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끄적거림 13화

현대판 ‘기계 장치에 의한 신’, 결혼

―정세랑, 『옥상에서 만나요』―

by 무기명

1. 기계 장치에 의한 신

정세랑의 『옥상에서 만나요』를 읽으며 맨 처음 떠오르는 단어는 ‘기계 장치에 의한 신’이었다. 오래전 문학론 수업에서 들은 저 단어가 왜 생각이 났을까. 본론에 앞서 ‘기계 장치에 의한 신’에 대한 의미를 다시 살펴보고자 한다. 라틴어로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불리는 ‘기계 장치에 의한 신’은 어떤 상황이나 사건을 불시에 반전시키는 신들의 개입을 총칭한다. 호메르스의 『일리아스』에서 쓰인 ‘기계 장치에 의한 신’ 사례를 보겠다. 아킬레우스와 아이네이아스의 대결에 포세이돈이 개입하여 아킬레우스의 눈을 안개로 가리고 아이네이아스를 전선 후방으로 옮겨놓는 사건이 대표적인 예시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신의 개입은 막강하다. 구원자이자, 플롯의 결말을 명확히 제시할 수 있는 장치이다. 당시 시대적 배경으로 보더라도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 힘든 시대이다. 철학에서도 최종 논리가 신의 존재와 엮어진 경우가 종종 있다. 이 논리를 거부하게 되면 신의 존재를 거부하는 것이 되어 버려 당시로서는 반론할 수 없는 최강의 논리로 받아들였다. 비극의 플롯에서 ‘기계 장치에 의한 신’을 위와 같은 장치로써 활용한 작가는 대표적으로 에우리피테스이다. 이를 비판한 희극 시인 안티파네스의 지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를 때,

드라마를 완전히 포기하게 되었을 때,

마치 손가락처럼 기계를 들어올리고

그러면 관객들은 만족한다.

안티파네스는 ‘기계 장치에 의한 신’을 일종의 도피처라고 말했다. 이런 비판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이를 현대에서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어려운 상황 속 구세주가 등장하는 플롯이거나 가난한 삶에 지친 사람이 로또에 당첨된다든지 등 다양한 의미로 다시 활용할 수 있다. 필자가 생각했을 때, 정세랑의 『옥상에서 만나요』에서도 ‘기계 장치에 의한 신’이 이러한 장치로써 이용되고 있다. 어떤 부분에서 ‘기계 장치에 의한 신’이 등장하고 있는지, 실제 의도와 말하고자 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분석하고자 한다.


2. 『옥상에서 만나요』에서의 ‘기계 장치에 의한 신’

주인공인 ‘나’는 여성이고 직장인이다. 그녀는 가끔 옥상에 올라온다. 그리고 생각한다. 점프하는 생각. 그 점프는 자살만을 의미하고 있지 않는다. ‘나’는 “초코 바나나 타르트, 블루베리 슈크림 (…) 하지만 설탕조차도 내가 점프를 생각하는 걸 멈추게 할 수 없었다. 달고 신 것으로 녹일 수 없는 나쁜 생각들이 있잖아.”(92쪽) 라고 한다. 필자도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면 ‘당 떨어진다.’라고 늘 말한다. 초콜릿을 챙기거나 사탕을 먹으며 다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가 말한 ‘나쁜 생각들’은 자살을 해야 풀릴 것 같은 그런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옥상에서 점프해야 떨쳐낼 수 있는, 아니 그래야만 해결되는 감정에 가깝다. 일종에 점프는 해방감이란 의미와 가까워보인다. ‘나’는 “대개의 날엔 난간에 다가서는 대신, 주변 다른 빌딩의 옥상에 올라오는 사람들을 바라보곤 했어. 마치 바다 한가운데에서 마주친 선원들처럼 손을 흔들고 싶은 마음이었지.”(93쪽) 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아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누군가와 감정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 옥상에 올라온 누군가는 ‘나’가 옥상에 올라올 수밖에 없었던 그 감정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나’의 꾸덕한 시선을 느꼈는지 얼른 자리를 피한다. ‘나’는 다시 외로워진다.


