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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경 Dec 03. 2023

총성 없는 전쟁터 - 코메다 커피

혼자지만 도쿄 여행합니다 03.

코메다 커피, 카페오레.

- 차례-

01.혼카의 품격

02.한국과 조금 다른 카페

03.총성 없는 전쟁터




01.혼카의 품격


'향긋한 커피 내음이 풍기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일하는 모습.'


직장에 다니던 시절, 언제부턴가 자유로운 프리랜서 번역가가 되고 싶었다. 프리랜서 번역가를 꿈꾸기 시작하면서 머릿속으로 위와 같은 상상을 자주 했다. 탁 트인 야외 풍경과 이에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카페에서 일하는 모습.


물론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하면 무조건 오색 빛깔 꽃밭 길이 펼쳐지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먹고 살 만큼 돈벌이는 할지 걱정하며 절절맸다.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이라도 머릿속으로는 꽃밭을 상상할 수도 있지 않은가? 내가 상상한 프리랜서 일하는 모습은 자유로워 보였고, 마침내 더 나은 자유를 위해 다니던 직장을 홀연히 떠났다.


당신은 무엇에 자유를 느끼는가? 나에게는 카페가 자유와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비록 공간 안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산뜻하면서 잔잔한 음악 소리와 감각적인 인테리어는 일상에서 한 발짝 벗어난 듯한 느낌을 선한다. 특별한 분위기 속에서 따스한 커피 한 잔을 호로록 마시니 뭐든지 할 수 있겠다는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듯하다. 폐를 끼치는 행동만 하지 않으면 누구도 나를 제지하지 않는 이곳. 카페에서 한숨 돌리며 나만의 자유를 쏠쏠하게 즐기곤 했다.


몇 번의 여름과 겨울이 지나갔고, 여전히 프리랜서로 살던 나는 가끔 카페를 방문했다. 친한 친구와 맛있고 따뜻한 식사를 한 후 카페에서 어깨에 힘을 빼고 이런저런 수다를 떨 때도 있었지만, 혼자 카페를 찾아가서 시간을 보낼 때도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프리랜서가 되면서 카페에서 혼자 즐기는 자유가 사라졌다. 일하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으니 카페 또한 노트북을 싸매고 가서 일하는 장소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카페에서 일할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코에 들어오는 냄새와 공기의 온도, 인테리어가 다르니 기분전환은 분명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글의 가장 처음에서 언급한 '향긋한 커피 내음이 풍기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일하는 모습'에서 향긋한 커피 내음이 나는 곳이 반드시 일하기에 적합한 카페는 아닐 가능성도 크기에 커피 맛과 향은 굳이 고집하지 않게 되었고, 손오공의 긴고아처럼 나를 머리를 죄어오는 마감일 전에 일을 끝내려고 허덕이느라 여유롭게 있을 수 없게 되었다.


평소에는 가볍게 기분 전환하고 싶을 때 노트북과 마우스, 전원, 안경을 검은 노트북 가방에 집어넣고 집을 나선다. 음료 맛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사람이 적고 실내가 넓어 조용하게 일할 수 있는 카페로 발걸음을 옮긴다. 카페에 도착하면 콘센트가 어디 있는지 두리번거린다. 노트북 안의 내용이 보이지 않도록 구석진 자리에 앉아 전원을 켜고, 그사이 주문한 음료를 받아온다. 커다란 유리창에 들어오는 빛을 배경 삼아 인스타 감성을 살려 사진을 찍은 다음 SNS에 올린다. 이제는 일을 시작해야 하니 빛이 시야를 방해하지 않도록 블라인드를 드르륵 내린다.


당신에게는 카페가 어떤 존재인지 궁금하다. 더위를 피하는 장소? 일터? 회의 장소? 아이와 함께 가는 장소? 돈이나 시간이 아까워 가지 않게 된 장소? 만약 고요히 나만의 휴식을 취했던 카페가 일에 잠식되었다면, 혹은 카페에서 혼자 모자람 없이 온전히 만끽할 수 있던 자유가 이제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윤택한 삶의 질을 위해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할지도 모른다.




자, 이제 오랜만에 혼자 카페에서 시간을 즐겨보자. 카페에서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달콤한 차를 마시며 책도 읽고, 스마트폰으로 보고 싶은 것도 마음껏 보고, 카페 밖 흘러가는 풍경도 구경할 생각을 하니 설렌다. 하지만 혼자 카페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혼카(혼자 카페)'에도 레벨이 있다는 걸. 마치 혼자 밥을 먹어도 편하게 먹을 수 있고 껄끄럽지 않은 정도를 나타내는 혼밥 레벨처럼 말이다.


혼밥 레벨이 낮은 음식으로는 편의점 삼각김밥, 김밥 천국의 요리나 국밥 등이 있고, 내가 생각하는 혼카 레벨이 낮은 곳은 스타벅스다. 이른 아침 활짝 문을 열어 방문하기 쉬운 스타벅스. 1층부터 많게는 3층까지도 이어지는 매장 내부에는 유독 홀로 노트북을 들고 와서 공부하거나 골똘히 생각하는 사람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규모부터 아기자기한 카페보다 커서 혼자 있어도 딱히 튀지 않는다.


