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보리밥

에세이_봄은 따로 오지 않는다 18

by 김초아

결혼하기 전 부모님과 같이 살 당시, 엄마는 출근을 했고 아빠가 쉬는 날이면 둘이 함께 점심을 먹었다.

그 시간이 참 좋았는데.

무얼 먹을까 같이 고민하면 꼭 둘 중 하나.

아빠가 해 준 김치볶음밥 아니면 보리밥집에 가기.


"아빠! 보리밥집 가자."

고슬한 보리밥에 여러 나물을 넣고, 고추장을 넣는 아빠와 구수한 된장찌개를 서너 숟갈 넣는 나.

슥슥 비벼서 먹으면 그렇게 맛있고 든든했다. 짭조름한 고등어 올리고 한 입, 자박한 된장찌개 한 입, 아삭한 김치 올리고 한 입.

젊었어도 밥이 좋았던 내 입맛과 돈가스, 피자, 스파게티는 단칼에 거절하는 옛날 사람 아빠와의 공통점은 늘 보리밥이었다.


그날도 늘 그랬듯 보리밥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아빠의 반응이 영 미지근하다. "아빠, 왜?"

"딸. 사실, 아빠 보리밥 별로 안 좋아해."

"... 엥? 만날 같이 먹었잖아. 안 좋아했어? 그걸 왜 이제 이야기해!"


충청도 시골 마을에서 2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난 아빠.

할아버지가 동틀 녘에 소 밥 주러 갈 때 태어났다는 부지런한 아빠.

집주변엔 논과 밭뿐이었다. 교과서에서 농촌의 모습을 소개하는 사진으로 나올 법한 그 정도의 시골 마을에서 농부의 아들로 아빠는 나고 자랐다.

그 시절엔 정말 먹을 것이 별로 없었다고 한다. 만화 '검정 고무신'에 나오는 보릿고개가 실제로 존재했고 늘 먹던 것은 감자, 고구마, 보리밥.

질리고 물리고 쳐다보기 싫을 정도였지만 배가 고프니 먹었다고 한다.


손도, 키도, 풍채도 큰 나의 할아버지는 외모와 같이 불같은 성격을 지녔었다.

한번은 원래 타고나기를 심한 곱슬머리인 아빠가 학교 선생님에게 혼나고 온 일이 있었다. 이유는 파마를 하고 온 줄 선생님이 착각했던 것 때문이라고. 그 소식을 들은 할아버지는 다음날 학교로 찾아가 교무실 책상을 다 엎으셨다고 한다.

그렇게 아빠를 아끼던 할아버지와 아빠가 한번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아빠가 중학교에 가고 싶다고 해서 말이다.

학교는 뭐 하러 가냐, 그것까지는 형편이 어렵다, 농사 배워 함께 일하자는 할아버지에게 아빠는 학교에 꼭 가고 싶다고 했다고 한다.

고집을 꺾지 않은 아빠는 오래 된 가방 둘러메고 비가 오나 거센 바람이 부나 한 시간을 걸어 학교에 가고, 다시 한 시간을 걸어 집에 돌아오기를, 6년을 그렇게 걸었고 고등학교까지 졸업을 했다.

두 여동생들도 오빠 따라 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는 바람에 총대 메고 할아버지와 담판을 지어 막내 고모는 대학까지 갈 수 있었다.


그 시절의 보리밥.

가난이 서럽고 지긋지긋해 공부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했다던 아빠.

사이버 대학을 너무 가고 싶었지만 일이 바빠 못 간것이 참 아쉽다는 아빠.

그런 아빠가 어린 시절 학교를 마치고 와 먹었을 보리밥은 밉지만 유일하게 배고픔을 달래 주었던 애증의 음식이지 않을까.

그날 이후로 아빠에게 보리밥을 먹으러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여태 싫어도 내색 한번 없이 같이 가준 아빠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라.


오래 전 할아버지네 놀러 갔다 우연히 아빠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본 적이 있다. 까만 곱슬머리에 동그란 눈.

지금은 흰머리가 더 많은 할아버지가 된 나의 아빠.

난 어딜 가나 아빠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듣는다. 특히 눈이 말이다.


조만간 아빠를 만나면 아직도 보리밥이 싫은지 물어보고 싶다.

그래도 한때는 우리의 데이트 장소였는데 한번 같이 가보자고 말이다.


1722431879303.jpg 그리고 아빠를 닮은 나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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