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과 긍정의 한 해를 다짐하며
2023년은 태양이를 출산하면서 온통 아이로 가득했던 해였다. 그래서인지 특히나 시간이 참 쏜살같이 지나갔지만, 돌아보면 참 감사한 게 많았던 한 해였던 것 같다.
엄마가 되다
2월에 태양이를 만나고 첫 3개월의 퀘스트는 '생존'이었다 ㅎㅎ 이 조그만 아이를 어떻게든 생존시키고 또 우리도 부족한 잠과 싸우며 생존하는 것! 부모로서의 삶에 익숙해지는 것도 이 시기가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 그렇게 아기 100일이 지나자 아기도 통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나도 조금씩 루틴을 찾기 시작했고, 일터로 돌아간 8월, 데이케어를 시작하고 나자 (아이도 목을 가누고 앉아있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육아가 훨씬 편안해지고, 나의 삶도 조금씩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혹자가 보기에 나는 워낙 일도 중요하고 또 여행과 개인 시간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사실 나는 어릴 때부터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나의 어린시절에 힘든 시간들이 많았기에 누군가에게 내 최선을 다해서 사랑을 주고 행복한 어린시절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것은 어떤 꿈보다도 뿌리깊은 꿈이었는데, 그 꿈을 이루기 시작할 수 있었던 한 해라 특히나 뜻 깊었다.
다행히 오빠와 나는 아빠 엄마로써 태양이에게 많은 사랑을 주면서 그럭저럭 잘 하고 있고! 태양이도 호기심 많고 잘 웃는 아기로 자라고 있어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육아에 대해서는 요즘 이것저것 워낙 생각하는 바가 많아 앞으로 별도의 포스트로도 좀 더 쓰고 싶다.
육아휴직, 그 이후
8월에 직장에 돌아가서는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6개월 사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다. 육아휴직을 들어가기 전에는 나에게 많은 것이 편안한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이 팀의 OG이다보니 Operating system 도 내가 짜는대로 움직여왔고 가장 우선순위인 일을 하면서 많은 리소스를 갖고 일했다. 또한 팀의 초기에는 많은 테스트를 빨리 돌리는 게 중요했기에, 내가 스타트업에서 쌓아온 역량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유저 인터뷰, 데이터, 디자인 등 실행 부분이 B급으로 일부 가능하며 빠른 결정을 내려 추진하는 것,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B급의 빨리 돌아가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하지만 그 사이 우리 팀은 더 커졌을 뿐만 아니라 더 큰 조직 아래로 편입되어 회사 전체의 시스템을 따라 변해야 할 것들이 많았고, 각자의 일은 좀 더 확실히 각자가 담당하는 - 그래서 빠른 실행보다는 우선순위 설정과, 굵직한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다양한 팀 사이의 조율이 더욱 중요해지는 상황이 되었다. 팀 내에서도 6개월 사이 더 중요한 일은 다른 팀원들이 맡게 되었으니, 나는 당장에 리소스가 없는 일에 첫 1-2 분기를 보내야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얘기다. 사람이 6개월이나 자리를 비웠는데 당장 오자마자 중요한 일에 욕심을 낸다는 게 말이 안되는데, 처음에는 달라진 상황이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일주일에 하나씩 테스트를 돌리던 나인데 테스트를 몇 분기간 하나도 돌리지 못하다니 - 회사 처음 들어왔을 때의 상황으로 돌아간 느낌... 변화한 시스템도 그저 '대기업화'가 되는 것이 아니냐며 답답하게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될까? 해서 무리했던 시기도 있었다.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일을 하고 데이케어 드랍은 오빠에게 맡겼다. 하지만 아기 픽업하고 육아하면 퇴근 후에는 야근하기가 힘들었고 시간적으로 다른 싱글 팀원들을 '따라 잡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돌아보면 무엇보다 내가 겸손하지 못했다.
새로운 상황을 받아들이고 열린 마음으로 부족한 부분을 배울 생각을 하지 못하고 다시 예전의 '위치'를 찾겠다는 얄팍한 생각으로 움직인게 아닌가 싶다. 열심히, 최선을 다했지만 그 계기가 순수한 열정이나 사랑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 기반한 것이어서 그 과정이 즐겁지 못했다.
그래도 연말쯤 되서는 이러한 상황이 스스로 인지가 되어서 좀 더 긍정적으로 방향 전환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지만, 내년은 더 적극적으로 열린 마음을 가지고 배우는 한 해로 만들고 싶다.
부모됨이 열어준 새로운 관계들
흔히들 부모가 되면 아이 친구들이랑 친구가 된다고 하던데 정말이었다. 부모가 되면서 동네에 살던 한국 엄마 아빠들을 정말 많이 알게되었다. 우리 동네에는 필라테스/요가 등의 운동을 가르쳐주는 동안 아기를 봐주는 짐이 있는데 거기 정말 온 동네 엄마들이 모이는 덕분에 새로운 사람들을 참 많이 알게 된 한 해였다.
만난지는 1년도 안되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자주 플레이데이트를 가지면서 정도 많이 들고 빨리 친해졌다. 태양이가 '소꿉친구'라고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동네 가족들이 생긴 것 같아 감사한 마음이다.
직장동료들과도 개인적으로 더 친해지고, 워낙 친한 MBA 친구 커플도 뉴욕에서 샌프란으로 이사를 왔다. 양가 가족도 아이를 보러 미국에 한 번씩 오셔서 크게 여행하지 않은 한 해였어도 여전히 참 풍성했던 한 해였다.
2024년은 나에게 새로운 시작이다.
아이를 낳으면서 이제는 우리가 3세대의 중심 세대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어린 시절에는 2-30대 청년이 이 세상을 이끄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면 지금 생각은 좀 다르다. 오히려 30대가 지나 자리잡으면서가 진짜가 아닌가 생각한다. 특히 아이를 가지면서는 더더욱. 좀 더 책임감있고 성숙한 어른, 부모라는 챕터를 제대로 시작하는 한 해가 되기를 다짐해본다. (그런 면에서 2023년의 기꺼이 이끄는 삶이라는 다짐은 Ongoing 이다.)
또한 아직 해결되지 않은 비자 문제를 더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비자란 내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기에) 운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자 생각한다. 일터에서도 새로운 상황을 더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나를 다짐한다.
매년 하는 생각이라 부끄럽지만 올해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블로그도 쓰고 또 가끔 유튜브도 올리고 싶다. 종종 오는 댓글과 이메일에, 비록 큰 영향력은 아니지만 종종 내 경험을 남기는 것들이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한 도움이 될 수 있구나 느낀다. 좀 더 적극적으로 긍정적인 영향력을 퍼뜨릴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2024년은 겸손과 긍정으로!
좀 더 단단해지는 한 해가 되길 바라며-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