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를 하다가 문득, 이상하다고 여겼다. 왜 그랬을까.
내가 열다섯 살이던 해,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고 그렇게도 졸라대던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도 않고 단칼에 거절했던 아버지. "동물은 자연에서 키워야지 집 안에서 키우는 게 아니야!"라며 내 귀에 일침을 가했다.
당시 난 학교 앞 애견미용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유기견에 마음이 이끌렸고, 아버지에게 우리가 한 생명을 살리는 일임을 열띤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그 어떤 말에도 아버지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햄스터로 합의를 봐야만 했다.
그런 우리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게 되다니. 그것도 십삼 년이나.
십삼 년 전, 처가에 방문한 부모님은 작은 집구석에 강아지가 두 마리나 있는 정신없는 상황을 마주하게 됐다. 원인 제공자는 바로 외삼촌.
외삼촌은 분양해 키우던 강아지를 일이 바빠져서 돌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외할머니 집에 데려다 놓았는데, 일거리가 줄어들자 한가함 때문에 다시 외로워진 삼촌은 강아지를 또 분양했다.
그리고, 일이 바빠지자 두 번째 강아지도 할머니 집으로 오게 된 것이었다.
“김 서방, 나 좀 도와주게. 한 마리는 어떻게 할 수 있어도 두 마리나 되니 정신이 하나도 없어. 제발 한 마리만 데려가 키워주게.”
“아휴, 안 돼요. 그게 아무나 하는 일도 아니고. 죄송하지만 안 돼요. 다시 데려가라고 하세요.”
그런데 두 번째로 온 갈색 털의 작은 강아지는 유독 아버지의 뒤를 졸졸 따랐다. 처음 보는데 낯도 안 가리고 아버지의 다리에 털썩 앉아 온갖 재롱을 부리는 녀석. 밥을 먹을 때도, TV를 볼 때도 오직 아버지의 근처만 맴돌았다.
“아이고, 얘가 자기 데려갈 주인을 알아보네! 김 서방 그렇지?”
밤이 되어 자려고 눕는 아버지에게 쪼르르 달려와 옆구리에 바싹 등을 대고 눕는 요 앙증맞은 강아지.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그런 녀석과 함께 잠들었다.
그날 밤 아버지는 꿈을 꿨다고 한다. 한번만 나와 달라고 빌고 또 빌었지만 야속하게도 나타나지 않았던 돌아가신 친할아버지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꿈에 나타난 것이다.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는 바람에 할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일이 늘 가슴에 사무쳤던 아버지는 드디어 할아버지를 만났다.
그리고 다음 날, 강아지는 우리 집으로 오게 됐다.
십삼 년이 흐른 지금, 아버지는 이제 강아지가 나이 들어 어떻게 될지 모르니 먼 곳에 볼일이 있어도 당일치기로만 다녔다. 밤에 혼자 두지 않으려고 말이다.
며칠 전, 나는 아버지에게 툴툴거렸다. 하룻밤 정도인데 손주도 보러 오지 않느냐며 그건 좀 심한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런데 잊고 있었던 이 일이 대뜸 떠올랐다.
'아버지가 왜 이러는지 알겠어. 만일 강아지의 마지막마저 곁에 있어 주지 못한다면 슬퍼서 어떡해. 가슴 아파서 어떡해.'
이제서야 지난 일이 기억 난 나는 한숨 한 번 푹 쉬고, "이제는 아버지에게 무어라 잔소리하지 말아야겠다." 하며 설거지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