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BTI는 참고 사항일 뿐입니다. MBTI를 쓴 것은 여러분의 관심을 끌기 위함일 뿐,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곱슬머리 그(남자친구, ESTP)가 꺼리는 것.
어두운 과거 이야기, 사랑처럼 형체 없는 감정 설명하기, 비효율적인 일에 푹 빠지기, 근거가 없는 미래 이야기, PC 주의, 쥐 죽은 듯한 고요함, 지나친 우울, 재미없는 일.
다음은 제(글쓴이, INFJ)가 꺼리는 것.
시끄러운 곳, 무례한 말, 네 명 이상의 사람, 차가운 것, 3일 이상 혼자만의 시간 주지 않기, 메시지의 성의 없는 답장, 약자를 겉으로 무시하는 행동, 배구 선수 김연경에게 피해를 주는 말, 장난을 가장한 무시, 고인 물, 지나친 남성주의, 남자답다, 여자답다는 말, 게으름.
저는 지금까지 '닮은 듯 닮지 않은 우리의 사랑 이야기'를 주제로 글을 써왔습니다. 특히 닮지 않은 점을 탐구하면서 재미까지 느껴왔어요. 사실 위에 쓴 내용도 우리의 다른 점이 드러나면 재밌겠다 싶어서 작성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떠오르는 대로 쓰고 차근히 읽어 보니, 서로의 다른 점이 부각되어 재밌기는커녕 이렇듯 표현된 두 사람을 존중해 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송형석 의사는 "지나치게 깔끔한 사람은 마음속이든 집이든 어딘가 더러운 데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라"라고 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깔끔한 게 아니라 과거의 경험 등으로 자신에게 더러운 데가 있다고 생각하여 지나치게 깔끔을 떠는 것이라는 얘기인데요. 그와 제가 위에 언급한 행동을 꺼리는 이유도 자세히 파고들면 과거에 관련된 일을 겪어서 아팠던 적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과거에 힘들었다고 생각하니 상대를 향한 측은지심과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마저 생겼습니다. 닮지 않은 점을 부각하려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피어났습니다. 상대의 과거를 멋대로 짐작하다니 오지랖일 수도 있지만요.
이러한 생각을 거치자 앞으로는 그와 나의 닮지 않은 점보다 닮은 점을 발견해 보자고 생각하게 됐는데요. 사실은,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또 하나의 일이 더 있습니다.
하품. 최근의 다툼은 웃기게도 곱슬머리 그의 반복되는 하품에서 시작됐습니다. 추석 전후로 일로 바빴던 그가 대뜸 하품을 늘어지게 하는 일이 늘어나자 짜증이 났습니다. 하품은 피곤해서 하는 것이니 하품을 하면 그에게서 오늘은 피곤하다, 전화를 짧게 하고 자겠다는 말도 세트로 딸려 나왔습니다. 머리로는 바쁜 그를 이해했지만 제가 종일 생각하고 겪은 일을 그가 들어주지 않자 속상했습니다. 상대가 바쁜데 왜 이해를 못 해주냐고요? 저도 머리로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제 마음이 속상한데 어떡하나요.
그날도 서로 언짢은 마음을 안은 채 티키타카가 느껴지지 않는 얘기를 끝내자 가깝다고 생각한 그가 또다시 먼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결국 마음이 복잡해 '힘들 때는 책 앞으로'라는 제 지론에 따라 시를 읽기 시작했는데, 시에서 삼투압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흥미로워서 AI인 챗지피티에게 삼투압으로 시를 한 편 지어달라고 했습니다. AI의 작품이 썩 마음에 들어 곱슬머리 그에게도 공유했답니다. 다음은 그와 나눈 메시지입니다.
곱슬머리 씨, 아침에 삼투압이라는 단어를 봤는데 삼투압은 농도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이동해서 '균형을 맞추려는 성질'을 뜻한대요. 거기에 관한 시가 있어요.
<너와 나의 삼투압>
우리는 서로 다른 농도의 마음을 가진 두 세계
너는 자주 웃음으로 넘쳐나고
나는 가끔씩 눈물에 잠긴다.
