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는 나의 태도를 돌이켜보게 되다
《시네마 천국》감상문
1. 《시네마 천국》에 대해서
《시네마 천국》은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이 1988년 11월에 개봉한 이탈리아 영화이다. 《시네마 천국》 영화만큼 유명한 것은 다름 아닌 OST다. <Love Theme>이란 곡이며 이탈리아의 작곡자인 엔니오 모리코네가 작곡했다. 본 영화는 1989년 제42회 칸 영화제에서 감독 토르나토레가 심사위원대상, 1990년 제62회 미국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과 제47회 골든 글로브상 외국어영화상, 제11회 청룡영화제 외국어영화상, 1991년 제44회 영국 아카데미상에서 각본상, 외국어영화상, 그리고 제11회 런던 비평가 협회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주인공은 토토라고 불리는 살바토레 드비토(살바토레 카시오, 마르코 레오나르디, 자크 페렝)와 영사기사인 알프레도(필립 누아레)다. 그 둘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영화에 대한 사랑, 관심 등 공통점이 있어 친구로 지낸다. 토토는 항상 알프레도 아저씨에 대한 이야기뿐이고, 알프레도 또한 마찬가지다. 전역을 한 토토는 변해버린 고향에 도착하게 되고 본인이 있던 극장 자리를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어 허탈해한다. 알프레도는 토토가 더 큰 세상에 나가서 부딪히길 소망했고 영영 돌아오지 말라고 한다. 그렇게 토토는 고향을 떠난다. 알프레도 장례식 소식을 들은 토토는 3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고 알프레도가 자신에게 남긴 선물을 확인한다. 자신의 첫사랑이 담긴 영상과 어렸을 때 검열당했던 키스신을 모아둔 영상이었다. 토토는 알프레도가 자신을 얼만큼 애정했는지 느끼며, 또 그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흘린다.
2. 극장, 본능에 충실해지는 곳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2차 세계대전 직후 1945년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하기 전 상영되는 뉴스를 보면, “국민들이여, 우리의 저항을 기억하라”와 같은 선전 문구가 나온다. 또한 1943년까지 옥살이를 하던 중 무솔리니 체제가 붕괴되면서 석방된 후 레지스탕스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산드로 페르티니’가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이탈리아는 파시즘 체제를 세운 베니토 무솔리니가 몰락한 후라고 볼 수 있다. 무솔리니 때, 영화제작을 늘려 1930년 7편에서 1942년에는 119편으로까지 늘어났다. 늘어난 영화에 따라 그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의 수도 늘어났을 것이고, 영화를 보는 대중 또한 늘어났을 것이다. 더욱 대중화된 극장으로 인해 어른, 아이 불문하고 누구나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시네마 천국》에서도 불타기 전 극장은 아델피오 신부(레오폴드 트리에스테)의 영향력이 강했다. 하지만 로또에 당첨되어 새로운 극장 주인이 된 시치오(엔조 카나발)부터는 검열 대상이었던 키스 장면이 등장한다. 검열 전의 극장과 그 후의 극장 모두 극장 이용자들의 본능이 드러난다. 다만 새로운 극장에서는 성적인 본능이 더해진다. 이전의 극장에서 사람들은 큰소리로 인사를 하거나, 웃거나, 울거나, 뉴스를 시작된다고 하자 휘파람을 부는 등 본능적인 행동을 한다. 시치오가 관리하는 극장은 이전과 다르게 키스, 배우의 노출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그에 따라 관객들은 극장 내에서 자위를 하거나 유사 성행위 또는 매춘을 한다. 이뿐만 아니라 총을 난사하는 장면에서는 실제 권총을 쏴 살인까지 한다.
이처럼 본능에 가까워지는 사람들의 모습은 무솔리니가 영화제작을 늘린 것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실제 우리나라에서도 전두환은 3F 정책을 응용해 3S(Sex, Screen, Sports) 정책을 만들어 우민화 정책을 시도했다.《시네마 천국》에서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은 잠깐 나오는 뉴스도 빨리 넘어가길 원하는 등 그저 자신의 목적이었던 영화 시청에만 혈안 되어있다. 자신들의 목적만을 이루고픈 본능에 가까워진 모습을 보인다. 본능에 가까워지면 한 걸음 뒤에서 문제를 볼 수 있는 비판적인 사고의 힘은 약해지게 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속담도 자세히 살펴보면 본능이 우선되는 상황이다. 금강산이라는 아름다운 대상을 보고자 하는 목적이 있지만 이런 목적보다 먹는 것 즉 기본적인 욕구가 먼저가 된다. 심지어 극장에서는 영화 시작 전 뉴스가 나온다. 무솔리니 통치 체제에서 이 뉴스는 어떤 용도로 쓰였겠는가. 선전용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대한뉴스는 1963년 애국심 고취와 계몽이라는 취지로 극장 동시상영이 의무화되었다. 본능에 가까워지는 극장에서의 뉴스 또는 선전은 사람들이 비판적인 태도로 문제를 바라보는 게 아닌 그저 수동적으로 수용하게끔 할 수 있다.
