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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킥더드림 Sep 26. 2022

달빛 내리는 남산에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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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화창한 봄날 토요일 오후.
 시우는 문을 열고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신사동 어느 호텔 이십 층에 위치한 The 16th Century라는 이름의 루프탑 카페이다. 안으로 들어오니 생각했던 것과 달리 공간이 꽤 넓다. 카페 이름은 십육 세기인데 내부는 너무나 모던한 스타일로 꾸며져 있다. 무엇보다 창 밖 전망이 강하게 시우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로가 긴 미닫이 창을 완전히 개방해 밖이 훤히 내다 보여 마치 시네마스코프 화면으로 서울 풍경을 보는 느낌이 든다. 창 밖으로 한강이 보이고 저 멀리 남산도 보인다. 남산 뒤로는 파란 하늘이 짙게 펼쳐져 있고 듬성듬성 하얀 조각구름이 떠다닌다. 신사동에 이렇게 전망이 좋은 카페가 있는 줄 몰랐다.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곳을 알고 찾아 다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시간을 확인하니 약속 시간 십오 분 전이다. 시우는 카페 가운데에 서서 빈자리를 찾기 위해 주위를 둘러본다. 그제서야 카페 안이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대부분 이십 대와 삼십 대로 보이며 다들 한껏 멋을 부린 모습이다. 시우는 멋지게 꾸미기 보다는 단정해 보이도록 입었다. 베이지색 바지에 푸른색 깅엄체크 패턴 셔츠를 입었고 그 위에 계절에 맞게 가벼운 코트를 걸쳤다. 여기 오기 바로 직전 몇 년 동안 다니고 있는 미용사에게 가서 머리 손질도 받았다. 미용실에 다녀온 이유는 오늘을 위한 것은 아니고 마침 머리를 자를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소개 자리에 맞춰서 적당히 예의를 지킬 정도로만 차려 입은 자신이 여기 있는 사람들에 비해 평범하게 느껴진다. 전망이 좋은 창 가까운 곳에는 당연히 자리가 없다. 창과 가장 먼 곳에 유일하게 비어있는 자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시우는 누구에게 뺏길까 빠른 걸음으로 가서 그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정사각형의 테이블이고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오히려 창 쪽보다 이 자리가 조용하고 좋을 것 같다. 고개를 돌려 밖을 본다. 지금 앉은 자리에서는 한강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저 멀리 남산과 남산서울타워는 잘 보인다. 남산을 보고 있으니 몇 년 전 헤어진 여자친구가 떠오른다. 고개를 가볍게 흔들어 떠오른 생각을 털어내고 전화기를 꺼내 문자를 보낸다.
 『안녕하세요? 오늘 뵙기로 한 이시우입니다. 저는 약속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카페 가장 안쪽 자리에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는 사람이 저입니다. 오시면 봬요~』
 바로 답장이 왔다.
 『안녕하세요? 일찍 도착하셨네요. 그런데 죄송해서 어쩌죠. 저는 오 분 정도 늦을 것 같아요. 최대한 빨리 가도록 하겠습니다.』
 답장을 확인하고 다시 문자를 보낸다.
