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끄적거림 14화

신경림과 리얼리즘

―신경림의 시집 『農舞』 중심으로―

by 무기명

1. 신경림 생애


신경림은 1935년 4월 6일 충청북도 충주군에서 4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고향은 광산으로 인해 개화된 문명이 비교적 빠르게 유입된 반농반상의 고장이었다. 태평양 전쟁이 발발해 일제의 대륙침략이 본격화되었던 1943년은 신경림이 노은국민학교에 입학한 연도이다. 노은초등학교 시절부터 시적 재능을 인정받은 그는 충주사범 병설 중학교에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한다. 그 후 전춘용 선생의 권유로 충주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 시절 남한강 자락을 오가면서 토착민들의 유장한 삶과 애환과 비애, 분노, 좌절, 희망, 기다림 등을 느끼게 된다. 그는 ‘가장 좋아했던 시인은 백석’이라 밝혔고 실제 그의 대부분의 시가 서정적인 정서에 바탕으로 서사적인 얼개를 가지고 있는 점에서 백석 시와의 영향관계를 미루어 짐작하게 한다. 대학 2학년에 오른 신경림은 1956년 문단에 등단한다. 등단 무렵 「낮달」, 「갈대」, 「묘비」 등의 시를 통해 인간의 쓸쓸함과 슬픔 등의 정조를 바탕으로 존재론적인 탐구를 보여주는 시 세계를 보여 준다. 그 후 10여 년 간 작품을 쓰지 않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다양한 체험을 한다. 1970년 평론가 유종호의 소개로 『창작과 비평』에 작품을 발표해 창작활동을 재개하게 된다. 이후 그는 1973년 첫 시집 『농무』를 내놓아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으며, 1979년에 두 번째 시집 『새재』를 간행한다. 1980년 5월 신경림은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가 두 달 만에 공소기각으로 풀려나게 된다. 1984년 ‘민요연구회’를 조직하여 민요채집을 위한 기행에 나섰다. 90년대에 들어 ‘민족예술인총연합회’ 공동의장직을 맡아 민요발굴과 전통가락의 복원 노력에 몰두하여 그는 1985년 시집 『달넘세』와 평론집 등 일련의 산문집을 간행했고, 장시집 『남한강』과 『가난한 사랑노래』를 발표하는 등 창작자로서도 충실하였다. 그 이후로도 시 작업은 이루어지고 있다.


2. 당시 시대적 배경(1970년대)에서 도출된 리얼리즘


신경림이 시 창작을 재개하여 1970년대에 첫 시집을 간행했다. 이번 연구에 앞서 1970년대의 시대적 배경 속의 문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 활발하게 추진된 근대화의 물결은 한국 사회를 산업사회로 이끌어갔고, 이에 따라 개인의 삶도 산업사회가 빚어낸 획일화·도시화·조직화의 암영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농업부문의 일방적 희생 위에서 가능했던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소외되고 몰락해 간 60년대 이후 농민의 비극적 형상이 신경림 시의 화두가 되었다. 70년대 이후 민주화 시대와 산업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우리의 전통적인 서정시의 주된 성격은 크게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70년대 시기 시인들 상당수가 <문학과 지성>사나 <창작과 비평>사를 중심으로 동인지 활동에 참가했다. 이들은 근대화의 과정에서 소외된 농촌이나 노동자 계층에 대한 관심사를 그들의 시적 주제로 삼고 있다. 70년대 시인들은 일상의식을 통해서 자신의 삶과 시대에 대한 본질적인 파악을 꾀하려고 노력하였다. 이 시기 일련의 시인들은 재래의 시적 방법을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시의 문법을 모색하면서 구체적으로 당대의 경험 현실을 수용해 내려는 노력을 펼쳐 나갔다. 이들의 시적 노력에 힘입어 우리의 시는 매우 다양한 형태의 형식과 방법을 갖추게 되었다. 이에 속하는 대표적인 시인으로 신경림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신경림은 70년대 리얼리즘 논의의 전개에 커다란 자극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정순진(1994)은 「농무」가 사실묘사와 서정성을 융합시켜 냉철한 눈으로 농촌현실을 비판하고 있어 삶의 현장에서 유리된 농악과 농무를 통해 억눌려 사는 농민들의 분노와 고난을 몸으로 풀어낸다고 한다.


3. 신경림 리얼리즘 선행 연구


리얼리즘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삶과 사회현실을 주관적, 추상적 관점에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현상을 통해 모든 현실들이 파편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전체성으로 인식하고 형상화하고자 하는 인식태도이며 창작방법이다. 문학에서의 리얼리즘은 인간과 그들을 둘러싼 다양한 삶의 양상을 주요 대상으로 한다. 이것은 인간이 표출해 내는 절망·분노·희망·원한 등과 같은 정서적 표상과 인간을 지배하려는 현실의 시대적 상황 등을 포함하고 있다. 신경림의 시에 대해 사회적 리얼리즘의 방법론으로 분석한 연구들이 있다. 본문에서는 대표적으로 백낙청, 염무웅, 이건청의 선행연구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알아본다. 살펴본 결과 이 선행연구들은 그의 시를 당시 시대 상황과 연결해 소외된 계층의 문제를 다룬 것이 많았다.

