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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sun 리선 Aug 17. 2023

흰머리 소녀의 그림일기

오지라퍼 경월이 



경월이는 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세 살 어린 동생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앞에는 낡은 건물의 목욕탕이 하나 있다. 선뜻 들어가기가 망설여지는 곳이다. 거기보다 크고 쾌적한 목욕탕은 좀 멀리 있어서 걸어가기 귀찮다. 팬데믹 때문에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운영하던 각종 운동 프로그램도 문을 닫았다. 어쩔 수 없이 운동도 할 수 있고, 목욕도 가능한 가까운 목욕탕으로 가기로 했다.     

내부는 새로 리모델링을 해서 생각보다 깔끔했다. 그곳에 오시는 분들은 대부분 건물이 생겼을 때부터 10년 넘게 다닌 단골들이었다. 그래서인지 누가 어디에 살고 그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정이 넘치는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사람들과 친해지려면 많은 시간이 걸린다. 누가 말 걸어주지 않으면 내가 먼저 말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곳에 나간 지 삼일도 채 안되었다. 혼자 비누칠을 하고 있는데, 어떤 아줌마가 다가와서 서슴없이 등을 밀어주겠다며 이태리타월로 비누칠을 꼼꼼하게 해 주었다. 이름이 경월이라는 것도 그때 알게 되었다.     

경월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목욕탕 안에 계신 모든 나이 드신 분들을 이태리타월을 들고 다니면서 일일이 등에 비누칠을 해주며 살갑게 말을 걸며 엄마처럼, 언니처럼 대했다.

그것도 부족해서 매점언니한테 박카스를 사서 돌리고, 어떨 때는 냉커피도 돌렸다.

나는 속으로 이런 것도 돈이 드는 건데… 하면서 오지랖도 넓은 친구구나 했다.    

운동 다닌 지 일주일도 안되었을 때, 경월이가  말했다.


언니야 같이 밥도 먹고 해야 빨리 친해질 수 있잖아. 샤워 얼른 끝내고 12시에
 **탕 앞에서 보자~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만남은 경월이 말대로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며 수다를 떨다 보니 금방 친해졌다.

경월이 와 더 빨리 친해진 또 하나의 이유는 나와 같은 경상도 사람이기도 했고, 경상도 사람들끼리 말 안 해도 서로 잘 통하는 친근감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경월이로부터 **탕 의 모든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좋은 친구를 알게 되었고, 가까이하면 피곤한 사람들은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냈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한 번씩 교외로 나가서 식사하고 커피 마시며 하루를 다 소비하기도 했는데, 그게 싫지는 않았다.

예전에는 이런 문화를 싫어했다. 할 일 없고 시간 많은 아줌마들이나 쓸데없이 몰려다닌다고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이런 문화에 젖어들고 있었다.    


어느날, 

매일 깔깔 거리며 옆에서 조잘조잘 대던 경월이가 자주 앉던 자리에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헬스장에도 없고 요가실에도 안 보인다.

못 나오게 될 때면 언제든지 서로가 미리 알려주던 사이가 아니었던가.

분명 아무 말이 없었는데, 왜 안 나왔는지 궁금해지고 걱정되고 말없이 안 나오는 것이 서운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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