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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Aug 10. 2021

밥상을 도대체 몇 번을 차리는 거야?

남편 도시락에, 애들 간식에, 엄마는 극한 직업

내내 재택근무만 하던 남편은 회사에서 급 호출을 받았다. 갑자기 출근해야 한다는 소식이 왜 이렇게 반갑던지. 요새는 식당 이용하기도 조심스러운지라(특히 오피스가 몰려있는 곳은 점심시간에 밀집도가 높기 때문에), 친절하게 도시락을 싸 준다. 그것도 아주 흔쾌히!


"내일 도시락은 건강식으로 현미밥 싸 줄게"

라고 분명 말해두었건만, 쌀 씻고 자는 걸 깜빡했다. 100% 현미밥은 사전에 충분히 불리지 않으면 영 식감이 안 좋기 때문에 아, 이거 망했다. 어차피 여름이라 음식이 상할까 봐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데워서 먹을 테니, 찬밥이나 갓 지은 밥이나 그게 그거일 테니 남편에게 양해를 구한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밥 싸주는 게 어디냐며 절대 기죽지 않는 나란 여자.


어제 남은 김치찜을 그럴듯하게 담고, 야채와 과일, 견과류까지 챙긴다.

'뭐 이 정도면 훌륭한 도시락이네!'

맛있게 먹어주길 바래요~
카톡으로 온 남편의 도시락 인증샷


방학 맞은 초등학생은 어제 늦게 잠들어서 아무래도 오늘은 8시까지는 잘 것 같다. 평소 같았으면 알람 없이도 7시면 가뿐하게 기상하는 녀석들인데, 방학은 좀 게으르게 보내는 게 제맛이라 생각하며. 출근시간이 다가와서 아무래도 남편 먼저 먹어야겠다 싶었다. 아침메뉴는 햄치즈 샌드위치. 여기에 수박주스, 피클, 그리고 마늘꿀절임을 곁들여 준비한다. 어제 시저샐러드 먹고 남은 엔초비 드레싱은 빵에 발라주었더니 또 꽤 괜찮은 고급진 맛이다. 이로써 남은 드레싱도 알뜰하게 싹 다 먹기 성공.

조식나왔습니다 1탄


남편 출근 후에야 겨우 일어난 아이들. 좀처럼 이불과 한 몸이 되어 꿈쩍하질 않는다. 내복 입고 한참을 뒹굴거리는 아이들. 이때 모습이 왜 이리 예쁜 건지. 한참을 아이들 끼고 같이 누워서 같이 지난밤 꿈 이야기도 들어보고, 오늘 뭐하고 보낼지도 의논해본다. 아빠는 벌써 출근했다고 하니 아이들 표정에 아쉬움이 가득하다. (나는 좋은데 말이다) 오늘 아침 메뉴는 샌드위치니 얼른 씻고 오라며 잘 일러두고, 이제 주방으로 다시 출근한다.


애들은 역시나 쌀식빵. 내 몫으로는 모닝빵을 하나 꺼내서 해동한다. 물론 재료는 다 준비해 놓았기에 한결 수월했지만, 아침부터 벌써 밥상을 3번이나 차리다니! 벌써부터 기운이 빠지는 건 기분 탓인가. 역시나 예상대로 키위를 보며 불만이 터진다. 겨우 2개밖에 없냐며, 더 달라고 하지만 나머지 키위는 아직 딱딱해서 신맛 때문에 먹을 수 없다고 잘 설명한다. 잠시 내 껄 양보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이내 그 마음을 접는다.

"나도 키위 좋아한다고!"

조식나왔습니다 2탄



아침에 언니가 잠시 우리 동네에 들렸다. 언니랑 친정엄마는 코 앞에 살고 있는데, 마침 이쪽에 올 일이 있어서 친히 옥수수 셔틀을 해 준거다. 갓 쪄낸 따끈따끈한 찰옥수수를 마주하는 순간, 와아! 하고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럴 줄 알고 아침을 간소하게 먹었지롱. 역시 먹는 데는 다 계획이 있다. 아침 먹은 지 1시간밖에 안 되었는데 언제 그랬냐는 듯 옥수수 하모니카를 부는 아이들. 역시나 여름방학의 완성은 옥수수로구나.

아이들 취향저격, 외할머니의 선물 찰옥수수



냉장고를 살펴보니 숙주나물이 한 가득이다. 오늘 먹지 않으면 상태가 확 나빠질게 뻔하다. 이럴 때는 식재료 심폐소생술에 돌입! 무조건 싹 먹어야 한다. 뭐가 좋을까 생각해보다가, 닭가슴살 한 팩과 야채를 보고 결정한다. 그리고 찬밥도 잔뜩 남아있다. 이 모든 걸 명쾌하게 해결해 줄 수 있는 메뉴는? 바로, 닭가슴살 숙주볶음.

갖은 야채 + 닭가슴살 + 숙주 + 굴소스


마늘과 파를 먼저 현미유에 볶아주다가 나머지 재료들을 넣어준다. 숙주는 숨이 금방 죽으니 맨 마지막에 넣어주고, 굴소스를 넣어준다. 웬만하면 성공으로 이끌어주는 마법 같은 그 맛이란. 굴소스의 존재는 참으로 위대하다.


볶음밥 일 줄 알았는데, 덮밥이라며 입을 삐쭉 내미는 둘째. 그게 그거 아니겠니, 그냥 먹어주길 바래. 아삭아삭한 숙주에 야채와 닭가슴살은 참 잘 어울렸다. 그나저나 야채류가 바닥을 보여서 아무래도 조만간 야채 한가득 사 와야겠구나 싶다. 이로써 남은 숙주도 해결하고, 찬밥도 싹 정리하고 얼렁뚱땅 점심 메뉴로 다 해결!

