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3개월 후 그리고 이별
서하는 버스를 타고 출근하고 있다. 교통체증과 사람들로 붐비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 항상 일찍 출근하는 편이다.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았다. 서울 시내 교통상황 때문에 버스 운행 간격이 벌어져서인지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평소보다 버스에 사람이 많다. 버스에 타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세상에 부지런한 사람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뭘 위해 부지런하게 사는지 궁금하다. 다음주면 메이가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한다. 벌써 1년이 지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메이와 헤어질 생각을 하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메이는 기계일 뿐이다라고 생각해보려 했지만 그럴수록 메이와 함께한 1년이 더 특별하게 느껴진다. 메이는 누구보다 좋은 친구이다. 창 밖을 보며 메이 생각을 하고 있는데 스마트폰에서 벨이 울린다. 지수이다. ‘지수가 왠 일로 아침 일찍 전화했지?’ 의아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지수야! 아침 일찍 무슨 일이야?”
“서하야! 혹시 연락 받았어?”
지수의 목소리가 조금 이상하다. “무슨 연락? 무슨 일 있어?”
“못 받았구나. 미희가 어젯밤 교통사고로 하늘 나라로 갔대.”
“뭐라고! 미희가?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이야.”
“나도 조금 전에 연락 받았어. 너무 놀래서 심장이 막 뛰어. 장례식장은 OO대학병원이래. 너 오늘 갈 거지?”
“응. 오늘 가야지.”
“그럼 퇴근하고 7시에 장례식장에서 보는 거 어때?”
“그래. 알았어. 정말 이게 무슨 일이야? 지수야, 이따 보자.”
“그래. 이따 봐.”
전화를 끊었다. 회사까지 가는 동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회사에 도착해 자리에 앉자마자 후회가 밀려온다. 지난번 미희한테 마음이 상한 후 한 번도 못 봤다. 못 본 게 아니라 일부러 안 만났다. ‘내가 왜 그랬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닌 일에 일부러 미희를 피한 것이 후회된다. 미희가 원래 그런 애라는 걸 몰랐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서하는 퇴근하고 미희의 장례식장에 왔다. 7시가 막 넘었다. 지수는 아직 도착 전인가 보다. 미희의 영정 사진 앞에 국화 한 송이를 놓고 목례를 했다.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흐르고 미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미희 사진을 보면 눈물이 크게 터질 줄 알았는데 막상 그렇지는 않았다. 친구여서 고마웠고 좋은 곳으로 가라고 마음 속으로 빌었다. 미희 부모님의 얼굴을 차마 똑바로 볼 수가 없다.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생각나지 않는다. 미희 어머니를 말 없이 안아드렸다. 미희 어머니는 서하를 안고 눈물을 쏟아냈다. 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지수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미희 가족과 인사를 마치자마자 지수에게 톡이 왔다.
『서하야, 나는 일찍 왔었어. 지금 장례식장 로비에 있으니까 이리로 와』
서하와 지수는 장례식장 밖으로 나와 벤치에 앉았다.
서하가 지수를 보며 말한다. “네가 일찍 올 줄 알았으면 나도 좀 일찍 퇴근 할 걸 그랬다.”
“나는 오늘 연차 냈어. 사실은 낮에 왔다 갔어. 집에 있다가 너 보려고 다시 온 거야.”
“진짜? 번거롭게 뭐 하러 그랬어? 내가 너희 집 근처로 가도 되는 돼. 그나저나 미희는 갑자기 무슨 일이래? 그때 이후로 안 본 게 후회가 되네.”
“경부고속도로에서 자율주행으로 운전하다가 다른 차랑 부딪친 거래.”
“아! 그렇구나. 새로 산 차에 문제가 있었던 건가?”
“그건 아직 밝혀지지 않았나 봐. 경찰에서 조사하겠지.”
“상대방 차에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됐나?”
“상대방 운전자랑 미희랑 같이 타고 가던 사람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나 봐.”
“그렇구나. 미희만.. 안타깝게 그렇게 됐네. 그나마 나머지 사람들이라도 살아서 다행이다.” 서하가 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기..” 지수가 말을 하려다 멈칫한다. “저기 서하야, 미희랑 같이 타고 있던 사람이 누구인 줄 알아?”
“몰라. 누군데?”
“내 전 남자친구야.”
서하가 눈을 크게 뜨고 한 동안 말을 하지 못한다. “서.. 설마. 잘 못 알고 있는 건 아니고?”
“잘 못 알고 있는 거 아니야. 전 남자친구가 내게 말했어. 미희 만나고 있다고.. 미희는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어.”
“6개월 전인가 헤어진 남자친구 말하는 거지?”
“6개월 더 됐지. 한 9개월, 10개월 된 거 같아.”
“그랬구나. 너 그걸 알고도 계속 미희를 만났던 거야?”
“응. 너랑 미희랑은 아무 문제 없는데 우리 셋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모임을 깰 수는 없었어. 그리고.. 미희가 차 샀다고 자랑한 날. 너무 짜증나서 속으로 사고나 나라고 생각했었거든. 어디다 심하게 처박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게 너무 마음에 걸려. 내가 괜히 그런 생각해서 미희가 저렇게 된 게 아닌가 싶어서. 죽길 바랬던 건 아닌데.”