‘나’가 이토록 텁텁한 감정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옛 직장에서 최 피디는 “너 나랑 내 러시아 여자친구랑 한번 안 만날래?”(93쪽) 라고 말하며 쓰리섬을 제안한다. 그렇지만 ‘나’는 화도 내지 못했고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수는 고개를 돌리며 방관한다. 유명 스포츠신문의 광고사업부에서는 회사 임원들 접대가 끊이지 않았다. 이처럼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는 차곡차곡 체내에 쌓여간다. 곧 있으면 넘쳐흐를 듯 그 적정선을 유지하면서. 설상가상 회사에서의 문제뿐만 아니라 집안에서도 여러 문제가 있다. “아빠는 혈액 투석을 매주 세 번 받아야 하고, 아빠를 돌보는 엄마는 류머티스 관절염으로 고생 중이고, 그런 부모님과 함께 사는 남동생은 아무리 봐도 우울증인 거 같았어. 나는 가족 중에 유일한 경제인”(95쪽) 이처럼 그녀는 회사를 관둘 수 없는 환경에 살고 있다. 옥상 난간에서 뛰어내리지 않는다면, 오직 그것만이 그녀의 고통을 없애줄 해결책일 수 있다.

다행히도 그녀 주위엔 언니들이 있다. 감정을 터놓을 수 있는, 무서운 감정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언니들이 떠나기 시작한다. 결혼으로 고통의 생산지이자 근원지인 회사를 하나둘씩 탈출하고 있다. 남은 사람은 나뿐이고, 땀샘이 막힌 듯 분출되지 않는 고통은 계속 쌓여간다. 그러다 결국 ‘나’는 예진 언니에게 말한다. “―셋 다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결혼해버린 거야? 나 빼고 미팅이라도 나갔던 거야?”(97쪽) 다음 주가 되어 예진 언니에게 돌아온 답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주문서’였다. 『규중조녀비서』라는 제목의 그 책은 여러 주문이 적혀져 있었다. 언니들은 『규중조녀비서』 덕분에 결혼을 하게 된 것이고 회사를 탈출할 수 있었다. 회사를 탈출한 언니들은 “이러니저러니 해도 둘이 합쳐 살면 집에서 훌라후프 정도는 돌아가니까, 숨이 쉬어지더라고. (…) 한 명씩 탈출해서 더 나은 회사로 갔지. 월급 수준이 낫거나 분위기가 낫거나 하다못해 통근시간이라도 나았어. (…) 언니들의 얼굴에 처음 보는 윤기가 돌았으므로 무척 부러웠어. (…) 언니들은 금연하고 필라테스를 배우고 여행을 갔어.”(97쪽) 언니들은 결혼 덕에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결혼이란 것이 『규중조녀비서』에서 제시한 해결책이었다. 숨이 쉬어지지 않는 현실이란 플롯에 구세주로서의 결혼은 현대판 ‘기계 장치에 의한 신’으로 볼 수 있다.

10명 중 8명은 직장 내 성차별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에서 바꾸고 싶은 성차별 말과 행동으로 ‘결혼, 출산, 육아’ 관련 내용이 21.5%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많은 직장인이 성차별을 겪고 있는 현실이고 ‘결혼, 출산, 육아’ 관련해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옥상에서 만나요』는 많은 직장인의 스트레스 근원인 ‘결혼’을 ‘기계 장치에 의한 신’과 같은 장치와 같은 해결책으로서 제시하고 있다. ‘나’의 지인들이 결혼을 통해 고통 그 자체였던 회사를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비현실적인 『규중조녀비서』를 통해서만 현실을 벗어날 수 있단 사실을 꼬집었다. 하지만 ‘나’에게서는 『규중조녀비서』가 특별하게 다가온다. ‘나’에게는 언니들과 다른 의미의 결혼을 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3. 주인공 ‘나’에게 『규중조녀비서』의 의미

