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3개월 후
토요일 늦은 밤. 서하와 메이는 반포 한강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있다. 이상하게 오늘은 기온이 따뜻하다. 11월초 날씨 같지 않다. 가끔 바람이 불면 시원함까지 느껴지는 걷기 좋은 밤이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한강공원에 사람들이 적지 않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인간과 거의 똑같이 걷고 움직이는 메이를 신기하게 쳐다본다. 어떤 사람은 서하에게 처음 보는 모델이라며 어느 회사 로봇인지, 언제 출시했는지, 어떤 기능이 있는지에 대해서 물어 보았다. 서하는 제품으로 출시 되지 않은 모델이어서 제조사를 말해 줄 수 없고, 특별한 기능은 없으며 지금 그냥 자연스럽게 걷기 테스트 중이라고 대답했다. 그 사람이 메이를 만져봐도 되는지 물었다. 메이를 만지고 싶어한다는 사실이 서하를 매우 불쾌하게 만들었다. 상업화된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보험 가입이 안돼 있어 사고가 나거나 고장이 났을 때 어떠한 보상을 할 수도 받을 수도 없다는 핑계로 거절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메이를 이리저리 자세히 살펴 본 후 가버렸다. 그 사람의 메이를 바라보는 시선도 싫었다. 또한 그 사람의 시선으로 메이가 언짢지는 않은지 신경이 쓰였다. 메이에게 감정이 없다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인다. 서하와 메이는 반포대교를 지나가고 있다. 메이는 걷는 동안 반포대교 한 곳을 계속 쳐다본다.
“메이, 뭘 그렇게 쳐다 봐?”
메이가 자신이 보던 곳을 가리키며 말한다. “반포대교 위에 서있는 저 남자를 쳐다보고 있습니다.”
메이가 가리킨 곳을 보니 어떤 남자가 반포대교에 서 있다. 멀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50대 정도로 보인다.
“저 사람 왜?”
“저 사람 조금 이상합니다.”
“바람 쐬러 온 사람 같은데, 뭐가 이상해?”
“아까부터 지켜 봤는데 강물과 하늘을 번갈아 계속해서 쳐다봅니다. 마치 뛰어내릴지 말지 고민하는 사람처럼 말입니다.”
서하는 고개를 돌려 메이를 쳐다보면서 말한다. “에이, 설마?”
“그냥 그렇게 보입니다.”
“음.. 메이 네가 잘 몰라서 그렇지 인간의 삶이란 게 고민도 많고 매우 고단해. 저 사람도 뭔가 고민이 있어서 머리를 식히고 있는 걸 거야. 그러니 신경 쓰지마.”
“저도 인간의 삶에 고민이 많다는 것쯤은 알고 있습니다.”
“내 말은, 물론 너도 알고 있겠지만, 알고 있는 거와 현실을 살아가면서 그게 피부에 와 닿는 거랑은 다르다는 의미야. 나도 고민 많아. 삶도 복잡하고 말이지. 그러니 모르는 사람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산책이나 하자.”
“네, 알겠습니다.”
서하와 메이는 반포대교와 세빛섬을 지나 서래섬에 왔다. 서래섬 한 바퀴를 돌았다. 서래섬에서는 데이트를 하는 연인들이 많이 눈에 띈다. 몇몇 커플들은 메이가 신기한듯 쳐다보면서 지나간다. 이번에도 한 커플이 다가와 메이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었다. 여자는 자신도 갖고 싶다며 제품으로 출시되면 가격이 어느 정도 되는지 궁금해 했다. 서하는 메이의 가격을 묻는 것을 듣고 기분이 이상했다. 서하는 메이는 자신의 친구여서 가격으로 따질 수 없다고 불쾌한 표정과 함께 싸늘하게 대답했다. 서하의 대답에 무안해한 커플은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가던 길을 갔다. 사람들 눈에 메이가 신기하게 보이기는 하나 보다.
서하가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한다. “여기서 데이트를 많이 하네.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인가?”
“그러게 말입니다. 젊은 남녀가 많이 보입니다.” 메이도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서하와 메이는 서래섬에서 나와 다시 반포대교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다정한 커플들 보니까 나도 남자친구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도 서하님에게 좋은 남자친구가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확률을 높여야 합니다.”
“하하 고마워. 확률 높이라는 건.. 미희처럼 하라는 말이야?”
“필요나 상황에 따라 연애 상대를 바꾸라는 게 아니라 서하님과 잘 맞는 사람을 찾기 위해 만남의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나랑 잘 맞는 사람 만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야.”
“그렇기 때문에 확률을 높여야 합니다.”
“나랑 잘 맞는 사람이라.. 음.. 메이,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할까?”
“서하님을 잘 이해해주고 배려심 많고 마음이 따뜻한 돈 많은 사람을 만나면 좋습니다.”
