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라는 생각에 똑 부러진 사람을 만나면 괜스레 더 움츠러들게 된다.
글도 똑 부러지게 잘 쓰고 옷매무새도 똑 부러지고 깔끔하게 자른 머리칼도 똑 부러진 사람.
말솜씨도 똑 부러지고 자질구레한 고민도 딱 정리해 주는 사람.
'글쓰기도 사회생활도 집안일도 이런 사람이 잘하겠지? 똑 부러진 사람이 말이야.'
싱겁고 설익은 사람은 어떻게 하루를 보내야 할지 의문이 들었다.
뭐든 "네, 네~" 하며 좋은 게 좋은 것이라 대답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네네치킨’ 같다 했는데, 그렇게 못났나.
지인 중 가장 똑 부러진 사람을 떠올렸다. 첫째와 같은 초등학교에 자녀를 둔 그녀는 똑 부러진 성격만큼이나 인상도 시원했다. 날렵하게 다듬은 갈색 단발이 잘 어울렸다. 그 외모에 어울리게 회사의 경리 부서에서 일을 하는데, 힘들어도 퇴근 후 들이켜는 맥주 한 잔이면 모든 게 해소된다고 했다.
참 시원스럽다. 냉동실에 넣어 둔 얼기 직전의 맥주처럼.
한 번은 그녀의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내심 그녀가 마음에 들었던지라, 그녀에게 나의 고민을 천천히 말했다. 나이는 드는데 취업 준비는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 속상하다는 말, 내 말이 마침표를 찍자 마자 그녀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적당한 자격증 따서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얼른 취업해요!"
꿀꺽, 꿀꺽.
말을 다 마치자, 그녀는 잔에 있던 맥주를 씩씩하게 들이켰다. 하지만 그렇게나 시원스러운 해결책에도 뭉그적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녀도 나도 참 답답할 노릇이었다.
우린 서로를 바라보고 말없이 다시 맥주를 마셨다.
벌컥벌컥, 찔끔찔끔.
‘그래도 이런 사람도 어딘가 쓸모가 있겠지? 아니, 사람이 물건인가 쓸모가 무슨 말이야. 쓸모가 있어야만 성공한 사람인가, 좋은 인물인가, 그걸로 어떻게 사람을 판단하겠어.’
퍽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빈 잔에 맥주를 따랐다.
집으로 돌아와 똑 부러진 작가들의 글을 봤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서두와 글의 전개를 보며 참 단정하게도 썼다며 감탄했다. 어쩌면 나는 평생 이런 글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자, 조급한 마음으로 내가 써 내려간 글을 봤다. 보고 있자니 또 중구난방이다. 어휴, 똑 부러지지 못해서 그런가 보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아닌가. 또 긴가민가한다. 후, 낮은 한숨을 쉬었다.
맞다, 이전에 친구가 이런 말을 했었지.
“한숨 쉬지 마! 복 나가! 얼른 두 숨, 세 숨 쉬어!”
문득 떠오른 대학 동창. 동그랗고 흰 피부에 귀여운 얼굴이었지만 순진한 모습과 다르게 성격은 야무졌는데.
‘눈썹 문신이라도 해볼까? 아주 짙게 말이야!’
거울을 보며 엉뚱한 상상을 했다. 그런다고 달라질까.
'그래도 가만보면 진밥보단 설익은 밥이 낫지. 설익은 밥이 진밥으로 될 수는 있어도 진밥이 설익은 밥으로 되진 못하니까.'
피식. 우스운 생각을 하며 고민의 답은 내일의 나에게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