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고를 하려면 출간 기획서를 어떻게 써야 할까
20대 시절에는 여행을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여행을 다니는 시점보다 여행 계획을 세우는 시점이 더 좋았다. 겁쟁이였던 까닭에 여행을 가면 소매치기를 만날 걱정, 비행기가 추락할 위험에 대한 걱정, 해외 미아가 될 걱정에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벌벌 떨며 여행을 하던 시점보다는 계획을 짜는 시점에 느끼는 순수한 기쁨이 있었다. 이집트에서 베드윈과 사막 체험을 한다거나 터키에 가서 블루 모스크를 본다던가, 일본 하나비 축제에서 불꽃놀이를 구경할 상상을 하며 웃음을 짓곤 했다.
출간 기획서나 목차 짜는 걸 좋아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본격적인 시작 전의 설렘을 좋아한다. 8년 전쯤 공저로 선생님들과 함께 책을 쓴 적이 있었다. 경제를 영화 내용과 연결 지어 설명하는 청소년 교양서였다. 원래 일을 맡았던 누군가가 사정이 생겨 대타로 쓰게 된 글이었는데, 나에게 주어진 챕터의 주제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를 화폐제도 이야기와 연결 짓는 이야기였다. (프랭크 바움의 소설 <오즈의 마법사>가 화폐제도에 대한 은유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생각해낸 연결이 아니고, 경제학 책에도 실려 있는 꽤 유명한 이야기다)
주제를 받아 들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글감이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앞구르기 하고 뒷구르기 하며 써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목차를 짜며 기막히게 재미있는 글을 쓸 자신감이 샘솟았다. 그러나 본 게임에 들어가자 금세 의욕이 떨어졌다. 쓰는 과정을 위해서는 자료 조사를 실컷 해야 했고, 금본위제도니 브레턴우즈 체제니, 화폐제도의 역사를 풀어써야 했는데 이 모든 걸 공부하는 과정에서 이미 기력이 떨어졌다. 최고조였던 흥분도 점차 사그라졌다. 재미있게 글을 쓰려면 재미없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나는 본 게임에 비해 전초전을 좋아한다. ‘이런 것도 써볼 수 있겠는데?’ ‘이거 진짜 끝내주는 주제인데?’라고 기쁨에 겨워 흥분하는 건 주로 기획서를 짜고 목차를 짤 때다.
투고를 위해 출간 계획서 짜는 걸 부담스러워하는 분들이 많다. 기획출판을 위한 투고를 할 때 원고(또는 샘플원고)와 함께 반드시 보내야 하는 게 출간 기획서다. 짧은 문서를 통해 출판사와 편집자를 설득해야 한다는 부담이 존재한다. 전략적이어야 할 것만 같고 체계적이어야 할 것 같은 마음도 그득하다. 부담감이 머릿속에 들어차 더더욱 쓰기 싫다면 이 단계를 여행 계획을 짜는 일 정도로 생각했으면 좋겠다. 실제로 원고 집필은 장기 여행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인내심과 적당한 수준의 불안감이 필요하다. 그래야 글길을 헤매도 다시 제 길을 찾을 수 있다. 대략의 방향 설정이 있으면 덜 헤매기도 한다 -물론 여행처럼 원고 집필 역시 적당히 길을 잃고 헤매는 게 묘미이기도 하지만-.
출간 기획서는 길지 않아도 된다. 구구절절한 내용보다 1~2쪽 정도의 짧고 강력한 분량이 나을 수 있다. 길지 않아도 핵심 사항이 명확하다면 끌리게 마련이다. 출간 기획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구성된다.
혹시 몰라 파일도 올려둔다. 그러나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양식 자체가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내용이 참신하고 알찬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출간 기획서에 들어가야 하는 주요한 항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브런치 메인에 가기 위해 제목빨(?)이 중요한 것처럼 출간 기획서를 쓸 때도 책의 제목이 중요하다. 호기심이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제목이 좋을 수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책 제목을 참고해보는 것도 좋다. 최근에 온라인 서점에서 <왜 아가리로만 할까>(이수창 외 2인 저, 들녘)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다. 일단 입으로 ‘해야지, 해야지’ 하는 (나 같은) 사람들의 클릭을 부르는 제목이라 마음이 끌렸다.
자극적인 제목으로 어그로를 끌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김지혜, 창비)처럼 앞 뒷말이 주는 뉘앙스가 달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제목도 있고,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정문정, 가나)처럼 많은 이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하거나 궁금해하는 제목도 매력적이다. <공부머리 독서법>(최승필, 책구루)처럼 책의 주제를 드러내며 학부모들의 관심을 끄는 제목도 있다. 이미 나와 있는 드라마나 소설, 예능프로그램의 제목 등을 적당히 차용해 제목을 짓는 경우도 있다.
