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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명 May 28. 2022

나와 회사의 룩앤필

 연남동과 홍대는 바로 옆에 붙어있지만 사람들의 룩앤필은 다르다. 연남동은 컨템포러리룩이 비교적 홍대보다는 눈에 띈다. 하얀 아우라를 뿜어내는 사람들이 연트럴파크를 지나고 있다. 홍대는 빈티지적인 매력이 다분하다. 한껏 레이어드 된 그들의 룩은 여름이라도 옷의 단층을 거부하고 있다.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는 골목의 빨간 벽돌 그림자에 쪼그려 담배 피고 있다. 물론 내 선입견일 수 있다. 연남동엔 와인바를 마시러, 홍대엔 소주를 마시러 가니까. 충분히 색안경을 끼고 있을 수 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저 홍대 사람의 자유로운 룩을 입고 회사에 출근할 수 있을까? 아무리 광고회사라곤 하지만 아무리 막내라곤 하지만. 물론 점심시간 화장실에서 양치를 할 때 옆에서 느껴지는 시선들은 각오해야겠지만 불가능할 것 같진 않았다. 적어도 지난주까지는... 최근 윗분의 지령이 있었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본인의 룩앤필을 잘 가꿔야 한다.’ 웃으면서 말씀하시길래 웃으며 까먹었다. 기획팀의 다른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본인이 한 이야기를 꽤 자주 상기시켰다고 했다. 그제서야 대리님의 신발이 바뀌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헤어스타일도.


 룩앤필. 분명 중요한 건 맞다. 그 척도가 본인에게 맞춰져 있다면 룩앤필을 중시하는 생각은 꽤 멋있는 것이다. 오직 본인만 알고 있는 본인에 대한 정답을 알고 있으니까. 윗분의 척도에 우리들의 룩앤필을 맞추면 상당히 큰 비약이 생긴다. 아빠 옷을 입은 어린아이처럼 보일 텐데 멋있을까. 흉내 내는 멋은 멋있기 힘들다. 버거울 것이다. 본인에 대한 자신감도 떨어진다. 늘어나는 부담감에 줄어드는 어깨 힘에 룩앤필의 레이아웃을 만들어주는 옷 핏은 쭈그러진다. 그렇게 광고회사 사람들의 멋은 단일화된다. 등번호 없는 유니폼을 입은 듯.


 평소 COS나 STUDIO TOMBOY란 브랜드를 좋아한다. 깔끔한 옷이지만 가끔 유니크한 포인트가 있어서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내 룩앤필을 포장해 주는 브랜드인데 당분간은 못 갈 것 같다. 물론 탈회사룩은 아니지만 윗분들의 눈에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까… 그래도 사회생활은 해야하지 않나. 그래서 백화점에 갔다. 평상시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영캐주얼부터 모든 층을 구경하지만 이번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남성패션 또는 컨템포러리패션이 있는 층으로 직행했다. 이로써 내 의류에 대한 소견과 활동성의 범위는 벌써 축소되었다.


 사실 백화점에 자주 안 갔다. 모두들 알다시피 친절한 점원이 부담스럽다랄까. 명동 롯데백화점에 입점한 BEAKER에 갔었다. 한남동에 있는 BEAKER의 점원은 손님에게 관심이 없었기에 그곳을 1순위로 갔다. 백화점은 백화점이었다. 점원분들이 백화점화가 되었단 건 몰랐다. 이것저것 옷을 둘러보는데 판옵티콘처럼 우뚝 서있는 점원분이 계셨다. 맘에 드는 블레이저가 있어 다른 사이즈가 있는지 물어봤다. 점원분은 밝게 웃으며 “사이즈가 있고 이 비슷한 결의 다른 옷들도 있는데 보여드릴까요?”라고 한다. 이때는 당황하진 않았다. 감사하다고 하며 옷을 받고 탈의실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블레이저를 쫘악 펼쳤다. 투우사가 네모난 깃발을 쫘악 펼치듯. 저절로 손이 안감을 향해 갔다. 다른 직원까지 옆에 와 조언을 준다. 다른 블레이저도 추천해주고 옷을 입혀준다. 맘에 드는 게 있었지만 그냥 옷 사진만 찍고 나왔다. 다른 매장도 둘러봤지만 결국 빈손으로 백화점에서 나왔다.


 윗분이 말하는 룩앤필엔 이런 부담스러운 역경을 이겨내라는 메시지가 내포된 것일까. 언제나 내가 원하는 대로 상황이 펼쳐지지는 않으니까. 본인의 성향이 아니더라도 이겨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하고 싶다. 물론 백화점에 가진 않겠지만 이런 소략적인 깨우침을 느꼈으니까. 이걸로도 내 룩앤필의 변화가 생기지 않았을까. 사회생활을 이처럼 자기합리화로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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