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내 반항의 한가운데에 어떤 동의가 잠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준 유럽의 몇 안 되는 고장 중 하나다. 눈물과 태양이 한데 섞인 이곳 하늘에서 나는 이 땅에 동의하며 그 땅의 축제의 어두운 불꽃 속에 타오르는 법을 배웠다. 내가 실감한 것은···. 그러나 무슨 말을? 무슨 무분별을? 사랑과 반항의 합일을 어떻게 엄숙히 선언한단 말인가? 대지여! 정신들이 비우고 떠난 이 거대한 사원 속에서 내 모든 우상들은 진흙으로 빚은 발을 지녔다."
-알베르 카뮈, 「사막」
8월 1일.
오늘은 집에서 가까운 영종도 을왕리 해수욕장으로 출발! 작은 쏘울 차 안에 카시트 세 개를 놓고 다섯 식구가 타려니 복작복작. 차 타고 나들이 가는 게 처음인 막내는 기분이 안 좋은지 계속 울었다.
첫째가 재빨리 손을 움직여 갯벌 가운데에서 구멍을 헤집었다. 구멍 속에서 퐁퐁퐁 솟아오르는 바닷물만 차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작지만 야무진 손가락으로 얼른 작은 게를 잡아 꺼냈다. 놀라고 겁먹은 듯한 게는 눈을 접었다가 세웠다가 하다가 게걸음을 선보이며 도망치고, 첫째가 다시 잽싸게 잡아서는 플라스틱 통 안에 넣었다. 둘째도 형 하는 걸 보고는 열심히 구멍들을 기웃거렸다. 나중에는 둘이 누가 더 많이 게를 잡는지 경쟁이 붙었다.
이제는 바다에 놀러 가면 바로 물속으로 뛰어드는 아이들이지만, 이렇게 어릴 때는 해수욕만큼이나 해변의 생물체들에게도 관심이 많았다. 우리가 가본 해변은 여섯 곳쯤이었다. 그중에 게나, 쏙, 조개와 같은 생물체들을 만날 수 있었던 곳은 상주은모래 해수욕장과 을왕리 해수욕장, 천리포 해수욕장이었다.
썰물 때에 물이 빠져나간 뻘과 모래에서는 게 눈이 구멍마다 뽈록뽈록 나와 있다가, 사람 기척이 조금만 가까워져도 구멍으로 쏙 들어가며 없어지곤 했다. 그런 행동이 저 멀리서부터 보여서, 어떻게 보면 우스꽝스러운 한 편의 공연을 보는 것만 같았다. 게들의 단체 공연이랄까? 아마도 게란 생물체도 어지간히 호기심이 많긴 한가보다. 은신처에 꼭꼭 숨어있질 않고 노상 눈만 내놓고 바깥을 내다보고 있으니 말이다.
아이들 덕분에 뻘에서 조개도 캐보고, 그 조개로 국물을 내어 수제비도 끓여 먹어봤다.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또 쏙이라는 생명체도 처음으로 봤다. 우리가 잡은 그게 쏙인지, 갯가재인지는 아직도 긴가민가하지만. 무르고 투명한 껍질 아래로 몸속이 다 비쳐 보이는 것이, 아주 특별한 경우에나 볼 법한 생물체 같았다. 아이들과 바다로 놀러 간다는 것은, 이렇게 예상치 못했던 세계와 조우하는 것이었다. 바다는 그렇게 우리 모두를 품었다. 그 안에서는 우리가 세상의 일부라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씻고 나온 아이들은 잡아온 게들을 구경했다. 나는 어린 시절 게를 잔뜩 잡아왔다가 다 죽어버렸던 기억이 나서 게를 그냥 풀어주고 오자고 했지만, 아이들은 괜찮을 거라며 고집을 부렸다. 결국 서너 마리를 집에 데려오게 되었는데, 다 죽었다. 힘없이 늘어진 죽은 게를 들여다보는 아이들의 눈에는 후회와 실망이 비쳤다. 이후로는 해변에서 게를 잡으면 다 풀어주고 오게 되었다. 나도 어린 시절에 그랬지만 아이들도 죽음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8월 3일.
더운 열기를 식혀주는 폴라포. 어릴 때 많이 먹던 것을 아직도 파는 게 신기해서, 공원 산책을 다녀오는 길에 아이들에게 사줬다.
8월 5일.