언니들에게 『규중조녀비서』의 결과는 남자라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결혼이었다. 하지만 ‘나’의 결과는 달랐다. 본능적으로 남편임을 깨달았지만, 사람인지 외계인인지 구분조차 못 할 ‘그 무엇’과의 만남이었다. ‘나’는 『규중조녀비서』를 해결책으로 생각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변화를 원했어. 탈출을 원했어. 계급 상승을 원했어. 그 모든 것의 답이 결혼이 아닌 줄 알면서도.”(102쪽) 하지만 남편이라 불리는 ‘그 무엇’은 특정한 직업이 없는, 돌아오는 대답이 없는 대상이었다. 남편의 첫 말은 “……망.”(105쪽) 이었다. ‘나’는 이를 ‘멸망’으로 인식했다. 아니 그렇게 인식할 수밖에 없었다. 비정상적인 남편을 만난 ‘나’는 앞으로도 회사를 떠나지 못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오직 ‘나’에게는 『규중조녀비서』가 ‘기계 장치에 의한 신’이란 장치의 오류가 발생했다. 결국 ‘나’는 유일한 감정 표출 대상이었던 언니들과의 관계도 끊게 된다. “언니들과 연락을 끊었어.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지만 말야, 당시에는 견딜 수가 없었거든.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은 언니들이 번갈아 전화를 걸고, 찾아오고 했지만 감당할 수가 없었어. 뿐만 아니라 본가 가족들과도 교류를 최소화했어.”(107쪽) 이제 ‘나’는 막힌 땀샘 위에 땀복을 입고 사우나에 앉아있는 꼴이 되었다.


직장은 계속 다녀야 하고, 스트레스는 계속 쌓이고 있다. 어쩌면 옥상 난간에 기대어 시원한 활강을 할 날이 다가오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다 남편의 첫 움직임을 감지한다. “남편이 두 손을 뻗어 내 머리를 감싼 것은. (…) 남편이 고개를 숙여, 입술이라고 생각되는 축축한 구멍을 내 정수리에 밀착시켰어. (…) 일제히 뭔가를 빨아올리기 시작했지.”(109쪽) 다음 날 몸이 가뿐해진 ‘나’는 새로 태어난 것처럼 개운해했다. 남편은 막힌 땀샘을 뚫어주듯 체내에 쌓인 ‘절망’을 빨아들인 것이다. 덕분에 ‘나’는 “오랜만에 절망 프리한 상태로 출근을 했지. 저녁이면 미량이 다시 몸속에 쌓이겠지만 더는 두렵지 않았어.”(110쪽) 라며 설렘 가득한 첫 출근처럼 절망 없는 상태로 리셋 된다. 그동안 이리저리 남자들에게 치인 그녀에겐 『규중조녀비서』는 남자와의 결혼이라는 해결책보다 ‘나’의 절망을 제거해줄 ‘그 무엇’을 제공한 것이다. 어쩌면 ‘나’는 결혼을 원한다기보단 옥상에 떨어져야만 해결될 수 있을 것만 같던 ‘절망’을 제거해줄 대상이 필요했던 것이라 볼 수 있다.

결국 ‘나’도 남편이라 불리는 ‘그 무엇’ 덕분에 회사에서 탈출하게 된다. 그녀가 선택한 직업은 상담심리학이다. 도구로 전락한 남편을 활용해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준다. ‘나’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경계하는 아이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음, 그거, 명상을 도와주는 장승이야.”(114쪽) 이후 아예 남편을 동상처럼 이용한다. “조경 비용을 하나도 들이지 않은 옥상은 풀 한포기 없이 주먹만 한 자갈들만 가득 깔아놓아 휑했는데, 남편을 거기 세우자 그래도 좀 보기 나았어.”(114쪽) 이렇게 『규중조녀비서』를 통해 얻은 남편을 도구화한 ‘나’는 본인의 소망이었던 절망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고, 이런 삶을 지속하기 위해 동시에 남편이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남의 절망을 덜어주며 살게 된다.


