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어리를 쏟아내다

일기 하면 저는 가슴속에 뭔가 답답하게 뭉쳐있는 것, 즉 마음의 응어리를 속 시원하게 쏟아내는 것이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언제까지고 경청해 주는 친구

사실 마음이 힘들어질 때면 혼자만 끙끙대며 끌어안고 있기보단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이야기해 보면 막상 별것 아닌 것을 걱정을 했구나 할 때도 있고 때론 별것 아닌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빨리 대처해야 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가까운 지인, 가족 또는 상담전문가라도 매시간 내게 붙어있으면서 나의 이야기를 다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 누구에게, 어떻게 고민을 풀어놓을지 판단이 잘 안 설 때도 많고요. 아예 말도 꺼내기 힘든 일도 꽤 있습니다.


그럴 때 일기가 도움이 됩니다. 고민 없이 즉시 털어놓을 수 있습니다. 언제든, 얼마동안이든, 얼마만큼이든 원하는 대로 쏟아놓을 수 있습니다. 과묵히 경청해 주는 친구 같습니다. 물론 반응을 해준다거나 조언을 해주지는 못하지만요.


하지만 그렇게 두서없이 쏟아내다 보면 스스로 정리가 될 때도 있습니다. 누구에게, 어떻게 말할지 준비가 되는 것입니다. 일기 친구는 인간 친구를 만날 준비를 시켜주는 것이죠.


유령과 괴물

머릿속에서 형태 없이 존재하던 응어리, 불안들은 글로 써서 실체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더 선명하게, 눈에 보이는 형태인 '글'로 말입니다. 영화 속 유령도 정체가 탄로 나지 않는 초반이 제일 무섭습니다. 실체가 드러나고 나면 점점 시시해지기 마련이죠. 정체탄로 자체가 문제를 해결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당장은 큰 일인 줄 알고 일기에 막 쓰다 보면 곧 별 것 아닌 지나친 걱정, 불안이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기도 하거든요.


물론 기록으로 곧바로 꺼내놓기 힘든 심각한 문제를 만날 때도 있습니다. 유령인 줄 알고 덤볐는데 알고 보니 압도적인 괴물인 경우겠죠. 예를 들면 '트라우마를 일으켰다'라고 할만한 사건이라면 곧바로 이에 대해 쓰는 것은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해로울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저는 잠시 일기 쓰기를 멈춥니다. 대신 최대한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쉬고, 잘 잔 다음 다시 펜과 키보드를 들고 덤빕니다. 일단 이 괴물의 실루엣이라도 기록해 두면 나중에라도 문제해결을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당장은 해결을 위한 힘, 에너지가 없을 때 특히 유용합니다. 혼자서 해결이 안 된다는 판단이 들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그때 문제기록이 또다시 빛을 발합니다. 상황을 상당히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흔히들 인생을 고해라고 한다. 삶의 바다 곳곳에 무수한 고통이 암초처럼 놓여 있는 탓이다.

이기주
<글의 품격>


이렇게 일기는 인생항해의 험로에서 생기는 수많은 마음속 응어리들을 품어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통의 암초들'을 헤쳐나간 문제해결의 기록으로 가득 찬 항해일지는 지금 그리고 미래를 위한 지혜를 줍니다. 역사책이 보통 그러하듯 말입니다.


응어리가 깨운 기록본능

제 일기생활에 생명을 불어넣는 큰 에너지 중 하나는 마음속 고통, 응어리입니다. 하지만 저의 첫 일기는 변화를 바라는 '반성문'으로 시작했습니다. 아쉽게도 4개월 동안 바짝 매일 쓰고는 뚝 끊겨버리기는 했지만요. 바뀌기를 바라며 반성문을 꾸준히 썼지만 곧바로 잘 변하지 않으니 동기가 약해졌던 것 같습니다.


당시 해외로 공부를 하러 가면서 문화, 생활, 공부 등 적응하는데 정신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을 겁니다. 지금은 더 이상 경험해 볼 것 같지 않아서인지, 기록하지 않은 당시의 하루들이 너무 아깝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 그때를 다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마구 솟구칩니다.


