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에세이_봄은 따로 오지 않는다 19

by 김초아

"갈라서!"

"그래! 때려치워!"

"짐 싸서 나가!" "내가 왜 나가, 싫으면 네가 나가!!!"

우리 부부는 한번 싸우면 뜨겁게 싸운다. 같이 산 지가 10년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점점 더 싸운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정말 맞지 않는 걸까라는 생각이 든다. 당신만이 내 편이라고, 사랑한다고, 속상하지 않게 행복하게 해준다고 약속해놓고. 나는 남편이 어른스러워지길 바라고 남편은 아이들만 위하는 나를 미워한다.

"내가 서운한 건 말, 상처 주는 말 때문이라고. 가족한테 배려 있게 말해주는 게 그렇게 힘들어? 아이들에게도 꼭 그런 식으로 말해야 속이 시원해?"

"그럼 너는. 애들 앞에서 아빠를 무시하니까 애들도 아빠를 무시하는 거 아냐!"

"난 무시한 적 없어. 오히려 참았어. 하지만 너무 말이 심해서 그러지 말라고 했을 뿐이야. 그리고 애들도 아빠 무시한 적 없어. 당신이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잘났다, 잘났어. 글 쓸 때는 고상한 척 다하더니 남편한테는 #$@&%."

"뭐!!! 내가... 그 말 할 줄 알았어. 그 말만은 하지 말지 그랬어. 당신 실수한 거야. 끝 내!"


끝내자는데 동의해놓고 남편은 나가지 않는다. 소파에 미역처럼 찰싹 붙어 오로지 휴대폰에만 시선을 고정한다. 보기 싫다고 나가라는 고함에도 요지부동이다. 싫으면 애들 데리고 나보고 나가라는 그 순간, 저런 치졸한 남자와 그런 남자를 선택한 내가 미치도록 싫었다. 그럴 거면 왜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했을까? 이렇게 상처 줄 거면서. 싸울 때마다 모든 것이 나 때문이라는 남편이 얼마나 힘겨운지 알기나 할까?

남편 입장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이 우선이 되어버린 생활. 타고나길 육아가 체질인 사람이 있는 반면 남편은 그걸 굉장히 힘들어하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있어 우리가 더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고 가족을 사랑하지만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도 어려워했다. 그런 모습에 나는 어떻게 아빠인데 그럴 수 있냐며 다정하고 듬직한 아빠의 모습을 강요했다. 남편도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또한 소외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혼 이후 가장이 짊어져야 할 무게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무겁다는 걸 내가 다 알지 못할 테니 말이다.


아이들 앞에서 이런 모습 보이기 싫었다. 미안했다. 둘이 꽁꽁 붙어 싸움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모습에 더 이상 화내지 않고 참은 날도 많았다. 시무룩한 아이들에게 싸우고 난 뒤에는 항상 이야기한다.

"엄마, 아빠가 싸운 건 너희 때문이 아니야. 서로 생각이 가끔 달라서 그래. 친구와도 종종 다툴 때가 있지? 그러고 나면 화해하면 돼. 엄마, 아빠도 곧 화해할 거야. 걱정하지 마."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그 누구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낭비하고 아이들은 우리의 눈치 보았다. 남편과 나는 눈을 흘기며 서로를 비난하는 데 시간을 썼다. 감정은 점점 격해지고 이제는 정말 관계를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이혼 절차를 찾아봤다. 나도 할 만큼 했다는 못난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아이들 데리고 나가겠다고 돈을 달라는 말에 주지 않겠다는 남편이 야속했다. 경제력이 없음이 서럽고 서러웠다.

서랍을 열어 결혼반지를 찾았다. 팔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지만 흥분한 그날엔 그것밖에 생각이 나질 않았다. 평소 반지를 잃어버릴까 봐 끼고 있지 않던 나는 서랍을 뒤적거리다 편지 하나를 발견했다.


'1994년 5월에 태어나줘서 고맙고, 2015년 8월 28일에 페이스북 친구 추가해 줘서 고맙고, 2017년 8월 11일에 튼튼한 아들 낳아줘서 고맙고... (중략)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꼭 다 기억하고 평생 보답하면서 살게.'



"하이고, 언니야는 마음이 버들강아지 같아서 이런 일 못해."

결혼 전 몇 번 간 점집이 있다. 한동안 몸도 마음도 힘들어 무속신앙에 기대었다. 어디선가 들은 친할아버지가 신내림을 받았어야 했는데 받지 않아 내가 힘들게 산다는 이야기. 그래서 내가 이 일을 해야 하는지 물은 적이 있다. 남편과의 결혼 이야기에도 스물아홉 살에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난다며 그다지 추천하지 않았다.

하지만 버들강아지는 남편의 손을 놓지 않았고 그로부터 십 년 뒤, 반지를 찾다 말고 엉엉엉.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아휴, 강철같은 마음이어야 하는데, 왜 하필 버들강아지로 태어나서..."

그러고 보니 이름도 하필 草(풀 초), 笌(싹 아). 지어도 한참 잘못 지었다.


"오빠, 잠깐 이리 와 봐."

결국 나는 놓칠 뻔했던 손을 다시 잡았다.

편지를 준 그날이 떠올라서. 비싼 명품 가방보다 진심 어린 편지를 써줄 줄 아는 사람이라서. 그런 남편을 아직 나는 사랑하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화해했다. 앞으로 수도 없이 화해하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화해할 수 있는 우리라 좋다.

"우리 서로 노력하자. 나도 미안했어."


정목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서로 정반대인 사람끼리 부부가 되는 이유는 서로를 보며 배우라는 뜻이라고.

다른 것도 아니고 부부 사이인데, 상대가 싫어하는 행동이라면 내가 한 발짝 물러서서 양보해 주고 또 상대도 어느 날은 한 발짝 양보해 주며 서로 맞춰보며 더 성숙한 사람이 되라고. 그래서 인연이 된 것이라고 말이다.

부부 사이라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냐며 웃어 보이셨다.



에필로그.

다음 날, 난 마음 약하게 먹은 걸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하하.

부부 싸움은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띠.


1722753096691.jpg 앞으론 카톡으로 싸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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