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팔자 주름이 유독 눈에 들어옵니다. 입가 양 옆에 움푹 들어간 팔(八)자 모양의 주름. 얼마 전 찍은 사진이 마음에 들지 않아 보정 앱을 썼더니 훨씬 눈이 편안하더군요. 어떤 부분이 보정됐는지 살펴보니 웃을 때 하회탈처럼 들어가는 팔자 주름이 옅어져 있었습니다. 팔자 주름이 옅어지는 시술이라도 받아야 할지 고민하며 주변 사람에게 물었더니 살이 갑자기 빠지면 주름이 생기기 쉽답니다. 지인의 말대로 최근 7kg 정도 체중을 감량해서인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팔자 주름이 짙어진 원인은 알 수 없지만, 이미 물은 엎어졌으니 이를 없애는 데 힘을 쏟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 과도하게 집착해선 안 되겠죠. 참 신기한 게요. 외모와 스타일, 즉 외면은 고쳐도 고쳐도 두더지 잡기 게임의 두더지처럼 고치고 싶은 부분이 튀어나오더군요. 심지어 저는 책을 사서 읽었을 때보다 만족감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이토록 외면에서 만족하기 쉽지 않습니다.
내면에서 만족하면 더 나은 외면을 향한 욕망이 사그라들까요? 가수 이효리가 발매한 노래 <변하지 않는 건>에는 "얼마 전 잡지에서 본 나의 얼굴 / 여전히 예쁘고 주름 하나 없는 얼굴 / 거울 속의 나는 많이 변했는데 왜? / 조금도 변하지 않는 이상한 저 얼굴 / 변하지 않는 건 너무 이상해 / 모든 건 시간 따라 조금씩 변하는데 / 변하지 않는 건 너무 위험해"라는 가사가 있었고 한 책의 저자는 나이가 들면서 찾아오는 얼굴의 변화를 겸허하게 받아들였지만, 저는 나이가 들어도 가능한 대로 더 어려 보이고 싶습니다.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친구 중 가장 나이가 많던 사만다가 미모에 신경 쓰며 "보톡스를 맞아!"라고 조언했듯이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본 얼굴이 망가지지 않는 선에서는 더 생기 있어 보이고 싶네요. 명품 가방을 든다고 내면의 진실한 가치가 올라가지 않는 것을 알지만 몇 달 전 우연히 본 프라다 갤러리아 백에 마음을 빼앗겨 지금도 가방을 든 모습을 상상하는 저처럼, 외모가 모든 성공을 대변하지 않고 텅 빈 속을 꽉 채워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자기만족인지 무엇인지 더욱 아름다워 보이고 싶습니다. 이는 더 나아가면 자존감의 부재를 원인으로 꼽을 수도 있겠지만, 아휴, 몰라요. 아무튼 더 예뻐지고 싶습니다.
ESTP인 곱슬머리 그(남자 친구)는 위와 같은 생각 자체에 어리둥절할 수도 있겠습니다. 예쁘고, 멋있고, 화려하면 이유 없이 좋은데 왜 텅 빈 속을 채워 줄지 생각해야 하며 그 이상을 판단하고 고민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 할지도요.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한 그는 오감으로 즉각 느끼기에 감각적이고 본능적이며 참으로 직관적입니다.
얼마 전 저에게서 입술 끝을 넘어 이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너는 숲을 못 보고 나무만 봐. 전체적인 이미지가 예쁘면 되지 무엇을 그렇게 세세하게 파고드니?" 곱슬머리 그는 베트남 푸꾸옥에서 구매한 친구에게도 호평받은 푸른색 머리핀을 보고 생선이라고 하지를 않나(생선이 아니라 인어 모양입니다) 제가 겨드랑이털을 관리하는 데도 조금 눈에 띄었는지 털이 났다느니(그다음 주에 그는 다시 확인했습니다), 제 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느니... 직관적이어서 눈에 보이는 모습에만 가상의 현미경을 가져다 대고 뚫어져라 볼 때가 많습니다. 무언가를 발견했을 때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무조건 입 밖으로 꺼내야 하는 성격은 덤이고요.
