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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Sep 19. 2021

주문하신 순대볶음 나왔습니다

갖은 야채 팍팍 넣고 들깻가루 듬뿍 뿌려주면, 게임 끝!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을 짬 내기가 어려운 애 둘 엄마의 처지인지라 요새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주말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대면 예배가 가능해졌기에 나는 1부 예배를 부지런히 다녀오기로 했다. 그래야 바통 터치하듯 남편은 2부 예배를 가야 하는 분주한 아침. 아이들은 안타깝게도 아직은 온라인 예배다.


아무튼, 5시 반에 눈이 번쩍 떠졌다. 집에서는 6시 반에 나가도 충분하니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 여유 있게 책도 좀 보고 글도 쓰려했으나 결국은 어영부영 시간이 후딱 가버렸다. 그래도 아침 식사만큼은 거를 수 없지! 하늘이 두쪽이 난다 해도 무조건 아침밥을 꼬박꼬박 챙겨 먹기에 새벽같이 집을 나선다 해도 혼밥은 필수다.


꾸덕한 그릭요거트에 사과와 견과류, 그래놀라를 듬뿍 넣고 꿀도 한 바퀴 둘러주니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다이어트를 위해서라면 딱 여기서 멈춰야 하거늘, 아무래도 이걸로는 배고플게 뻔해 쌀 식빵을 하나 꺼내본다. 딸기잼, 바질페스토, 크림치즈를 곁들인 블루베리잼까지. 식빵 한 장을 위해 무려 잼 3종 세트가 등장한다. 셋 다 포기할 수 없는 맛 이기에!

결코 가볍지 않은 아침밥, 아니 새벽밥


우리 집 애들은 워낙 잠이 없기에 주말이고 휴일이고 심지어 방학 때도 6시 반 7시면 거뜬히 기상하는 못 말리는 새 나라의 어린이들이다. 아무리 늦게 잠들었다 해도 8시면 일어난다. 그런데 이게 웬일! 9시가 다 되어 일어난 남매의 소식을 들으니 이거 참 억울하다. 일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최고 기록을 세우다니, 그것도 하필 꼭 내가 있을 때는 안 그러고 아빠랑 있을 때만.


덕분에 아이들 아침밥 담당도 결국은 내 몫이다. 남편에게 다 인수인계 해 놓고 나갔다 온 건데 허탈하다. 게다가 아이들이 잠에서 깨면 같이 밥 먹으려 했다며 남편도 아직 식사 전 이랜다. 빨리 출발하지 않으면 예배시간 지각인데. 머리에서 스팀이 나는 건 기분 탓인가. 아무튼 길 나서는 남편에게 부랴부랴 잼 바른 빵과 두유를 챙겨준다. 교회 가는 길에 차 안에서라도 먹으라며. 그나저나 아침밥만 3번 차리다니, 상상도 못 했던 아침이다. 하여간 오늘도 내 뜻대로 되는 건 1도 없구나.

내복쟁이들의 아침. 삼색잼과 사과, 올리브절임, 아몬드유로 간단하게



아이들 온라인 예배를 마치고, 배고프다고 난리다. 배꼽시계 한 번 정확하다. 그럴 줄 알고 얼른 준비했지! 입맛 까다롭기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딸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 바로 곤드레 영양밥이다. 의외로 준비 과정이 시간도 걸리고 손도 많이 가고 꽤나 까다로운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엄마의 노동력이 들어가야만 맛있는 한 끼 밥상이 탄생한다는 걸, 부디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문득 들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엄마도 나를 위해 이렇게 보이지 않게 늘 수고하셨겠구나 싶다. 앞으로 잘해야지!


전기밥솥을 이용해서 짓는 곤드레영양밥은 제일 먼저 건 곤드레를 물에 불리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끓는 물에 충분히 삶아주고 불을 끈 후 30분 정도 뚜껑을 닫고 내버려둔다. 이런 과정을 거쳐야만 곤드레가 부드러워진다. 물기를 꽉 짜고 들기름과 소금으로 간을 한 곤드레는 이제 밥솥으로 보내줄 차례.


사실 제대로 만들려면 연근, 단호박, 은행 등이 있어야 하지만 이렇게 되면 재료 준비 과정이 복잡하다. 더 문제는 재료비가 심하게 많이 든다는 것. 그래서 적당히 타협을 했다. 집에 넉넉하게 있던 감자, 그리고 다행히도 전에 먹고 아직 남은 건대추, 마지막으로 냉장고 서랍을 뒤져보니 새송이 버섯이 눈에 띈다. 이렇게 있는 재료로도 얼추 영양밥 흉내를 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래도 왠지 좀 부실해 보여서 미안하다. 다음에는 좀 더 재료를 사서 더 맛깔스럽게 만들어줘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전기밥솥으로 뚝딱! 만드는 곤드레영양밥


초등학생의 입맛에 곤드레가 잘 맞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곤드레를 듬뿍 달라며 내 옆에 착 붙어서 세상 기대되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먹기도 전에 더 있냐며 물어보고 까치발을 들어 밥솥을 보며 확인사살도 한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도 환호해주는 건지. 덕분에 밥 할 힘이 난다. 여기에 간장소스와 소고기 간장 볶음도 빠질 수 없다. 곤드레영양밥의 감칠맛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10살인 아들 녀석이야 워낙 먹성으로 소문난 아이라 남편이 먹는 만큼의 양을 주어도 가볍게 한 그릇 뚝딱이다. 8살인 딸내미도 본인이 좋아하는 메뉴에서 만큼은 숨겨진 괴력을 보여준다. 한 그릇 꽉 차게 담아줬음에도 아무 불평 없이 뚝딱 잘 먹는다. 그 모습이 기특하고 고맙다.  