 『네, 그러시군요. 토요일 오후라서 차가 좀 막히나 봐요. 저는 괜찮으니까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오세요~』
 『너무 죄송해요!!! 차는 제가 살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문자를 확인하고 시우는 다시 카페 안을 한번 둘러본다. 카페 안은 적당한 광량, 알맞은 기온, 밝고 화사한 옷차림, 경쾌한 재잘거림이 섞여 봄 기운으로 가득하다. 카페 분위기가 좋아서인지 덩달아 괜히 기분도 좋다. 지금 기분이라면 오늘 소개받기로 한 사람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져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다. 소개해준 사람이 아마 네 스타일이 아닐 테지만 그래도 매력 있는 사람이니 일단 한 번 만나 보라고 강하게 권유했기 때문이다. M전자에서 반도체 엔지니어로 일한다는 것 외에 전혀 들은 바가 없다. 엔지니어라는 말에 왠지 보이시한 매력의 여성이 아닐까 상상해 본다. 마지막으로 연애한지도 오래됐고 더군다나 누군가를 소개 받아 본지는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전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처음인 것 같다. 그래서 누구라도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자신의 스타일이 아니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만나 보기로 했다. 기대감이 없으니 기다리는 동안의 두근거림 같은 것도 없다. 어쩌면 기대감과 상관없이 이십 대 때와 같은 그런 설렘은 더 이상 느낄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마음에 안 들면 하루 잘 만나고 말면 되지 않나. 혼자 이런 저런 생각하는 와중 어디선가 상큼한 플로럴 향이 난다. 시우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좋은 향이 온 몸에 확 퍼져 신경회로를 교란시킨다. 익숙하지 않은 향수이다. 이때 한 여성이 테이블 옆으로 홀연히 나타나 묻는다.
 "이시우씨 맞으시죠?" 
 시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대답한다. "네. 맞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만나기로 한 유홍지에요. 오래 기다리셨죠? 늦어서 너무 죄송해요. 제가 차 살게요. 뭐 드실래요?"
 "아니에요. 제가 살게요."
 시우가 주문하러 가려고 하니 홍지는 절대 안 된다면서 시우의 팔을 살짝 밀쳤다. 홍지의 손이 팔에 닿으니 얼굴에 열이 살짝 오르고 가슴이 조금 두근거린다. 예기치 못한 무심한 스킨십에 시우는 당황했다.
 “그냥 앉아 계세요. 늦게 왔는데 당연히 제가 사야죠. 뭐 드실래요?” 아주 환한 미소를 띠며 홍지가 물었다.
 “네.. 그럼 저는 따뜻한 아메리카노 마실게요.”
 시우는 보자마자 홍지의 아름다운 모습에 크게 놀랬다.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여인이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 턱 선이 갸름한 얼굴에 아름다운 눈, 코, 입이 아주 이상적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조금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머리는 가슴 정도까지 내려오고 끝에는 세련되게 살짝 컬이 들어가 있다. 머리 색과 맞춘 숱 많은 눈썹은 단정하면서 날카롭게 양 옆으로 뻗었으며 옅은 쌍꺼풀 위 검고 긴 속눈썹은 예쁜 얼굴에 세련미와 깊이를 더해준다. 누가 봐도 예쁜 얼굴이다. 무릎 위 길이의 꽃무늬 패턴의 청색 원피스를 입었고 그 위에 밝은 회색 카디건을 걸쳤다. 한 손에는 고급스러운 클러치백을 들었다. 원피스의 화려함과 가디건의 단정함이 잘 어우러지고 색도 매치가 잘 돼 몸 전체에 우아하면서도 섹시한 느낌이 흐른다.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바보 같이 너무 단정하게만 입고 왔다. 좀더 신경 썼어야 했다. 그나마 전문가에게 머리 손질을 받아서 다행이다. 이왕이면 갈색으로 염색도 할 걸 그랬다. 홍지의 키가 커 보이지는 않지만 비율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옷을 잘 입어서인지 전체적으로 늘씬한 느낌이다. 
 홍지는 시우를 보고 깔끔하고 단정하게 옷을 잘 입었다고 생각했다. 키가 크고 날씬한 체형이어서 스타일 더 잘 사는 것 같아 보였다. 선해 보이는 인상이 호감이 간다. 상대가 소개 받는 자리에 맞춰 단정하고 격식 있게 입었는데 오히려 자신은 봄 날에 맞춰 너무 산뜻한 스타일로 입은 건 아닌지 걱정이 됐다.
 홍지는 주문한 커피와 케이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다가 들고 왔다. 홍지와 시우는 아메리카노 두 잔, 조각 케이크를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있다. 시우는 홍지와 눈을 마주치니 진정 됐던 가슴이 다시 두근거린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말한 주선자가 원망스럽다. 굳이 그런 말을 왜 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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