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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Aug 18. 2023

떡볶이, 소울푸드로 시작해 생존아이템이 되기까지

나에게 떡볶이란 어떤 의미일까?

'떡볶이', 이 세 글자에 담긴 나의 애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팍팍한 삶을 너끈히 감당하게 해주는 둘도 없는 소중한 친구이자 삶의 영원한 동반자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는 질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조건반사처럼 1등으로 튀어나오는 이름, 생각만으로도 피식 웃음이 나게 만드는 게 바로 떡볶이이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나에게 떡볶이란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하고, '행복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매일 마주하는 '오늘 뭐 먹지?'라는 반복되는 고민을 한방에 해결해 주기도 하니 얼마나 고마운 존재란 말인가!


떡볶이에 대한 과다한 열정을 만약에 공부에서 발휘했더라면, 지금쯤 충분히 저명한 석학이 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만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일상에서 수시로 떡볶이를 부지런히 연구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레시피는 꼭 저장해 두고 시식해 보고(이 어마어마한 실행력이란), 레이더망을 풀가동 해서 떡볶이 신상 맛집을 포착하기도 한다(지도앱에 저장된 수많은 떡볶이 맛집 리스트가 이를 방증하는 바임). 열혈 떡볶이파 지인들과 활발하게 정보 공유를 하는 건 당연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하나둘씩 도장 깨기 하듯 맛집을 정복하기도 한다. 떡볶이 피켓팅(피 튀기게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온라인 구매를 성공했음을 말함)도 마다하지 않음은 두말하면 잔소리.


집에서는 최소한 일주일에 2번 이상은 떡볶이를 먹는다. 레시피대로 정량을 준수하며 양념장을 제조하기도 하는 날도 있고, 대충 의식의 흐름을 따라 적당히 만드는 날도 있다. 시간이 없어서 떡볶이를 못 먹는 일은 없어야 하기에 후다닥 먹을 수 있는 떡볶이 밀키트도 상시 냉장고에 구비해 놓는다. 그렇다, 나의 일상에서 떡볶이를 만나는 일은 하나의 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예나 지금이나 경건한 마음으로 떡볶이를 대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영접하는 걸 보면 이쯤이면 거의 '신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않을까?


떡볶이는 내 인생에 있어 아주 중요한 존재이다. 단순히 입을 즐겁게 해주는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슬플 때 일으켜 세워주고, 화가 날 때 마음을 다독여주고, 현실도피가 간절할 때 잠시나마 힐링을 선사해 주는 그야말로 만능템인 것이다.  


성장과정을 떠올려보면 늘 기억의 어딘가에 떡볶이가 존재한다. 초등학생 시절, 학교 앞 떡볶이집은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유혹이었다. 용돈으로 받은 동전 몇 개를 야무지게 챙겨 와서 하굣길에 먹는 그 극한의 단짠단짠 맛이란! 당시 한 가지 고민이 있었다면 떡꼬치를 먹을 것이냐, 떡볶이를 먹을 것이냐를 놓고 심각하게 갈등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른이 된 지금은, 1의 고민도 없이 둘 다 먹을 텐데)


또한 어린 시절 주일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바로 교회 앞 포장마차였다.(하나님 죄송합니다). 언니와 함께 신나는 발걸음으로 향한 그곳에서 단돈 100원으로 맛보는 그 소소한 행복감이란! 떡볶이 50원, 어묵 50원이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가끔은 후식으로 달고나를 먹는 사치를 부리기도 했던 그 시절이 지금 생각해도 참 귀엽다.


뜨겁다며 호호 불어대고, 맵다며 어묵 국물을 홀짝홀짝 마셔가면서도 절대 중도 포기란 없었다. 끝까지 애를 쓰며 먹어대는 우리 한 자매의 모습을 보며 주인아주머니는 늘 미소로 화답하셨다. 먹는 내내, 그리고 집으로 오는 내내 "오늘 떡볶이 너무 맛있다, 그치?"이 말을 몇 번을 무한반복했던지. 용돈을 아껴 써서 다음 주에도 꼭 다시 떡볶이 먹으러 가자는 굳은 약속을 하기도 했다.


주중에는 동네 시장에 있는 단골 떡볶이집에 종종 들르곤 했다. 큼직한 어묵이 들어간 떡볶이는 또 왜 이렇게 맛있던지. 그곳에서는 핫도그도 직접 만들어서 팔았는데, 가격 부담 때문에 매번 먹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가끔은 큰맘 먹고 핫도그로 마무리하며 플렉스를 완성했었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나의 가장 소중한 떡볶이 메이트는 우리 언니이다. 이런 언니를 낳아주신 엄마에게 무한 감사를 보낸다.)


중고등학생 시절에는 즉석떡볶이 집의 문턱이 도록 드나들었다. 생일파티를 한답시고 우르르 친구들과 몰려가기도 했고, 배고플 때, 입이 심심할 때도, 수다가 필요할 때도 떡볶이집을 찾았다. 당시 떡볶이집은 나에게 아지트와 같은 존재였다. 라면사리를 넣을 것이냐, 쫄면사리를 넣을 것이냐가 늘 열띤 토론의 대상이었지만 말이다.


