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언젠가 우리가 알 수 있다면

by 몽당

2015년 9월.

"세월이 흘러 우리도 영원히 사라지고 우리를 기억해 줄 사람도 없겠지. 우리 얼굴도 목소리도 그리고 우리가 몇 사람이었는지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거야. 하지만 우리의 고통은 우리 뒤에 살게 될 사람들을 위한 기쁨으로 변할 테고, 지상에는 행복과 평화가 찾아올 거야. 그리고 그때가 되면 지금의 우리를 감사의 마음으로 기억해 주겠지. 아, 마샤, 이리나, 우리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우린 꿋꿋이 살아가야 돼! 음악이 저렇게도 밝고 기쁘게 울려 퍼지고 있어. 조금만 더 세월이 흐르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지, 무엇 때문에 우리가 괴로워하는지 알게 될 것만 같아······. 그걸 알 수만 있다면, 그걸 알 수만 있다면!"

-안톤 체호프, 『세 자매』중 올가의 대사에서.




9월 2일.

두 아이가 나를 보고 있다. 시선 속엔 믿음이 가득하다. 서로를 꼭 쥔 두 손으로 체온을 나눠 갖는다. 그 손 안에는 아무런 의심이 없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자주 가던 낚시터에서 커다란 개를 사귀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그 개는 낚시터 초입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집의 개였는데, 이름이 복실이었다. 복실이는 우리가 오는 게 보이면, 우리가 자리 잡을 터까지 앞서서 뛰어가 기다리고 있곤 했다. 나를 괴롭히던 동네 수탉을 겁주기도 하고, 오빠와 내가 마을에서 여기저기 두리번거릴 때 따라다니며 지켜주기도 했다. 너무나 순하고 착해서, 호기심 많은 내가 등에 올라타도 가만가만 태우고 있던 복실이. 난생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무언가의 등에 올라타봤던 기억이었다.


덩치가 커다란 남편이 마치 커다란 산짐승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이들을 등에 태우고 있는 모습에서 불현듯 복실이가 생각났다. 그때 복실이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신이 난 두 형제를 태우고 있던 남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다 큰 남자들은 때때로 몸을 통해 신뢰를 표현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굳게 맞잡은 악수. 무거운 것을 함께 나누어 들 때 사용하는 팔뚝과 어깨. 그리고 아이들을 태운 등허리. '믿어도 됨'이라고 몸에 쓰여 있기라도 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고 보니 몸도 언어이구나. 우리는 말로는 드러내지 못하는 것들을 몸을 통해 말하는구나. 동물이니까 그렇지. 동물들은 다 그렇지.


아이들을 등에 태우고 무게를 지탱하고 있었을 남편의 몸은 '너희가 원하는 어디든 데려가 줄게. 아빠를 믿어도 좋아.'라고 아이들에게 말하고 있던 것 아니었을까. 지금의 나에겐 '최선을 다하고 있어' 혹은 '나를 믿어도 돼'로 읽히는 것 같기도 하다.



9월 3일.

둘째가 어린이집에 처음으로 등원하던 날.

분명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때까지는 설레고 신나 있었는데, 막상 어린이집 앞에 도착하자 땅에 쭈그리고 앉아서 괜히 바닥에 그림만 그리고 있던 둘째. 집에선 마냥 편하게 지냈는데···. 걱정이 되는 그 마음 엄마도 이해해.


처음으로 아이를 기관에 맡길 때만큼 내 아이가 애처로워 보일 때가 또 있을까? 입소하고 처음 일주일은 아이를 떼어놓고 오는 길에 마음이 오만가지 생각을 다한다. 괜히 내 이기심에 아직 어린아이를 기관에 보내는 것만 같고···. 어떤 어린이집은 첫 일주일 동안 아이가 적응을 할 때까지 부모가 다른 방에서 기다릴 수 있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린이집은 우는 아이를 일단 등원시키고서 뒤도 돌아보지 말고 가라고 부모에게 권한다.


첫째를 키울 때에는 '애가 이렇게 매달리며 우는데, 어떻게 놔두고 가라는거지'라고 생각했었지만, 둘째 때는 '조금만 견뎌보자, 조금만'이라고 생각했고, 막내를 보낼 때는 '우리 막내는 잘할 거야!'라고 생각했다. 물론 아이들은 똑같이 힘들어했다. 울고, 매달렸다. 유치원을 다니게 된 후에도 형제는 자주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고집을 부리곤 했다. 그럴 때면 갖은 방법으로 어르고 달랬다. 가는 길에 좋아하는 간식을 사주기도 하고 악을 쓰며 떼부릴 때는 혼을 내기도 했다.


