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즐겨 먹었던 간식 중의 하나가 떡볶이였다. 별별 요리를 척척 만들어내는 우리 엄마도 의외로 떡볶이에서 만큼은 실력 발휘가 잘 되지 않으셨다. 엄마가 만들어준 이상하게도 떡볶이는 밖에서 사 먹는 떡볶이보다 덜 맛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재료만 비교해 본다 하더라도 집에서 만드는 떡볶이의 완승은 말할 것도 없다. 건강을 생각해서 밀가루떡은 절대적으로 퇴출대상 1호이다. 떡집에서 갓 뽑은 따끈따끈한 쌀떡과 정성껏 만든 멸치육수(당연히 생수를 사용)를 사용하는 건 기본이었다. 여기에 국내산 고춧가루, 고추장, 간장 등을 사용하고 어묵도 제일 비싼 걸로(그것도 기름기를 제거한다는 이유로 뜨거운 물에 한번 헹군 후) 넣고, 삶은 계란과 갖은 야채도 듬뿍 넣어 쌀떡으로는 부족한 영양도 보충해 주었다. 단맛은 올리고당 혹은 시골에서 직접 만들어서 보내주신 쌀조청을 사용했다. 예쁜 그릇에 담아내어 완성되는 엄마표 떡볶이의 루틴이다.
이 정도의 고퀄리티 재료라면, 호텔 부럽지 않은 초호화 떡볶이가 아닐까? 이렇게 정성과 노력을 쏟아부은 만큼 결과물인 '맛'과 정비례하는 게 상식적으로 당연한 결과이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다. 분명 맛이 없는 건 아닌데, 입에 착 붙는 그 무언가가 2% 부족했다는 말이다.
우리가 보통 사 먹는 떡볶이를 생각해 본다면 일단 재료의 단가부터 차이가 크다. 장사는 이윤을 남겨야 하기에 굳이 몇 배 더 비싼 국내산을 고집할 필요가 없을 테고, 식감도 좋고 훨씬 저렴한 밀떡을 사용하는 게 더 보편적이다. 육수를 사용하는 곳도 있지만 핵심적인 감칠맛의 비밀은, 아낌없이 넣어주는 MSG에 있다. 어묵은 영양성분을 보면 마음이 조금 불편해지는, 차라리 그냥 모르고 먹는 게 속 편한 그런 어묵일 것이다. 백설탕 혹은 물엿을 듬뿍 사용하며, 야채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도통 안 보인다. 커다란 사각철판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는 떡볶이는 초록색의 멜라민 접시에, 일회용 비닐을 낀 채로 떡볶이를 담아내준다. 위생으로 따져보자면 아무래도 집에서 만들어 먹는 것과는 확연히 비교가 된다.
하지만 도대체 왜! 사 먹는 떡볶이는 감탄사를 절로 부르는 건지 모르겠다. 맵고 짜고 달고 삼박자가 완벽한, 그야말로 입에 착 붙는 맛,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압도적인 맛이다. 도대체 어떤 비법이 담겨있길래 맛의 차이가 이리도 크단 말인가? 궁금함을 참지 못해 언젠가는 한번 시장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큰 용기를 내서 주인아주머니께 여쭤본 적이 있다.
"근데요, 우리 엄마가 만들어 준 떡볶이는 왜 이런 맛이 안 날까요?"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질문하는 나를 쳐다보며 아주머니가 껄껄 웃으셨다. 그러다 잠시 고민 끝에 하시는 말씀,
"나는 이렇게 떡볶이를 대량으로 만들잖아. 이렇게 떡이고 양념이고 재료를 잔뜩 넣고 큼직한 철판에서 오래 끓여서 맛있는 거겠지 뭐."
아주머니의 겸손함 이셨을까, 아니면 영업비밀을 누설하기 싫으셔서였을까? 그 진실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일리 있는 말이었다. 집에서는 최대한 만들어봤자 고작 4~5인분이 전부인데, 밖에서 만드는 떡볶이는 비교가 안 될 만큼 훨씬 어마어마한 양이니 말이다. 그렇게 손님에게 다 팔릴 때까지 한참을 끓이고 끓이다 보면 국물이 졸아들어 떡볶이 떡에 양념이 더 녹진하게 스며들 테고, 당연히 맛도 좋아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먹는 환경을 생각해 보면 북적이는 매장에서, 떡볶이를 사랑하는 사람들(비록 어디서 무얼 하시는 분인지 전혀 모르는 익명의 동지들이긴 하지만)과 함께 먹어서 더 맛있을 수도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영학과 출신인 나는 매사에 input 대비 output, 즉 효율성을 꽤나 따지는 편이다. 하지만 떡볶이에서만큼은 이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스럽기도 했다. 노력하고 애쓴 만큼 공평하게 대가가 주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어른이 되면서 이런 불공평함에 대해 조금씩은 알게 되었다.