반대로 일명 '카페 거리'에서 자주 보이는 크기가 아담하고 귀여운 소품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예쁜 카페 혼카 레벨이 높은 편이다. 일단 '카페 거리'라는 이름이 붙은 곳은 사람들이 모이는 번화가일 가능성이 크다. 얼마 전 해운대에 카페가 많이 모인 '해리단길'에 갔을 때도 주말 오후 12시가 지나자 인기 있는 카페는 손님들로 그득 찼다. 주택을 리모델링하여 카페로 만들었는데 마당에 깔아놓은 매끄러운 조약돌과 화분이 마음에 쏙 들어 들어간 카페였지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람들이 꽉 차 있었고 감미로운 음악 소리와 거의 같은 크기로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오가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가 싫지 않지만 왠지 혼자서 책을 읽기에는 민망한 곳이었다.


그렇다면 일본은 어떨까? 일본은 한국보다 혼자가 어색하지 않은 나라다. 카페뿐만 아니라 식사하는 가게에도 1인용 좌석이 마련된 곳이 많다. 점심시간 때 홀로 식당에서 배를 채우거나 카페에 앉아 있어도 크게 관심을 받지 않는다. 나와 같은 혼카족, 혼여족이 쉽게 도전할 수 있는 나라다.

코메다 커피의 메뉴.

02.한국과 조금 다른 카페

이곳 일본에서 나는 일하지 않고 오로지 혼카만을 즐기기로 했다. 이번에 가겠다고 점찍어둔 가게는 일본에 수많은 체인점이 있지만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코메다 커피(コメダコーヒー)'. 코메다 커피에서 커피와 함께 빵을 즐기는 유튜버를 보고 불쑥 가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지난 일본 여행 때는 우에노 공원 내 스타벅스의 테라스에서 노트북을 펼쳐놓고 일을 했었다. 이번에는 무거운 노트북을 챙기지 않고 가볍게 갔다.


우에노 공원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2층에 위치한 코메다 커피에 도착한다. 투박한 글씨체로 이름이 적힌 간판이 보이고 투명한 유리창에는 'KOMEDA'S Coffee'라는 네온사인이 걸려 있었다. 초록색과 주황색, 검은색으로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계단을 올라가서 카페 문을 열었다. 명소인 우에노 공원 근처라서 그런지 사람이 많아 북적거리고 서빙 직원도 다섯 명은 족히 되는 듯 보였다.


짙은 자주색 소파에 앉아 메뉴판에 눈을 옮겼다. 당연한 듯이 아메리카노가 가장 위 차지하는 한국과 무엇이 다를까. '편안함을 선사하는 한 잔이 세계를 웃음 짓게 한다'라는 문구와 함께 블랙커피인 코메다 블랜드가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때마침 종업원이 왔고, 무심코 따뜻한 코메다 블랜드에 우유를 넣어 마시는 카페오레를 선택했다.


미소 짓는 종업원이 내 자리를 떠난 순간, 나의 실수를 깨닫고 기함을 했다. 살인적인 더위로 기력이 다 빠진 상태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내 손으로 뜨거운 커피가 나온 사진을 가리키며 아이스커피가 아닌 뜨거운 커피를 주문한 것이다! 마치 한증막에서 뜨거운 커피를 주문한 것과 같았다. 평소 '아아(아이스아메리카노)의 민족' 한국인치고는 뜨거운 음료도 즐기는 편이지만 이날은 도저히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종업원이 걸어간 쪽을 황급쳐다보았다. 하지만 시끌벅적한 매장에서 이미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카운터 쪽까지 가버린 종업원. 소리쳐서 부를까 잠깐 고민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릴 듯하여 그만두었다. 종업원이 처음에 가져다준 코메다 커피의 로고가 박힌 유리컵의 얼음물만 벌컥벌컥 마셨다.


얼음물부터 독특했다. 일반적인 카페에서는 한 구석에 물을 가져올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거나 요청하면 바리스타가 물을 주기도 하지만, 이곳은 주문을 받을 때부터 시원한 물을 가져다주었다. 옆에 함께 놓인 갈색 물티슈에도 살짝 놀랐다. 한국 국밥집 같은 곳에 주문할 때 주는 봉지 안에 돌돌 말려 있는 물수건과 색깔 외에는 똑같다. 빵을 손을 써서 식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일까? 어찌 되었든 코메다 블랜드 커피만 마시는 나에게도 갈색 물티슈는 주어졌다.


종업원도 8, 90년대 경양식 식당에서 볼 법한 고풍스럽고 맵시 있는 검은색 유니폼을 입었고 벨벳 재질의 쭈글쭈글하게 디자인된 자주색 소파도, 칸막에 사용된 나무질감과 색감도 옛날 찻집에 있을 법한 모습을 자아냈다. 이렇게나 앤티크 그 자체인 인테리어는 오랜만이어 적응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적어도 내가 '앤티크'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분위기, '한국 카페'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분위기보다 더 옛날 느낌이 묻어났다. 한국 카페와 미묘하게 차이가 느껴지는 코메다 커피만의 앤티크 덕분에 지금 해외, 그것도 일본 카페에 있다는 사실 확실하게 각인되었.