입시를 앞둔 고3 때는, 독서실에서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다 보면 꼭 고비가 찾아왔었다. 저녁 9시 전후, 그러니까 딱 살찌기 가장 좋은 그 시간이면 눈치도 없이 배에서 꼬르륵거리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뚱보 되는 건 시간문제라며, 야식을 끊어보자는 다짐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결국은 친구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근처 포장마차로 질주하고야 만다. 떡볶이와 튀김을 한 접시씩 앞에 놓고 사이좋게 먹는 그 순간만큼은 입시 스트레스가 저 멀리 달아나곤 했다. 일단 대학부터 합격해 놓고 살은 나중에 빼자는 합리화를 펼치던 레퍼토리를 읊던 이른바, '심야 독서실 탈주사건'. 아, 그 젊은 시절의 소화력이 그리울 뿐이다.


신촌의 분식집 민주떡볶이, 오리지날, 그리고 새터말을 제외한다면 나의 대학생 시절을 논할 수 없다. 그만큼 뻔질나게 드나들던 곳들인데 특히 새터말은 지금도 사무치게 그리운 존재이다. 특이하게도 콩나물과 깻잎이 콜라보를 이루는 라볶이가 있었는에 특유의 콩나물의 아삭아삭한 식감과 깻잎의 향이 떡볶이 맛을 더 살려줬다. 아무리 배가 불러도 얼큰 수제비와 소고기주먹밥도 같이 주문해서 열심히 해치우면 세상 보람찬 한 끼 식사였다.

 

직장인이 돼서도 떡볶이는 중요한 존재였다. 한참 업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할 쯤인 오후 시간, 동료들과 잠시 모여서 함께 모여 즐기는 간식이기도 했고, 야근이 당첨되었을 때 괴로운 심신을 달래주는 음식이기도 했으니까. 대치동의 회사에 근무했던 시절의 추억도 언급해야겠다. 왕복 20분은 족히 걸리는,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은마상가의 분식집도 자주 들르던 곳이었다. 하루를 버티게 만들어주는 활력소와 같은 존재였다고나 할까? 멀다고 툴툴거리는 선배들을 이끌고 앞장서서 갔는데 막상 또 떡볶이를 한 입 베어 물면 웃음 짓게 만드는 마법 같은 음식이었다. 뻥튀기 아이스크림을 후식으로 먹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무실로 복귀했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리고 마흔이 넘은 지금도 떡볶이는 필수아이템이다. 아니 더 중요해졌다.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아이템이니까. 남편과 자녀들로 인해 수시로 열폭할 때, 성난 파도를 잠잠하게 다스려줄 생존 아이템으로 떡볶이만 한 게 없다. 지금도 매운 음식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지만(마라탕은 늘 1단계만 먹는 정도), 참 이상하게도 마음이 부글부글 할 때는 떡볶이 생각이 간절하다. 아이를 키우고, 살림을 하다 보면 내 뜻 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좌절하기도 하고, 형용할 수 없는 딥빡을 경험하기도 하는데 그래서인지 거의 중독 수준으로 떡볶이를 더 자주 찾게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엔도르핀이 생성되어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하는데, 이를 전적으로 실감하게 된다.


초등학생 남매의 엄마이기에 빠르면 12시 30분에는 집에 돌아오는 아이들 때문에 조찬모임은 일찍 문 여는 식당이 국룰이다. 물론 근사한 브런치 레스토랑도 있지만, 나는 떡볶이집이 제일 좋다. 여럿이 모일수록 다양하게 주문해서 먹을 수 있어서 좋고, 볶음밥으로 마무리하는 이른바 엘리트코스를 무사히 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분식집을 오픈어택 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초등학생 엄마들로 추정되는데, 그때 묘한 동지애가 느껴지기도 하는 재미도 있다.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영업하는 전국의 떡볶이집 주인장님께, 감사를) 파스타 하나에도 2만 원은 우습게 넘어가는 데에 비해, 분식집에서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풍족하게 주문해도 인당 1만 원이 넘는 법이 없다. 가격대비 만족도로 치면 떡볶이는 언제나 최상이다.


코 흘리게 시절부터 어른이 된 지금까지 즐겨 찾는 떡볶이. 국물 떡볶이, 카레 떡볶이, 기름떡볶이 등등.... 참 신기하게도 나이가 들어서도 과거의 그 맛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때 가게의 분위기, 맛과 향, 같이 있던 사람들과 신나게 조잘거리던 내 모습까지... 세월을 뛰어넘어 떡볶이에 힌 기억들이 여전히 좋은 추억으로 존재하기에 참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떡볶이에게 참 고맙고 또 고마운 날이다. 이렇게 위대한 떡볶이를 손쉽게 만날 수 있는 환경인 한국에서 태어난 게 얼마나 다행인지 싶다. 그러고 보면 떡볶이라는 위대한 발명을 한 최초의 인류에게 무한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싶다.


그렇다, 떡볶이는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수많은 떡볶이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 낸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삶의 굽이굽이 동거동락하며 나의 희로애락을 함께 해 준 떡볶이, 앞으로도 어떤 추억이 함께하게 될지 기대된다. 더 부지런히 떡볶이를 영접하기로 다짐해 본다. 떡볶이 예찬론가의 한 없는 떡볶이 사랑은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 까지도 변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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