게 했었어."라고 하셨다. 당연히 나도 처음엔 내가 어릴 때 배웠던 대로 해봤다. 우리 집 아이들도 두세 살일 때까진 그 규칙을 따랐던 것 같다. 그런데 조금만 더 자라자, 첫째가 여기저기 모퉁이에 끄적끄적 그림과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 혼을 냈다. 하지만 하지 말라고 하면 할수록, 더 꿋꿋이 낙서를 남기는 저항 정신 같은 게 느껴졌다. 아무도 안 볼 때 몰래 낙서를 남겨놓는 실력은 뱅크시 저리 가라 할 수준이었다. 어느 날 문득 발견하게 되는 새로운 낙서들. '내 아들이지만 보통이 아니네... 이 녀석을 어쩐다지?' 게다가 첫째가 보란 듯이 낙서를 하자, 동생도 보고 따라 했다. 적힌 내용들은 이랬다. "변신로봇 사주세요", "바보 똥꼬" 그리고, "모서리에 다치지 않게 조심하세요", "엄마 사랑해"까지. 오호... 이렇게 나온다고? 넘어갈 줄 알고? 하지만 그게 먹혔다. 결국엔 내 마음이 약해졌고, 아이들이 낙서 전쟁에서 이겼다. 나는 감동한 채로 도배 계획을 세우곤 했다.


이제는 다행히 아이들이 낙서를 멈췄기에, 미끄럼틀 지붕 아래 같은 신세는 면했다. 7살짜리 낙서쟁이였던 첫째는 이제 게임과 농구에만 열중하느라, 낙서도 그림도 전혀 그리지 않는다. 그 뚝심과 에너지는 무언가 다른 방식으로 발산하고 있나 보다. (혹시 학교 화장실 벽에 낙서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낙서는 결국 본능일까? 나는 그런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여기 있었음을 굳이 알리고자 하는 본능. 관광지나 맛집에서 마주치는 빽빽한 낙서들 중에 가장 흔한 것이 "누구누구 여기 다녀감. 몇 년 몇 월 몇 일" 아닌가. '나 여기 존재했다'라고 흔적을 남기고 싶은 본능. 그리고 어쩌면 자신의 유일함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 ‘나 여기 존재했다. 그리고 나는 남과 다르다.’라고.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이 글도 가상의 담벼락에 써 놓은, 조금 긴 낙서일지 모른다.

"브런치에 몽당 있다. 그리고 내 생각은 흔하지 않다."




7월 5일.

우리가 자주 놀러 가던 공원 매점에서 사 온 플라스틱 공룡알을, 첫째가 조심스럽게 열었다. 안에는 조각난 공룡의 팔, 다리, 몸통이 들어 있었다. 퍼즐처럼 잘 끼워 맞추다 보면 짠-, 하고 작은 공룡이 되었다. 한동안 공원에 갈 때마다 사 오다 보니 이런저런 공룡뿐만 아니라 카멜레온, 거북이까지 생기게 되었다. 남편은 대체 매점에서 왜 이런 장난감을 파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투덜거렸다.


요만할 때 아이들이 좋아죽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알이었다. 그냥 알이 아니라, 알에서 뭐가 나오는 거. 노른자와 흰자 말고, 뭔가 다리 달린 동물 같은 게 나오는 거. 물에 넣어두면 알이 저절로 쪼개지고, 안에서 물에 팅팅 불어서 점점 커지는 공룡 인형 따위가 나오는 장난감도 있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내가 어릴 때도 그런 판타지가 있었다. 어디선가 우연히 알을 주워 와서 품어줬더니, 아기 용이나 아기 공룡이 알을 깨고 나오는 것. 만화나 영화에도 단골로 등장하던 소재였다. 생각만 해도 너무 설레는 일 아닌가. ’혹시 진짜 용이 나오면 어디에서 키우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안 되니까 가방에 숨겨서 데리고 다녀야겠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길가에 버려진 알이 있지는 않은지, 유심히 살펴보면서 다녔었다.


알에서 막 태어나서는 나를 엄마처럼 따르다가, 다 자라서는 나를 보호해 주는 특별한 존재. 그건 때로는 용이었다가, 어떤 때는 공룡이었다가, 어느 시절엔 유니콘이기도 했고, 불새이기도 했고, 네스호에 사는 괴물이기도 했다. 내 안엔 온갖 신화와 미스터리 속의 동물들이 알을 깨고 나와 와글와글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은 어디로 간 걸까?