후보 제목을 두세 개 정도로 적어도 괜찮고, 부제가 있어도 좋다(이때 부제는 책의 핵심 콘셉트를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실제로 책이 나오는 경우 대체로 출판사에서 내부 회의를 거쳐 결정하고, 투고 때 제목과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에도 투고로 출간된 책은 대부분 내가 투고 때 보냈던 가제와 다른 제목이 붙었다. 다만 작년에 출간된 <이 장면 나만 불편한가요?>(자음과 모음)라는 책의 경우에는 내가 보냈던 가제 중 하나였던 ‘이 장면, 저만 불편한가요? 와 거의 같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것도 후보 제목을 다른 걸로 선정하다가 일러스트나 전체적인 분위기에 맞추어 막판에 바뀐 것이었다.
저자의 경력이나 프로필을 출판사에서도 참고한다. 길고 긴 인생사 털어놓기나 책과 관련 없는 내용의 자기 자랑은 금물이다. 내 인생 이력 중에서도 책 내용이나 주제와 관련된 내용을 적는 게 좋다. 관련 카테고리의 책을 이미 출간한 경험이 있으면 좋고, 강연이나 모임을 열었던 경험이 있는 것도 좋다. 공저 경험이나 수상 경험이 있는 것도 플러스 요인이다. 요즘에는 인스타나 브런치, 블로그 활동 등을 꾸준히 쌓아온 것 역시 좋은 이력이 된다.
자신의 직업 정체성이나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책을 쓴다면 그것에 대해 설명하는 것도 방법이다. 내 경우에는 브런치를 시작하기 직전, ‘주부’의 정체성이 아무래도 강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두 가지 정도의 매거진을 해볼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하나는 ‘전업주부의 자본주의 공부’라는 기획이었고, 내가 (극도의) 개인주의자인 데 착안해서 ‘개인주의 성향을 지닌 엄마가 내 자아를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 정도의 콘셉트로 에세이를 생각해 봤었다. (전자의 내용은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서 쓰지 못했고, 후자의 경우에는 좀 더 세분화된 콘셉트가 필요할 것 같아 쓰지 못했다.)
어떤 기획이라도 설득력이 있으려면 예비 저자인 나를 잘 설명하는 게 중요하다. 특별한 경력이나 이력이 없더라도 나를 재치 있게 설명할만한 프로필을 생각해보는 게 좋다. 책의 앞날개 표지에 독자들이 볼 프로필을 적는다는 마음으로 프로필을 작성해보는 것도 괜찮다.
4년 전 처음 투고할 때, 출간 기획서 양식을 처음부터 정해놓은 출판사를 발견했다. 해당 출판사 사이트에는 이런 질문이 떠 있었다. ‘이 책이 출간되어 나온다면 홍보할 문구를 2~3 줄 정도 적어보세요’라는 질문이 있었다. 당시에는 반발심 같은 게 있었다. 아니, 홍보 문구를 예비 저자가 왜? 물론 지금 되돌아보니 이게 좀 필요한 질문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단순히 홍보 문구라기보다는 책의 핵심 콘셉트에 대해 묻는 질문이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 콘셉트는 독자들이 끌릴만한 매력과 차별성이 있는 게 좋다. 물론 말이 쉽지 이걸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이런 걸 쉽게 생각해내지 못한다. 너무 어렵게 느껴질 경우 '내가 쓸 수 있는 개별화된 영역'이 있을지 고민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가령 육아를 주제로 한 실용서라도 ‘예민한 성향의 부모를 위한 육아서’가 있고, ‘초등학교 ○학년 부모가 되는 부모를 위한 육아서’가 있다. 독서모임을 주제로 하더라도 ‘치유를 위한 독서모임’을 다룬 책이 있고 ‘독서 모임을 꾸리는 법’에 대한 책이 있고, ‘한국의 독서모임 공동체를 인터뷰’한 책이 있다. 잘 살펴보면 각각의 책들은 조금씩 개별화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영역이 책의 핵심 콘셉트가 될 수 있다.
에세이 역시 살펴보면 요즘에는 각각의 콘셉트를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에세이 시리즈 중에서도 <아무튼> 시리즈 같은 경우 떡볶이나 여름, 메모, 술 등의 주제를 다룬 다양한 책이 존재한다. 이 시리즈는 주제에 따라 각기 개별화된 영역을 차지하며 독자를 끌어들인다. 에세이로 책을 내고 싶은 분들은 ‘나에게도 이런 소재가 있을까’ 한 번 찾아보는 것도 좋다.
내 경우에는 오래전에 스윙댄스를 배운 적이 있다. 만약 이를 바탕으로 에세이를 쓴다면 ‘스윙댄스의 동작이나 요령과 인생 이야기를 연결 지어 쓰는 콘셉트’를 잡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글을 쓰기 위해 잠시 만들어낸 예시일 뿐임을 말씀드린다.) 이 경우 ‘힘 빼기의 묘미, 모멘텀의 아름다움, 가장 멋진 턴을 도는 순간’ 등등의 자잘한 목차로 내용을 채워 넣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때 타깃 독자는 주로 스윙댄스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좁혀질 가능성이 높은 데다, 이미 스윙댄스를 다룬 아무튼 시리즈 책이 존재하긴 하지만.