집에 있는 재료 총집합! 어쩌다 완성된 곤드레영양밥


곤드레밥 하나만으로는 섭섭해서 된장국도 끓였다. 디포리와 다시마 등을 넣고 진하게 우려낸 육수에 된장을 풀고 야채들 때려 넣고 두부까지 더해주니 아, 세상 부러울 게 없는 맛이다. 비록 아이들 때문에 고추나 고춧가루는 넣지 못해 착하고 담백한 맛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된장찌개가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맛있다. 나도 모르게 "으아~ 시원하다"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오이김치까지 곁들이니 여느 고급 한식 식당 부럽지 않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이렇게 좋은 가을 날씨에 집에만 있기 아까운 생각에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집 근처에 있는 노들섬은 언제 가도 참 평화롭다. 아직 햇살은 뜨겁지만 그늘은 제법 시원하다. 돗자리에 누워 높고 푸른 하늘을 보며 행복은 가까이에 있음을 느낀다.


"지금 이 순간, 참 행복하다!"


신나게 뛰어다니며 축구를 하는 남매의 모습을 바라만 봐도 흐뭇하다. 물론 인내심을 시험할 때도 많고 여전히 말은 안 듣지만,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 주는 아이들이 늘 고맙다. 온몸으로 잘 놀아주는 남편도 고맙다. 엄마는 지금까지 밥하고 치우느라 힘들었으니까 밖에 나와서는 좀 쉬는 걸로.    




저녁 메뉴는 남편의 의견을 반영했다. 좀처럼 희망 메뉴를 잘 요청하지 않는데 순대볶음이 먹고 싶다며 며칠 전부터 이야기를 했다. 얼마나 먹고 싶었으면!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온라인몰에서 순대와 깻잎을 사놨다. 여기에 집에 있던 재료를 뒤져보니 떡볶이 떡, 양배추, 양파, 버섯 등이 있어 모두 식탁 위로 소환시킨다. 그리고 순대볶음의 핵심 재료는 단연 들깨가루와 들기름이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귀하신 몸 순대까지 등장하고 나면 이제 재료 준비는 끝!

두구두구~ 백순대볶음, 개봉박두!


매콤함을 달래주려면 오이가 또 빠질 수 없겠지. 아삭아삭한 오이는 언제 곁들여도 인기 만점인 식재료다. 그래서 오이나 당근은 스틱처럼 잘라 밥상에 자주 등장하곤 한다.

오이 빠지면 섭하쥬!


소스 만들랴, 밥상 차리랴 정신이 없다. 그래서 급히 남편을 소환해서 순대볶음 볶는 미션을 부여했다. 깻잎과 팽이버섯을 제외한 야채들을 제일 먼저 넣고 볶아주고 숨이 죽으면 썰어놓은 순대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머지 야채를 넣어주고 다 익었을 쯤에 들깨가루를 듬뿍 넣어 섞어주면 완성이다. 이건 뭐 맛이 없으래야 없을 수 없는 조합니다.

아삭아삭 야채의 식감이 살아있는 백순대볶음


이 소스로 말할 것 같으면 고추장과 마늘, 고춧가루, 들기름, 들깻가루, 설탕이 적절하게 들어간 황금비율의 특제 소스이다.  아직 매운 걸 잘 먹지 못하는 아이들은 위해 덜 매운 버전도 준비한다. 쌈장과 들기름, 들깻가루 이 세 가지 만으로도 제법 훌륭한 맛을 자랑한다. 역시나 예상대로 쓰리이는 접시를 싹 비웠다. 주부로써 가장 보람된 순간.




이렇게 잘 먹고도 역시나 후식 배는 따로 있다. 딱 4개 남은 골드키위를 오늘을 위해 아낌없이 깎아본다. 1인 1키위를 준비했으나, 역시나 아이들은 부족하단다. 결국 내 몫 중 하나씩 아이들에게 나눠주고 나서야 아이들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다음에는 나 혼자 몰래 키위 먹어야지. 맨날 뺏기는 신세란)


어느새 이렇게 자라서 같이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니. 특히 오늘 뭉쳐야 쏜다에서 어쩌다어벤져스와 강철부대의 불꽃 튀기는 대결은 정말이지 볼 만했다. 깔깔깔 신나게 웃으며 함께 즐기는 이 여유 있는 주말, 이 순간이 참 소중하다. 물론 개미와 배짱이 같은 느낌은 지울 수 없지만. 비록 나는 제 아무리 주말이여도, 연휴여도 365일 엄마 식당을 운영해며 똑같은 부엌데기 일상이지만 아이들은 연휴라서 학교 갈 부담감이 없고 남편은 출근 부담이 없기에  마음 편히 보낸 하루였다.


"오늘도 잘 먹고, 잘 놀고, 잘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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