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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킥더드림 Sep 27. 2022

달빛 내리는 남산에서 2

2
 “카페 분위기 너무 좋은데요. 이런 곳은 어떻게 아셨어요?” 시우가 말했다.
 “인터넷에서 찾아 봤죠. 저도 오늘 처음 와봤는데 너무 마음에 드는데요. 잠시만요.”
 대화 중에 갑자기 홍지는 스마트폰으로 카페 여기저기 사진 몇 장을 찍는다.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사진을 찍는 행동이 처음에는 이상해 보였지만, 몸을 기울여 가며 다양한 각도로 사진을 담아내려는 모습이 시우의 눈에 귀여움으로 바뀌었다. 자신이 찍은 사진을 잠시 보더니 시우에게도 보여준다. 사진이 한 장, 한 장 다 잘 나왔다. 멋진 카페 분위기가 사진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떤 사진은 실제 모습 보다 훨씬 더 운치 있고 분위기 있게 나왔다. 특히 창 밖을 향해 정면으로 찍은 사진에 눈길이 간다. 카페 내부는 어두운 회색 톤으로 깜깜하게 나왔고, 창 밖 하늘은 긴 직사각형 모양의 진한 파란색이다. 얼핏 보면 검은색 바탕의 캔버스 가운데 파란색 직사각형을 그려놓은 듯 하다. 마치 어디가 현실이고, 어디가 현실이 아닌지 구분하기 힘든 초현실주의 미술 작품 같다.
 “이 사진 정말 멋지네요. 사진 잘 찍으시네요.” 시우가 말했다.
 “제가 잘 찍은 게 아니라 요새 전화기 성능이 워낙 좋아서요. 말씀하신 대로 이 사진은 잘 나왔네요.” 사진을 보던 홍미는 잠시 창 밖을 봤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늘에 구름 몇 개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작은 구름 하나만 떠있어요. 마침 사진 찍는 순간에 그 구름이 남산 타워 꼭대기에 걸쳤어요. 타이밍이 절묘했어요. 하하.” 홍지가 즐거워하며 웃는다.
 시우가 사진을 유심히 보면서 말한다. “그러게 말이죠. 구름 하나가 남산 타워 위에 딱 걸려있는데요.”
 "그나저나 태호 선배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칭찬을 엄청 많이 하더라고요.” 
 시우는 칭찬을 많이 했다는 말을 들으니 멋쩍다. "칭찬을요? 칭찬할게 별로 없을 텐데.. 그런데 저는 홍지씨에 대해서 아무것도 못 들었어요. 이름이랑 직업 말고는 아는 정보가 전혀 없어요.”
 "진짜요? 이상하네요. 저한테는 꽤 상세하게 알려줬거든요."
 "저한테는 그냥 자기 믿고 만나보라면서 아무 것도 안 알려줬어요. 저에 대해서 뭐라고 하던가요?"
 “키가 백팔십이 훌쩍 넘는 훤칠한 체격에 인상도 좋은 편이다. 착한 성격에 유머감각도 뛰어나다고 했어요. 대학은 누리대학을 나왔고 학교 졸업하고 K전자에 조금 다니다가 그만 뒀고 지금은 중소기업 마케팅 부서에서 일한다고 들었어요. 장남이고 남동생이 한 명이 있고. 그리고 강남에 본인 이름으로 된 집도 있다고 그러더라고요.”
 “그 형은 별 얘기를 다했네요. 운이 좋게 집값이 많이 오르기 전에 산 거에요. 지금도 은행 대출 갚느라 힘들어요.”
 “그럼 샀을 때보다 많이 올랐다는 말이네요?”
 “네? 그.. 그렇죠. 많이 오르기는.. 올랐습니다.” 
 “좋으시겠어요. 하하.”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홍지가 소리를 내며 웃는다. 홍지가 집 얘기를 꺼내서 시우는 당황했다. 첫 만남에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멀뚱멀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시우를 아랑곳하지 않고 홍지는 계속 혼자 웃는다. 웃다가 갑자기 웃음을 딱 그친다. 자연스럽게 웃음이 사그라드는 것이 아니라 일시에 웃는 얼굴이 무표정한 얼굴로 전환됐다. 마치 온 오프 웃음 버튼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시우는 그런 홍지의 모습이 어색해 보이면서도 귀엽다. 아무래도 첫 만남이다 보니 어색해서 행동이 부자연스럽게 나오나 보다.
 홍지가 묻는다. ”태호 선배랑은 어릴 때부터 친했다면서요?”
 “아주 어릴 때부터 같은 동네에 살았어요.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됐는지 기억도 안 나요. 그냥 동네에서 놀다가 자연스럽게 알게 됐고 친해졌을 거에요. 태호 형은 어릴 때부터 엄청 착했고 공부는 정말 잘했어요.” 
 “맞아요. 태호 선배 정말 착한 사람이죠. 태호 선배랑은 자주 봐요?”
 “요즘 들어서 자주 보는 편이에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형이 저희 사무실 근처로 와서 같이 점심을 먹어요. 몇 달 전에 영화 개봉하고 나서 요새는 쉬는 기간이라고 하더라고요.”