누가 이 책을 필요로 할지 생각해보면 이것이 그대로 타깃 독자가 된다. 가령 독서모임을 꾸려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인 사람들은 ‘독서 모임을 꾸리는 방법’에 대한 책을 찾을 것이고, 나처럼 ‘순정만화를 좋아하며 추억하고픈 사람들’은 과거의 순정만화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고픈 사람들은 <아무튼, 순정만화>(이마루, 코난북스) 같은 책을 집어 들 것이다. 실제 나는 이 책이 출간 되자마자 냉큼 찾아 읽었다.
편집자들은 원고를 보지 않아도 출간 기획서의 목차를 통해 책의 구성을 상상해볼 수 있다. 자기 계발서나 실용서 등의 경우에는 목차 짜는 데 논리적 연결이 있으면 좋다. 복잡한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학년 부모를 위한 육아 가이드>라는 책을 쓴다면, 큰 얼개는 대략 다음과 같이 나올 수 있다. (거듭 말하지만 다음은 예시일 뿐이다)
1. 초등학교 ○학년이 학습 발달 시기상에 중요한 이유
2. 초등학교 ○학년을 잘 끌어가기 위한 전반적인 방향
3. 초등학교 0학년을 키우기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
그리고 1,2,3의 장 안에 세부적인 목차를 넣을 수 있다. 예를 들면 1. 초등학교 ○학년이 학습 발달 시기상 중요한 이유 안에 '○학년 때 아이들의 연령 발달 단계에 나타나는 변화/ 학교 교과과정상 ○학년에 나타나는 변화/ ○학년 시기를 놓치면 학습 발달 과정에 나타날 수 있는 문제' 등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인문서나 내가 쓰는 청소년 교양서도 어느 정도 비슷한 논리적 체계를 따른다. 다만 요즘에는 많은 책들이 한 챕터당 길이가 짧아지는 경향이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청소년 교양서에 <더 알아보기> <팁> <토론하기> 같은 섹션을 중간중간 넣는 걸 좋아하는데, 타깃 독자의 특성 때문인지 편집자들도 대체로 이런 구성을 선호했다.
위의 이야기까지 들어보면, 모든 책의 목차가 체계적이어야 할 것만 같은 부담이 생긴다. 그러나 에세이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에세이는 그 종류에 따라 목차 짜는 방법이 다른 편이다. 그리고 내 개인적인 선입견인 듯 싶기도 하지만, 자기 계발서나 실용서만큼 여러 개의 장 사이에 논리적인 연결이 엄청나게 중요하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략적인 챕터의 제목을 잘 짓고, 그 분류에 무슨 글을 넣을까 고민하는 정도가 좋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내 경우에는 브런치에 에세이를 쓴 이후부터는 목차 제목을 짤 때 유튜브 동영상의 제목 같은 걸 많이 참고했다. 사람들의 호기심이나 궁금증을 이끌어내는 제목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생각해본다. 물론 이 역시 어그로로 보일 수도 있고, 뻔한 낚시질 제목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에세이 초보자에게는 나름 도움이 되었다. <예민한 당신을 위한 대화 생활 백서>를 바탕으로 한 에세이(현재 교정 작업 중이다) 역시 '당신이 게으른 완벽주의자가 되는 까닭', '인간관계의 미니멀리스트, 가능할까' '좋은 해석이 인생에 가져오는 힘' 같은 제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나에게도 제목보다 본문이 알찬 글이어야 한다는 일종의 원칙은 존재한다.
이건 나의 개인적인 경우에만 해당될 수 있겠지만, 출간 기획서 상의 목차와 실제 원고를 쓸 때의 목차는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출판사의 권유로 달라질 수도 있고 내가 써보니 다른 방향으로 글을 쓰게 되어 목차가 수정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출간 기획서와 원고의 목차가 너무 달라 애초의 집필 방향에서 벗어난다면 문제겠지만, 모든 부분이 똑같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품지 않아도 괜찮을 듯 싶다.
출간 계획서에 들어갈 내용은 이 외에도 더 있다. 유사 도서나 경쟁 도서를 살펴봐야 이 책이 가진 가능성이나 차별화 영역을 파악할 수 있다. 보내는 원고가 완성본이 아닐 경우 집필 완성 시기를 적는다. (물론 완성된 원고를 보내더라도 수정의 기간은 필요하다) 전체 분량이 얼마나 될지 써보는 것도 중요하다. 내가 쓰려는 카테고리의 유사 도서가 몇 쪽 정도로 구성되어 있는지 확인해보며 분량을 정하는 게 좋다. 거대한 기획이 아니라면 대체로 원고지 매수로 500매~800매 사이에서 책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투고를 할 때 두 가지 필수 항목은 결국 출간 기획서와 원고다. 출간 기획서는 가급적 명확한 콘셉트를 잡아 작성하고, 원고는 정성스럽게 여러 번 고쳐보고 투고하기를 권하고 싶다. 일반적인 투고의 요령과 원고의 콘셉트를 잡아 기획하는 방법은 아래의 두 글을 참고하셔도 좋다.
<기획출판을 위한 원고 투고의 일반적인 요령>
https://brunch.co.kr/@aring/98
<원고의 콘셉트를 잡아 기획하는 방법>
https://brunch.co.kr/@aring/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