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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경 8시간전

못 배워서 그렇다라...

30대 INFJ와 ESTP의 연애

30대 INFJ(여, 글쓴이)와 ESTP(남) 커플 이야기

※ MBTI는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MBTI를 쓴 것은 여러분의 관심을 끌기 위함일 뿐,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신문에 실린 작가 하미나의 글에서 눈에 들어온 문구가 있습니다. "못 배운 사람이 배운 사람에게 갖는 동경을 보고 들으며 자랐는데, 막상 배운 사람이 못 배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야트막하고 고루했다". 이는 한국 최고로 여겨지는 대학교에 다녔고 어릴 적 장사꾼들 사이에서 자라며 장사꾼과 학자, 두 가지를 모두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그녀이기에 나온 통찰의 문장일 것입니다.


아주 대단하지도, 너무 초라하지도 않은 대학교를 졸업한 저와 곱슬머리의 그(이조차 매우 주관적인 판단이지요. 인서울이 아니면 지잡대라고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도 인간의 배움에 관해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곱슬머리의 그는 대한민국의 많은 이가 들었을 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높은 학력은 그다지 선망하지 않는 듯합니다. 높은 학력이 많은 재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게에서 떠날 때 있던 자리를 깔끔하게 치우고 가는 에티켓이 있는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배운 사람이네. 사람은 배워야 한다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가게에 온 진상 손님을 얘기하다가, 그날 우리 집에 온 에어컨 설치 기사 아저씨는 친절했다고 말하니 "그 기사는 대학교를 졸업했나 보지."라고 그가 답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말을 종합해 보면 곱슬머리 그는 공공장소나 사람과 마주할 때 필요한 예의가 일정 이상의 학력에서 비롯된다고 믿는 듯합니다.


곱슬머리 그의 말을 들을 때마다 의문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정말 학력이 높으면 그만큼 지성이 높아지고 정신적으로 성숙해지며 예의 있는 사람이 될까요? 더 깊숙이 파고들면 어느 정도 배워야 에티켓을 지닌 사람이 되고, 반대로 지적 허영심만 가득한 사람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요? 예의를 안다는 것은 학력이 높은 것과 비례할까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잠에 들기 전, 나중에 의사가 되고 싶다고 기도한 후 눈을 감은 기억이 아직 생생합니다. 선생님이셨던 엄마는 어릴 적 의사가 좋은 직업이라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엄마의 바람은 제가 크면서 꺾였지만, 어릴 적부터 제 주변에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내세울 만한 직장을 다니는 어른들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첫머리에 적은 "막상 배운 사람이 못 배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은 야트막하고 고루했다"라는 문장이 이 번듯한 화이트칼라를 보았을 때 떠올랐어요. 나이 차, 세대 차를 무시할 수 없지만, 고학력자에게서 타인을 향한 친절보다는 무시를 느꼈고 그만 머릿속에 기억의 조각으로 남아버렸습니다. 고학력자, 즉 사회에서 존경받는 사람의 숨겨진 이면을 보고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존경'이라는 단어를 언제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에서 정해준 존경과 마음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존경은 다릅니다.


이렇게 말해도 제가 고학력자들 사이에서 있었기에 세상의 풍파 속에서 이 정도의 무시를 당한 것에 그쳤을지도 모릅니다. 책 <세이노의 가르침>에서도 이렇게 말하더군요. "너희 부모의 삶이 지금처럼 무미건조해진 것은 너희가 태어나고부터였다." 부모님은 저희를 낳으신 후 먹고살기 바쁘고 힘들어서, 학력에서의 약자에게 가끔 냉소적인 모습을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고학력자 부모님이 애써 펼친 우산 덕에 저는 세상의 차가운 편견이라는 비를 덜 맞을 때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학력이 더 높은, 아니면 그렇지 않은 집안은 어떠했는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정확히 모르겠으니 주변에서 들은 말을 수집해 봤습니다. 얼마 전 헬스장에서 자신이 자식을 너무나 애지중지하며 키웠기에 쉽게 결혼시킬 수 없다는 부자 할머니는 "아들한테 들러붙는 가시나들 내가 다 떼어 냈잖아. 난 2년제는 쳐다도 안 봐!"라고 했고, 보름 전쯤에 만난 전 직장에서 절친했던 언니는 "집안, 학력 등에서 나와 결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야 해"라고 했으며 절친한 초등학교 친구는 처음 보는 찌푸린 표정으로 "난 학력 따위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라고 말했습니다. 학력은 누구에게는 꼭 필요하고 누군가에게는 그렇지 않나 봅니다. 사실 저는 20대에 높은 학력을 지닌 남자를 원했습니다. 원래 애매한 사람이 끝도 없이 따지고 잽니다. 학자 집안에서 자란 제가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함이기도 하였고, 아주 옛날에 학력이 낮은 사람들 속에서 아르바이트한 적이 있는데 여자를 성적인 도구로만 아는 남자들을 본 후 선입견이 생겨 버렸습니다. 이후 취업 시장에서 일을 찾을 때도 '대졸 이상'만 검색해서 지원했습니다. 비록 사실이 아닐지라도, 저는 이때 학력이라는 사회적 기준을 위험한 남자에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로 여겼네요.