아이를 키우다 보면 한 번은 겪는 통과 의례, 자전거 가르치기. 주변을 보면, 빨리 배우는 아이들은 유치원 다니기도 전에 보조바퀴 없는 자전거를 탔다. 나는 우리 집 아이들도 일찍 자전거 타는 법을 익히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날이 첫째가 자전거 보조바퀴 떼고 타는 걸 처음으로 시도한 날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자전거 타는 법을 혼자 익혔다. 초등학교 저학년 어느 주말 아침에 '오늘 안에 자전거 타는 법을 익혀야겠다'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해질 때까지 수없이 아스팔트에 부딪히고 무릎을 쓸리며 마침내 자전거를 익혔다. 그때의 성취감은 어른이 된 후에도 뚜렷이 마음에 남아 있었다.
나는 이날 첫째에게 그런 성취감을 주고 싶었지만 나중에 돌아보니 그것은 내 욕심이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 했듯이 애를 쓰면, 무릎은 좀 까지더라도 타는 법을 익히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를 물에 던져놓으면, 알아서 수영을 하게 될 것이라고 믿는 식이었던 것이다. 이날 첫째는 애를 썼지만 자전거를 익히지 못했다. 결국 울먹이며 "못하니까, 다시 보조바퀴 달아줘."라고 얘기했다. 그 순간 나는 내심 미안해서 마음속으로 깊이 뉘우쳤다. 우리 둘 다 이날의 경험에서 뭔가를 배웠다. 첫째는 좌절감을 견디는 법을, 나는 내 욕심과 조바심을 알아채는 법을. 이 날 이후로 나는 첫째에게 무엇을 빨리 가르치겠다는 욕심을 버렸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첫째는 나와 배우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그리고 천천히 배우는 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첫째는 이후에 자전거 타는 법을 여덟 살 즈음에 익히게 되었는데, 단 한 번도 넘어지지도 않고 아주 쉽게 배웠다. 간단한 중간 단계만 거치면 되었다. 그게 뭐냐 하면 두 바퀴 킥보드를 먼저 익히는 것이다. 바퀴 세 개짜리 말고 두 바퀴여야만 한다. 아이들은 킥보드는 금방 배웠다. 그렇게 두 바퀴 킥보드를 일 년 정도 타고난 뒤에 다시 자전거를 시도하니까 저절로 자전거를 타게 되었다. 킥보드를 타는 동안 균형감각과 핸들을 제어하는 감각이 몸에 생긴 것이었다. 동생들도 모두 같은 방식을 거쳐 자전거 타는 법을 힘들이지 않고 익히게 되었다.
8월 14일.
J에게.
너희들의 이맘때 사진을 보면서, 엄마는 최근에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났어.
"우리가 허무주의의 가장 암담한 어둠에 매몰되어 있을 때도 나는 다만 그 허무주의를 극복할 근거를 찾으려고 애썼을 뿐이다. 그것은 무슨 미덕의 발로나 보기 드물게 고귀한 영혼이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 아니라 어떤 빛에 본능적으로 충실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빛 속에서 태어났고, 그 빛 속에서 수천 년 동안 인간들은 고통에 시달릴 때까지도 삶을 찬양하도록 배웠다. 아이스킬로스는 자주 절망감을 안겨준다. 그러면서도 그는 빛을 발하고 우리를 따뜻하게 감싼다. 그의 세계의 중심에서 우리가 만나는 것은 빈약한 무의미가 아니라 수수께끼, 다시 말해, 그것이 발하는 눈부신 빛 때문에 잘 판독할 수 없는 어떤 의미다."
알베르 카뮈의 「수수께끼」에 나오는 말이야.
세계는 어둠 속의 은하수처럼 흐르고, 너희는 자라고, 사랑은 마치 해바라기처럼 숨길 수 없이 정직하고.
우리를 감싸고 있는 이 빛 속에서, 수수께끼인 우리의 삶에 대해, 언젠가 우리가 함께 얘기할 날이 올까?
아마도 그 답을 우리가 알 수는 없을 테지만 ···.
8월 15일.
광복절 연휴. 아이들에게 물총이 생겼다. 둘이서 서로를 맞추겠다고 뛰어다니며 신났다.
8월 16일.
"특별히 예쁜 나비를 보면 지금도 그때의 열성에 대해 무언가 알 것만 같다네. 그러면 아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마치 소년시절 내가 처음으로 호랑나비한테 살금살금 다가갈 때의 그 알 수 없는 욕심스런 황홀감이 순간적으로 나를 덮치는 걸세. 동시에 어린 시절의 무수한 순간들, 짙은 안개가 낀 벌판에서의 햇빛 쨍쨍한 오후나 서늘한 정원에서의 아침 시간 혹은 보물 찾는 사람처럼 포충망을 들고 숨어 서 있던 은밀한 숲 가장자리에서의 저녁나절 같은 시간들이 기막힌 놀라움과 행복감으로 나를 사로잡는 걸세. 그러니 내가 예쁜 나비를 보았을 때 그것이 특별히 드문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 거라네."
