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남
유서하는 로봇과 AI를 개발하는 기업 ㈜뉴다이내믹스에 다니고 있다. 뉴다이내믹스는 로봇과 AI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이다. 세계적인 기업에다, 근무 환경도 우수하고, 직원들을 위한 복지제도도 매우 좋다. 무엇보다 급여가 최고 수준이다 보니 샐러리맨이라면 누구나 다니고 싶어하는 직장으로 꼽힌다. 입사 5년차인 서하는 마케팅팀에서 일하고 있다. 누구나 선망하는 직장이지만, 서하는 매일 퇴사를 꿈꾸며 다닌다. 업무가 힘들 때가 많지만 그것이 이유는 아니다. 5년 정도 다니다 보니 힘든 업무는 익숙해졌고, 열심히 하다 보면 풀리지 않을 것 같던 일도 어느새 해결된다. 대인관계에 문제가 있지도 않다. 팀장을 비롯해 팀원 모두 좋은 사람들이다. 힘들 때마다 서로 의지하고 도와가면서 일하는 분위기이다. 그런 면에서 서하는 자신은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주위를 보면 같이 일하는 사람 때문에 고통 받고 괴로워하는 경우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꿈꾸는 이유는 회사 체질이 아니어서이다.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일에 대한 열정은 없다. 업무 능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다.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있지만, 아침마다 출근하기가 싫다. 일이 재미가 없다. 일 하는 것이 신나지 않는다. 돈을 벌어야 하기에 회사를 그만 두지 못하고 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서하는 그림 그리고 글 쓰기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언젠가 프리랜서로 일하는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매일 출근한다.
서하는 휴먼로봇 개발팀에서 일하는 이문오와 회의를 하고 있다. 문오는 서하와 입사 동기이다. 한 달간 합숙하는 신입사원 교육에서 처음 만났다. 교육기간 한 달 내내 같은 팀을 하면서 친해졌다. 같은 팀원이 총 6명이었는데,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문오와 가장 친하게 지내고 있다.
“어떤 일 때문에 보자고 한 거야?” 서하가 문오에게 물었다.
“회의를 하자고 한 이유는 너한테 제안할 게 있어서.”
“나한테 제안을 한다고?”
“응. 우리 팀에서 진행 중인 휴먼로봇 개발 프로젝트가 최근에 완료 됐어.”
“와! 진짜? 너 그 동안 고생 많았는데 드디어 개발 완료 했네.”
“이제 겨우 1차 완료 된 거야. 앞으로 1년동안 테스트해야해. 테스트가 끝나면 보완작업을 해야 하고. 아마 최종 상품으로 완성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릴 거야. 아직 갈 길이 멀어.”
“그래도 1차 완료가 어디야? 뿌듯하겠다.”
“맞아. 뿌듯하기는 해. 어쨌든 본론을 말하면 이번에 우리 팀에서 테스트용 휴먼로봇을 10대를 생산 했어. 이 10대의 로봇을 회사 직원들에게 맡겨서 1년 동안 테스트 할 예정이고 지금 테스트에 참여할 직원들을 선발하는 중이야. 그래서 말인데 서하야, 너 혹시 이 테스트에 참여할 생각 있어? 내가 담당하고 있는 로봇을 네가 테스트하면 어떨까 해서.”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제안이다.
“별 거 없어. 집에다 로봇을 두고 1년 동안 사용하기만 하면 돼. 의무적으로 한 달에 한 번 로봇 사용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보고서 작성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테스트에 참여하는 직원에게 매달 급여의 25%를 수당으로 지급한다는 거지. 어때 솔깃하지 않아?”
서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말한다. “25%나? 너무 괜찮다. 문오야, 우리 회사가 좋기는 좋다.”
“하하. 이것도 일이잖아. 24시간을 테스트에 참여하는 거나 마찬가지니 25%면 아주 많은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런데 휴먼로봇이 뭘 할 수 있어?”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할 수 있어. 테스트에 참여하면 로봇에게 집안 일 시키고, 같이 대화 하고 그러면 되는 거야. 어려운 거는 전혀 없을 거야.”
“정말 사람이 하는 거 다 할 수 있어?”
“그럼. 웬만한 건 다해. 운전도 할 수 있어. 그런데 그건 불법이어서 시키면 안돼. 자율주행은 합법이고 로봇 운전은 불법이라는 게 좀 이상하지만.” 문오가 어깨를 한 번 뜰썩이면서 말했다.
“그런데 왜 나한테 제안하는 거야?”
