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수면 아래
형제는 주로 집안에서만 보내는 생활을 슬슬 심심해하는 눈치였고, 막내는 토실토실 살이 붙기 시작했다. 아이들 아빠는 회사에서의 바쁜 일과에 쫓기고 있었다. 초여름 특유의 간질거리는 예감 속에서, 우리는 미지의 날들을 하루하루 살아내며 천천히 여름 한복판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6월 1일.
내가 안방의 아기 침대에서 막내를 돌볼 때면, 둘째가 늘 따라와서 옆에서 기다리곤 했다.
조막만 한 얼굴엔 생글생글 웃음이 가득했지만, 그 웃음이 늘 기분 좋음을 의미하진 않았다. 아이들의 마음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오히려 천진난만해 보이는 아이의 마음속에 어른보다 더 깊고 미묘한 감정이 숨어 있을 때도 있었다.
나는 처음에 그걸 잘 몰랐다.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눈에 보이는 것 혹은 확실한 것을 쫓으며 살았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던 나는, 보이지 않는 감정을 읽어내는 것에는 서툴렀다. 그러나 육아에서 중요한 건 바로 그 보이지 않는, 미묘한 감정들이었다. 나는 “잘 해내겠다”는 마음으로 육아를 시작했고 이내 습관처럼 '훌륭한 엄마'라는 타이틀을 욕망했다.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좋은 엄마'로 인정받는 것을 포기하고, '보통의 엄마'가 된다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육아에는 뛰어난 능력이 아니라, 열려있는 마음과 언제든 안길 수 있는 품이 필요했다. 말로는 쉽지만 대충 그럴싸하게 하는 건 통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기가 막히게 진짜 공감과 가짜 공감을 구분할 줄 알았고 엄마의 품에 자신이 들어갈 자리가 있는지 없는지도 알았다.
내 품은 아주 천천히 자랐다. 육아는 내가 했지만, 내 품을 키운 건 아이들이었다. 그리하여 처음엔 애가 애를 키우는 것 같았던 내가, 이제는 세 아이를 품는 엄마가 되었다.
6월 3일.
둘째가 형아를 울렸다. 자기 몫의 과자를 다 먹고서 형의 것까지 날름 먹어버렸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첫째가 굉장히 서럽게 울었다. 눈을 꼭 감고 우는 표정을 보니 그동안 쌓인 것이 마침내 터져 나온 듯했다. "형인 니가 참아."라는 말을 자주 들어서였을까.
둘째는 혼날 거라고 생각했는지 눈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내가 먹었어. 그래서, 뭐."라고 말하는 듯하다.
둘째를 낳았을 때 아이들의 외증조모께서 둘째를 처음 보시고 그랬다.
"어쩌면 이렇게 밤톨 같은 아이를 낳았어!"
처음엔 그저 재미있는 표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둘째가 자랄수록 그 말이 꼭 맞았다.
밤톨 같은 아이. 땡그랗고, 야물고, 딴딴한 아이.
작지만 약하지 않은 아이.
둘째는 자라면 자랄수록 점점 더 밤톨 같았다. 나는 가끔 할머니의 선견지명이 딱 맞았다고 생각하곤 했다.
첫째는 한참을 울고 나서 언제 울었냐는 듯, 다시 둘째와 같이 놀았다.
이 나이 때의 아이들이 대개 그렇듯이, 우리 집 형제도 하루에도 몇 번이나 심각하게 싸웠다가 금세 화해하곤 했다. 조그마한 녀석들이 사소한 일에도 어찌나 날카롭게 말다툼을 하는지 다섯살 관람가의 법정 드라마라도 한편 찍는 것 같았다.
심할 땐 첫째의 꼭 쥔 주먹이 먼저 나갔다. 둘째도 질세라 주먹을 뻗었지만, 팔이 형보다 짧아 형 몸에 닿지도 못하고 분해서 씩씩거릴 뿐이었다. 둘은 결투라도 하듯이 심각한데, 곁에서 보고 있자니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토닥토닥 싸웠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웃으면 둘 다 발끈했기에 나는 웃음을 꾹 참았다. 결국 형이 힘에서 우위라, 내가 말리기도 전에 싸움이 금세 끝났다. 둘은 언제 싸웠냐는 듯 다시 잘 어울려 놀곤 했다.
