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의 마음 2

by 킥더드림

2. 3개월 후
서하는 고등학교 동창인 지수, 미희와 함께 방배동 서래마을에 있는 한 주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지수와 미희는 최근 몇 년 사이 가장 자주 만나는 친구들이다. 거의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만난다. 대화 주제는 지수가 사귀었던 남자친구와의 이별이다. 셋 모두 약간 취기가 올라온 상태다.
반 정도 남은 소주잔을 비우고 미희가 말한다. “지수야, 잘 헤어졌어. 잘 됐어. 아주 잘 됐어. 네 남자친구 처음 봤을 때 말은 안 했지만 완전 별로더라고. 허우대는 멀쩡한데 뭔가 좀 이상했어. 바람기가 많아 보이는 그런 느낌이랄까? 나는 처음 딱 봤을 때 네가 아까웠어. 안 그래 서하야?”
서하는 미희를 향해 미간을 찌푸리며 말한다. “그래? 내가 보기에는 좋은 사람 같아 보였는데. 지수가 우리한테 남자친구 소개시켜 줬을 때 나는 속으로 엄청 부러워했어.”
“서하야, 네가 그러니까 연애를 못하는 거야. 그렇게 남자 보는 눈이 없어서야. 그리고 너는 눈을 낮춰야 돼.” 미희가 혀가 꼬인 채 말했다.
서하가 발끈하면서 말한다. “야, 김미희! 내가 연애를 못하기는.. 안 하는 거야. 그리고 나 눈 안 높아.”
“뭔 소리하는 거야? 너 높아. 그나저나 지수야, 왜 헤어진 거야?”
지수가 술 한 잔 마시고 작은 소리로 말한다. “뭐.. 성격도 안 맞았고 여러 가지 서로 다른 부분도 너무 많았어. 확실 한 거는 아닌데 다른 여자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지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미희가 말한다. “거 봐 내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 놈 인상이 딱 바람 피우게 생겼어. 잘 헤어졌어. 저번에 봤을 때 지수 몰래 지나가는 여자들 엄청 쳐다 보더라고. 내가 다 봤거든. 그때 지수한테 얘기 해줬어야 했는데 말이지.”
서하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미희에게 인상을 쓴다. “미희 너 그만해. 나도 지나가는 괜찮은 남자들 곁눈질로 쳐다보거든.” 서하는 지수의 손등을 토닥거리며 말한다. “지수야, 또 좋은 사람 만나면 되니까 너무 마음 상해하지 마.”
“그래 고마워. 나 괜찮아. 금방 좋아지겠지. 네 말대로 또 좋은 사람 만나면 되지.”
“얘들이 뭘 모르네. 요즘 같은 세상에 좋은 남자 만나는 게 쉬운 줄 알아? 가만히 있는다고 좋은 남자가 올 거 같아? 이지수, 그 바람난 놈은 잊고 무조건 많이 만나봐. 네 눈에 차지 않더라도 일단 한 번 만나봐. 그런 사람들한테도 네가 모르는 매력이 있을 수도 있어. 너도 너무 고른다니까. 그래야 좋은 사람 만날 수 있어. 막 만나 봐!” 미희는 혀만 꼬인 게 아니라 눈도 풀린 채 말한다.
“야야, 김미희 너 취했다. 우리 그만 일어나자. 시간도 많이 늦었다.”
밖으로 나와 서하는 많이 취한 미희를 택시 태워 먼저 보냈다.
“지수야, 미희 말 너무 신경 쓰지마. 너무 취해서 그런 거니까.”
지수가 짜증스럽게 말한다. “미희가 솔직하고 직설적인 성격이기는 하지만 오늘은 좀 너무하네.”
“맞아. 미희가 오늘은 너무했어. 완전 너무했어. 평소에 너를 부러워해서 그랬을 거야. 쟤 질투심 많은 거 너도 알잖아. 너는 부족한 게 없으니까. 그리고 또 좋은 사람 만날 거니까 너무 힘들어 하지마. 나도 취했나 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서하야, 고마워.”
“지수야, 어디 가서 한 잔 더 할래?”
지수가 잠시 고민을 한다. “아니야. 늦었잖아. 너도 쉬어야지. 오늘은 들어가고 다음에 또 보자.”
지수도 택시를 타고 갔다. 서하는 집이 근처여서 걸어가면 된다. 집으로 가는 중 지수에게 톡이 왔다.
『서하야, 잘 들어가고 오늘 고마웠어. 너는 진짜 내 친구야.』