그리 구분 짓던 마음은 시간이 흘러 꽤 옅어진 듯합니다. 이전 남자친구들을 통해 학력이 높다고 다른 이보다 반드시 사회적으로 성공하지도, 부지런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이전에 만난 친구들이 이해심이 많고 부드러웠던 것도 선천적, 후천적 성격일 뿐 반드시 학력에서 기인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10년 전 사진을 보면 얼굴 살부터 몸매까지 상당히 다른 모습이라 화들짝 놀라는데, 10년보다 더 전에 입학한 대학교로 타인의 부지런함과 성공 여부까지 판단하는 건 너무 잔인합니다. 대학을 다니는 시간보다 인생이 몇 곱절은 길잖아요.


곱슬머리 그의 가게에서 술을 마신 중년의 남성이 있었습니다. 손님이 꽉 찬 가게에서 술에 취해 곱슬머리 그에게 고함을 꽤 오랜 시간 쳤다고 해요. 이야기를 들어 보니 결제를 잘못하지도 않았고 곱슬머리의 그가 잘못한 부분이 없었습니다. 술김에 곱슬머리 그의 응대를 잘못 받아들여서 화가 났거나, 어떠한 일로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 가까이 있던 그에게 분노를 퍼부었겠지요. 어찌되었든 곱슬머리 그가 그런 화를 들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곱슬머리의 그는 전화를 통해 억울함, 화가 덕지덕지 붙은 말투로 속상한 마음을 토로했습니다. 사람은 격앙되면 상대를 비난하는 말도 나오는 법이죠. 그는 평소에도 직원에게 반말을 하는 사람이 많고 그들이 못 배워서 그렇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못 배운 것과 기본적인 매너가 비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곱슬머리 그의 편을 들어주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 서비스직에서 일할 때 저 또한 수많은 손님에게 화가 났고 이를 주체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아니라 기계라면 사람 취급을 받지 않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을 텐데 사람이다 보니 아무리 기계처럼 일하려고 해도 서운함을 느끼고 맙니다. 이제는 종일 컴퓨터 앞에서 일하며 SNS와 책으로만 감정 노동자의 마음을 배워 공감하는 제가, 실제로 가게라는 최전선에서 사람과 대면하는 그와 완전히 같을 수 없습니다. 실제로 겪어 봐야 비로소 안다는 옛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곰곰이 파고들면 그가 화가 난 내용보다 못 배웠다는 표현이 저에게 거슬렸을 뿐입니다. 화가 났어도 '아' 다르고 '어' 다른데 조금만 더 자기 생각을 순화해서 저에게 말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에요. 하지만 이 또한 제가 그 진상 손님을 겪지 않았으니 쉽게 말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현실에서 같은 일을 겪으면 저는 더 격분할지도 모르죠. 사람의 마음을 쉽게 찍어 누를 수 있는, 사회에서 정해놓은 '못 배웠다', '학력이 모자라다'와 같은 기준을 내세우면서...


그렇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경험을 통해 학력이 한 사람의 인격 전체를 대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막상 화가 나면 이를 이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릅니다. 저는 예전부터 제가 쉽게 하지 못하는 너무나 솔직한, 때로는 나빠 보일 수 있는 말을 속이 시원해지게 내뱉는 곱슬머리 그가 신선하게 느껴졌고, 마음이 이끌렸습니다. 그는 마냥 착하지 않았고 그래서 좋았습니다. 그의 말투와 표현이 거슬렸지만 이상하게도 바꾸라고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은연중에 생각했습니다.


처서가 지났지만 아직 무더워서 사람과 부딪히기만 해도 기가 빨리는 요즘. 제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술에 취해 분노를 내뿜는 상대에게 세상에서 가장 악한 말을 외치고 싶다는 생각. 실체도 없는 사회에서 규정한 학력을 들이밀어서 넌 무식하다고, 너 따위와 우리는 다르다고 말하며 우위에 서고 싶은 생각. 제가 무시당하면 슬퍼할 학력에 관한 말을 하고 싶다는 생각.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자는 못 배웠다고 깔보며 차갑게 대하고 싶다는 생각. 겉으로는 티를 안 내고 학력주의는 근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제 안에도 악마가 숨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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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번역가: https://linktr.ee/linakim_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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