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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경 Sep 16. 2024

연인아, 그냥 이해하려고 해 봐

30대 INFJ와 ESTP의 연애

제가 브런치 북으로 집필한 <혼자지만 도쿄 여행합니다>에서 세대 차이가 느껴지는 엄마에게 "나는 당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이렇듯 가족의 언어적, 비언어적 행동도 수긍하기 힘든데 삼십 년 넘게 다른 집안에서 커온 곱슬머리 그(남자친구, ESTP)와 저(글쓴이, INFJ)는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 수밖에 없겠죠.


곱슬머리 그와 일본 도쿄 여행을 갔을 당시, 상황을 해결하지 않고 미리 짜놓은 계획대로만 움직이려는 저에게 그는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했습니다. 또 평소 장사를 하는 곱슬머리 그는 뜨거운 음식을 판매하는데요. 어느 너무나 바빴던 날에 "이렇게 더운 여름 날씨에 왜 뜨거운 음식을 먹으러 오는지 이해가 안 된다"라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또 그의 친구들 모임에 갔을 때 강아지와 놀고 있는 저에게 왜 강아지랑만 노냐고 이해가 안 된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이해가 안 된다는 말. 곱슬머리 그는 말끝에 굳이 듣고 싶지 않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실을 붙일 때가 많습니다.


곱슬머리 그는 여러 사물과 현상에 "이해가 안 돼!"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이 편협한 시각, 상대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격을 나타낸다고 생각해 왔기에 처음에 상처받고 곱슬머리 그의 그릇이 작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이해가 안 된다는 말도 상대에게 상처가 될까 봐 거의 쓰지 않으니까요. 이 글을 빌어 그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그냥 좀 이해하려고 해 봐!


물론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아껴 쓰는 저도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일은 있습니다. 가스레인지 위에 올린 주전자도 물이 끓으려면 몇 분은 걸리는데, 화가 날 때 저는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놓자마자 0.5초도 되지 않아 끓어오르고 삐익-하며 끓는 소리를 토해내는 이상한 주전자처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집니다. 어쩌면 저의 화 주전자가 비이성적으로 끓는 부분을 곱슬머리 그는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최근의 기억까지 그러모아서 화가 난 순간을 기록해 보자면 누군가가 아무렇지 않게 쓰레기를 버렸을 때, 내 물건을 함부로 뜯었을 때, 술을 마시고 운전했을 때, 동물이나 노인을 괴롭혔을 때, 그리고 사회 문제를 더 파고들자면 조울증인 아들의 입원비를 벌기 위해 남편이 야간직을 하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기사에 "여자가 삼십 대 중반에 애를 낳았네, 그냥 뭐 그렇다고"라며 모든 화살을 여자에게 돌리는 댓글을 보았을 때 등... 인간이 최소한 지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해를 저버린 언행을 하거나 불의와 마주했을 때, 도덕적이지 못한 짓을 보았을 때 화를 품은 주전자가 들썩입니다. 

덧붙여 곱슬머리 그가 어릴 때 문방구에서 펜을 훔쳤다고 했을 때도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해서 화가 났는데요. 어려도 도둑질은 하면 안 된다는 저의 잔소리에 너희 집은 어릴 적부터 잘 살아서 그렇다며 곱슬머리 그가 가난으로 도둑질을 덮으려는 대답을 했고 저는 이렇게 받아쳤습니다. "네가 장발장이냐?"


연인 간의 이해하기 힘든 지점을 어떻게 메꿔야 할까요? 가수 박원은 노래 <노력>에서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라고 말하고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미란다는 "사랑하는데 그렇게 노력해야 하니?"라고 하지만 제 머릿속에는 어느 연예인의 "연애는 노력해야 해요"라는 말도 스리슬쩍 떠오릅니다. 연애에 노력이라는 한 단어만 더해져도 이토록 의견이 갈립니다. 

유튜브의 3분 요약 영상도 아닌데 자신이 원하는 핵심만을 주장과 논거에 맞추어 조목조목 설명하는 그를 보다가 앞으로는 제가 덜 상처받도록 서두에 쿠션 언어를 넣어달라고 했더니, 그는 쿠션 언어는커녕 "엇, 네가 화난 것 같네. 쿠션, 쿠션"이라며 장난을 쳤고 저는 쿠션거리는 입을 손으로 찰지게 때리고 싶어졌습니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언어인 쿠션 언어를 사용하는 게 낯간지러울까요. 저는 쿠션 언어를 넣지 못하고 장난만 치는 그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반대로 곱슬머리 그는 말할 때조차 글을 쓸 때처럼 주제를 서두에 말하지 않고 형체 없는 감정을 자주 말하는 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려운 이야기, 허무맹랑한 소리로 비치기 일쑤입니다. 그는 엄마가 비싼 우산의 포장지를 멋대로 뜯었다고 3년간 잊지 않겠다며 씩씩대는 저의 뒤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는 강성인 데다가 논리적인 그가 조금 더 감성을 지니고 약자에게 부드러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이 내용이 그저 "좋을 때다~"라는 말이 나오는 연인 간의 소소한 싸움과 의견 차이로 보이는지요? 실제로 겪어 보니 타인을 이해하는 거대한 바다가 만들어지는 데에는 수없이 많은 눈물이 필요하더군요.

 

유튜브 <길 인간학 연구소>에서는 T와 F에게 다음과 같이 조언합니다.


T: 일단 좋은 사람이 되어보세요. 혹시나 오해하지 마세요. 극 T는 원래 나쁜 사람이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사실 이 사람들은 그런 개념이 별로 없어요.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런 식의 구분이 잘 안되죠. 구분한다면 맞는 말을 하는 사람, 틀린 말을 하는 사람으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만 하지 마시고요, 누군가에게 정말 좋은 사람이 되어보는 경험을 해보란 얘깁니다. 단 한, 두 명만이라도요.

F: 너무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세상에는 내가 좋게 대해줬는데 나쁘게 돌려주는 사람도 많거든요. 굳이 불행한 인간관계를 만들지 마세요. 좋게 돌려주는 사람들한테 좋게 대해주면 됩니다.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자주 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이해도 안정적인 관계를 가져오지는 않습니다. 서로의 어떠한 부분을 이해하는 단계에 들어서지 못해 질척이고 찝찝한 순간도 받아들일 용기 또한 필요합니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이러한 행위의 원점에는 사랑이 있겠죠.


만약 상대를 이해해 보려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있다면, 상대가 이해할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이해가 안 되어서 복잡하게 얽힌 부분 때문에 가려진 사랑을 일단 발견해야 합니다. 물론 사랑이 없다면 미련 없이 더 늦기 전에 뒤돌아서야 합니다. 위에서 T와 F에게 하는 조언은 다르지만 결론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T는 맞다, 틀리다만 따지지 않고 단 한, 두 명에게만이라도 좋은 사람이 될 것. F는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않고 나의 감정에 좋게 답해주는 단 한, 두 명에게 좋은 사람이 될 것. 불가해한 부분 때문에 못마땅하고 언짢아도 일단 사랑하는 상대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봅시다. 그러고 나서 서로 다른 가치관을 이해할지, 안 할지 고민해 보는 겁니다. 우리의 문제를 보는 관점이 조금 더 넓어질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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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번역가: https://linktr.ee/linakim_8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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