서하가 크게 웃으면서 말한다. “하하. 마지막이 반전인데.. 착하고 돈 많은 사람을 만나라는 거네?”
메이가 잠시 주저하다가 말한다. “음.. 전에도 말했지만 착한 사람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학습을 해도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이 확실히 구분되지 않습니다.”
“맞다. 착하고 나쁜 게 뭔지 잘 모르겠다고 저번에도 그랬었지. 끊임없이 학습을 하는 메이도 모르는 게 있구나.”
“모르는 게 더 많습니다.”
“어쨌든 네가 말한 그런 사람 만났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있을까?”
“지구 어딘가에 있습니다. 그래서 확률을 높여야 합니다. 물론 서하님도 상대를 잘 이해하고 배려해야 합니다.”
“한국에 없을 수도 있겠네?”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습니다. 있어도 만날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하. 그래서 만나려면 결국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거구나.”
얘기를 하면서 걷다 보니 다시 반포대교로 돌아왔다.
메이가 반포대교를 가리키며 말한다. “저 사람 아직도 저기 그대로 있습니다. 강물을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그러네. 아직도 있네. 진짜 고민이 많나 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메이와 나란히 걷던 서하가 메이를 향해 몸을 돌리며 말한다.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걱정하지마.”
“알겠습니다.”
“메이, 너한테 궁금한 게 있어.”
“뭡니까?”
“혹시 메이는 감정이 있어?”
메이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한다. “감정의 정의를 아는 것만으로도 감정이 있는 거라면 감정이 있습니다. 하지만 심박수 상승, 호흡 변화, 혈관 확장, 표정 변화, 눈물, 콧물, 땀과 같은 생체적인 현상까지 감정에 포함 시켜야 한다면 저는 감정이 없습니다.”
“그렇구나..” 서하는 잠시 생각을 하다 말을 계속 이어서 한다. “그럼 감정이 있다기 보다는 감정을 이해한다고 할 수 있겠네?”
“이해한다기 보다 감정의 정의를 알고 있다 혹은 외우고 있다가 좀더 정확한 거 같습니다.”
“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 우리 오늘 많이 걸었다. 이제 집에 가자. 벌써 주말의 반이 지나갔네.”
“주말만 반이 지나간 게 아니라, 서하님과 함께 하는 시간도 반이 지났습니다.”
“그러게. 시간 참 빠르다. 벌써 6개월이나 됐어.”
메이가 한강공원을 둘러보며 말한다. “저는 집 가까운 곳에 한강공원이 있어서 좋습니다.”
“나도 그래. 걸어서 올 수 있는 거리에 있어서 너무 편해.”
서하와 메이는 집으로 돌아갔다.월요일 오후. 휴먼로봇 개발팀 회의실에서 서하와 문오가 커피를 마시고 있다.
“벌써 6개월이 됐어. 시간 진짜 빠르다. 메이는 잘 지내고 있지?” 문오가 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그럼 잘 지내고 있지. 이번 달 스페셜 미션으로 뭘 했는지 알아?”
“뭐 했는데?”
“애기랑 놀아주기. 우리 조카가 한 10개월 정도 됐는데 메이 보고 같이 놀아주라고 미션을 줬어.”
“10개월이면 메이한테 맡기기에 너무 어리지 않나? 어땠어?”
“6개월 정도 메이 지켜보니까 괜찮을 거 같더라고. 그것보다는 조카가 무서워할까 봐 걱정 많이 했었거든. 그래서 이 미션을 해야 하나 고민을 좀 했었는데 우리 오빠가 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해서 하게 됐어. 처음에는 조카가 무서워도 하고 낯설어도 했는데 금방 풀렸어. 메이가 의외로 애기랑 잘 놀아줘. 조카가 낯설어 하니까 손가락에 파란색, 빨간색, 노란색 불이 들어오게 하더니, 그걸로 조카의 주목을 끌더라고. 손가락에서 불이 번쩍번쩍하니까 조카가 엄청 신기해 하던 걸. 다양하게 재미있게 놀아주더라고. 그리고 밥도 잘 먹이고 기저귀도 잘 갈아. 나는 조카가 메이에게 편하게 잘 안겨 있는 게 제일 신기했어. 마치 자기 엄마나 아빠한테 안겨 있는 것처럼 편안해 보였어. 오빠랑 새언니도 그걸 보더니 엄청 신기해 했어.”
문오가 흐뭇한 표정으로 말한다. “메이가 아주 잘 하고 있네.”
“완전 잘 하고 있지. 아! 맞다. 이번 주말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
“하하. 서하야, 당연히 모르지. 내가 어떻게 알겠어? 어떤 일이 있었는데?”
“메이랑 나랑 토요일 밤 늦게 반포 한강공원에 산책하러 갔었어. 그런데 메이가 반포대교에 있는 한 남자를 보고 계속 이상하다고 얘기하는 거야.”