4. 지금, 여기 ‘너’와 ‘나’란 존재에 대해서

『옥상에서 만나요』에서 주인공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가 옥상에서 다른 빌딩 옥상을 향해 “지금 나는 너에게 손을 흔들고 있어.”(93쪽) 라고 말한다. 여기서 갑자기 언급된 ‘너’란 존재와 아무런 성별에 대한 정보도 없는 것이 ‘나’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에서 ‘나’와 ‘너’는 지금을 살아가는 너와 내가 될 수 있다. 이런 독자의 대입 가능성을 위해 주인공의 이름을 설정하지 않았고 ‘너’의 성별이 무엇인지, 누구를 지칭하는지 자세히 언급하지 않았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소설의 말미 부분에 ‘너’가 다시 언급된다. “하지만 너는, 내 후임으로 왔다는 너는, 아마도 그 옥상에 자주 가겠지. (…) 그저, 『규중조녀비서』를 받을 사람이 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뿐이야. 너는 분명 울 테고, 운다면 비가 들지 않는 가장 안쪽의 에어컨 실외기 위에 앉아 울겠지. (…) 옥상에서 만나, 시스터.”(115~116쪽) 소설 서두에 언급된 ‘너’와 말미의 ‘너’의 대상의 범주는 엄밀히 말하면 다르다. 전자의 ‘너’는 넓게 보면 ‘나’와 같은 고충을 겪고 있는 직장인 모두를 지칭한다고 볼 수 있다. 후자의 ‘너’는 전 직장에서 ‘나’를 대체할 사람. 그동안 겪었던 절망을 겪을 여자이다. ‘나’는 ‘너’가 그 절망 생산지인 곳을 탈출할 수 있게 다 준비를 해놓았다. “너의 귀걸이나 반지, 라이터나 전화기 같은 게 떨어져서 그 밑으로 들어가면 좋을 텐데. 밑면에 내가 방수 처리를 해서 붙여놓은 편지와 비서를 발견할 수 있게.”(115~116쪽) ‘너’도 곧 알겠지만, 그곳을 빠져나오기 위한 해결책은 오직 『규중조녀비서』 뿐이니까.


5. 결혼이 답인 현실인가

결국 결혼뿐인가. 주인공과 언니들은 모두 결혼을 통해 지긋지긋한 회사를 옮기거나 그만둘 수 있었다. ‘나’를 제외한 언니들에게 명확하게 ‘기계 장치에 의한 신’은 결혼이었다. 사지 멀쩡한 남자를 대상으로 한 결혼. 하지만 ‘나’에게는 엄밀히 말하면 언니들이 한 결혼이란 범주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사람이 아닌 ‘그 무엇’과 결혼을 한다. 사실 결혼이라 말하기도 애매하다. 단지 ‘나’는 ‘그 무엇’을 남편이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 명목상 결혼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옥상에서 만나요』에서 언니들이 회사에서 남자들에 의해 고통을 받는 이야기는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주인공인 ‘나’의 고통은 샅샅이 드러난다. 정세랑은 섬세하게 장면을 서술하며 독자로 하여금 ‘나’의 고통을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남자로부터의 고통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언니들은 ‘기계 장치에 의한 신’이란 장치의 결과는 남자와의 결혼이었다. 그 이후부터 얼굴에 윤기가 돌고 일이 복지가 좋은 회사로 옮길 수 있게 된 점이 씁쓸하다. 반면 비교적 남자로부터의 고통이 있었던 ‘나’의 ‘기계 장치에 의한 신’은 ‘그 무엇’과의 만남이었다. 머리를 짧게 자르며 스스로 강해지고자 했던 ‘나’는 남자로부터의 고통을 남자로 해결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짧은 머리를 유지한 채 ‘그 무엇’을 활용해 새로운 직장을 구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옥상에서 만나요』에서 그녀가 새로운 삶을 살게 해준 『규중조녀비서』는 비현실적인 요소이다. 정세랑은 누구나 주인공으로 이입할 수 있게 한 ‘나’란 설정과 서두와 말미에 언급한 ‘너’를 통해 독자에게 감정의 교류와 말을 걸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직장을 다니고 있는 ‘너’는, 은연중 성차별을 당하고 있는 ‘너’의 현실은 어떠한가. 『규중조녀비서』를 구할 수도 없다. 내일이면 다시 그 절망을 채울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 주인공인 ‘나’는 ‘기계 장치에 의한 신’ 덕분에 새로운 삶을 찾았지만, ‘너’는 그대로일 것이다. 정세랑이 이런 비극적인 현실에 대해 우리 모두가 씁쓸함을 느끼게 할 의도로서 ‘기계 장치에 의한 신’이란 장치를 활용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런 텁텁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건 우리니까. 씁쓸함을 느껴야 하는 것도 우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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