-헤르만 헤세,『나비』
남편은 어딜 가든, 그러니까 도시의 아파트 단지에 있든, 시골 밭에 가 있든 작은 생명체들을 잘 찾아내는 신기한 능력이 있었다. 무심히 그냥 걸어가다가도 "이것 봐" 하며 가리키는 곳을 보면, 어김없이 작은 곤충들이 숨은 그림 찾기 속의 숨겨진 사물들처럼 자리하고 있곤 했다. 어쩌면 호들갑을 떨며 매미나 잠자리를 찾던 나와 아이들보다도, 조용히 주변을 눈여겨 살피는 남편 쪽이 자연에 대한 감수성이 예민한 것 같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런 것은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 같으니까.
이 나비 사진은 남편이 찍은 사진이었다.
8월 17일.
이제 엎드려서 고개를 든 자세가 안정적이다. 배밀이를 한다. 사랑스러운 표정을 하고서.
8월 18일.
범보 의자에도 앉혀 놓을 수 있게 되었다. 눈높이가 엎드려 있을 때보다 높아진 막내는 새로운 시야에 들어오는 사물들의 모습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둘러보았다.
8월 20일.
어쩜 이렇게 작은지. 이때는 잘 몰랐는데, 사진으로 이렇게 보면 어쩜 이리 작았는지.
8월 21일.
이때 우리는 17층에 살고 있었다. 게다가 아파트 단지에 나무가 많지 않아서인지 곤충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이 날 오후 일이었다. 첫째와 둘째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파 뒤에 숨어서는, 베란다 쪽을 힐끔힐끔 살폈다. "엄마, 베란다에 뭐가 있어! 소리 나!"
쓰름쓰름쓰름- 맴맴맴-···. 그건 바로 매미 소리였다. 배 안쪽에 여름을 욱여넣은 듯한 매미 소리. 한 마리의 매미가 베란다 방충망에 붙어서는, 제 나름의 사랑 노래를 열심히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매미야, 여기는 네가 찾는 여자친구가 없어. 여긴 나무가 아니라 아파트라고."라고 말해보았지만 매미의 사랑노래는 더욱 커지기만 했다. 아이들은 커다란 파리 같이 생겼다며 무서워하면서도 신기해했다. 매미는 한참을 그렇게 울다가, 내가 계속 방충망을 툭툭 치자 날아갔다. 아이들은 안도하면서도 아쉬워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이때 살던 아파트 단지에는 왜 매미가 눈에 잘 띄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갓 지어진 아파트여서 나무들이 아직 어리고, 땅 속의 매미 유충들도 아직 자라고 있었는지도. 지금 사는 동네에는 여름이면 매미가 손에 채일 정도로 많다. 지나가다 바로 옆의 가로수를 보면 매미가 한두 마리쯤은 붙어 있다. 산이 가까이 있기도 하고, 아파트 단지가 오래되었고 나무도 커다랗기 때문에 그런가 싶다.
계절마다 아파트 화단에 이런저런 꽃들이 많이 심어지기 때문에, 매미 말고도 온갖 종류의 곤충들이 산다. 호랑나비, 배추흰나비와 나방, 노린재, 사마귀, 내가 좋아하는 꼬리박각시나방과 호박벌도 있다. 한 번은 1층인 우리 집에 말벌이 찾아온 적도 있다. 어디 곤충뿐인가? 산에서 내려온 청설모나 족제비도 가끔 본다. 새들은 까치와 까마귀가 무리 지어 터를 잡고 있고, 이외에도 산에서 내려온 새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런 각 생물들의 생활환경을 부르는 "움벨트"라는 개념이 있다고 한다.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이라는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개념인데, 동일한 환경이 주어져도 각 생물체는 다른 감각 방식으로 세상을 경험하므로 저마다 다른 움벨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오래된 우리 아파트가 여러 생물들의 움벨트가 겹쳐 있는 공간인 셈이라고 생각하니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가만 생각해 보면 내가 어릴 때 자란 환경도 이와 비슷했다. 나는 지은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오래된 5층짜리 아파트 단지에서 자랐다. 그 아파트는 내가 떠난 지 얼마 안 되어 재건축이 됐다. 내가 학교에서 집에 오는 길에 위안을 얻곤 하던 커다란 나무들과 그 속에서 살아가던 모든 것들이, 이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에 나는 꽤 상실감을 느꼈다. 어쩌면 이 동네로의 이사를 선택했던 것은 유년기의 세계와 비슷한 곳을 찾으려는 내 무의식의 발현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아파트도 언젠가는 재건축이 되어 이곳을 자신의 움벨트로 삼아 살아가던 많은 생명체들이 함께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 혹시 이 아파트가 사라지더라도,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이 오래된 세계가 잊히지 않고 살아 있는 기억으로 남아주었으면 좋겠다.