백낙청은 시집 『농무』의 발문에서 “민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받아 마땅한 문학이라는 점에서 시집 『농무』의 완성은 그런대로 하나의 민중적 경사(慶事)라고 극찬했다. 또한 형식적 고찰에서는 ”리얼리스트의 단편소설과도 같은 정확한 묘소와 압축된 사연들을 담고 있다.“고 평했다. 염무웅은 서평에서 장시 「새재」가 튼튼한 서사적 골격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신경림 시를 리얼리즘적 측면에서 평가하고 있다. 이건청은 신경림의 시세계를 소외된 민중과 서정적 진실성의 관점에서 주목하였다. 그는 신경림이 현실주의 시를 서정적 정서로 구조화하여 이용악, 백석 등이 시도한 서정적 현실주의 시의 전통을 이은 시인이라고 평가했다.


4. 시집 『農舞』에서 본 신경림의 리얼리즘 분석

시집 『農舞』를 통해 민중 지향성을 바탕으로 한 서사적인 방법으로 피폐한 농촌 실상과 농민들의 감정과 정서를 전달해준다. 이 시집은 그 당시의 문단 풍토인 모더니즘과 순수문학 혹은 전통적 서정시의 관습을 뒤집어 놓은 작품이다. 우리 정서에 걸맞은 민중들의 삶과 애환을 ‘산문적 확장과 시적 응축’하며 적절히 배합하여 시적인 상승효과를 거두는 참된 시를 산출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신경림 시집 『農舞』 중 몇 개를 추려 리얼리즘이 어떻게 내포되고 있나 시를 분석하고자 한다. 먼저 시 「農舞」를 분석하고자 한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 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거나


농무는 풍년을 기원하고 농사의 힘듦을 춤으로 털어내는 행위이다. 이로써 그동안 축적된 한을 풀어내는 기능도 한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가설무대에서 진행되는 농무이다. 즉 보여주기식 농무라 볼 수 있다. 농무를 통해 한을 훌훌 털어내야 하지만 가설무대 위의 그들은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해 술을 마신다. 원래 농무는 사람들과 함께해 공동체를 다시금 느끼는 계기도 마련해준다. 이 시에서는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를 통해 농무를 통해 다 같이 한을 풀어야 할 농사꾼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는 농무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의미의 전달이 되지 않아 무용지물인 현상을 볼 수 있다.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두고’에서는 당시 가장으로서의 역할 중 하나인 농사일을 내평개치는 상황을 보면 더 이상 농사일에 의욕이 보이지 않는다는 당시 상황을 느낄 수 있다. ‘도수장’은 도살장이다. 그들은 오히려 죽음, 살인이 연상되는 ‘도수장’ 근처로 와서야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고 춤을 춘다.

「農舞」를 통해 70년대 산업화로 인해 사각지대로 몰리는 농사일로 의욕이 없어지는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두 번째 행의 ‘가설무대’는 시에서 행하는 농무는 전통적인 농무의 한풀이, 의욕 고취의 목적과는 다른 목적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음을 통해 농사일에 대한 당시 인식을 드러내는 장치로 쓰였다고 볼 수 있다.

다음은 「오늘」이란 시다. 이 시는 ‘시적 주체의 감정이나 시적 대상의 이성에 갇히지 않고 있고, 문맥중심 소통구조의 양상을 보이는 시’라는 연구도 있다.


국수 반 사발에

막걸리로 채워진 뱃속

농자천하지대본

농기를 세워놓고

면장을 앞장 세워

이장집 사랑 마당을 돈다

나라 은혜는 뼈에 스며

징소리 꽹과리소리

면장은 곱사춤을 추고

지도원은 벅구를 치고

양곡증산 13.4프로에

칠십 리 밖엔 고속도로

누더기를 걸친 동리 애들은

오징어를 훔치다가

술동이를 엎다

용바위집 영감의 죽음 따위야

스피커에서 나오는

방송극만도 못한 일

아낙네들은 취해

안마당에서 노랫가락을 뽑고

처녀들은 뒤울안에서

새 유행가를 익히느라

목이 쉬어

펄럭이는 농기 아래

온 마을이 취해 돌아가는

아아 오늘은 무슨 날인가

무슨 날인가


「오늘」에서 빈부격차의 양상이 드러난다. 여기서 빈부격차는 그저 계층 간의 소득 차이를 지칭하지 않는다. 국가와 농촌에서의 국민 사이의 차이를 말한다. 국가는 ‘양곡증산 13.4프로’, ‘고속도로’ 등 발전하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1970년대 박정희의 새마을 운동에 속한 이런 과정은 국가재건이란 명목으로 진행되었다. 실상 양곡증산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은 농민들이었고, 고속도로로 인한 근대화는 농촌에 대한 무언의 압박이 되었다. 이를 드러내듯 ‘누더기를 걸친 동리 애들은 오징어를 훔치다가 술동이를 엎다’와 같이 대비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농촌의 사람들은 근대화와 거리가 먼 모습을 볼 수 있다. ‘온 마을이 취해 돌아가는’로 보아 맨정신인 사람이 없다. 다들 취기로 현실을 버티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아아 오늘은 무슨 날인가 무슨 날인가’에서는 ‘아아’라는 점을 통해 이런 상황에 부닥쳐있단 사실에 대한 속앓이를 표현했고 ‘오늘은 무슨 날인가’라는 의문형을 통해 ‘오늘’의 의미를 되묻고 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급격히 변해가는 ‘오늘’에 대해 되묻고 있고 이런 변화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술을 마시고 있다.