숲이 아닌 나무에 관심이 지대한 곱슬머리 그도 저만 보면 예쁘다고 어쩔 줄 몰라할 때가 있었습니다. 제가 말도 안 되게 예뻐서 일본 드라마 <미나미 군의 연인>에 나온 여자친구처럼 손에 쏙 올라올 정도로 작게 만들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다던 모습. 자신이 이상한 것 같다며 어쩜 이렇게 예뻐 보일 수가 있냐고 저에게 소리치던 모습. 이제는 옛날 추억을 회상하는 할머니처럼 허허 웃으며 떠올리게 되네요. 현재는 예쁘다는 기준이 외면에서 내면으로 조금은 옮겨졌는지, 자신이 서툰 운동을 열심히 하거나 부족한 점을 메꾸려고 노력하는 등 배울 점이 있을 때 예쁘다, 대단하다고 저에게 말하곤 합니다.
'예쁘다'는 말은 듣는 사람에게 자신을 소중하게 여긴다고 느끼게 해주는 더할 나위 없는 애정 표현입니다. 저를 위해서 그가 예쁘다고 폭격하듯이 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그가 선물해 준 붉은색 원피스를 입고 잔뜩 꾸미고선 만났는데 저에게 익숙해진 건지 예쁘다는 말이 없는 곱슬머리 그에게 서운하더군요. 결국 기다리다가 오늘 예쁘냐고 물어봤더니 예쁘다고 했습니다. 엎드려서 절 받는 기분은 언제나 유쾌하지 않은데 저는 또 도돌이표처럼 질문을 반복해 버렸습니다. 문득 과거의 남자를 떠올려 보니 똑같았습니다. 언제나 연애 초반에는 '예쁘다'를 그야말로 밥 먹듯이, 담배 피우듯이 하는데 갈수록 횟수가 줄어듭니다. 괜스레 조언하고 싶어 집니다. 남자분들, 연인과의 행복을 위해 무지성으로 예쁘다고 하세요!
여느 연인과 아주 다르지는 않은 상황을 지나는 듯합니다. 얼마 전 곱슬머리 그가 저에게 예전에는 자신이 어떠한 얘기를 하든 다 옳다고 어화둥둥 무지성 응원을 해주었는데 지금은 '근데'로 입을 뗄 때가 많고 장난식으로 여긴다며, 변했다고 보채더군요.
여자친구가 연애 때는 초식 동물이다가 결혼한 후 신경 쓸 게 많아져서 피를 입에 묻히며 육식하는 초식 동물로 변하고, 시간이 더 지나면 진짜 모습인 호랑이가 되며 아이를 낳고 키우면 무섭게 하늘을 나는 날개 달린 호랑이가 되어 자신이 조금만 잘못하면 하늘에서 내려와 소리친다며 우스갯소리로 말한 연예인 신동엽처럼 저 또한 상대를 잘 모르던 연애 초기보다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게 됐나 봅니다. 그래도 곱슬머리 그 앞에서는 토끼와 다름없는 초식 동물이라고 반박할 마음이 솟아나면서도, 여자의 속이 얼마나 문드러지면 호랑이가 되었나 싶으면서도 누구나 서로가 변했다고 느끼기 마련이니 변화하더라도 최대한 이성의 끈을 놓지는 말자, 근간을 이루는 존중과 존경은 잃지 말자고 자신에게 다짐을 두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짐이 퇴색하더라도 이 순간의 다짐을 순간순간 최대한 붙여 나가고 싶습니다.
팔자 주름을 비롯한 외면을 향한 갈망이 사라지지는 않는 요즘. 곱슬머리 그 앞에서 여자로서 매력을 완전히 잃고 싶지 않아서인지 저를 아름답게 가꾸고 싶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굳건한 내면이 수반된 우아한 외면을 갖추기 위해 힘쓰겠다고도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