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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킥더드림 Sep 28. 2022

달빛 내리는 남산에서 3

3
 시우는 윤태호와 점심을 먹기로 했다. 홍지를 본 이후 처음 만나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에 홍지와 헤어지자마자 태호에게 전화를 걸어 마음에 든다고 얘기했다. 언제나 그렇듯이 태호가 도곡동에 위치한 시우가 다니는 회사 근처로 왔다. 오전에 할 일을 서둘러서 마무리하고 점심시간 보다 조금 일찍 나왔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중국식당에 왔다.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태호는 숟가락을 엄지와 검지로 계속 만지작거린다. 숟가락 손잡이 부분의 문양이 매우 특이하다. 한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숟가락이 아니다. 아마도 중국에서 직접 사온 숟가락 같아 보인다. 시우는 숟가락을 만지는 태호의 손을 바라본다. 속으로 왜 저렇게 계속 만지나 하고 잠시 생각했다. 
 시우가 한껏 궁금한 표정으로 묻는다. "형 나한테는 왜 홍지씨에 대해서 아무것도 얘기 안 해 준 거야?" 
 "홍지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면 네가 안 만난다고 할까 봐 그랬어."
 "형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이해가 안돼.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어."
 “홍지랑 헤어지고 전화로 마음에 든다고 해서 조금 놀랐어. 그 동안 네가 사귀었던 여자친구를 내가 세 명 봤잖아. 그 세 명 모두 스타일이 비슷했거든. 홍지랑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던 걸로 기억해. 모두 다 키가 크고 인상이 선한 이미지의 예쁜 얼굴이었는데, 그에 반해서 홍지는 작은 키에 인상이 선해 보이는 편은 아니잖아. 그래서 외모를 자세히 말하면 네가 안 만난다고 할까 봐 얘기 안 했어. 너는 외모를 많이 따지는 편이니까.”
 태호는 소개를 하면서도 시우가 홍지를 처음부터 마음에 들어 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길을 가다가 하늘에서 헤엄치는 돌고래를 마주치는 것만큼이나 예상하지 못했다
 “형, 나 외모 별로 안 따져. 그리고 홍지씨 키가 별로 작지 않아 보였는데, 얼굴도 예쁘고 인상도 좋던데. 그리고 예전 여자친구들 보다 훨씬 예쁘던데 뭘 그래.”
 “홍지 작은 편이지. 백육십이 안 되는 키야. 네 옛날 여자친구들은 다 백칠십 이상은 됐잖아.”
 시우가 고개를 갸우뚱한다. “백육십이 안 된다고? 그것 보다는 훨씬 커 보였는데.”
 “너는 외모를 안 따진다고 하지만 내가 볼 때는 많이 따져. 마음이랑 조건도 봐야 하는 거야.” 
 “마음? 마음이 보여야 보지. 나는 내 마음도 잘 몰라.”

시우와 태호는 점심을 먹고 산책하기 위해 양재천에 왔다. 산책길을 따라 늘어선 큰 나무들은 어느새 녹음이 우거져 내려 쬐는 햇살을 적당히 가려준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하얀 햇살이 바닥에 드문드문 얼룩처럼 새겨져 있다. 시우는 이 햇살을 홍지와 함께 밟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때 손에 든 스마트폰에서 “위잉”하는 소리를 내며 진동이 울린다. 홍지가 보낸 톡 알림이다. 삼십 분 전에 점심 맛있게 먹으라고 시우가 보낸 메시지에 대한 답이다. 귀여운 이모티콘과 함께 즐거운 점심 시간을 보내라는 내용이다. 기분이 좋다. 태호는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 시우를 곁눈질로 흘긋거린다. 홍지와 대화한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눈과 입 주위에 옅은 미소를 띠며 열심히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태호는 둘이 어떤 대화를 하는지 궁금하여 계속 흘긋거렸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 이제 겨우 한 번 본 사이이니 형식적으로 즐거운 점심시간이 되라는 내용을 주고 받았으리라고 넘겨 짚는다. 