 “일주일에 한 번이면 엄청 자주 보네요. 저는 일년에 한 두 번 보려나. 태호 선배가 대학 졸업하고 영화 감독하겠다고 영화과로 다시 진학한다고 했을 때 엄청 놀랬어요.”
 “저도 그랬어요.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하기는 했는데 우리나라에 제일 좋은 대학을 나와서 갑자기 영화 공부를 한다고 하길래. 속으로 왜 저러나 싶었어요. 저 형 머리가 좋아서 세상이 다 자기 마음대로 되는 줄 착각하나 보다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영화를 두 편이나 연출하고 대단해요. 얘기 들어보니까 엄청난 노력의 결과더라고요.”
 “저도 진짜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멋진 사람이에요.”
 “홍지씨는 태호 형이랑 대학 선후배 사이인 건 가요?”
 “어머, 그것도 몰랐던 거에요? 스카이대 물리학과 후배에요.”
 “그럴 것 같았어요. 그런데 궁금하네요. 저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줬는데, 왜 홍지씨에 대해서는 저한테 아무 정보도 주지 않았는지.”
 “그러게 말이죠. 태호 선배가 엉뚱한 면이 있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엉뚱해서요? 글쎄, 잘 모르겠어요.” 태호에게 엉뚱한 면이 있다고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다. “홍지씨 형제는 어떻게 돼요? 잠깐 본 느낌으로는 첫째 같아요.”
 홍지가 눈웃음을 짓는다. "첫째 같다는 말 종종 들어요. 그런데 저는 둘째에요. 위로 오빠가 있고 밑으로는 여동생이랑 남동생이 있어요."
 "형제가 넷이에요? 요즘은 보기 드문데, 부모님께서 금실이 좋으신가 봐요."
 "그랬겠죠. 넷이나 낳은 걸 보니까. 아버지는 중학교 때 돌아가셨어요."
 그 말을 듣고 시우는 금실이 좋으냐고 물은 게 후회됐다. "아.. 그렇구나.”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어간다. “형제가 많으면 좋은 가요?"
 "지금은 좋은데 어릴 때는 불편하다고 느꼈어요. 혼자 방 써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형제가 많으면 아무래도 그럴 수 밖에 없겠죠."
 "오빠랑 막내 남동생은 나이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그렇지 않은데, 저랑 여동생은 친구처럼 지내요. 서로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저 궁금한 게 있어요. 서른 넷인데 왜 아직 결혼 안 했어요?"
 "아.. 그게 태호 형한테 그 얘기는 못 들었나 보네요. 저 사실 결혼하기로 한 여자친구가 있었어요. 삼년 전 일인데요. 결혼 한 달 앞두고 파혼했어요."
 파혼했다는 말에 홍지는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놀라셨죠?" 시우가 물었다.
 "아니요. 놀랐다기 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이라 조금 당황했을 뿐이에요. 결혼 직전에 그런 결정을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잖아요."
 "맞아요. 흔하지 않죠. 홍지씨는 나이가 어떻게 돼요?"
 "제 나이도 못 들었나 봐요. 저는 서른 둘이에요."
 "서른 넷이면 결혼이 늦은 것 같은데, 서른 둘은 늦었다는 느낌은 아니에요."
 "그런가요? 저는 아직까지 남자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어요." 
 "에이, 농담이시죠?"
 "농담 아니고 정말이에요."
 지금껏 연애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말에 시우는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다. "인기는 많았을 것 같은데, 별로 관심이 없었나 봐요.”
 시우는 연애를 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했으나 묻지 않았고, 홍지도 파혼의 이유가 궁금했으나 묻지 않았다. 잠시 침묵이 흘렀고 두 사람은 그 틈을 타 커피와 케이크를 먹는다.
 "하는 일은 어때요? M전자 엄청 힘들다고 들었거든요. 특히 반도체 분야는 더 그렇다고 하던데요." 시우가 말했다.
 "예전에는 진짜 힘들었는데 요즘은 많이 편해졌어요. 신입 때는 정말 백이십 프로로 일 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직원들을 갈아 넣어서 성과를 내는 분위기였거든요."
 홍지는 자신이 하는 일과 회사에 대해서 한참 얘기했다. 웨이퍼, 회로 패턴, 포토 공정, 식각 공정 같은 용어를 써가면서 설명을 하는데 시우는 반은 알아 들었고 반은 이해하지 못 했다. 그래도 귀 기울여 열심히 듣고 알아 듣는 척 반응했다. 홍지랑 함께 이야기 하는 것만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앞으로의 만남이 기대되고 소멸했던 연애감각이 깨어나고 있다. 이런 감정을 느껴 보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홍지도 시우와의 대화가 재미있다. 특별히 재미있는 이야기를 한 것 같지도 않은데 그냥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다. 메마른 마음에 새싹이 움트는 기분이 든다. 
 시우는 저녁도 같이 먹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홍지가 가족 모임이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다음에 보기로 하고 카페를 나왔고 헤어지면서 서로 아쉬움이 담긴 시선을 상대에게 보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상한 것이 그런 시선을 던지면서도 그 마음을 온전히 들키고 싶지는 않았다. 두 사람 모두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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