미희는 상대방의 기분을 언짢게 하는 말을 가끔 한다. 자기 딴에는 솔직하게 말하는 거겠지만 종종 누가 들어도 지나칠 때가 있어서 문제다. 술이 취해서 그런가 오늘은 유난히 좀 심했다. 지수가 미희의 말에 상처 받았을까봐 서하는 신경이 쓰인다. 본성은 착한 친구인데 왜 그런지 모르겠다. 집에 도착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메이가 반갑게 맞아준다. 씻고 나왔더니 메이가 따뜻한 우롱차를 거실 테이블에 올려 놓았다. 서하는 긴 소파 중간에 앉아 우롱차를 마신다. 따뜻한 차가 하루 동안 몸 안에 쌓인 정신적, 육체적 찌꺼기를 씻어내는 것 같다. 차를 마시며 소파에 앉아있으니 편하다. 메이는 긴 소파 끝 옆에 한 사람만이 앉을 수 있는 작은 소파에 앉았다.
메이가 서하를 보며 묻는다. “서하님, 오늘 마음 상하는 일이 있었습니까?”
“내 표정이 그래 보여?”
“네. 그래 보입니다.”
서하가 우롱차 한 모금을 마시고 옅은 미소를 띠며 말한다. “맞아 제대로 봤어. 그런데 메이는 진짜 표정을 잘 읽는 거 같아.”
“반복된 학습 결과입니다.”
서하는 지수와 미희 함께 술을 마시면서 나누었던 대화에 대해서 메이에게 말했다.
“미희는 지수를 위로한답시고 말하는 것 같은데 오히려 상처만 준다니까. 나도 은근히 기분 나빴어. 나한테 연애도 못 한다고 그러고 말이지. 기분이 별로야.”
서하의 말이 끝나자마자 메이가 묻는다. “그럼 미희님은 연애를 잘 합니까?”
“응. 미희는 남자들한테 인기가 많아. 티 나지 않게 끼도 잘 부리는 스타일이야. 남자친구도 많이 사귀었어. 한 남자를 오래 만났던 경우는 별로 없었고 중간중간에 잘 갈아타더라고. 뭐.. 그것도 능력이지. 미희처럼 많이 만나보면 좋은데 나는 그게 잘 안 되더라고.”
“그런 미희님이 부럽습니까?”
“부러우냐고? 뭐.. 솔직히 그런 면이 부러울 때도 있어. 나 같은 경우는 먼저 다가가지 못해서 내가 관심이 있어도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도 못 해보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든. 어쨌든 미희는 착하고 다 좋은데 남한테 상처 줄 수 있는 말버릇을 고쳐야 한다니까.”
“제가 볼 때는 미희님과 친하게는 지내되,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거리를 두라고? 말을 심하게 할 때가 가끔 있지만 나쁜 애는 아니야.”
“아무리 학습을 해도 저는 아직까지 인간들이 말하는 착하다, 나쁘다, 선하다, 악하다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서하는 남아있는 우롱차를 다 마시며 말한다. “음.. 착하다.. 나쁘다.. 딱히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긴 하지.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면도 있고 정서적인 부분도 커서 인공지능 입장에서는 어려운 개념일 수 있겠다.”
“제가 거리를 두라고 하는 이유는 미희님은 신의를 쉽게 버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미희가 쉽게 신의를 버린다고? 그럴 친구는 아닌데.”
“너무 쉽게 연애 상대를 바꾸는 사람은 신의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믿음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제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거는 서하님이 걱정이 돼서 입니다.”
“걱정까지 해야 할 정도야?
“혹시 서하님이 상처 받을까봐 그럽니다.”
“미희가 신의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이라고? 아무튼 걱정해줘서 고마워. 참고할게.”
석 달 동안 서하는 메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메이와 대화를 하다 보면 문득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떨 때는 메이에게도 감정이 있어 보인다.다음날, 휴먼로봇 개발팀 회의실에서 서하와 문오가 커피를 마시고 있다.
문오가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다. “석 달 조금 지났는데, 메이랑 별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어?”
“그럼. 전혀 문제없이 아주 잘 지내고 있지.”
문오가 웃으면서 말한다. “걱정했는데 다행이다.”
”어떻게 보면 메이랑 같이 지내는 것도 회사 업무인데 전혀 일하는 거 같지가 않아. 오히려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일은 메이가 다 하지. 집안 일도 해주고 틈틈이 나랑 얘기도 해주잖아. 메이랑 같이 얘기하면 재미있어. 이렇게 일하고 수당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야. 그나마 매달 보고서 쓰는 게 일이라면 일인데, 그것도 별로 어렵지는 않으니까.”
“잘하고 있네. 왠지 예감에 너랑 잘 맞을 것 같았어.”
“문오야, 그런데 나 궁금한 게 있어.”
“뭔데?”
“메이랑 얘기하다 보면 메이한테 감정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 혹시 메이한테 감정이 있어? 개발할 때 감정이 있게 만든 거야?”
문오는 놀란 표정으로 말한다. “감정? 감정은 당연히 없지. 감정을 어떻게 개발할 수가 있겠어. 메이는 학습을 통해서 적절하게 반응할 뿐이야.”
“내 표정을 보고 감정을 잘 읽는단 말이야. 감정이 있기 때문에 감정을 읽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아니야. 처음 봤을 때 네 얼굴 등록했잖아. 그걸 기반으로 표정 변화를 인식하는 거야. 그건 초기값으로 세팅이 돼있어. 평소 너랑 하는 대화와 표정 변화를 같이 분석하고 학습을 하면서 더 표정 변화를 잘 인식할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또 자기 나름대로 빅데이터를 통해서 별도로 계속 학습을 했을테고. 지금 생각해 보니 오히려 주관적 감정이 배제돼서 사람보다 타인의 표정을 더 잘 읽을 수도 있겠는데? 어쨌든 메이한테 감정은 없어. 있을 수가 없어.”
“표정 변화 읽는 거뿐만 아니라 대화하다 보면 그런 느낌을 받거든. 어디까지나 내 느낌인가 보네.”
“그리고 나도 감정의 실체를 모르는 걸. 물론 감정이 들고 감정을 느끼고 하지만, 그게 어떻게 생기고 발전되는지 모른다고. 개발자가 감정이 뭔지 모르는데 어떻게 개발할 때 인공지능이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겠어. 안 그래? 개발하는 동안 우리 팀에서도 감정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어.”
“네 말이 맞는 거 같다. 하기야 사람들은 인형이나 자동차 같은 사물에도 감정 이입을 하기도 하잖아. 메이는 사람을 닮았고 사람처럼 움직이고 말까지 하니까, 내가 더 감정이입 돼서 그렇게 생각이 들었나 보네.”
“메이랑 너무 정들지마. 9개월 후면 헤어져야 해.”
서하는 따뜻한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입에 가져다 대며 말한다. “그래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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