사실 눈여겨보면, 알 판타지로 아이들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공룡 퍼즐이 들어있는 플라스틱 알 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뽑기 상품도 동글동글한 알 모양 캡슐 안에 들어있고, 초콜릿과 장난감이 들어있는 킨더조이 초콜릿도 알 모양 포장 속에 들어있다. 부모 눈에는 왜 그렇게 비싼지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초콜릿이지만, 아이들 눈에는 뭐가 나올지 모르는 두근두근거리는 초콜릿 알이다.


아이는 점점 자라다가 어느 날부터 미묘하게 달라진다. 공룡알 장난감을 봐도 더는 사달라고 하지 않고, 더는 뽑기도 하지 않고, 드래곤 키우기 같은 게임도 하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유치하다고 말하기 시작한다. 킨더조이 초콜릿은 싸구려 장난감만 들어있는데 왜 이렇게 비싼지 모르겠다고 한다.


특별한 친구를 상상하고 설레어하던 그 마음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봐도 알 수가 없다.

막내와 거울로 서로를 바라보며 즐거워하는 중.


아이들을 모두 재우고 베란다에 나와서 바라보는 도시의 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날 따라 유난히 도시의 소음들이 낯설고 크게 들려왔다. 버스의 엔진 소리가 옆에서 듣는 것처럼 선명했다. 큰 빌딩과 아파트 사이로 달리는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규칙적으로 거리를 비추며 지나갔다. 문득 내가 있는 우리 집이 세상과 동떨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밤이었지만, 나도 도시 소음의 일부였던 예전을 아주 잠깐 떠올렸던 것 같다.




7월 6일.

한창 여름이었다. 막내를 유모차에서 재우고는 형제를 데리고 외출에 나섰다.

도착한 곳은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 두 형제는 신나게 놀기 시작했다. 나는 괴물이 되어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두 아이를 찾아 나섰다. 내가 “우와악-” 괴성을 내면, 아이들은 “꺄아악-” 소리를 지르며 도망갔다. 우리가 자주 하던 괴물 놀이였다. 형제는 이 스릴 넘치는 놀이를 좋아했다. 나도 괴물놀이를 좋아했다. 비록 언제나 괴물 역할이기는 해도 아이들을 실컷 웃길 수 있었으니까. 그 어떤 코미디언을 데려와도, 이때 괴물이 된 나보다 애들을 웃길 수는 없었을 거다.

막내는 자면서도 쑥쑥 자랐는지, 자고 일어나면 그새 또 새로워진 것처럼 보였다. 한 잠 자고 일어나면 기분이 좋아져서 엉덩이를 들썩들썩거리며 돌고래 같은 소리도 질렀다. 가족들이 와서 들여다보면 좋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7월 7일.

첫째는 유독 코피가 자주 났다. 아침밥 먹다가도 주르륵. "엄마, 엄마, 엄마, 휴지, 휴지, 휴지!" 자다가도 갑자기 일어나서 이불에 온통 붉은색 물방울무늬를 뚝-뚝- 떨어뜨리며 화장실로 달려가기도 했다. 다행히 밖에서는 잘 안 터지는 편인데, 학교에서 코피 났다며 교복을 빨아달라고 내놓을 때도 한두 번 있긴 했다.

남편이 말하길 자신을 닮은 거란다. 대학생 때까지도 코피가 자주 났었다고. 흠... 그렇게 연약해 보이는 사람이 아닌데. 믿기 어렵지만 나는 코피를 거의 흘리지 않았으니, 아빠를 닮은 게 맞겠지. 그런데 가만있어보자, 대학생 때까지면 아직도 몇 년은 더 코피 묻은 빨래를 해야 한다는 거잖아... 오 마이 갓.

유전이라는 것은 참 대단하면서도 뻔뻔하기도 하다. 어떻게 코피 터지는 체질까지 그대로 물려줄 수가 있냔 말이다. 애들을 키우다 보면 때로는 남편의 잠자는 모습, 심지어 방귀 뀌는 소리까지도 닮은 것 같다.

... 남편도 나와 애들을 번갈아보며 그런 생각할 때가 있긴 하겠지?




7월 8일.