커피를 입 안에 머금 우유를 섞어 조금 연해진 맛이 느껴지면서 긴장이 풀렸다. 이런 여유가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너무 오랜만이라서 오히려 생경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코메다 커피 내부.


03.총성 없는 전쟁터

일본 도쿄의 코메다 커피에서 커피 한 잔과 마주하자, 문득 번역하는 곳은 평화로운 이곳과 달리 '전쟁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전쟁터에 있을 때는 그저 앞으로 나아가기에 바빠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도쿄 여행을 오기 직전, 우연히 유튜브에서 번역가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녀는 자신의 작업실을 소개했다. 모니터 두 개와 모니터에 붙여 놓은 아이돌 최애의 사진까지 알려주며 소소한 웃음을 줬는데, 번역가의 작업 공간을 서서히 보다가 문득 내 웃음이 멈췄다.


번역가의 공간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너무 작았다. 그녀의 작업 공간이 물리적으로 작았다는 뜻이 아니다. 재택근무하는 나를 포함한 여느 프리랜서 번역가의 방처럼 작업실에 노트북과 모니터와 의자가 놓여 있었고 일하기에 전혀 불편하지 않아 보였지만, 그녀를 포함한 번역가들 작업장이 그들이 겪는 치열함에 비해 아담하다는 걸 깨달았다. 평소에 자신의 모습을 볼 기회가 좀체 없으니 번역가가 차지하는 공간이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보이는지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우연히 눈으로 보고 알게 되었다.


우리의 물리적인 공간은 끝이 있지만 머릿속 생각의 공간은 무한하다. 그리고 가능성이 있는 청년에게 '무한한 잠재력'이라는 표현을 쓰듯 번역가에게는 '무한하게 생각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내 앞에 놓은 활자를 곱씹고 한층 더 알기 쉬운, 적절한, 정확한, 재치 있는 표현을 머릿속에서 탄생시켜야 한다. 그것이 번역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다.


비록 좁은 공간 속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꼼짝하지 않고 일하지만 머릿속에는 넓은 초원이 펼쳐진다. 푸른 초원에서는 전투가 벌어지고 무기를 든 양쪽 군대가 어떤 번역이 더욱 적절한지를 내걸고 한 몸 던져 싸운다. 땅에 나 있던 잡초가 무참히 짓밟혀 푸른색을 잃을 정도로 뛰어다니며 치열하게 전략을 세우고 싸운다. 시끄러운 총성만 난무하지 않았을 뿐 이곳은 전쟁터다.


물론 노트북과 한 몸인 것처럼 종일 앉아 있는 우리보다 차라리 밖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더 많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엄마와 싸웠을 때 서로 흥분해서 못된 말을 주고받다가 엄마에게 격앙된 음성으로 "맨날 방구석에만 처박혀서 뭘 한다고!"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까지 잊히지 않고 마음 한쪽이 욱신거리는 걸 보니 어지간히 그 말에 상처받았나 보다. 내가 번역가로서 아무리 치열하게 일해도 나와 가장 가까운 엄마에게는 방구석에 처박힌 사람처럼 보이나 싶었다. 그래도, 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노력의 가치를 모조리 사그라뜨리는 그런 얘기는 하지 말지. 


비단 번역가뿐이겠는가. 주부, 직장인 등 수많은 사람은 치열한 노력이 당연시되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은 경험이 있을 테다.


 부디 치열하게 일하는 자들의 노력을 가볍게 치부하지 않기를, 그런 시선에 휩쓸려 치열하게 일하는 자신을 당연한 듯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 카페와 조금 다른 코메다 커피의 분위기도 특별하지만, 이렇게 생각의 무게를 잠시나마 잊고 시간의 흐름도 잊어버린 채 카페 의자에 편안하게 기대어 있는 한때도 더할 나위 없이 각별했다. 그리고 각별한 순간을 꿈꾸며 좁은 공간에서 번역하던 자신에게도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졌다.


마음이 충만해지는 코메다 커피에서의 추억은 도쿄에서 돌아와 부산에서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연말이라서 일이 바빠 새벽 1시에 일어나 번역을 하고 이번 글을 썼다. 실시간으로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래도 코메다 커피에서 보낸 따뜻한 시간 덕분에 전쟁터를 잠시 벗어나 카페에 앉아 있던 모습뿐만 아니라 전쟁터 속에서 맹렬하게 싸우는 모습도 이제는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번에도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오기를 바란다.




04.추가 여행 정보

(블로그에 발행한 자료를 정리해 넣을 계획이며, 필요시 도쿄에 다시 방문 후 필요한 부분을 추가할 예정입니다.)

▶코메다커피, 일본 카페 가볼 만한 곳, 아메요코상점가 구경

https://blog.naver.com/inpikaaa/223249435029

커피를 마시며 여행 기록하기.

블로그도 있어요: https://blog.naver.com/inpikaaa

인스타그램도 있어요https://www.instagram.com/translator_yeonk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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