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_봄은 따로 오지 않는다 21
몇 번을 쓰고 지웠는지 모른다.
어떻게 해야 이 글을 읽는 사람에게 내 생각을 온전히 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써야 누군가의 마음에 뭉근한 울림을 줄 수 있을까?
너무 자극적이지도 시시하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울림.
그 울림을 전하고 싶다며 에세이를 쓰기 시작했다.
그냥 누구라도 내 글을 읽고 힘을 얻었으면 좋겠다 하고.
수많은 날을 궁금해하고 부정하고 미워하다 이제야 조금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 것 같기 시작한 이 순간, 지난날의 내가 잘못된 선택으로 사라졌다면 이 시간이 오지 않았을 것이기에 나를 지켜준 그 무엇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한 글자, 두 글자 꾹꾹 눌러 담는다.
왜 하필 내 인생에는 겨울이 먼저 찾아와 아름다워야 할 청춘을 잔인하게 짓밟았는지 모르겠다.
그 겨울은 나에게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 외로움과 불안과 잘못된 길이 그려진 지도를 주었고, 무엇이든 하려는 의욕과 나를 지켜 줄 자존감을 가져가버렸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몰랐던 나는 방황하고 일탈하며 스스로를 비난하고 못난 사람이라 여겼다.
어디서부터 온 지 모를 생각들은 몸의 상처를 만들고 다시 마음의 상처를 만들기를 반복했다.
돌이켜보면 당시는 제정신으로 살아간 것 같지가 않다.
죽지 못해 살았고 들이쉬는 숨을 감사하지 않았다. 이유는 없었다. 원인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 힘겨웠을까. 누가 봐도 모든 것이 완벽한데 나만 홀로였다. 마음으로 울부짖으며 소리치는데 돌아오는 건 대답 없는 어둑한 천장뿐인 날들.
선물처럼 주어진 이 삶을 등지고 내던지고 싶던 그 시절.
학창 시절의 어느 날.
상담실에서 상담받는 것이 세 번째 날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 가장 잘 어울릴법한 은색테의 안경을 끼고 약간은 곱슬한 머리카락이 어깨 너머까지 내려오는 선생님께서는 다정하고 인자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다.
꼭 비밀을 다 지켜줄 것 같은 인상이었다. 갸냘픈 체구지만 목소리에는 상대의 마음을 편해지게 하는 힘이 있는 분이셨다.
나는 선생님이 퍽 마음에 들었다. 나조차도 이해가 안 되는 나의 행동들까지도 이해해 주셨기에.
그렇지만 그날로 난 상담실을 다시 갈 수가 없었다.
"얼마나 혼자서 힘들었겠니..."
선생님이 내 손을 붙잡고 펑펑 우셨다. 내 몸의 상처들을 보며.
내가 가지 못한 이유는 선생님의 잘못도 문제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선생님을 실망시켰다는 마음 때문에. 잘못된 행동을 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죄책감 때문이었으리라.
그렇지만 나의 마음 한편에는 아주 작고 여리지만 늘 가지고 있는 생각이 있었다.
'나처럼 외로운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 특히 나처럼 길을 잃고 방황하는 아이들을 돕고 싶어.'
그것이 내가 잔인하게 시렸던 학창 시절을 보낸 이유였을까.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이 시간에, 이 자리에 존재한다.
'존재'하기 때문에 무엇이든 가능하다.
그러니까 살자.
힘 빼고 살자.
너무 높은 곳의 사람들만 보지 말고 주변을 보며 살자.
외롭고 힘든 마음 가지고 책을 읽자. 공부하자. 운동하자. 나를 위해 시간을 쓰자.
지친 나를 안아줄 정도의 여유는 마음에 꼭 남겨두자.
그리고
꿈을 잊지 말자.
꿈이라는 봄꽃을 활짝 피울 날은 꼭 올 테니 무던히 눈을 걷어내고 살아가자.
봄은 따로 오지 않더라.
꼭 겨울을 데리고 오더라.
그러니 그 겨울 잘 이겨내야 한다.
눈이 많이 내린 차디찬 겨울 땅은 다음 해 농사를 더욱 멋들어지게 해 준다.
봄이 오고 눈부신 여름 지나 무르익은 가을 만나고 다시 또 겨울이 와도,
걱정하지 말고 겁내지 말고 살아야 한다.
겨울은 반드시 창대한 봄을 가져다줄 것이니까.
누군가의 인생은 봄이 먼저 찾아왔다고 절대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그저 내 인생의 땅을 잘 일구어놓으면 될 뿐.
이것이 내가 겨울을 나며 알게 된 것이다.
2014년의 어느 날에 블로그에 내가 울면서 써놓은 글.
돌이켜보니 사실 이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시린 겨울이었음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눈꽃이 떨어지고 있다.
나의 봄은 얼마나 눈부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