지난달보다 동생에게 많이 너그러워진 둘째. 셋째에게 말도 걸고 쓰다듬어주기도 하면서 오빠다운 면을 조금씩 보여줬었다. 막내는 오빠들을 좋아하는 눈치였다. 오빠들이 곁에 있어주면 더 웃고 덜 울었다.




7월 10일.

둘째는 매일매일 형아가 유치원에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형아를 기다리는 일은 둘째에게 매일 치르는 작은 의식 같은 거였다. 오늘도 엄마 따라 유치원 버스 오는 곳으로 형아를 마중 나갔다. 한 손엔 물을 가득 채운 물총을 들고서.

유치원 버스에서 형이 내리자마자 물총 세례를 하고는 씨익 웃으며 도망을 쳤다. 마구 뛰어가다가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바닥 분수에 들어갔다. 형도 신나서 뛰어 들어갔다. "어어, 옷 다 젖는데..." 말릴 틈도 없었다. 바지 벗지 않은 게 다행이지 뭐람. 놀이터에서 잠깐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새 옷이 다 말랐다.

유치원을 집과 꽤 많이 떨어진 다른 동네로 보냈기 때문에, 하원 후 유치원에서 사귄 친구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보통 이 나이대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사귄 친구와 하원하고도 같이 놀면서 동네 친구 관계를 형성한다. 그런데, 이때 우리가 살던 아파트 단지 내에는 같은 유치원을 보내는 집이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 동네의 영어유치원에 다니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가 없다 보니, 이 당시 형제의 사이가 더욱 각별했던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우리는 같은 해 12월에 첫째가 다니고 있던 유치원 근처의 집으로 이사를 갔고, 형제는 비로소 동네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하원 혹은 하교하고 나서 같이 놀이터에서 놀고, 같이 자전거를 타는 동네 친구.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란 동네 친구가 있다는 건, 자신에 대해 가족처럼 잘 아는 사람이 있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7월 11일.

이날도 남편의 퇴근은 아이들이 잠든 뒤였다. 막내는 아빠가 보고 싶어서 기다렸던 걸까? 아빠 품에 안겨서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 행복해 보인다.

남편의 회사는 이때 구조조정 중이었다. 언론에도 기사가 날 정도로 큰 감축 규모였다. 그래서 남편은 셋째가 태어난 후에도 눈치를 보느라 계속 야근을 해야 했다. 아침에 6시 반이면 나가서 밤에 10-11시가 넘어서 들어왔다. 나는 혼자 셋을 키우는 게 너무 힘들어서 남편에게 3개월만 육아휴직하고 나를 도와주면 안 되겠냐고 말을 하기도 했다. 물론 구조조정을 하는 분위기 속에, 없던 얘기가 되었지만.

훨씬 시간이 흐른 뒤인 2022년이 되었을 때 남편은 회사에 1년 육아휴직계를 내고 육아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시간들이 흐르고 난 뒤, 남편은 비로소 나의 고됨을 이해하게 되었다.

서서히 마음에 가뭄이 들어가던 내게, 그 1년은 때 맞춰 내린 호우와도 같았다.



7월 13일.

여름날, 집에 있을 때, 형제들은 바지를 자꾸 벗곤 했다. 첫째는 유치원에 다니고부터 훨씬 나아졌고 설사 벗더라도 팬티는 입고 있었지만, 아직 유치원에 다니지 않던 둘째는 입혀놓으면 전부 홀라당 벗어버리기를 되풀이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거의 포기하고 내버려 두었었다. 다행히 집에 손님이 오거나 하면 벗지 않았다. 집 밖에서도 절대 벗지 않았다. 하지만 집에서 찍은 사진에는 곰돌이 푸처럼 티셔츠만 입고 있는 사진이 한가득이다. 그 당시에는 익숙해져 있어서 몰랐는데, 이제 와서 돌아보니 좀 많이 민망하네.



7월 15일.

아이 셋을 데리고 집 근처의 어린이 도서관에 갔다. 셋째는 등에 업고 재우는 채로. 아이들이 책을 읽던 도중에 셋째가 깨어나서 잠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내려놓았다고 울거나 보채지도 않고, '여기가 어딘가'하는 눈빛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들은 동화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나도 아이들을 키우며 동화책 읽어주는 맛을 새롭게 배웠다. 어린 시절부터 읽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은, 그냥 읽는 것과 다른 새로운 세계였다. 그동안은 누군가에게 책을 읽어준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바꿔가며 책을 재밌게 읽는 재주가 나에게 있었다. 동화책을 펼쳐 놓고 아이들과 내 눈이 모두 같은 페이지를 바라볼 때면, 그리고 내가 읽기 시작하면,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나는 목소리를 바꿔가며 무엇으로든 변신했다. 작은 벌레였다가, 날 수 있는 하마였다가, 엄마 잃은 물고기였다가, 요술을 부리는 너구리와 여우였다가, 심심한 아기곰이었다가, 장난꾸러기 고양이들이기도 했다가, 방귀 뀌는 기차가 되기도 했다.