하지만 우리 사이의 보이지 않는 막은
서로의 감정을 스며들게 한다.
네 웃음이 내 슬픔을 적셔주고
내 눈물이 너의 고요함 속에 섞여 들어가.
우린 그렇게 균형을 맞추어 간다,
너와 나,
삼투압처럼.
서로가 다르지만 균형을 맞춰 가는 모습이 우리와 같아서 시를 공유했는데, 곱슬머리 그의 반응이 의외였습니다.
곱슬머리 그: 나는 우리의 같은 점을 찾았으면 좋겠는데 너는 자꾸 다른 걸 찾는 것 같아요. 이래서 다르고 저래서 다르고... 같은 점이 더 많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그가 시를 탐탁지 않아 하기에 의아했지만 이내 이해했습니다. 예전에 곱슬머리 그가 우리는 너무 달라서 큰일이라고 했을 때 저는 헤어질까 봐 무서워서 눈물까지 펑펑 흘릴 정도로 슬퍼했는데, 내로남불로 저는 그와 다른 점을 찾으며 즐거워해 왔던 것입니다.
"글쓰기에서 성장보다 성숙이 중요하다"라고 한 어느 작가의 말이 기억납니다. 비단 글쓰기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도 똑같지 않을까요? 영화 <내 머릿속의 지우개>의 남자 주인공이 정반대 성격의 여자를 만나 활기를 얻고 달라져 가듯이, 자신의 성을 쌓아 혼자 있기를 좋아하던 저도 사교적인 그의 모습에 조금씩 변화하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삼투압 현상처럼 다른 점을 흡수하며 성장하는 일에만 집중하느라 우리 관계가 무르익을, 성숙해질 노력은 뒷전이 되었습니다. '닮은 듯 닮지 않은 우리의 사랑'에서 '닮지 않은 점'에 집중하며 우린 이게 달라, 저게 달라, 이런 우리가 만나서 사귀다니 신기하다며 즐거워하던 저는 이제 다른 방식으로 상대를 더 심도 있게 이해하고 싶어졌습니다.
우리의 닮은 점과 좋아하는 것
서로의 작은 손, 화가 끓어오르면 참기 어려워하는 급한 성격, 카테고리는 다르지만 숨기고 싶은 초라한 과거, 좋은 향이 나는 비싼 향수, 일을 향한 자부심, 자존심... 그리고 둘 다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점, 잇푸도 라멘, 책 <너무나 많은 여름이>의 "1월의 홋카이도는 사랑하기 좋은 섬이었다"라는 말처럼 홋카이도에 관심이 있는 점, 선홍빛으로 불타오르며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예쁜 노을빛...
서로의 닮은 점을 하나씩 머릿속으로 톺아보다가, 일본 홋카이도에서 서로가 좋아하는 잇푸도 라멘을 먹고 예쁜 노을빛을 보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졌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함께하는 상상을 하자 마음이 편안해졌고 문득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삼십 대가 될 때까지 모르는 채로 살아온 우리는 왜 결혼하려는 걸까?"라는 근원적인 질문요.
"우리는 왜 각자 살지 않고 결혼이라는 중차대한 일을 추진하는가, 아무리 결혼 전에 잘 알아본다고 해도 속된 비유일 수도 있으나 주식보다 알기 어려운 것이 사람이거늘 왜 이런 도박을 하는가? 왜 평생을 함께하려고 하는가?" 이러한 근원적인 질문요.
언젠가 곱슬머리 그는 제가 왜 결혼하려 하냐고 질문하자 "원래 사람은 종족 번식의 본능이 있거든..."이라며 감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답변을 했습니다. 엄마는 너 혼자서는 외로워서 못 산다며 결혼을 추천했지만, 혼자보다 둘이 더 외로울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닌 저를 이해시키지는 못했습니다.
그럼 우리가 결혼하려는 이유로 이것은 어떤가요? 성장보다 성숙이 중요하다는 말을 곱씹다가 제가 고심해서 내린 생각의 결과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결혼하려는 이유는 성숙하고, 사랑하고, 헌신하고 싶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