지나고 나니 다 추억이 되어서 그렇지, 우습기만 했던 건 아니었다. 당시엔 하루 종일 싸우는 것 때문에, 저녁 무렵이면 진이 다 빠지곤 했다. 갓난아기 돌보는 것보다, 형제의 싸움 말리는 것이 더 힘들었다. 예전에 교육학 전공하신 어떤 분에게 이런 얘길 들은 적이 있다. “남자애들은 일곱 살만 돼도 집밖으로 내돌려야 해요. 수사자를 생각해 보면 돼요. 수사자들은 서로 만나기만 하면 싸우게 되어있거든요.”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 집 형제는 유치원생 때부터 수사자 행세를 했다는 점이랄까?
형제의 싸움은 이후로 중학생이 되기 직전까지도 이어졌다. 둘째가 아직 초등학교 6학년일 때, 둘이 심하게 몸싸움을 한 적이 딱 한 번 있다. 유치원생일 때의 주먹다툼과는 완전히 달랐다. 내가 힘으로 둘을 떼어놓으려고 해도 아이들 완력이 너무 세서 먹히지가 않았다. 그때에 첫째 키가 이미 170센티가 넘었으니까. 첫째가 힘이 그렇게 센지 처음 느끼게 되어서 겁이 덜컥 났다. 놔뒀다간 둘째가 심하게 다칠 것 같았다. 그만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부끄럽지만 눈물까지 비치자 첫째가 몸싸움을 멈췄다. 그 뒤로는 둘이 몸싸움을 한 적이 없다. 둘째가 다시는 형을 도발하지 않았다. 주변의 남성분들이 사정을 듣고 얘기해주길, 형제들은 가끔씩 그런 식의 서열 정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수사자들의 세계란.
이제 둘 다 중학생이 된 지금은, 거의 싸우지 않는다. 서로 어울리는 친구가 다르고, 하는 활동도 다르고 하다 보니 부딪힐 일이 많지 않은 것 같다. 유일하게 싸울 건수가 있다면, 먹을 거 가지고 싸우는 정도? 그 정도는 귀엽고 사랑스럽다.
10년 전의 깜찍한 다툼은 영상으로 몰래 찍어놓은 것도 있다. 사바나 초원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우리 집 동물의 왕국 다큐멘터리. 나중에 보여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웃음이 나온다.
6월 4일.
"너 싫어." 삐죽 나온 심술.
6월 5일.
육아는 호수 위를 미끄러지는 백조를 닮았다. 겉으로 보기엔 평화로워 보이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부지런히 발을 놀리는 백조 말이다.
쉴 새 없이 물장구를 치던 때엔 삶이 빡빡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지나고 나서 육아를 돌아보니, 모든 순간이 더없이 아름다워 보인다. 힘든 건 희미해지고, 좋은 장면들만 떠오른다. 허술한 기억력은 실은 축복인 것 아닐까. 아름답지 않은 부분부터 세세하게 떠올랐다면, 삶의 무게에 지쳐버렸을지도 모른다.
진부하지만, 아이들의 낭랑한 웃음소리가 내게 기운을 불어넣는 주문이었다. 힝 힝 힝, 하고 콧소리가 섞인 그 웃음소리에는 무력감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치명적인 발랄함이 있었다. 그 힘으로 청소를 하고, 요리를 했다. 몸을 움직이다 보면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세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재웠다. 또 진부한 하루가 지나갔다.
모두가 잠든 밤이 되면 오늘 하루도 잘 살아냈다는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가끔은 집 앞에 나가서 놀이터 그네에 몸을 맡겼다. 고개를 젖히고 하늘의 몇 안 되는 별들을 쳐다보다가 들어오곤 했다. 그 고요한 여운에 푹 파묻힌 채로 '아이들이 잘 크고 있다'라고 스스로를 달래곤 했다.