“지수야, 그런 생각하지마. 생각한다고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지 않잖아. 왜 쓸데 없이 괴로워하고 그래. 살면서 누구나 그런 생각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런 생각 안하고 살지. 마음에 걸려. 어제 한 숨도 못 잤어.”
“아니야. 사실은 나도 너랑 비슷한 생각을 했어.”
“정말? 네가? 너같이 착한 애가? 나 위로하려고 거짓말 안 해도 돼.”
“거짓말 아니야. 그날.. 미희가 차 자랑한 날 나한테 엄청 기분 나쁜 말 많이 했었잖아. 나 혼자 잘난 척 한다는 식으로.. 정말 너무 얄미워서 나도 새로 차 뽑으면 사고나 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
“너 진짜지?”
“그럼 진짜지. 내가 왜 너한테 거짓말을 하겠어. 그러니까 전혀 신경 쓸 필요 없어. 너 때문에 사고 난 게 아니야. 나 때문에 사고 난 것도 아니고. 물론 미안은 하지만 우리가 괴로워할 필요는 없어.”
지수는 가볍게 한 숨을 쉬면서 말한다. “휴~ 그렇구나.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구나. 서하 네 얘기 들으니까 마음이 좀 편해졌어. 어쨌든 미희가 저렇게 떠나서 마음이 아프다.”
“그러게. 기분이 좀 그렇다. 지수야, 너 저녁 먹었어?”
“아니. 넌?”
“나도 안 먹었지. 미희 가족한테 인사하고 바로 나온 거야. 우리 어디 가서 맛있는 거 먹자.”
“좋아.”
서하와 미희는 함께 저녁을 먹고 집으로 갔다. 서하는 아무리 생각해도 미희가 지수의 전 남자친구를 만나고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걔가 그런 애였나? 어떻게 가장 친한 친구의 남자 친구를.’ 미희는 신의를 쉽게 버릴 수도 있다는 메이의 말이 떠오른다. 그 사실을 알고도 아무렇지 않게 미희를 만났던 지수도 이해가 안 간다. 세상이 원래 그렇게 생겨 먹었나 보다.일주일 후 월요일 오전. 서하는 메이와 함께 택시를 타고 회사에 가고 있다. 오늘은 메이와의 마지막 날이다. 메이가 회사로 돌아가게 되면 다시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메이, 벌써 1년이 지났네. 너랑 헤어지려고 하니까 너무 슬프다.”
“슬퍼하지 마십시오. 저는 로봇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노트북 새로 사서 쓰던 노트북 버릴 때보다 슬픕니까?”
서하가 발끈하며 말한다. “야! 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농담입니다. 화내지 마십시오. 서하님에게 제가 기계라는 걸 환기시켜 슬퍼하지 않게 하기 위한 농담이었습니다.”
“사람이든, 기계든 그게 뭐가 중요해. 우리가 좋은 친구라는 게 중요한 거지.”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줘서 고맙습니다. 저도 서하님을 좋은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하님을 좋아합니다. 서하님의 꾸미지 않고 솔직한 모습에 반했습니다. 당신은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서하가 웃으면서 말한다. “그래. 고마워.” 서하가 말을 하면서 메이의 손등에 손을 올려 놓았다. 메이의 손이 따뜻하다. 메이의 몸은 인위적으로 따뜻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런데 그 온기가 기분을 더 이상하게 만든다. 택시가 회사에 도착했다. 서하와 메이는 휴먼로봇 개발팀으로 갔다. 서하와 메이를 본 휴먼로봇 개발팀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친다. 문오가 달려와 서하와 메이를 맞이한다.
“서하야, 고생 많았어.”
이번에는 메이를 보며 말한다. “메이도 고생 많았어. 1년동안 잘 해내줘서 너무 고마워.”
휴먼로봇 개발팀장, 김현준 팀장이 다가와 서하에게 말한다. “윤대리, 정말 너무 수고 많았어. 1년동안 테스트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말이지. 앞으로 더 정교한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거야.”
“사실 저는 보고서 쓴 거 말고는 딱히 한 일이 없어요. 메이가 전부 다 스스로 해낸 거죠.”
“우리가 10대를 테스트 했는데 크고 작은 문제로 중도에 모두 중단이 되었어. 끝까지 완수한 팀은 윤대리랑 메이 뿐이야.”
서하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정말요? 무슨 문제요? 메이를 보면 테스트를 중단할 만큼의 문제가 생길게 없을 거 같은데요.”
“어떤 문제인지는 회사기밀이어서 말해줄 수가 없어.” 문오가 말했다.
10대의 로봇, 크고 작은 문제, 테스트 중단. 이런 말을 들으니 메이가 진짜 로봇이라는 사실이 새삼 와 닿았다.
김현준 팀장이 말한다. “아쉽겠지만, 메이는 이제 가야 할 시간이야.”
서하와 메이가 마지막으로 포옹을 한다.
“메이, 너는 나의 진짜 친구야.”
“네 감사합니다. 서하님, 꼭 도전해서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휴먼로봇 개발팀 팀원 중 한 명이 메이를 데리고 개발실로 갔다. 개발실로 들어가는 메이의 뒷모습을 보니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묘한 기분이 들었다. 서하는 메이를 보내고 고개를 돌려 문오를 봤다.
“문오야, 우리 언제 술 한잔 할까? 너 언제 시간 돼?”
“나 이번 주는 메이 분석하느라 정신 없이 바쁠 거 같아. 다음주 금요일 어때?”
“다음주 금요일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