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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선생 Apr 04. 2024

우리가 도파민 중독에 빠지는 이유

스마트폰 중독자의 고백  

물에 젖은 휴지나 행주가 된 느낌. 평일 오후 대여섯 시, 퇴근 즈음 찾아오는 감정이다. 하루의 업을 충분히 끝낸 듯싶은데, 머릿속은 시끄럽다. 오늘은 아무래도 업무 바보로 전락한 느낌인데. 수업에서 A를 그렇게 설명해야 했을까? 오늘의 직장 스몰토크엔 성공한 건가. 내면의 목소리로 소란한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고 싶었다.


 마음의 위안을 주는 건 역시 스마트폰이다. 주머니 속 네모난 물건을 쥐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유튜브를 틀어 쇼츠를 본다. 최근의 전형적인 패턴이다. 손가락을 좌우반경 1mm만 움직이면 짧은 동영상의 향연이 펼쳐진다. 연예인 A가 누구누구랑 사귀어서 난리가 났다거나, 차은우 실물을 보면 사람들이 난리가 난다거나, 이런 MBTI는 상극이라 함께 하면 난리 난다는 등, 다방면에서 난리 난 얘기로 마음이 들썩인다.     


 최근에는 쇼츠 감상 대신 핸드폰 게임을 할 때도 있다. 쌓인 캔디 부수는 게임이다. (캔디크러시란 게임)



바로 이 게임. 오늘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라고 속삭인다.



 지난겨울, 마감을 하나 끝내고 이 게임을 시작했다. 원고를 쓰는 내내 머리를 굴렸더니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 식음 전폐하고 캔디를 깨부수는데 전력을 다했더니 하루에 155단계를 통과하는 기염을 토했다.


캔디를 깨부술 때의 쾌감도 상당하지만 즉각 주어지는 보상에도 끌렸다. 이 세계에선 한 단계만 통과해도, ‘훌륭해요!’ ‘정말 멋진데요!’ 등등의 찬사를 퍼부어준다. 온라인 속 칭찬이라도 더 받고 싶었다. (글쓰기는 열심히 해도 이렇게 즉각 칭찬받기가 어려우니깐) 그 후로 출퇴근 길에도 핸드폰을 슬그머니 들어 캔디 깨부수기에 집중했다.


 모바일 게임이나 쇼츠 감상에 시간을 쏟다 보면  죄책감 슬며시 고개를 든다.  비생산적인 시간 낭비 아닌가. 유한한 인생을 이런 방식으로 써도 될까. 자책의 늪에 빠지기 전에 재빨리 사고를 전환한다. 행복이 뭐 별 건가. 유튜브 영상 하나 보면서 즐거워지면 되는 거고, 하루에 게임 5단계쯤 깨면 그게 소확행이지. 그래, 난 꼬박 일하고 육아했잖아. 이 정도 행복은 누려도 돼. 더 해도 돼. 자기 합리화의 세례를 스스로에게 퍼부은 다음, 다시 손가락을 움직인다.       





 '맛있는 음식도 늘 먹으면 싫다'는 속담이 있다. 식탐을 자극하는 음식도 계속 먹으면 질린다는 얘기다. 경제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제법 긴 용어로 설명한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 무언가를 소비하거나 경험하면서 우리가 느끼는 주관적인 만족감이 효용다. 그 앞에 붙는 ‘한계(限界)’라는 말은 원래 영어 Marginal을 뜻한다. ('끝자락의', ‘추가적인’ 정도의 뜻으로 해석하는 게 좋다.) 다시 말해 한계효용은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한 단위 더 추가하며 소비할 때 느끼는 주관적 만족을 뜻한다. 만족감을 객관적인 숫자로 나타내는 게 어불성설로 보이기도 하나, 경제학에서는 이런 방식을 종종 취한다.


 이 ‘순간 만족감'은 언제 최대치가 될까.  대개 갈망을 채우는 첫 단계에 최고치를 기록한다. 하루 종일 굶다가 첫 한 술을 떠먹을 때나, 갈증에 시달리다 처음으로 물을 마시는 순간, 밥맛이나 물맛이 유독 달다. 그러나 밥을 몇 술 더 떠먹거나 물을 더 마실수록 순간적인 만족의 수치는 점차 떨어진다. 이렇게 재화를 한 단위 추가적으로 소비할수록 추가적인 만족감이 줄어드는 것이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다. 친구에게 한 입만 얻어먹는 음식이 유독 맛있게 느껴지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얻어먹는 음료수 한 모금, 라면 한 입은 순간 만족도가 최고치를 찍을 때 소비를 끝내는 행위니까.


