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기명 May 18. 2022

인생 영화

 “최근에 개봉한 그 영화 봤어?” 영화는 스몰토크에 꽤 쓸만한 소재다. 조용하다 싶을 때면 거대한 배우 라인업을 자랑하는 블록버스터 영화나 실력 있는 감독의 작품 등의 예고편이 터진다. 더군다나 영화 관련 짤이나 밈이 생성되는 건 이제 마케팅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으니 영화를 늦게 보면 손해라는 생각까지 든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대개 영화 관련 이야기를 하게 되면 상당히 가벼워진다. 표면적이다. 그저 사실 확인하는 정도로만 전개된다. 끝맺음은 항상 이렇다. “나중에 그 영화 봐야겠다!” 그렇게 영화와 관련된 대화는 증발된다.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인생 영화가 무엇인지는 그 사람의 취향, 가치관을 투영시키기도 하니까. 그래서 그런지 영화 평론은 진지하다. 아마 평론의 시초는 자기변호일 테다. 가령 이런 대화이지 않을까? “나 이 영화 좋아해. 왜 좋아하냐고? 영화를 자세히 봐봐. 우스꽝스러운 BGM이라도 주인공을 로우 앵글로 고 있고 그 주위 미장센을 이해하면 전혀 웃기지 않을걸? 그래 내가 그 포인트에서 이 영화를 좋아하는 거야.” 좋아할수록 변호하게 되고 세심해진다. 원래 좋아할수록 덕후가 되는 거니까.


 내가 세심하고 뚫어지게 본 영화는 대체로 글루미하다. 한창 독립영화의 톤을 좋아했을 때도 있었다. 영화를 본다는 게 멍 때린다는 느낌과 비슷했기에. 생각이 많은 시기였고 그래서 멍이란 행위를 대놓고 할 수 있는 독립영화를 좋아했다. 그 시기 쯤 인생 영화를 보게 되었다. 미학 교수님이 추천해 주신 ‘글루미 선데이’였는데 5번 돌려 봤나. 필요할 때만 나오는 음악과 효과음. 지나치게 긴 장면. 화려한 CG 없는 순수한 영상. 한 번은 주인공의 표정에 집중하고 다른 날은 주변 배경을, 또 다른 날은 복합적으로. 이목을 끄는 인위적인 장치가 없는 장면들을 온전히 내 주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다. 아무런 잣대 없이 막무가내로.


 책 읽듯 영화 보는 걸 좋아한다. 어느 기사에서 스트레스 해소법 1위는 독서라고 했다. 왜 그런지 알 것 같다. 초반에만 집중하면 어느 순간 차분해지고 생각이 정리된다. 결국 스트레스의 원인이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란 게 와닿는다. 이런 무(無)에 가까운 마음이 내가 차분한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다. 다시 말해 책 읽듯 볼 수 있는 영화. 점점 몰입하는 걸 방해하지 않고 블랙홀로 압축되듯 쏘옥 그 장면에 이입할 수 있는, 그런 느낌을 즐기고 있다.


 직장동료가 범죄도시2를 봤는데 꼭 보라고 한다. 손석구도 나오고 범죄도시1보다 더 재밌다고 하더라. 반응을 제대로 못했다. 마스크 속 입이 움찔움찔했다. 결국 “아 그거 개봉했구나~” 얼버무렸다. 지극히 표면적인 리액션을 했다. 이번에도 마동석이 짧고 굵은 액션으로 범죄를 소탕하는 내용이겠지? 툭툭 치는 잽의 재미와 특유의 코믹을 즐기는 것도 영화 보는 맛이니까. 나 혼자 분류를 한다. 이 영화는 친구들이랑 같이 볼 영화라고. 영화관에서 혼자 보고 싶은 영화가 개봉하길 기다리고 있다.


 기대된다. 먼지 쌓인 침묵 아래. 그것도 합의된 침묵 속에서 오로지 스크린 불빛에게 그날의 감정을 맡길 수 있다는 것이. 불빛들은 내내 동요하지만 다시 말해 나의 감정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이지만, 침묵으로 누구보다 명쾌한 조언을 해준다. 간섭 없는 조언을 해주는 유일한 존재다.

이전 20화 휴일에 드라마와 과자 정주행 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