“그거야 당연히 네가 잘 할 거 같아서지. 일을 열심히 하고 잘 할 뿐만 아니라, 성격도 꼼꼼하잖아. 이 테스트에 참여하는 직원의 가족 구성원도 다양화 할 예정인데 마침 너는 오빠 식구랑 같이 살다가 얼마 전에 나와서 혼자 살고 있잖아. 아직 혼자 사는 직원 중에 테스트에 참여할 사람이 없거든. 또 회사생활이 무료하고 재미가 없다고 네가 입버릇처럼 말했잖아. 일이 재미없다 보니 삶 자체가 무기력해 질 때도 많다고 그러고. 그래서 혹시 이 테스트에 참여하면 회사 생활뿐만 아니라 삶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해서 제안하는 거야. 1주일 고민해보고 할지 말지 나한테 알려줘.”
“생각해줘서 고마워. 그런데 고민 안 해봐도 될 거 같아.
“왜, 별로야?”
“아니. 나 테스트, 참여할래. 네 말대로 좋은 계기가 될지도 모르잖아.”
서하가 바로 결정하자 문오는 당황한 표정을 짓는다. “진짜? 고민 안 해봐도 돼?”
“응.” 서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거 아냐? 그래도 생각은 해봐야 하지 않아?”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거는 맞는데.. 한 번 해보고 싶어.”
“그래. 그럼 우리 팀장님한테 네가 참여하고 싶어한다고 보고할게. 비공개 프로젝트라서 비밀 유지가 필요해. 네가 테스트 참여하는 거는 너희 팀장님에게만 전달 될 거야. 팀원들은 알면 안돼. 그리고 다음주 안에 비밀 유지 서약서를 작성 할 거고 휴먼로봇은 2주 후 집으로 내가 직접 배달 할 거야. 정말 마음 정한 거 맞지? 혹시 마음 바뀌면 1주일 안에만 말해줘.”
“결정했다니까. 몇 번을 물어보는 거야.”
“말하자마자 고민도 안 하고 바로 결정하니까 그렇지. 그럼 잘 부탁할게. 너한테 전달될 휴먼로봇의 이름은 메이야.”
“메이.. 예쁜데. 이름 누가 지었어?”
“이름은 내가 지었어. 일곱 번째로 생산된 로봇이어서 처음에는 칠호, 칠수, 칠현, 영칠, 호칠. 칠 자가 들어가는 걸로 여러 가지 생각해 봤는데 딱히 맘에 드는 이름이 없더라고. 그래서 고민 고민하다가 그럼 5월 1일에 최종 생산이 됐으니까 5월과 관련된 이름으로 해야겠다고 정했지. 그리고 나서 별 생각 없이 영어로 5월이 May니까.. 그냥 이름을 메이로 정했어. 특별한 의미는 없어.”
“메이, 이름 예쁘다. 별 생각 없이 지은 거 치고 잘 지었네.”2주 후 일요일. 문오가 휴먼로봇 메이와 함께 서하의 집에 왔다. 서하는 문오와 함께 현관문으로 들어오는 메이를 유심히 본다. 외모는 사람의 모습을 본떠서 만들어졌고, 키는 170cm 정도에 건장한 체격이다. 몸체 밖을 둘러쌓고 있는 재질은 하얀색의 단단한 고무로 보인다. 걷는 모습에 어색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로봇치고 매우 자연스럽다. 신발을 벗을 때도 허리와 무릎을 구부려 신발에서 발을 빼는 모습이 능수능란하다. 그래도 사람만큼 유연하게 움직이지는 못하고 어딘가 조금 부자연스럽다.
거실로 들어온 메이는 반듯한 자세로 가만히 서있는다.
서하가 메이를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말한다. “우아! 멋지다. 이 로봇을 네가 개발한 거야? 너 대단하다.”
문오는 서하의 집안을 둘러본다. “내가 메이 담당이어서 주도적 역할을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우리 팀에서 개발한 거지. 그나저나 서하야, 집 좋다. 집이 꽤 넓네. 공간이 충분해서 메이랑 같이 생활하기에 좋을 것 같다.” 문오는 메이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이 친구가 앞으로 1년 동안 너랑 같이 지낼 메이야.”
서하가 어색해한다. “인사부터 해야 하나?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 하하.”
“인사는 나중에 하고 우선 내가 간단하게 설명부터 할게. 서하 너와 메이의 관계는 상하 관계야. 네가 윗사람이고 메이가 아랫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될 거 같아. 메이는 너한테 존댓말을 쓸 거고 너는 반말을 하면 돼. 메이의 주된 임무는 일상적인 집안일과 너와의 대화야. 청소, 정리, 빨래 같은 무엇이 됐든 메이는 네가 시키는 집안일을 지속적으로 할 거야. 네가 일 단위, 주 단위, 월 단위의 집안일을 정해줘야 해. 대화는 규칙적으로 할 필요는 없고, 틈나는 대로 하면 돼. 아무래도 같이 사니까 말할 기회야 많겠지. 주제는 어떠한 것도 상관이 없어. 매달 보고서에 이 두 가지에 대해서 메이가 어떻게 활동을 했는지 작성하면 돼. 대화에 대한 보고는 사적인 대화 내용까지 자세히 적을 필요는 없고 대화 주제, 이해력, 어휘 선택, 문장 구사력 정도에 관해서만 작성하면 될 거 같아. 그리고 월 1회 특별 임무를 주고 어떻게 수행했는지 보고서에 작성해야 돼. 특별 임무는 휴먼로봇 테스트 담당자가 자율적으로 정하는 거야.”