한 그릇 요리, 닭가슴살 숙주볶음
이래 봬도 맛은 좋습니다만



방학중에도 고맙게도 학교 도서실은 주 2회 문을 연다. 지난주 책도 반납할 겸, 새로운 책도 빌려올 겸 아이들이 점심 먹고 슬슬 나갈 준비를 한다. 학교가 코 앞에 있기에 그래 봤자 20분도 안돼서 돌아올 테지만, 그래도 잠시나마 혼자 있는 시간이 생겼다.


시간을 잘 계산해서 실온에 30분 정도 자연해동 해 둔 뱅오쇼콜라 냉동생지를 후다닥 에어프라이어에 굽는다. 아이들이 집을 나서는 순간, 잠시 우아하게 티타임을 갖는다. 아니 빵타임 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뱅오쇼콜라는 꿀맛이었다. (그래서 다이어트는 언제쯤?) 별로 비싸지도 않은 빵과 커피인데, 이 작은 사치를 누리고 나니 마음에 한결 여유가 생긴다.

혼자 있는 시간 = 빵을 먹을 수 있는 시간



금세 또 돌아온 저녁시간. 이른바 밥돌밥돌(밥 먹고 돌아서면 또 밥)의 연속이다. 메뉴를 정하고 그에 맞게 재료를 사기도 하지만, 재료를 보고 메뉴를 정하는 게 주부에게는 더 자주 있는 일이다. 냉파를 위한 숙명이라고 해야 할까. 정해진 과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뭔가 새롭게 창의력을 발휘하는 이 작업(?)이 나로서는 더 흥미롭다.


일단 남아있는 재료는

-떡볶이떡

-조랭이떡

-샌드위치 먹고 남은 슬라이스햄 1장

-며칠 전 떡볶이 먹고 남은 어묵 1장

-마늘 4~5톨

-파프리카


그렇다면 떡볶이 당첨! 아이들은 고민의 여지없이 간장 떡볶이라지만, 나는 뭔가 특별한 걸 먹고 싶었다. 올리브유도 마침 새로 1병 사놨는데, 아직 애매하게 남은 올리브유도 처리할 겸 생각해 낸 메뉴는, 알리오올리오 떡볶이.


과연 이런 메뉴가 세상에 존재하나 싶어 검색을 해보니, 오! 백종원 선생님(매우 존경하는 분이기에)은 역시 이미 고안해내셨구나. 역시 이 분은 천재다. 레시피대로라면 건새우를 사용해야 하지만 집에 있을 리가. 꿩 대신 닭이라고, 그냥 슬라이스햄을 사용하기로 한다. 물론 건새우를 넣어야 훨씬 맛있겠지만.

저녁 메뉴는 떡볶이


간장 떡볶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조랭이떡을 사용했다. 어묵도, 야채도 듬뿍 넣어주고 당면도 넣어주었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둘러주고 통깨 톡톡 뿌려주니 완성! 역시나 언제 해 줘도 좋아하는 메뉴이다.


알리오올리오 떡볶이의 맛은 과연 어떨까? 왠지 예측이 되면서도 궁금했다. 먼저 올리브유에 마늘을 충분히 볶아주고, 잘게 썬 햄과 페퍼론치노를 다져서 넣어주었다. 그리고 떡볶이 떡을 넣고 볶아주면 끝. 조리 과정도, 재료도 참으로 심플했다.


그 맛을 보니, 살짝 바삭한 느낌이 들어 통인시장 기름 떡볶이가 떠올랐다. 하지만 매콤한 맛과 알싸한 마늘향이 잘 어우러져서 분식이 아닌 이탈리아 요리를 먹는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분명 평범한 재료였지만, 의외의 반전이었다. 기본 베이스는 동일하지만 파스타에서 떡으로 일탈하니 색다른 느낌이었다.


다음에는 백종원 선생님의 레시피대로 건새우를 넣고 정석대로 만들어 보리라 다짐하며! 온라인몰 장바구니에 얼른 담아둔다. (이런 실행력은 먹는 일에는 아주 적극적이고 부지런하다는 거.)


마무리는 수박. 가볍게 입가심을 하고 여기서 끝일 줄 알았으나 수박 리필 요청에 아이스크림 타령까지. 하여간 참 잘도 먹는 녀석들. 그리고 남편의 퇴근 소식을 듣는다. 하아.... 뭘 해준담. 밥을 먹고 퇴근하는지 아닌지 하도 변수가 많기에 우리만 먼저 밥을 먹었는데 말이다. 혹시라도 이럴 경우를 대비해 플렌 B를 세워두었기에 당황하지 않고 다시 저녁밥상을 준비한다.


그래도 다행히 순두부가 하나 있었다. 오늘과 같은 비상사태를 대비해 아껴둔 비장의 카드! 시판 순두부 양념도 꺼낸다. 스피드가 생명인 바로 지금, 맛 보장을 해 줄 수 있기에. 매콤한 순두부찌개와 이를 중화시켜 줄 순한 맛 반찬인 계란양파부침을 정신없이 준비한다.


참 끝날 듯 끝나지 않은 오늘의 긴 하루. 생각해보니 재택근무의 장점은, 한 번에 밥 차려서 한 번에 먹고 끝낼 수 있다는 거. 그래 장점도 있구나 하며 마음을 다스려본다. 밥을 몇 번을 차린 건지, 점심을 제외하고는 두세 번씩 밥을 차린 하루다. 그나저나 "오늘이 과연 끝나긴 끝나는 거야?"



*본 글은 Daum 홈&쿠킹 섹션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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