관객들보다 극장에 더 적극적인 참여를 하는 즉, 극장에서 일을 하는 알프레도와 토토에 대해서도 본능과 연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3. 극장의 일부가 된 알프레도와 영화의 일부가 된 토토
알프레도가 어렸을 때부터 일을 한 곳은 극장이다. 그는 토토에게 말할 때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보다 영화 속 대사나, 장면을 주로 말한다.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그는 토토와 함께 시험을 보기도 한다. 자신이 배우지 못해 영사기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알프레도는 배움의 뜻을 가지고 있다. 필자는 이를 영사기사로서의 삶 다시 말해 극장 부속품으로서의 탈출을 무의식적으로 소망하고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어느 날 필름에 불이 붙어 눈을 잃는다. 영사기사에게 눈을 잃는다는 건 직업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극장 그 자체였던 알프레도의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눈을 잃고 나서 더 잘 보인다고 한다. 극장 영화를 보고 이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보다 본인을 돌이켜보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는 오히려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현혹되지 않는 즉, 본능에만 충실하지 않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알프레도는 장님이 되고 나서 토토와 첫 만남부터 더 넓은 세상에 나가라고, 로마로 가라고 한다. 마지막 토토가 떠날 때는 영화 속 대사가 아닌 본인의 생각을 말한다. 덕분에 토토는 극장 속 영사기사에서 벗어나 영화를 찍는 감독이 된다.
영화감독이 된 토토를 영화에서 벗어나지 못한 토토라는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비록 극장의 일부에서 벗어나게 되었을지라도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란 점 다시 말해 극장이란 테두리에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당시 극장은 본능에 충실해지는 곳, 비판적이지 않은 곳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대중이 본능에 가까워지도록 하는 수단이라고도 볼 수 있다. 토토는 영화라는 카테고리에 수동적인 사람에서 능동적인 사람으로 변화하게 된 것이다. 알프레도가 더 큰 세상으로 가라는 말을 토토가 지킨 걸까. 이는 유명한 영화감독이 된 토토의 현재 상황을 통해 분석해볼 수 있다. 토토가 왜 고향을 30년 동안 찾아가지 못했을까. 알베르토가 있는 고향을 토토는 찾아가지 못했다. 알베르토가 말하는 큰 세상과 영화란 틀 속에서 큰 사람이 된 자신의 괴리감 때문이지 않을까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또 토토는 왜 가정을 꾸리지 않고 수많은 여자를 만나며 정착하지 못한 걸까. 토토의 이런 행동은 현실 도피적인 성향이라 볼 수 있다. 그가 현실 도피적인 성향의 사람이 된 것은 애초에 극장의 일부였던 그가 이미 본능에 충실한 사람이 되었고 그렇게 자란 것이다. 영화감독이 되어서도 여전히 본능이란 큰 틀에 벗어나지 못한, 알프레도가 말한 영화에서 벗어난 더 큰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4. 극장의 변화와 본능으로서의 멀어짐
무성영화 시기 영사기에는 모터가 달리지 않았다. 영사기사는 촬영된 속도와 비슷하게 영사기를 돌려야 했다. 영사기에 모터가 달린 것은 1920년대 후반부터였는데, 이 변화는 영사기사의 일을 덜어주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영상과 사운드가 서로 일치되는 게 중요해진 유성영화 시기가 온 것이다. 일정한 속도로 영사하는 게 중요했기에 모터가 장착됐다. 초반 영사기사는 극장 그 자체였다. 자신의 속도에 따라 영화 흐름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갈수록 발전하는 기술에 따라 영사기사의 극장 내 역할은 줄어들게 된다. 점점 부속품에서 관리자의 역할로 변하게 된다. 영화 그 자체가 아닌 한 걸음 떨어져 있게 되어 있을 수 있게 된 건 기술의 발전으로 가능해졌다.
요즘 코로나19로 인해 영화관에 가지 못한다. 메조미디어(2020)에 따르면, 19년도엔 영화 콘텐츠를 OTT로 관람하는 비율이 45%였지만 올해는 11%p 증가했다. 영화관에서는 쉬는 시간 없이 영화를 쭉 봐야 했다면 OTT 서비스를 이용하면 언제든지 정지 버튼을 누를 수 있다. 또는 10초 전 장면을 다시 보기도 가능하다. 이는 본인의 주체적인 영화 관람이 가능해짐을 말한다. 영화를 주체적으로 보는 것은 다시 말해 본능에 한 발짝 물러나 있는 태도를 말한다. 영화관에 비해 영화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고도 볼 수 있다.
영화관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영화를 보는 사람 모두 기술의 발전에 영향을 받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영향은 본능과 연관된 것이고 기술의 발전으로 본능에 충실해지는 사람이 아닌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었다. 다만, 여기서 다시 짚어봐야 할 점은 그저 환경만 조성되었다는 점이다. 마련된 환경이지만 본능에 충실한 사람도 당연히 있을 것이고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극장 초기엔 대다수 사람이 본능에 가까워질 수밖에 시스템이었지만 갈수록 그렇지 않은 시스템으로 나아가고 있단 점을 이번 감상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