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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믿으며

by 김초아

세상이 험해서, 별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

아이에게 거절하는 법을 가르쳤다.

자신의 마음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나를 지키는 법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양보만이 무조건 좋은 건 아니야.”

아이의 눈을 바라보며 분명하게 일러주었다.


둘째는 성격이 수더분했다. 가끔 언성을 높여도 '그래, 엄마.' 라며 순하게 대답했고 첫째의 질투 어린 시선에도 침묵으로 답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쓰였다. 겉으로 티는 내지 않지만 분명 속상할 테니까.

사실, 그걸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더 속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싫을 때는 싫다고 말해야 해. 불편할 때는 불편하다고 말해야 해. 언제나 참지만 말고, 가끔 배려하지 못해도 괜찮아.”

팔은 안으로만 굽으니까. 아이가 눈물을 꾹 참고 오는 날이면 꼭 안아주며 말했다.




따스한 4월, 둘째의 담임 선생님과 상담이 있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준비하며 머릿속으로 어떤 질문을 할지 곱씹었다. 준비한 말들을 잊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 안고 들어선 교실. 선생님은 편안한 봄날씨와 같은 부드러운 미소로 나를 맞이했다. 선한 인상을 떠올리면 가장 어울릴 법한 눈매와 웃음과 목소리를 지닌 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마주 보며 자리에 앉았다.


“제가 정리 도와달라고 하면 끝까지 도와주고요. 동생들이 그림 오리는 걸 어려워하면 ‘언니가 도와줄까?’ 물어봐요. 보통 아이들이 ‘내가 도와줄게.’라고 하는데 말이죠. 친구의 의사를 묻고 도와줘요. 너무 기특하고 예뻐요.”

“네, 집에서도 그래요. 제 이야기도 잘 따라줘요. 그런데 선생님, 저는 저희 아이가 어디서든 자신의 마음을 잘 이야기했으면 좋겠어요. 싫으면 싫다고 말하고, 불편하다고 말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알려 주는데 아직 그게 어려운 가 봐요. 며칠 전에도 친구가 던진 장난감에 다치고 왔는데 친구와 선생님께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일이 속상해요. 집에 돌아와서 겨우 저에게 말하다가 나중에는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저도 이야기 듣고 굉장히 마음이 아팠어요. 어머니, 제가 교사 생활을 오랫동안 하면서 후회되는 게 있는데, 어른스러운 아이들에게 손길을 많이 못 준 거예요. 의젓한 아이들은 대체로 스스로 알아서 하니까 아무래도 손이 많이 가는 아이들 위주로 볼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알아서 잘하는 아이들의 장점을 더 키워주지 못한 것 같아 후회가 많아요. 앞으로는 제가 아이 마음 잘 알아주면서 동시에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도록 지도할게요.”


순간, 서로의 눈빛이 닿았다.

우리는 동시에 눈물이 났다.

각자의 후회와 아쉬움, 속상함이 뒤엉켜 서로의 마음이 연결되는 순간이었다.


아이의 전반적인 유치원 생활에 대해 듣고 한 가지 더 질문을 했다. 아이에게 부당한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하라고 알려 주어야 할까. 선생님의 깊은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저희 아이들은 벌써 다 컸지만, 저는 그래도 조금은 손해 보며 사는 것이 낫다고 가르쳤어요. 당장은 그게 안 좋은 것 같지만 멀리 보면 차라리 양보하는 것이 잘한 일이더라고요.

저는 아직 선한 마음이 더 강력하다고 믿거든요.

그렇게 믿으며 살아요.”




눈앞에서 울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괜스레 내가 더 억울하고 아팠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아이가 걱정스러우면서 답답했다. 그래서 어느 날, 아이에게 이기적이어도 괜찮다고 말했다. 너만 맞고 오지 말라고, 너도 화를 내라고 말이다.


하지만 진정 필요한 건 조금은 손해 보는 마음,

마치 예쁜 꽃을 보아도 꺾어오지 않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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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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