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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Apr 13. 2022

휴일에 드라마와 과자 정주행 하기

 요즘 드라마에 빠졌고 감정 몰입도 제대로다. 내가 원하는 행동이나 대사를 미리 생각한다. 그 짤막한 대사를 주인공이 내뱉을 때의 쾌감은 돌덩이 같던 나를 수준급 리액션을 가진 사람이 되게 한다. 한 번은 지하철을 타고 출근 중 드라마를 보는데 꽤 슬픈 장면이 있었다. 글쎄 내 감정은 사막에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오아시스를 글썽이더라. 순간 당황해 넷플릭스를 끄고 엄근진해지는 뉴스를 봤었다. 문학 관련 전공 교수님 썰이 생각난다. 지하철에서 웹툰을 보고 울컥해 몰래 눈물을 훔치는데 주위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봐서 그냥 내렸다는. 나도 한때 그 썰을 듣고 웃기만 했는데...


 휴일에 드라마 정주행을 하고 싶단 사람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온전히 드라마만 만나지 않는다. 좋아하는 과자와 맥주 한 캔. 영화나 드라마 정주행 할 땐 눈과 귀만 즐거우니까. 얼굴이라는 동네에 다 같이 살고 있는데 그 둘만 즐겁다는 건 입과 코가 외로울 수 있으니까. 과자를 먹는다. 입을 즐겁게 해주려다가 바삭바삭한 소리에 귀는 대사 들으랴 바삭 소리 들으랴 정신없이 들뜬다. 밀봉되어 있던 과자의 향은 질소의 탄성에 힘입어 달콤매콤한 향을 은은하게 퍼트린다. 과자는 역시 과학이다. 질소 함유량이 높은 이유는 코를 자극하기 위한 일종의 향기 마케팅을 계산한 게 아닐까.


 우리의 손이 빨라지는 시간이 있다. 빨라지면서 똑똑해지는 날. 평일에 업무를 하는 용도의 손과 비교할 수 없이 스마트한 손. 휴일에 과자와 맥주를 즐기며 넷플릭스를 보는 시간. 왼손은 핸드폰과 눈의 적정거리를 지키며 닭 모가지처럼 흔들림에 유연한 상태를 유지한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굳건할 것 같은 왼손과 달리 오른손은 꽤나 유연하다. 이미 과자와 맥주를 세팅했고 최대한 가루를 덜 묻혀 깨끗한 침대를 유지하는 미션을 상기한 채 빠르게 과자와 입을 오간다. 업무를 과자 먹듯이 해야 하는데;; 역시 사람의 멀티태스킹은 선택의 영역이었다.


 어느 뉴스레터에서는 콘텐츠를 소개하면서 마지막엔 함께 먹으면 좋을 과자를 추천해준다. ‘2호선 세입자’라는 연극을 소개하면서 “가지각색의 사람들을 태우고 서울 곳곳을 누비는 2호선처럼, 알록달록 다양한 채소가 들어간 매력적인 봉지 과자야.”라고 하는 식이다. 휴일에 할 게 생겼다. “또 오해영”과 어울릴 과자를 먹으며 정주행 하기. 자기 속마음에 솔직하고 순수한 그냥 오해영과 무뚝뚝하고 까탈스럽지만 그냥 오해영만 생각하는 박도경. 꼬일 대로 꼬인 상황에 처했지만 서로에 기댄 채 꾸역꾸역 살아가는 모습은 어떤 과자와 어울릴까. 어쩌면 바삭한 과자보다는 꾸덕한 쿠키가 어울릴 수도 있겠다. 명쾌하게 해결되지 않는 상황과 관계는 바삭거리기 힘들다. 한 입 물었을 때 마닐마닐한 꾸덕함이 필요하다. 다 먹고 나서도 입안에 남아있을 것 같은 그런 기분. 이번 휴일엔 ‘쫀득 초코칩’을 먹으며 정주행을 마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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