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살이 좀 찐 것 같아. 야식을 너무 많이 먹었나, 아니면 활동량이 적어서 그런가. 맥주는 포기 못 하겠고. 굶어서 빼는 것도 한계가 있으니 좀 걸어야겠어.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맥주에게 절교를 선언하면서 말이다.
생각이 많아지면 귀찮아지는 법이니까. 다음 날 마음먹고 문을 막차며 집을 나섰다. 어느 길로 걸어야 할까. 이사 온 지 꽤 된 것 같은데 아직 익숙하지 않은 동네는 낯설었다. 전날 인터넷으로 찾아본 지도를 그렇게나 열심히 봤는데도 초행길은 나에게 복잡하게 느껴졌고 두 번 길을 잘못 들어 가까스로 골목을 돌아 다리 밑 자전거 도로에 도착했다.
유독 해가 강한 날이었다. 그럼에도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사람들, 앞만 보고 걷는 사람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
그들을 따라서 부지런히 걸었다. 등줄기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오래간만에 만난 땀방울과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부딪혀 하늘로 날아갔다.
그렇게 걷다 보니 저 멀리 낮은 그림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빠르게 달리는 자전거를 피해 왼쪽으로 바짝 붙어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뜨거운 햇빛을 피하기 위해 가녀린 몸을 우산 속에 숨기고서.
그림자와 나의 발걸음이 닿았다.
그리고 나는 심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우산 속 감추어진 비쩍 마른 몸과 단정하게 정돈된 센 머리칼.
바깥으로 심하게 휜 다리는 구부정한 허리를 떠받고서 바쁘게 움직였다. 그녀의 동그랗게 휜 다리를 보고 단번에 알아챈 건 평생 쭈그리고 앉아 밭일을 한 나의 할머니와 같은 다리여서였다.
할머니는 부지런히 걸었다.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봤다. 그러자 주름지고 단단한 옆얼굴은 말했다.
"치매에 걸리고 싶지 않아. 내 앞가림 내가 하고 싶고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그리고 요양원은 절대 가고 싶지 않아. 가는 날까지 내 두 다리로 걷고 싶어."
이어 우산을 든 비쩍 마른 손목은 전했다.
그녀는 자식 농사를 위해 한 몸 바쳐 흙과 함께 세월을 보냈노라고 말이다. 배고프고 힘들던 시절 자신의 주린 배를 채우기보다 어린것들이 먹는 걸 보며 자신의 배를 달랬고 추운 겨울에도 부르튼 손을 시린 물속에 넣고 설거지와 빨래를 했다고. 수없이 반복된 호미질로 손가죽은 두터워졌고 무릎은 제힘을 다 잃었다고. 본인의 옷은 허름하게 입어도 아이들 신발은 깨끗하게 빨았고 부족한 살림임에도 최선을 다해 뒷바라지했다고 말이다.
그리고 늘 자신이 해준 건 아무것도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그녀의 다리를 보며, 그 굽은 등선을 보며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그녀의 곁을 지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