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게 찬란했던
에세이_봄은 따로 오지 않는다 33
요즘은 날씨가 적당히 선선해 걷기 좋은 가을이다.
공원을 거닐다 벤치에 앉아, 기다리는 사람 없이 홀로, 소금기를 머금고 있는 바람을 만지는 지금이 퍽 마음에 와닿는 그런 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 나의 귓가에 짹짹, 어여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빨리 와!” “선생님~ 저희 이제 뭐 해요?”
“꺄악! 저기 봐, 물고기가 점프했어!”
그게 뭐라고 그렇게 즐거울까. 참 예쁜 학생들.
두 명씩, 세 명씩 팔짱을 끼고 해맑게 웃는 너희들을 보니 나도 그 시절의 우리가 떠올랐다.
“함께해서 행복하다! 누에고치! 예!!”
열여섯 명의 우리가 함께 손을 모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외치던 구호.
여고 시절, 나의 동아리는 연극부였다.
그 당시 왜 연극부를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배우가 꿈이었던 적도 없었는데. 영화나 드라마, 희곡에 지대한 관심을 두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기억으로는 함께 해보겠냐는 친구의 권유에 응했을 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절을 지내고 보니 그날의 선택이 나의 색채 없는 십 대의 마지막을 더없이 반짝이게 해 주었다.
그날의 기억, 나와 우리.
나름 역사가 깊었던 누에고치는 도대회에서 우승을 몇 번 해낸 경력이 있는 유서 깊은 동아리였다.
당시에는 동아리 활동으로 연극과를 진학한 선배들도 많았을뿐더러 이미 학교를 떠났는데도 후배들의 공연을 발 벗고 나서 도와주는 끈끈한 선후배관계가 자리했었다.
어느 선배가 지었는지 모를 ‘누에고치’라는 동아리 이름.
돌돌 실을 말고 있는 누에고치가 나방이 되어 날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며 지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선배들처럼 우리도 1년에 한 번 있는 대회를 준비했다. 쉬는 시간에도, 점심시간에도, 학교가 끝나고 한참 지나도, 주말에도, 우리는 옹기종기 모여 연습했다. 지칠 법도 한데 하면 할수록 우리는 웃고 있었다. 즐거웠다. 영혼이 뜨거워지는 걸 처음 느꼈다.
서로 다른 우리가 하나의 무대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았다. 눈이 부시는 조명 아래에서, 우리는 빛나고 있었다. 때론 언성을 높여 싸우고, 며칠을 얼굴을 붉혔지만 그래도 목표는 하나였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단단해졌다.
“1등! 누에고치!”
우리의 노력이 결실을 만든 그 순간, 서로 손을 맞잡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르겠다.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모두 울고, 웃고, 끌어안고.
그렇게 전국 대회를 준비하는 그 시간이 가장 소중했지.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때의 열정만큼 다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을까 싶다.
옷차림은 평범한 교복을 입고 있었지만 당시의 나는 다른 세상이 존재함을 깨달았다.
‘이렇게 화려하고 멋진 세상이 있구나. 공부만이 다가 아니었어.’
친구들과 함께 모여 다양한 희곡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체육관 무대에서 동선을 그리고, 소품을 만들고, 열띤 토론을 하며 서로의 연기를 봐 주었다.
같은 대사를 수백 번도 더 연습했다. 그래도 힘들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도 우리의 열정이 모든 걸 다 녹였다.
하늘이 어스름해져도 우리는 체육관에 모여 그렇게 함께였다.
돌이켜보면 티 내지 않고 방황하던 나의 학창 시절에 친구들이 손을 잡아주고 함께해 주었기에 나를 더 멀리로 보내지 않고 지켜준 것이지 않을까.
“함께해서 행복하다!”
대학로에서의 우리와, 서로의 얼굴과, 그날의 온도가 아직도 생생하다.
맞다. 함께라서 참 행복했다. 혼자였다면 절대 그런 무대를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아쉽게도 전국 대회는 2등에 그쳤지만, 그래도 서로를 안았다.
1등이었다면 일본 연수를 갈 수 있었는데, 그건 지금 생각해도 참 아쉽지만 말이다.
그날의 우리는 아이 엄마가 되고, 연극배우가 되고, 공무원이 되고, 은행원이 되고, 취준생이 되어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
함께였다 흩어져도 같은 추억 안에 사는 우리.
눈이 부시게 찬란했던 그날이 오늘따라, 오랫동안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