6월 7일.
일요일 오전. 아빠랑 공원에 가려고 준비하는 아이들.
아직 막내가 백일도 되지 않아서, 평일에 혼자 셋을 데리고 외출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주말이면 아이들 아빠가 첫째와 둘째를 데리고 외출을 했다. 아파트에서 횡단보도 2개만 건너면 바로 큰 공원이 있었고 걸음마 시절부터 그 공원에서 뛰어놀며 자란 아이들은 아빠와의 공원 산책을 아주 많이 좋아했다.
6월 9일.
둘째가 카메라로 찍어놓은 일상 모습.
막내를 업고 있는 엄마.
그리고... 바로 곁에 있는 형아. 첫째의 얼굴에서 다정함이 잔뜩 묻어난다.
엄마인 내가 늘 카메라로 일상을 찍어서인지, 아이들이 곧잘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곤 했다. 모두가 잠든 밤에 그날 찍은 사진들을 컴퓨터로 옮기면서 훑어보다가, 아이들이 찍어놓은 사진을 발견할 때가 있었다. 그러면 마치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것 같아서 기뻤다.
6월 10일.
첫째와 둘째가 바닥을 스케치북 삼아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혼을 내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잘 놀아주질 못해서, 형제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6월 12일.
첫째는 장난기가 많고, 욕심도 있고, 자기 고집도 꽤 있는 편이다.
속이 깊고 느긋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는데, 유치원 때부터 중학생인 지금까지 담임 선생님들께 공통적으로 듣는 평가다. 수업도 느긋하게 따라오고, 어디 견학 가서도 제일 뒤에서 느긋하게 온다고. 좋은 뜻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할 때쯤 선생님께서 덧붙이셨다. 타고난 성품인 것 같다고. '아니, 이런 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어쩌려고 그렇게 여유를 부리는 거야?' 답답하면서도 피식 웃음이 나온다. 뒷짐 지고 저 뒤쪽에서 느긋하게 따라왔을 그 모습이 그려져서. 하긴 그게 너지.
아, 성급할 때도 있긴 하다. 먹을 거 기다릴 때.
의외로 예민한 기질이라 아기 때는 참 애를 많이 먹었다. 내가 육아가 서툴러서였을까? 잠투정도 몹시 심했고, 업는 것도 싫어하고 안아주는 것만 좋아했다. 고집 때문이었는지 유모차 타는 것도 싫어했다. 한두 시간을 밖에서 제 발로 뛰어놀고 나서야, 이마에 땀을 잔뜩 흘린 채로 유모차에서 스르륵 잠들곤 했다.
막내가 태어났을 때 첫째가 겨우 6살이었는데, 지금 돌아보니 6살치곤 정말 의젓했다는 생각이 든다. 기억이 아름답게 미화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첫째가 항상 둘째랑 놀아주고, 고집도 덜 부렸던 것 같다. 속 깊고 느긋한 성격이라 그랬던 것이었을까?
아무튼 멋진 형아였다는 것, 인정.
반면에 둘째는 둘째다웠고. (막내 울리기 3초 전)
6월 14일.
혼내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던 둘째. 말을 안 들을 때면 아빠가 거꾸로 들어 올리곤 했다. 그러면 둘째는 자지러지게 웃으면서 좋아하곤 했다.
첫째가 좋아하는 음식 중의 하나는 초코우유이다. 흰 우유에 코코아 가루를 타서 만든 초코우유. 어릴 적부터 중학생인 지금까지 줄곧 초코우유를 좋아한다. 그냥 우유도 좋아한다. 하지만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유제품을 먹으면 속이 안 좋아지는 체질이다. 특히 차멀미를 하는 편이라, 우유를 먹고 차를 타면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유치원 다닐 때 어느 날 아침에 밥이 아닌 시리얼을 먹였더니, 유치원 도착해서 등원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다 토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 집 아침은 늘 한식이다. 아이고, 삭신이야.
6월 19일.