70년대 시인들은 일상의식을 통해서 자신의 삶과 시대에 대한 본질적인 파악을 꾀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형태와 방법이 잘 드러난 시가 마지막으로 살펴보게 될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이란 시다.


질척이는 골목의 비린내만이 아니다

너절한 욕지거리와 싸움질만이 아니다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이 깊은 가난만이 아니다

좀체 걷히지 않는 어둠만이 아니다

팔월이 오면 우리는 들떠오지만

삐꺽이는 사무실 의자에 앉아

아니면 소줏집 통걸상에서

우리와는 상관도 없는 외국의 어느

김빠진 야구경기에 주먹을 부르쥐고

미치광이 선교사를 따라 핏대를 올리고

후진국경제학자의 허풍에 덩달아 흥분하지만

이것들만이 아니다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이 쓸개 빠진 헛웃음만이 아니다

겁에 질려 야윈 두 주먹만이 아니다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서로 속이고 속는 난장만이 아니다

하늘까지 덮은 저 어둠만이 아니다


이 시에서도 농촌의 현실과는 괴리감이 있는 것들과 대비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야구경기’, ‘선교사’와 같이 기존 농촌사회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문화이다. 더 나아가 이를 부정적으로 수식한다. ‘우리와는 상관도 없는 외국의 어느 김빠진’으로 야구경기를 수식하고, ‘미치광이’로 선교사를 수식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연상되도록 한다. 또한 이 시의 제목을 보면,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은 미완성 문장이다. 시의 본문을 통해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 독자가 시에 대해 능동적인 태도를 갖게 한다. 이로써 몰입도를 더 높이는 효과를 낳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골목의 비린내’, ‘깊은 가난’ 등이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이 구조를 시의 끝부분까지 유지한다. 마지막 3행을 보면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서로 속이고 속는 난장만이 아니다 하늘까지 덮은 저 어둠만이 아니다’로 마무리된다. 시를 읽으며 우리가 무엇을 부끄러워해야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끝까지 읽고 나서 우리는 스스로 인지하게 된다.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 근대화를 당하는 농촌 사람들의 당시 상황은 모든 면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국가의 산업화 모델과 비교당하는 처지가 되었고 이로써 많은 사람이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시는 말한다. 오히려 ‘우리와는 상관도 없는 외국의 김빠진 야구경기’이고 ‘미치광이 선교사’일 뿐이라고. 하나의 잣대에 의해 우리를 낮추지 말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필요 없다고 오히려 이 시는 역설한다고도 볼 수 있다.


5. 결론

『農舞』는 우리 민족의 정서의 바탕인 농촌의 현실을 세세하게 마주하게 했다. 신경림은 『農舞』에서 ”농촌현실에 대한 적극적이고 올바른 이해로써 농촌의 참모습과 민중의 정서를 불필요한 꾸밈없이 리얼하게 그려“ 보였다. 위에서 살펴본 「농무」, 「오늘」,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모두 신경림의 리얼리즘적 시 창작기법을 잘 드러냈다. 신경림의 큰 장점 중에 하나로 볼 수 있는 ‘쉬운 시’도 돋보였다. 또한 시를 능동적으로 읽을 수 있게끔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장치도 몇몇 보였다. 대표적으로 급격한 발전을 추구하고 있는 국가와 정체된 농촌사회의 모습을 대비 시켜 둘 사이의 모순을 드러냈다. 그중 시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은 의문형의 반복 사용과 우리가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의 답을 찾고자 하는 독자의 심리 상태를 반영해 더 적극적으로 독자의 능동적 참여를 독려했다. 결국 위의 시는 모두 급격한 산업화 속 소외되는 농촌 사회의 농민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담아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농민들의 무기력해지는 모습과 술에 의존하는 장면들도 시집 『農舞』에서 빈번하게 보였다. 맨정신으로 버티지 못할 정도의 심각한 1970년대 상황을 대변하는 장치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시집 『農舞』의 시 62개 중에서 33개가 1연으로 구성되었다. 1연으로 구성되어 시를 보다 산문형식과 같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시의 내용이 이미지로 전환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또한 급격히 변하고 있는 농촌 사회의 현실에서 여유가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1연이란 형식적인 틀로도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신경림의 『農舞』에서는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인 측면에서 리얼리즘적 면모를 찾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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