달래려고 자전거 뒤에 태우고 동네 하천 옆 길을 달리던 기억들은 지금도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아이들은 엄마 자전거 뒷좌석에 타고 달리며, 불어오는 바람을 쐬는 순간을 좋아했다. 나도 아이들을 등 뒤에 태우고 달리는 것을 정말 사랑했다. 우리는 같은 속도로 움직이며 같은 풍경을 가르며 달렸고, 같은 바람이 얼굴에 스치는 것을 느꼈다. 내가 과속 방지턱을 지나기 직전에 소리 높여 "이제 덜~컹할거야!" 말하면, 소리 높여 "덜~컹!" 하고 답이 돌아옴과 동시에 자전거로 턱을 넘는 느낌이 전해졌다. 아이도 나도 그 순간이 더없이 좋았다. 그렇게 동네 하천 옆 둘레길을 달리다가 유치원으로 가곤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하고부터는 너무 무거워져서 더는 뒤에 태우고 달리질 못했다. 스스로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울 나이이기도 했고.


이제는 다 추억이다. 돌아보니 어쩌면 아이들은 그저 엄마랑 조금만 더 시간을 보내고 싶었던 것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함께 걷던 등원길을 가끔 나 혼자 걸어갈 때면, 마치 슬라이드 필름을 틀어놓고 보듯 이런 장면들이 생각나곤 한다.



9월 5일.

이제 슬슬 막내가 아기띠에 적응할 때가 되었다. 남편이 앞으로 맬 수 있는 아기띠로 막내를 안았다. 막내는 마냥 웃고 있다. "막내야, 이제 신나게 놀러 다닐 준비되었어?"




9월 6일.

의왕에 있는 철도 박물관. 10번도 넘게 갔던 것 같다. 기차 덕후 둘째 덕분에. 이제는 찾아가지 않은 지 오래이지만, 가족의 추억이 많이 있는 장소다.


이곳에선 정말로 우리나라 산하를 달렸을 검은색 증기 기관차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언제나 그 커다란 바퀴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증기의 힘을 회전운동으로 바꾸는 메커니즘을 곰곰이 생각해보곤 했다. 물이 끓으면 발생하는 증기에서, 어떻게 최종적으로 회전운동이 나올 수 있는 건지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거인같이 움직였을 기차가 이제는 박물관에서 조용히 잠들어 있는 것은 이상한 일처럼 보였다. 둘째가 어느 순간부터는 기차를 좋아하지 않게 된 것도.


둘째는 어느 순간부터는 기차가 아닌 '총'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총 역시 증기 기관차처럼 에너지의 변환을 이용한다. 둘째는 각종 총의 원리를 다 알고 있다. 나는 총이 증기 기관차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검은색의 몸체. 뭔가를 소진시켜 에너지를 얻어내는 방식. 그 에너지를 강력한 운동으로 변환시키는 방식. 자세히 보면 둘은 분명 닮았다.


하지만 좋아하는 대상이 갑자기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낯설다. 사람 마음의 변화 메커니즘은 너무 복잡해서, 기차처럼 쉽게 파악할 수 없는 것 같다. 다만 나는 최근 들어 사람의 마음이 어느 순간 갑자기 끝부분에 다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영화 트루먼쇼의 마지막에서 트루먼이 파아란 하늘이 그려져 있는 거대한 벽에 도달했던 것처럼. 그리고는 그곳에 있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버린 것처럼. 둘째의 기차에 대한 마음은, 그 당시 둘째의 세계 끝에 도달해서 문을 열고 나갔던 것 아니었을까?


마음속의 세계라고 해서 무한한 것은 아니니까. 그 세계에도 끝이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종종 세계의 끝에 도달해서 문을 열고 나가야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9월 7일.

잠자리와 매미를 잡아보겠다고 그물망과 곤충 채집통을 들고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던 형제. 하원 후 하루 종일 해 질 녘까지 뛰어다니고도 단 한 마리도 못 잡았다. 반면에 지금 이사 온 동네에서는 여름마다 매미를 정말 지겨울 만큼 많이 잡았다.