이제 막 배밀이를 시작한 셋째. 한창 윙크하듯 눈웃음을 선보이던 때.
8월 23일.
평일엔 아빠가 6시 반이면 출근하니까, 아이들이 아빠 얼굴 보기가 어려웠다. 주말 아침이면 아빠가 집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들은 신나고 들떠 있었다. 아니,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제일 들떴던 것 같다. 지금도 나는 주말이면 남편이 내내 집에 있다는 사실에 들뜬다.
둘째는 어릴 때부터 균형감각이 뛰어났다. 저렇게 목마를 탈 때 아빠의 어깨에 서 있곤 했다. 균형감각도 타고난 재능이라고 생각되어서 유치원생일 때 집 근처의 발레학원에 보냈던 적이 있다. 처음엔 설레어하며 가더니, 나중엔 가기 싫다고 화를 냈다. 알고 보니 다 여자아이들 뿐이어서 어색하고 힘들었나 보다. 그 뒤로 체조나 아크로바틱을 배우는 걸 권해보았지만 이미 한번 닫혀버린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는, 유튜브에서 본 파쿠르를 하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었다. 파쿠르 선수가 되고 싶다고. 하지만 이건 내가 반대했다. 너무 위험해 보였다.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고, 모서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달리고. 그런 행동을 할 때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위험하다고 혼을 냈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시간이 좀 흐른 뒤에는 파쿠르 얘기는 꺼내지 않게 되었다.
가끔 '그래도 체조를 시켜볼 걸 그랬나?'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아이의 재능을 꽃피워주지 못한 것 아닌가 싶어서.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릴 때 억지로라도 이것저것 시켜볼 걸, 하는 후회를 가끔 하게 된다.
8월 27일.
여섯 살짜리 아이가 동생이 둘인 큰 오빠로 산다는 것은,
셋째의 볼에 하루에 한 번 이상 뽀뽀를 해주는 것
놀러 다닐 때 둘째의 손을 꼭 잡고 다니는 것
엄마랑 다 같이 외출할 때
동생들은 2인용 유모차에 타는데 자신은 걸어서 다니는 것
아빠를 동생이 독차지해서 울면서도
그래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
동생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
엄마를 도와 빨래를 너는 것
혼자 샤워하는 법을 익히는 것
때로는 너무 피곤해서
저녁을 먹다가 잠이 스르륵 들어버리는 것
그렇게···. 아직 아기 같은 얼굴로 잠드는 것.
이때 참 애썼다 우리 첫째. 우리 집 형아, 그리고 우리 집 큰오빠.
8월 28일.
보행기를 타고 원하는 곳에 가까이 갈 수 있게 된 막내.
하지만 막내가 기저귀를 가느라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얼른 올라탄 둘째와 첫째!
하루 종일 둘이 싸우다가도, 이럴 때는 참 죽이 잘 맞지요.
8월 29일.
아빠가 볼을 가지고 장난치자, 끙- 하며 얼굴이 빨개지는 셋째. 하지 말라는 뜻인가?
아빠는 언제나 장난기가 그득하다. 말 한마디에도 장난이 담겨 있다. 그만의 애정 표현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아빠의 장난을 좋아한다. 사춘기인 지금도 그렇다.
8월 31일.
막내는 타고난 성격이 의욕적인 것이 분명했다. 누워만 있을 시기에도 누군가 옆에 있으면 끊임없이 그 사람과 같은 곳을 보려 하고, 오빠들이 동화책을 펼치면 자기도 알고 싶어서 고개를 한껏 내밀고는 열심히 쳐다봤다. 배밀이하던 이맘때에도, 기어보려고 어찌나 열심이었는지. 게다가 뜻대로 잘 안되더라도 어지간해서는 짜증도 내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다. 의욕적이면서도 낙천적인 편이다.
이 시기에 우리 가족들은, 막내를 따라 거실에 누워서 굴러다니거나 엎드려 있곤 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다들 그랬다. 그러고 있으면 마치 커다란 둥지나 굴 속에 모여있는 여우라던가, 늑대, 토끼 같은 작은 들짐승 가족이 된 듯한 기분이 들곤 했다.
어쩌면 우리는 진흙으로 빚어진 존재일지도 모른다. '진흙으로 빚은 발'을 닮은. 신성함은 진리의 엄정함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눈물과 태양이 뒤섞이고 반항과 사랑이 하나로 합쳐지는, 설명할 수 없는 수수께끼 속에서 언뜻 드러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빛나는 수수께끼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