바뀐 목소리와 말투로 주인공과 등장인물들의 말을 읽을 때면, 그건 더 이상 글이 아니라 대사가 되었다. 그리고 동화책은 장면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특별한 대본이 되었다. 목소리 연기를 하면서, 감정이입이 되곤 했다. 주인공이 울먹이면, 울먹이는 연기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울컥했고, 주인공이 기뻐하면, 기쁜 목소리로 크게 말하면서 내 마음도 기뻤다. 혼자 책을 읽을 때는 결코 알 수 없던 희열이었다. 그렇게 많은 동화책 속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던 것 같다. 아이들을 위해서라기보다 내가 좋아서. 동화책 속 인물들을 연기할 때 내가 감정이란 걸 느낄 수 있어서. 그건 참 묘한 행복감이었다.

아이들이 기억하는, 내가 마지막으로 읽어주었던 책은 아마도 <후춧가루 총 호첸플로츠>라는 책인 것 같다. 큰애는 중학생이 된 후에도 가끔 엄마가 그 책을 읽어줬던 것을 기억한다고 얘기했다. 그림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어린 시절에 무척 좋아했던 책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읽어주었다. 숲 속에 사는 악당 호첸플로츠와 마찬가지로 악당인 마법사, 그리고 주인공 두 소년과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카스팔과 제펠의 기지에 감탄하면서 그들의 모험에 동참했다. 악당이긴 했지만 묘한 매력이 있던 호첸플로츠의 말에도 귀를 기울였다.

두 형제는 어릴 때 정말 동화책을 많이 읽어줘서,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할 줄 알았다. 또 내가 어린 시절에 책 읽기를 좋아했기에 아이들도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은 빗나갔다. 첫째는 책 읽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둘째는 혼자 책을 보긴 하는데 주로 과학, 공학에 관한 책들이다. 오히려 내가 재취업이다 뭐다 바빠서 책을 많이 읽어주지 못한 셋째가 늘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 읽었다. 지금은 학교 도서부에 들어가 활동 중이다.

셋째는 지금도 가끔 책을 읽어달라고 한다. 어느 날엔가, 셋째가 열이 나고 아팠던 날에 편안하게 잠들 수 있도록 책을 읽어줬던 적이 있다. 북라이트를 켜놓고 읽어주었던 책의 제목은 <푸른 사자 와니니>였다. 셋째가 평소 좋아하는 책이었다. 셋째는 이날의 기억이 좋았나 보다. 가끔 그때 엄마가 읽어주는 게 너무 재밌고 좋았다고 이야기한다. 두 형제도 가끔 "예전에 엄마가 읽어줬던..." 하면서 자기가 좋아했던 동화책 내용들을 기억나는 대로 말해준다. 그러면 마음이 포근해진다. 나만 기억하는 추억이 아니어서. 마치 나니아 연대기처럼, 우리가 상상의 세계에서 함께 했던 그 추억들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서.




7월 16일.

주말 아침, 거실 바닥에서 놀다가 잠든 막내. 오빠들이 TV를 크게 틀어놓고 시끌시끌 떠들어도 깨지도 않고 잘 잤다.




7월 17일.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 나는 그걸 모르면서 용감하게 아이들을 키웠던 것 같다.

어쩌면 그게 내 인생 최대의 미스터리일지도 모른다.

내 인생 중 단 한 번의 여름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덧붙이자면, 그래서 나는 이걸 두 번은 못할 것 같다. 흠흠.




7월 18일.

어제도 울면서 집에 왔는데, 오늘 저녁 또 울고 있다. 똑같은 표정으로, 엄마 앞에서.

무엇 때문에 울었던 것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맘때 첫째를 너무 큰 아이처럼 대했던 것만은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다. 6살이면 아직 많이 어린 나이였는데도 동생들이 더 어리다 보니, 큰 애가 그중에 '많이 큰 애'처럼 보였었다. 그래서 애기처럼 굴 때, 쉽게 나무라곤 했다.