첫째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곤충학자가 되겠다고 할 정도로 곤충을 좋아하더니, 어째서인지 고학년으로 올라가자 곤충을 무서워하게 되었다. 친구들이 무서워하다 보니 덩달아 그렇게 된 것 아니었을까? '곤충을 좋아함'이 '곤충 같다'는 오해로 바뀌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 아닐까? 세 아이 모두 같았다. 어린 시절에는 아무렇지 않게 곤충을 만지던 아이들이, 조금 자라서 학교에 가게 되자 곤충을 무서워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살아가다가 어느 날 불현듯 자신이 원래는 곤충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기억나게 되길 바란다. 잊어버렸던 자신과 다시 만나는 그 순간이 꼭 찾아와줬으면 좋겠다.




9월 8일.

둘째는 무엇을 노래하고 있었던 걸까?

동생의 장난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tv만 바라보는 첫째의 무덤덤함도 웃기다.




9월 10일.

나이 든 강아지와 아이들. 이 당시에는 우리가 개를 키우지 않았기에, 아이들은 바깥에서 착한 개를 만날 때면 많이 좋아했다. 착한, 그리고 나이 든 강아지도 동네에서 어린아이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둘은 꽤나 어울리는 조합 같다.


우리 집 강아지 페기는 우리와 함께 산지 이제 8년 차에 접어들었다. 살아온 햇수에 7을 곱하면 계산할 수 있다는, 개 나이로 치면 슬슬 할머니 개가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 가족 눈에는 여전히 아기 같다. 좀 얌전해지고 철이 든 애기. 매일 나와 함께 현관에서 아이들을 배웅하고, 아이들이 하교할 때면 매번 온몸으로 기뻐하며 맞이한다. 꼬리를 흔들고 아이들 손을 핥으며. 아이들의 장난이 귀찮을 때는 낮게 잉잉거리며 아이들을 타이른다. 아이들을 대하는 페기의 눈빛에서 나는 종종 연륜을 읽는다. 개들은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이 몸은 빠르게 커지지만, 정신은 엄청나게 느리게 성장한다는 사실을.


빨리 성장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태어난 지 길어야 몇 년이면 성견이 된다는 것은. 성견이 되고서 또 수년이 흐르고 나면 노견이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개도 자신이 늙는 것을 느낄까? 만약 그렇다면 개도 인간처럼 늙는 것이 싫을까. 죽음이 가까워져 온다는 것을 개도 예감할까.

페기는 말이 없다. 페기는 언제나 자세가 곧다. 거북목 따위 하지 않는다. 페기는 아직 건강하다.

페기는···. 아니, 모든 개들은 신비롭다. 분명히 개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인간은 긴 생애동안 좀처럼 깨닫지 못하는 무언가를. 인간보다 훨씬 짧게 살지만, 인간보다 먼저 늙는 존재이니까. 인간에 비해 말이 없지만, 인간보다 감정에 충실한 존재이니까. 분명히 개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갓난아기 목욕통이 막내에게 작다.




9월 12일.

첫째의 첫 체육대회 날. 유치원에서 주최하고, 가족들이 정말 많이 와서 와글와글한 행사였다.


이때 나는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아이들 삼촌인 내 오빠, 그리고 아이들 외증조할머니인 내 할머니까지 전부 체육대회에 초대를 했다. 당시에 유치원에서 첫째를 괴롭히던 아이들이 있어서, 이번 기회에 그 친구들에게 첫째에겐 든든한 가족들이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싶었다. 그러면서 첫째의 유치원 생활이 어떠한지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했다. 양가 모두에서 첫째가 첫 번째 손주였기 때문에 흔쾌히 와주셨다. 나는 가족 티셔츠까지 주문해서 맞췄다. 사람이 바글바글한 가운데에서 우리 가족을 알아보기에 딱 좋긴 했지만, 내가 약간 오버했던 것 같기도 하다.


친정엄마는 온 가족이 먹을 김밥과 유부초밥도 싸 오셨다. 지금 와서 그 사실이 떠오르니 왠지 가슴이 뭉클하다. 그때는 고맙기만 했지 도시락을 싸셨을 엄마 마음이 어땠을지 생각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서야 그 마음이 느껴진다. 그리고 불편하게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있는 가족들의 얼굴 표정을 보니, 어떤 마음으로 다들 체육대회까지 한달음에 와 주셨을지가 보여서 미안하고 감사하다.


왜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은 늘 이렇게 뒤늦게 오는 걸까.




9월 16일.