“내가 자율적으로 정한다고? 그렇게 얘기하니까 너무 막연한데.”
“특별임무를 자율적으로 정하게 하는 거는 이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휴먼로봇이 각각 다른 일을 다양하게 수행하게 하기 위해서야. 음.. 뭐가 됐든 상관 없어. 반려견이랑 놀아주기, 고장 난 전자제품 수리, 책 한 권 읽고 독서토론, 특정분야에 대한 공부, 프로야구팀 전력 분석, 같이 운동하기. 나도 갑자기 떠오르지는 않는데 뭐가 됐든 상관 없어. 자유롭게 특별 임무를 부여하고 어떻게 수행하고 어떠한 결과가 나오는지 보고서에 작성하면 돼. 특별히 어려운 건 없을 거야. 보고서 양식은 회사 메일로 보낼게. 우리가 테스트를 통해서 확인하고 싶은 건 휴먼로봇이 얼마나 인간같이 행동하고, 얼마나 인간같이 사고하고, 얼마나 인간과 잘 소통하고 가까워 질 수 있는가야.”
“특별임무는 루틴한 임무를 제외하고 무엇이 됐든 일상적인 걸 하면 되는 거구나.”
“맞아. 그래서 특별 임무 정하는 것도 크게 어려운 건 없을 거야. 비슷한 임무가 겹치지 않게만 해 줘. 메이는 하루에 한 번 정도 전기 충전을 해야 하는데 그거는 메이 스스로 할거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메이는 사람에게 위협을 가하거나 위험에 빠뜨리는 행동은 절대 못하게 돼있어. 그래도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 절대 혼자 밖에 내보내면 안돼. 운전할 줄 알지만 운전도 시키면 안되고. 이 정도면 설명은 다 된 거 같은데. 이제 서로 인사해.”
서하가 먼저 인사를 건넨다. “메이, 만나서 반가워. 나는 유서하야.”
메이가 악수를 청하며 말한다. “안녕하세요. 서하님, 반갑습니다. 저는 메이입니다. 저는 주식회사 뉴다이내믹스 소속이고 저의 책임자는 이문오 연구원님입니다. 앞으로 1년동안 서하님과 함께 지내게 됐습니다.”
중저음의 20대 남자 목소리다. 갸름하고 달걀형 얼굴에 세련된 곡선의 민머리가 중성적 느낌을 풍기고, 넓은 어깨와 근육질 형의 몸매는 남성적이다.
서하가 메이와 악수를 했다. 메이는 자연스럽게 서하의 손을 붙잡았다. 메이의 손은 단단하고 매끈한 고무 느낌이다. 손의 악력은 세지도 약하지도 않다. 서하는 메이와 악수를 하면서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문오야, 손에서 온기가 느껴지네?”
“메이의 표면이 사람 체온과 같게 36℃에서 36.5℃로 온도가 설정 돼있어.”
“메이 표면 재질은 뭐야?”
“표면은 실리콘이야.”
“아! 그렇구나.” 서하가 메이의 눈을 보며 말한다. “앞으로 잘 부탁해.”
“저도 잘 부탁 드립니다.”
“서하야, 처음에 한 번 네 얼굴 표정을 메이에게 등록해야 돼. 표정 없는 얼굴을 등록하면 그걸 기준으로 네 표정을 읽을 수가 있어. 메이 얼굴을 정면으로 봐봐. 메이 얼굴 스캔 부탁해.”
서하가 메이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고 메이는 약간 키를 낮춰 서하와 얼굴 높이를 맞춘다. 메이의 양쪽 눈에서 가느다란 녹색 빛이 나와 서하의 얼굴 위아래 좌우로 지나간다.
“안면 스캔이 완료 됐습니다.” 메이가 말했다.
“이제 다 됐어. 그럼 서하야, 나는 그만 가볼게.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지 나한테 연락해.”
“바로 가게? 차라도 마시고 가지.”
“아니야. 어제 잠을 거의 못 자서 집에 가서 눈 좀 붙이려고. 메이랑 처음 만났는데 둘이서 얘기도 하고 그래.”
문오가 갔고 메이와 둘이 남았다. 첫날 서하와 메이는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눴다. 서하는 자신에 대해서 주로 얘기했다. 가족, 어린 시절, 친구, 일에 대해서 들려주었다. 메이는 서하의 얘기를 잘 들었고 적절한 반응을 했다. 처음에는 기계와 대화하는 것이 많이 어색했지만, 생각보다 금방 익숙해졌고 처음에 느꼈던 낯설음과 거리감도 어느새 사라졌다. 서하는 메이에게 해야 할 집안일에 대해서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