한참 점심 식사를 할 시간이어서 아직은 산책로에 사람들이 많지 않다. 여유 있게 걸을 수 있어서 좋다. 하지만 날씨가 좋기 때문에 점심을 먹은 직장인들이 곧 쏟아져 나올게 분명하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면서 홍지씨를 왜 나한테 소개해준 거야?”
 "그건 너랑 잘 어울리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서야."
 "어떤 부분인데?" 
 “너랑 홍지랑 둘 다 착하다는 것도 있고. 너는 활달하고 유머감각도 있는 편인데 홍지는 진지한데다가 눈치는 없고 맥락을 잘 파악 못하는 면이 있거든. 그리고 홍지는 성실하고 생활력이 매우 강한 편인데, 반면에 너는 그렇게 성실한 편은 아니잖아. 인내심도 좀 부족하고 즉흥적일 때도 있고 말이야.”
 지금까지 설명으로는 잘 어울리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 납득되지 않는다.
 “형! 성실하지 않다니, 인내심이 부족하다니 무슨 소리하는 거야? 나 안 그래.” 시우가 발끈한다.
 “안 그러기는 뭐가 안 그래. 내가 널 한 두 해 보는 것도 아니고. 너 K전자도 멀쩡히 잘 다니다가 삼 년 만에 때려 치우고 그때보다 연봉도 훨씬 적게 받으면서 지금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잖아. 홍지는 연봉이 꽤 높아. 내 생각에 인센티브까지 하면 너보다 두 배 이상 더 벌 걸. 대신 너는 지금은 적게 벌고는 있지만 나중에 부모님한테 물려받을 재산이 있잖아. 하지만 홍지는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시고 나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서 물려 받을 건 없는 걸로 알고 있어. 내가 볼 때 너희 둘이 이런 면에서 잘 어울린단 말이지. 성격도 그렇고, 경제적인 것까지 상호보완적인 면이 있기 때문에 소개한 거야. 네가 키 크고 늘씬한 스타일만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홍지가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야.”
 가만히 들어보니 이번에는 태호가 왜 잘 맞는다고 했는지 이해가 됐고 그 논리 또한 충분히 수긍이 된다.
 “형, 묘하게 설득되는 걸. 장기적인 관점에서 경제적인 부분까지 고려해서 소개해준 거네?”
 태호는 스마트폰에서 무언가를 찾아서 시우에게 보여준다. "내 자랑 같아서 좀 그렇기는 한데, 입봉하기 전에 많이 힘들 때 와이프한테 받았던 메시지야. 한번 읽어봐."
 『오빠 힘내!! 너무 스트레스 받지마~ 돈은 내가 벌면 되니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오빠는 하고 싶은 거에 매진해. 난 오빠가 꼭 영화감독으로 성공할 거라고 믿어. 세상에 공짜 없는 거 알지? 나중에 오빠 잘 되면 내가 그 덕 다 볼 거야. 그러니까 그때까지 우리 힘내자~ 사랑해♥』
 "와, 완전 감동적이야. 간결한 내용인데 엄청 마음을 울리는 글이다. 형수 진짜 멋있는 사람이구나. 형수한테 이런 면이 있는 줄 몰랐네."
 "사실 나 이런 얘기하는 건 처음인데. 전에 만났던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많이 힘들 때 소개로 와이프 만나서 사귀게 됐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냥 조건이 좋아서 사귄 거야. 결혼할 때도 기분이 막 좋고, 마음이 들뜨고 설레는 그런 감정이 전혀 없었어. 신혼여행 가서도, 결혼 직후에도 마찬가지였고. 그렇다고 와이프를 안 좋아 한 건 아닌데 그래도 좀 마음이 무덤덤했었어. 그런데 이 문자 받고 완전 감동 받았잖아. 입봉 기회가 몇 번 엎어지고 정말 힘들 때였는데 진짜 큰 힘이 됐어. 이 메시지 받고부터 와이프를 보면 설레더라니까. 지금은 정말 결혼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전 여자친구랑 결혼했으면 생계 책임지느라 아마 지금까지 영화감독이 못 됐을 지도 몰라."
 "전혀 몰랐던 사실이네. 하기야 연애할 때 형수가 형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보였어. 형수가 돈 잘 버니까 형이 걱정 없이 영화를 할 수 있었던 거였네."
 "결혼하려면 사랑해야 하네, 가치관이 비슷해야 하네, 섹스가 잘 맞아야 하네, 같은 취미가 있어야 하네, 대화가 잘 통해야 하네, 이런 말들이 많지만, 내가 볼 때 결혼생활을 유지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인품과 경제력이야. 알았지? 그러니까 홍지랑 잘 해봐. 그래도 넌 돈을 괜찮게는 벌잖아. 난 감독 되기 전에는 거의 못 벌었다고. 얼마나 스트레스 받았겠어. 내가 대학 졸업하고 영화 감독이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두 가지 거든. 그 중 하나가.."
 한창 얘기하는 와중 태호의 전화기에서 벨이 울린다. 바로 전화를 받았다. 시우가 옆에서 전화 내용을 들으니 어떤 배우랑 영화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는 것 같다. 
 전화를 끊자마자 시우가 묻는다. "누구야? 배우랑 통화하는 것 같던데."
 "응. 강혜지 배우. 예전에 내 영화에 나오고 싶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거든. 작품 준비하냐고 물어보네. 아직 구체화된 건 없다고 했지."
 시우의 두 눈이 커진다. "와! 나 강혜지 좋아하는데. 형 같이 술 먹을 때 나도 불러줘."
 "야야! 나도 오다가다 한두 번 봤을 뿐이야. 친분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거든. 그냥 비즈니스 전화야. 넌 홍지한테나 신경 써."
 시간을 확인하니 점심시간이 끝났다. 다음주에 또 점심을 먹기로 하고 시우는 서둘러서 회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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