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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Mar 31. 2022

비타민 씨앗이 자라는 중

 사무실 서랍에 건강을 심어두었다. 창가와 거리가 먼 자리, 모니터가 뿜어내는 건조한 빛. 이 정도면 선인장조차 말라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햇빛이 필요했다. 탁 트인 경치를 봐야 했다. 겨우 생각한 대안은 점심시간 산책, 주말 야외 운동이 아닌 비타민이었다. 비타민을 샀지만 내 의지로 이걸 먹는 날도 있다니 낯설었다. 비타민은 늘 누군가가 챙겨줘야 먹는 거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챙겨야 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가까운 지인에게 홍삼을 선물하거나, 비타민을 챙겨주는 게 점점 익숙해진다.


 아침마다 한 알 한 알 씨앗을 삼킨다. 건강을 품고 있는 씨앗. 사실 그 행방과 효능은 묘연하다. 비타민 포장 겉면을 보고 짐작할 뿐. 루테인은 눈 근처에, 오메가3는 혈관 곳곳에, 비타민C는 피부 속에 뿌리내리고 있다. 매일 먹어줘야 하는데 어쩔 땐 귀찮아서 넘기고, 커피를 마셔야 하니 안 먹고, 종종 까먹는다. 그래서 그런 지 1년째 발아 상태. 언제쯤 푸른초록한 이파리와 꽃의 정점을 볼 수 있을지. 아님 이미 새싹이 피었을 수도 있다. 역시 비타민은 약이 아니었다. 피로, 노화란 증상을 완치할 순 없을 것이다.


 사실 그걸 바라고 먹진 않는다. 단지 걱정을 비우기 위해 비타민을 채운다. 우리에게 필요한 비타민은 자연에 있다는 상투적인 말이 있다. 밖에서 놀고 오라는 20년 전 어머니의 말이었다. 이젠 그녀도 수많은 종류의 비타민을 먹고 있다. 자연이 주는 비타민을 먹고 싶다. 수요일 오후 1시의 비타민을 먹고 싶다. 원하는 시간에 마음대로 산책, 운동할 수 있던 날이 그립다. 선크림을 매번 발랐던 날들. 유통기한이 가까워지지만 묵직한 선크림 표면의 먼지를 털어낸다. 어느새 선크림은 미백 기능이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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