학생 때는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성적이 잘 나오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직장생활을 통해서는 업무 능력이나 성실함보다 정치적인 술수가 더 중요함을 경험했다. 나보다 못생긴 친구가 잘생긴 남자를 만나는 모습을 보며 배 아파하기도 했고, 각종 외부 활동을 종횡무진하며 스펙을 쌓기 바빴던 나와는 달리 조용히 학교 수업만 듣던 친구가 공기업에 제일 먼저 떡하니 합격해서 기가 죽기도 했다. 회사에서 실력도 인성도 본받을게 전혀 없던 한 선배가 라인을 잘 타서 초고속 승진을 하는 어이없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치열한 육아를 통해 깔끔 떨며 아이를 키워본들 감기와 각종 전염병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보며 이 또한 부질없음을 깨달았고, 열심히 이유식을 만들어준 이유식보다 시판 이유식을 훨씬 잘 먹는 모습에 허탈하기도 했다. 바깥에서 반나절 이상 빡쎄게 굴려본들 아이는 내 기대와는 달리 절대로 일찍 잠들지 않아 배신감에 이를 갈기도 했다.
이럴 때마다 '휴, 나는 운도 지지리도 없네.'라며 남 탓, 상황 탓을 해보기도 하고, '왜 내가 하는 일은 다 이 모양일까?'라는 자책감에 시달리며 깊은 좌절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40대 초반이 된 지금, 어떤 일이든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음을 깨달았다. 아득바득 남들보다 더 잘해보겠다고 용을 쓰거나, 기어코 상대방을 이겨보겠노라 애써봤자 소용없었다.
여러 가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지거나, 혹은 생각지도 못한 변수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되기도 했다. 때로는 오르막길도, 내리막길도 있는 게 인생 아니던가? 억울해하기보다 그려려니 하며 때를 기다리게 되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하되, 다만 결과는 상황의 흐름에 맡기는 게 더 현명하구나 싶었다. 그러다 보니 이전보다 훨씬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마음을 비우고
너무 애쓰지 말고
결과가 어떻든 온전히 받아들이기
떡볶이를 통해 배우는 인생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엄마표 떡볶이는 비록 들인 정성에 비해 맛이 보장되지는 않지만, 최소한 먹고 나서 뒤탈은 없다. 속이 더부룩하지도 않고 소화도 잘 된다. 하지만 밖에서 사 먹는 떡볶이는 당장은 입을 즐겁게 해 주지만 자극적인 맛이라 집에 오면 한동안 물을 들이켜게 되었다. 캡사이신이 과다하게 들어간 떡볶이는 복통일 일으키기도 하고 화장실을 들락거리게 만들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어떤 떡볶이가 더 우세하다고 판정을 내리기도 참 애매한 일이다.
막상 나도 엄마가 되어보니 친정 엄마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다. 아이들이 선호하지 않아도 언제나 집에서 만드는 떡볶이에는 야채를 듬뿍 넣는다. 요리조리 야채를 피해 가며 떡만 건져먹는 아이들의 모습에 "골고루 먹어야 튼튼해지고 키가 쑥쑥 자라지!"라며 잔소리를 하는 것도 과거의 친정 엄마와 꼭 닮았다. 하다 못해 남편의 최애 음식 라면을 끓일 때도 파와 양파는 기본, 콩나물, 계란까지 넣어서 끓여준다. 비록 당사자는 아무 야채도 들어가지 않은 순정버전을 가장 좋아하기에 왜 자꾸 라면에 야채 테러를 하는 거냐며 볼멘소리를 하지만, 건강을 챙긴다는 명목으로 늘 그래왔듯이 남편의 요구를 묵살해 버린다. 이왕이면 가족들에게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고, 또 웬만하면 탄단지 균형이 잡힌 식단을 제공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 때문이다.
어릴 때는 '엄마의 정성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생각했지만, 철이 들고 나니 '엄마의 정성이 전부이다.'라고 인정하게 된다. 엄마의 수고로움과 사랑이 담긴 요리를 그 어떤 것이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엄마표 떡볶이는 맛이 없는 게 아니었다. 맛보다 더 가치 있는 것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