이맘때 우리 집 형제의 일상 루틴은 이랬다. 하원하고 나면 밖에서 한동안 뛰어놀다가 들어와서는 엄마가 저녁 준비하는 동안 tv 시청. 그래서 집에 다운로드하여 놓은 애니메이션들과 영화들이 많이 있었다.


이보다 오래전 첫째만 있었을 때에는 tv를 거의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를 썼었다. 아이에게 장시간 화면 시청이 좋지 않다는 게 여러 전문가가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었다. 첫째가 외동일 때에는 나도 꽤나 열성적인 엄마여서, 육아의 기준을 이상적으로 잡고 거기에 맞추려고 애를 썼었다.


외동이 둘이 되고, 둘에서 다시 셋이 되면서 내가 챙겨야 할 것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저녁 요리를 하거나 아직 어린 동생을 먹이고 재우는 동안 형제에게 시간을 보내게 할 수단이 필요했다. 결국 화면 시청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애니메이션들이 의외로 나에게 소소한 힐링이 되어주는 것이었다. 실은 내가 바로 애니 덕후였던 것이다. 중학생 때까지 만화를 따라 그리기도 하고, 관련 축제에도 참여하는 등 만화를 굉장히 좋아했었다.


매일 아빠가 야근하고 있는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때때로 저녁 먹기 전부터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하여 저녁 먹고 나서 자기 직전까지, 영화가 끝날 때까지 보곤 했다.


심심할 때면 그림 그리기를 하곤 했다. 둘째는 이번엔 또 무슨 노래를 하고 있었던 걸까?




9월 18일.

아기들은 참 신기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열심히 연습을 한다. 하기사 계속 한 자리에 누워만 있기가 답답하긴 할 것 같다. 어서 다른 가족들처럼 돌아다니고 싶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대단한 점은, 계속해서 실패하는데도 다시 도전한다는 점이다. 또 가까스로 도전에 성공한 뒤엔 바로 다음 시도로 넘어간다는 점이다. 제일 처음은 뒤집기, 그다음은 배밀이, 그다음은 기어가기, 그다음은 걸음마.


어쩌면 오래전에 걸음마를 익혔던 우리 모두는 기본적으로 불굴의 의지를 장착하고 태어났을지도 모른다.




9월 19일.

친정 부모님께서 첫째와 둘째를 맡아줄 테니, 막내만 데리고서 2박 3일 여행을 다녀오라고 권하셨다. 부산의 리조트 숙박권까지 주시며. 감사한 마음으로 셋째를 안고 ktx를 타고 남편과 부산으로 놀러 갔다. 나는 모처럼 오래된 원피스를 꺼내 입고, 목걸이도 하고, 구두까지 신었다.

호텔에서 내려다보이던 해변.


밤에 해변을 산책하면서 거리 공연을 구경했던 것이 생각난다. 막내도 거의 남편이 아기띠로 매고, 나는 모처럼 물리적으로 홀가분한 몸이 되었다. 밤거리를, 그것도 부산 해변가를 활보하며 자유로운 정취를 만끽하는 것은, 그간 아이들을 키우는 동안은 그림의 떡 같은 일이었다. 입고 있던 옷차림만큼이나 어색한 기분이 들어서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섞이진 못했지만, 잠시나마 내가 아직 젊다는 생각을 했었다.


다시 많은 시간이 흐른 뒤인 지금의 나는, 젊고 자유로웠을 때가 그립다는 생각을 이제 하지 않는다. 20대의 젊음의 대부분을 육아에 모두 바친 것이 가끔 아쉽긴 하지만. 어리고 날씬하고 자유로운 아가씨일 때보다, 아이 셋의 엄마로, '나'라는 사람을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나이 먹어가는 지금이 더 좋다.




9월 22일.

매일 자전거를 타고 갔던 공원. 형제를 먼저 앞세우고, 나는 막내를 아기띠로 안고서 따라가곤 했다. 걸음마를 막 했을 때부터 매일같이 다녔기에 속속들이 추억이 많다. 주말에는 사람이 많았지만, 평일에는 이렇게 한적해서 넓은 공간을 원 없이 누릴 수 있었다.





9월 26일.


주말 아침. 깼는데 계속 자는 척하는 첫째.




9월 29일.

아기가 웃으면 나도 따라 웃게 된다. 그래서 이제와 돌이켜보면, 육아할 때가 내가 살면서 제일 많이 웃었던 때인 것 같다. 그렇게 육아가 힘들다, 힘들다, 했는데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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