지금 보면 애기인데... 이제 와서 미안한 마음이 찾아온다.

좀 더 받아줄걸. 울면 그냥 달래줄걸. 많이 안아줄걸.


아빠도 오빠들처럼 막내 옆에서 딩굴딩굴하는 걸 좋아했다.

바닥에 누워 눈높이를 맞추고 나면, 막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어떤지 보였겠구나.




7월 19일.

주말 아침 풍경.


아빠와의 공원 나들이 시간.


둘째는 손가락을 빠는 버릇이 있었다. 18개월쯤에 젖을 끊었는데, 그때부터 잠들 때 손가락을 빠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더니 이후로 혼자 생각에 빠지거나, TV를 시청하거나, 움직이는 기차 장난감을 가만히 구경할 때, 그리고 졸릴 때엔 어느새 손가락이 입 속에 들어가 있었다. 특히, 동생이 생기면서 더욱 심해졌던 것 같다.

공갈 젖꼭지로라도 대체해보려 했지만 거부했고, 오로지 자신의 자그마한 엄지손가락만 좋아했다. 쪽쪽 손가락을 빨 때면, 마치 아기로 돌아간 것 같고 앞니도 튀어나올 것 같아서 내 마음은 복잡했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찾아보니 억지로 말리면 더 심해진다고들 했다. 그래서 무척 신경이 쓰였지만, 꾹 참고 지켜봤다. 그게 무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갈 줄이야. 그런데 신기하게도 4학년의 어느 날부터 갑자기 딱 빨지 않게 됐다. 자기 스스로 나에게 얘기를 꺼내던 모습이 떠오른다. "엄마, 나 이제 손가락 안 빨지."라고... 그 말을 듣고 나서 전 날을 떠올려 보고, 또 그전 날도, 그 전의 전 날도 떠올려보니 정말 그랬다. 언제부턴가 손가락을 빨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놀라워하는 나를 보며 빙그레 웃던 둘째의 표정이 생생하다.

둘째의 속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둘째는 그런 신비로운 면이 있다.



7월 20일.

셋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었다.

10년이 흐른 지금은 셋이 함께 있는 사진 찍기가 너무 어렵다. 같이 시간을 보내기도 어려울뿐더러, 사진 찍는 것도 꺼리고, 셋이 동시에 같이 찍자고 하면 더 꺼리고...

현재 아이들의 눈부신 성장은 내 마음을 뿌듯하게 채우지만, 가끔은 셋이 함께 거실을 굴러다니던 이 시절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7월 26일.

셋째의 백일 날.

집에서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치렀다.

사진 속 나는 웃고 있었지만, 머리 스타일은 지금 보니 꽤 어색하다. 나는 세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 머리 감고 말리는 시간도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주 저렇게 짧게 잘랐었다. 미용실에 가서 원하는 스타일을 말할 때면 늘 "왜 이렇게 짧게 잘라요?"라는 질문을 받곤 했다. 그러면 사실대로 "머리 감고 말리는 시간 줄이려고요." 대답하면 질문을 한 분은 당황스러워했다.

지금은 긴 머리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 때 너무 힘들어서 짧게 자른 것도 있지만, 자기표현이기도 했던 것 같다. 해야만 하는 일들과 책임감 앞에서, 관습과 타성 앞에서, 내 딴에 일종의 소리 없는 외침이었던 거다. 머리 스타일 정도는 내 멋대로 좀 해도 되는 거 아닌가요? 나도 힘들다고요! 라고 말이다.




7월 27일.

이제 엎드려서 고개 드는 연습을 하는 셋째. 동생을 따라서 엎드리기를 흉내 내는 오빠들.



7월 28일.

이제 데굴데굴 구르기도 잘하고, 엎드리기도 잘하는 막내는, 원하는 곳을 향해 굴러다니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천장을 보며 누워만 있을 때보다 표정에 활기가 도는 듯하다.

10년 전 이 여름도, 지금의 여름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도 아이들도 이 여름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테니. 우리들은 그렇게 성장하고 나이 먹어가고 있으니.

하지만 어느 해든 가장 아름다운 여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걸 나는 믿는다. 우리 마음이 여름을 지나갈 때면, 언제나 이 찬란한 기억들이 되살아날 것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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