일기는 그 해외생활을 끝낼 때쯤 다시 시작됩니다. 그때쯤 제가 감당 못할 인생풍파가 닥쳤거든요. 응어리가 생기기 시작한 시점입니다. 그리고 기록본능이 깨어났습니다.


기본값 아래로

저희 집안의 경제력은 굴곡이 꽤 있는 편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니기 전에는 그다지 넉넉지 않은 집이었습니다. 가게에 딸린 방한칸에 살았었으니까요. 그러다 초등학교 들어갈 때쯤에는 20평 정도의 아파트로 이사했고 그 뒤로는 갈수록 형편이 확 좋아졌던 기억이 납니다.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께서 동네에 4층 건물을 하나 올리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20살에는 당시에는 그리 흔하다 할 수 없는 미국 유학도 갔습니다. 한마디로 생활의 기본값이 한껏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러다 유학생활 4년 차에 갑자기 그 기본값 아래로 뚝 떨어지는 경험을 하며 ‘경제적, 심적 붕괴’를 함께 경험했습니다.


2004년의 금문교. 샌프란시스코는 연간 100일 이상 안개 끼는 도시로 유명합니다. 제 삶도 거기서 안갯속으로 더 빠져들어가 버렸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아버지 사업이 부도가 났습니다.


드라마라면 너무 진부한 장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경험한 드라마 속 한컷의 충격은 너무도 컸습니다. 당연하게 여기는 기본값이 붕괴되는 경험은 커다란 심적 고통 또한 함께 가지고 왔습니다.


유학생활 동안 저는 나름 열심히 살았습니다. 공부를 포기하고 살던 생활을 바꿨습니다. 다행히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할 수 있는 학점을 따고 조건부 입학 승인을 받은 학기였습니다. 하필 그때 부도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쩌면 처음으로 '내 인생을 쏟아부어본 것'이 한 번에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면 어떤 상황이 기다리고 있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어느 버스정류장. STOP 표지판이 왠지 상징적입니다.

당시에 그 소식과 함께 발병한 공황장애는 모든 상황을 더 힘들게 만들었습니다. 20년 전 공황장애란 병명은 그리 흔하지 않았습니다. 대체 무슨 문제인지, 어디서 도움 받아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누군가에게 도저히 말도 못 했습니다.


그때 일기가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20년 넘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그 일기입니다. 마음의 응어리를 토하며 기도하고 그 내용을 일기에 썼습니다. 여전히 구체적인 문제해결방법은 나오지 않았지만 쓰는 것만으로도 말 못 할 답답한 마음이 어느 정도 해소되었습니다. 멈춰야 하는 유학생활을 생각하면 비참한 기분도 들었지만 그럼에도 좋았던 일들, 감사할만한 일들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기록의 마음

그렇게 저는 중간에 애매하게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사업부도와 심적부도라는 짐을 지고 대학편입, 군입대, 연애와 결혼, 육아, 직장생활 등의 인생과업에 내던져졌습니다. 기록은 쌓이고 쌓여 이제 4,000쪽(A4 기준)을 훌쩍 넘었습니다.


이렇게 응어리는 기록본능을 일깨워줬고 또 이어가게 해 줬습니다. 공황장애를 헤쳐나가며 겪은 지난한 이야기들은 물론 여러분이 듣기에 지루하고 힘든 이야기일 것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가치 있는 기록입니다. 그것들이 쌓여서 이 마음의 문제에 대응하고 적응하는 대처능력이 단단해졌기 때문입니다. 경제적 문제는 기록만으로 해결할 수는 없지만 마음을 힘들게 하는 원인 중 하나라는 인식을 명확히 해주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삶은 크고 작은 응어리를 시기마다 건네주는 듯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그것들을 일기에 털어놓습니다.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깝깝하기도 합니다. 되려 지금은 응어리가 없는 시기에 일기를 자꾸 덜 쓰게 되어 아쉬울 정도입니다. 일기를 이어나가게 할 동기를 다양화하는 것이 유용합니다. 하지만 응어리는 정말 강력한 동기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힘든 날 꼭 일기 한번 써보시길 추천합니다.

예상치 못한 평생의 친구를 얻으실지도 모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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