 경제적 풍요라고 크게 다를까. 가령 한 달 소득이 100만 원인 사람이 100만 원을 더 벌게 될 경우 그 만족감은 더없이 클 수 있다. 그러나 월 소득이 1억 원쯤 되는 사람이 추가로 100만 원을 더 벌 경우, 순간적인 만족감은 그보다 적을 것이다. 구체적인 연구 결과도 있다. 2010년, 프린스턴대의 대니얼 카너먼과 앵거스 디턴은 1년 소득이 7만 5000달러를 넘어설 경우, 돈이 행복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사람 간 만남이나 특별한 경험에도 이 법칙을 적용할 수 있다. 첫사랑의 기억, 첫 만남의 기억, 첫 해외여행의 추억은 한계효용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고, 강렬하게 머리에 각인된다. 그러나 처음 느낀 호감이나 쾌락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렵다. 만남의 횟수나 여행의 경험이 늘어날수록 추가 효용은 줄어드니까.  (어쩐지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에도 예외는 있다. 중독이 올 때다. 이 경우 같은 재화나 서비스를 계속 소비해도 오히려 효용이 증가한다. 담배나 술, 도박에 빠지면 재화를 처음 소비할 때보다 더 큰 효용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숏폼 중독도 마찬가지다. 틱톡과 유튜브, 인스타그램은 우리에게 1분 내외의 동영상을 무한 제공한다. 지루함이나 불편함이 적다. 온라인 플랫폼이 한계효용을 끌어올려주는 새로운 동영상을 1분마다 제공해 준다. 자극적이거나 흥미로운 영상을 보며 ‘도파민 터진다’는 말을 하는데, 한계효용이 최고치에 다다랐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것은 새로운 문제를 불러온다. 중독이 된데다 새로운 동영상이 끝없이 제공되니 한계효용은 줄지 않는다. 더 큰 만족감을 느끼게 해 줄, 자극적이고 강력한 동영상이 내 앞에 당도하길 기다리게 된다. 1분 단위로 도파민이 터지니,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두세 시간 이어지는 영화, 느린 속도의 책 읽기가 뒷전으로 밀린다.

    

  중독의 결말은 어떨까. 최근에는 도파민 중독의 위험성이 널리 알려졌다. 미국 스탠퍼드대 정신의학 전공의인 애나 렘케 교수는 자신의 저서 <도파민네이션>에서 도파민이 쾌락과 고통의 작용과 반작용, 양쪽으로 나뉜다는 '균형 이론'을 펼쳐냈다. 쾌락을 당겨 쓰는만큼 결국에는 그만큼의 고통이 따른다는 것이다.





 도파민 중독자를 근본적으로 치료할 수 있을까? 모바일게임과 숏폼의 중독자인 나는 명확한 답을 모른다. (지금 이 글의 초안을 쓰면서도 유튜브 쇼츠를 10편 이상 감상했다)


 한 가지 사실만큼은 깨달았다.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릴 때마다 나는 ‘행복의 대체재’를 찾고 있다 생각했다. 이 작고 네모난 세계를 만지작대면 순간적인 행복을 손에 쥘 수 있다 여겼다. 착각이었다. 사실 스마트폰은 행복의 대체재가 아닌 회피 도구였으니. 깊이 몰입해 길고 긴 프로젝트를 끝마쳐야 하거나, 마주하기 싫은 현실을 앞두고 있을 때 주로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미래에 대한 불안, 일상 속 지루함을 대체할 수단을 찾고 있던 것이다. 현실 도피의 끝이 뭔지 정확히 모르나, 네모나고 협소한 세계에 갇혀 사는 게 진정한 행복은 아니란 사실만큼은 안다.


 그러니 당신이 나처럼 숏폼에 중독되어 있다면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지루함이나 고통, 불안도 기쁨과 쾌락과 만족에 1+1으로 딸려 온단 사실을. 지루한 순간을 견디고 즐겨야만 비로소 찾아오는 행복이 있다. 가끔은 그저 그런 일상, 기다림, 지루한 순간과 정면 대결이 필요하다.




안녕하세요 : ) 유랑선생입니다.

오늘은 제 스마트폰 중독 증상(!)을 고백하며 글을 썼습니다. 그리고 <다정한 교양>이라는 제목의 브런치북에 글을 발행했어요. 별다른 의도 없이  새로운 브런치북에 글을 써보고 싶었어요. (목차나 브런치북 소개를 싣긴 했지만 너무 얽매이고 싶지는 않아요. 무엇이든 일을 시작하면 규칙을 잔뜩 만들어놓고 거기에 얽매이다 지쳐버리는 게 제 특징이라서요.) 좀 더 유연하고 자유롭게 글을 써보고 싶단 마음이 있어요. 아무거나 제가 좋아하는 아이디어가 생각나면 글을 실어볼까 합니다.


 다음 주 목요일(4월 11일)에는 지금 이 브런치북이나 <책 쓰는 마음> 브런치북에 글을 발행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 봄날 만끽하며 지내시길요 : )


덧. 출간이나 강연 소식이나 명화 카드 뉴스, 독서 리뷰 등은 주로 인스타그램에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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