“어떻게 이상했는데?”
“내가 보기에는 별로 이상하지 않았어. 그냥 고민이 많아서 바람 쐬러 나온 사람 같아 보였거든. 그런데 메이는 그 사람이 계속 다리 밑을 보는 게 이상하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내가 아마 고민이 많아서 그럴 거다 남의 일에 신경 쓰지 말자고 했지.”
“그런데 그 남자가 강물에 뛰어 들었구나? 뛰어든 남자를 메이가 구해준 거야? 그랬다면 완전 대박인데.”
“아니. 우리는 그냥 집으로 왔지.”
“뭐야? 그럼 아무 일도 없었던 거네.”
“그런데 어제 저녁에 기사 하나가 떴는데 그거 보고 깜짝 놀랐잖아.”
“무슨 기사인데?” 문오가 서하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토요일 밤 그러니까 일요일 새벽에 어떤 남자가 반포대교에서 투신 자살 했다는 기사가 났더라고.”
문오가 놀란 표정으로 말한다. “그럼 결국 그 사람이 뛰어내렸던 거야? 메이가 제대로 본 거구나.”
“아니. 그건 모르지. 어떻게 알겠어. 그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우리가 그걸 확인 할 길은 없잖아. 그런데 메이는 그 사람일 수도 있다고 많이 안타까워했어. 자기가 구할 수도 있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더라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아닐 수도 있는데 말이지. 그런데도 메이가 안타까워했다는 거지? 만약 그 사람이라고 해도 자살할지 안 할지 어떻게 알 수 있나. 생판 모르는 사람인데 도와 줄 방법은 없지.”
“내 말이. 나도 같은 생각이야. 몇 달 전에 메이에게 감정이 없다고 너랑 얘기했잖아. 메이에게 감정이 없다는 거는 알겠는데, 메이를 보면 매우 이타적인 면이 있어 보이거든. 특히 이번 일로 더 그런 걸 느꼈어.”
“메이한테 이타적인 면이라..” 문오가 잠시 생각을 한다. “그건 메이가 감정이 있어 보이는 거랑 똑같은 거야. 메이는 사람처럼 보이게, 사람처럼 행동하게 만들어진 로봇이야. 내 생각에 메이는 이타적인 게 아니라 이타적으로 보이게 행동을 하는 거야.”
“메이가 사람들에게 자신이 이타적으로 보이게 의도적으로 행동한다고?”
“그럼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서하야, 메이는 어디까지나 인공지능을 갖고 있는 로봇이야. 사람도 이타적인 척 행동하는데 인공지능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을까? 메이에게 사람에게 하듯이 너무 감정이입 하지마. 이 테스트가 끝나면 수정되고 개선될 로봇이라고.”
“사람도 이타적인 척 행동한다고?”
“당연하지.”
“그럼.. 네가 착한 것도 착해 보이려고 일부러 그런다는 거야?”
“내가 착한 거 같아?”
“응. 너 착해. 우리가 처음 만난 신입사원 교육 때부터 지금까지 널 보면 착하다는 생각이 항상 들어.”
“그래? 뭐.. 좋게 봐줘서 고마워. 당연히 일부러 주위 사람들한테 착해 보이려고 하지는 않지. 착하다는 게 뭘까? 난 착하다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 문오가 잠시 뜸을 들인 후 말을 잇는다. “그런데 그런 건 있을 수 있을 거 같아.”
“어떤 거?” 서하가 몸을 문오쪽으로 조금 기울이며 물었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에게 착하게 보이는 게 나한테 손실 보다는 이득이 훨씬 더 많다는 걸 배우지 않았을까? 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체득이 된 거지. 오랜 시간 그게 학습이 돼서 무의식적으로 착해 보이게 행동하는 걸 수도 있다고 봐.”
“착하게 보여서 얻는 이득이 뭔데?”
“뭐가 됐든 이득이 있을 수 있지. 칭찬이 될 수도 있고, 좋은 사람과 친해 질 수도 있고. 알게 모르게 얻을 수 있는 건 많을 것 같은데.”
서하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럴 수 있겠네.”
“내가 착해 보이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냥 내 욕망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야.”
“그렇구나.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런 차원에서라면 메이도 이타적으로 보이도록 행동할 수 있겠네.”
“서하야, 쉽지 않겠지만 메이 행동 하나하나에 너무 감정이입 하지마. 인간과 닮은 로봇이라는 걸 잊지마. 그나저나 오늘 퇴근하고 술 한 잔 어때?”
“우리 둘이?”
“응.”
“문오야, 미안한데 다음에 하자. 오늘은 일찍 퇴근하고 쉬고 싶어. 회의는 이쯤에서 끝내고 나는 일하러 가야겠다.”
“알았어. 다음에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