슬슬 셋째를 거실로 데리고 나와 눕히기 시작했다. 위험하지 않도록 두 형제에게 뛰어다니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장난꾸러기들을 완전히 얌전하게 만드는 건 불가능했기에 유심히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불안해하던 내 마음과는 반대로, 막내는 아기 침대에 있을 때보다 거실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을 더 좋아했다. 오빠들은 옆에 붙어서 뽀뽀를 해주기도 하고, 막내를 흉내 내며 장난을 치기도 하고, 구르는 법을 가르치려는 듯 나란히 누워 굴러 다녔다. 막내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허공에서 휘적휘적하는 오빠들의 팔, 다리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드물게 셋 다 낮잠이 들 때가 있었다. 바로 이 날이 그런 날이었다. 첫째는 막내랑 나란히 누워서 잠들고, 둘째는 소파 위에서 잠들고. 우리 집에 잠의 요정님이라도 다녀간 건지, 마법에 걸린 듯한 시간이었다.
나는 아이들 옆에 누워서 그냥 숨만 쉬며 가만히 있었다. 숨소리에 맞춰, 오르락내리락하는 아이들의 배를 조용히 지켜봤다. 가끔 뒤척이며 걷어차는 담요를 살며시 덮어주곤 다시 누웠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았다. 축복이 우리 곁에 머무르고 있는 듯했다.
6월 22일.
첫째는 유치원에 갔고, 지루해하는 둘째와 막내를 데리고 모처럼 공원에 나갔다. 음악분수가 나오는 여름날이었지만, 평일 한낮이라 공원은 텅 비어 있었다.
막내는 유모차에서 자고 있었고, 둘째는 바지를 벗고 팬티 바람으로 분수 속을 뛰어다녔다. 물줄기에 장난을 치며 통통 튀어 다니는 모습은 꼬마 요정 같았다. 평소에도 산책하다가 갑자기 신발을 벗고 달려가곤 하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실컷 뛰어놀고서 다 젖어버린 옷들은 다시 공원 산책을 하는 동안 햇볕에 금세 말랐고, 둘째는 2인용 유모차의 자기 자리에 기대앉자마자 단잠에 빠졌다.
집에 와서 깨어난 뒤에도 둘째는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첫째에 비해 말이 좀 늦었던 둘째는 원래 말이 많지 않았다. 자기 생각에 골똘할 때가 많아서, 때때로 말보다 풍부한 다른 심상의 세계에 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뜬금없지만 나는 둘째가 왼손잡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왼손잡이라서, 말보다 그림 같은 세계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 싶었다.
둘째가 기분을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장난기 가득한 표정과 사뿐사뿐한 발걸음, 흥얼거리는 허밍은 분명히 표현하고 있었다. 오늘의 공원 나들이가 행복했다는 것을. 아마도 이 날은 음악분수 꿈을 꾸지 않았을까?
첫째가 그림을 그렸다. TV로 보던 변신 로봇이란다.
취학 전까지는 첫째가 자신의 그림에 대해 자신감이 있었다. 거침없이 성큼성큼 선을 긋는 스타일이 있었는데, 아쉽게도 초등학교 들어가자마자 그런 느낌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제각각 뚜렷하던 인물 묘사는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은 얼굴로 바뀌었고, 자유롭던 배경의 표현은 납작해져 버리고 말았다.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사라져 버린 첫째의 개성이 너무 아까워서 어릴 때의 그림을 버리지 않고 다 모아 놓았다. 언젠가 다 꺼내 보여줄 생각이다. 모두 다. 주먹다툼 동영상도, 어린 날의 사진도, 어린 날의 그림도. 어른이 되면. 그래, 너희가 어른이 되어 살다가 이 모든 것들이 궁금해질 때가 되면.
6월 30일.
막내 얼굴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이뻐지고 있었다. 살이 오르기 시작했다. 몸을 굴리려고 애쓰기도 했다. 무엇보다 오빠들이 계속 곁에 있어서 그런지, 웃음이 아주 많아졌다.
둘째는 손가락 빠는 버릇이 심해졌다. 흔히들 동생이 생기면 퇴행이 오기도 하니까 그런 것 같았다.
여름은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조금씩 깊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