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잊고 산 지 오래다. 학창 시절에는 지겹도록 들었는데.
이름으로 불리는 일은 언제나 익숙했고 당연했다. 때로는 편안했다.
이름은 나의 것이고 이름이 곧 나니까.
하지만 세월은 흘러, 자녀가 탄생하는 순간이 우렁찬 울음소리와 함께 나에게도 찾아왔다. 이제 막 세상빛을 본 아기의 가냘픈 발목에 간호사는 서둘러 파란색 띠를 둘렀다.
그것에는 '김초아 산모 아기'라는, 내가 엄마가 되었다는 표식이 쓰여 있었다.
아기는 무럭무럭 자랐고 일 년 만에 '엄마'라는 말을 어설프게 뱉었다. 이후 모두가 나를 엄마라고 불렀다. 진짜 나의 이름을 묻는 이는 거의 없었다.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첫째 엄마, 둘째 엄마, 애들 어머니.
아이 친구들은 이모라고 불렀다. 그것도 나쁘진 않았다.
그런데 서서히 이름과 멀어지며 나의 안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이 돼 버렸다. 그리고 나 또한, 다른 사람의 이름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아이 이름으로 대신 부르면 되니까 말이다.
'그게 뭐, 중요한가.'
며칠 전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 온 신청서에 내 이름을 적었다. 그런데 이름 석 자가 적힌 보호자란이 이상하고 어색해서 자꾸 눈길이 갔다. 왜 인지 모르게 멀게만 느껴졌다.
그때의 이름과 나의 거리는 초록과 빨강이었다. 공존하지 않았다. 따로였다.
그리고 계속 생각해 보니, 이름뿐만 아니라 몸은 어떤 상태인지, 점심으로는 뭘 먹고 싶은지, 쉬고 싶은지, 산책하고 싶은지, 당연한 일상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나'의 기분, 상태, 심지어 머릿속이 복잡한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었구나. 하물며 화장실이 가고 싶다는 신호조차 미루다니.
나는 나를 지우며 살고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싶다가 사실 엄마들이면 다들 그렇겠지, 별 신경 쓰지 않고 살아가겠지, 라며 외면해 버렸다.
중학교 2학년, 조별 활동을 하는 시간이 문득 떠올랐다. 주제는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다. 당시의 나는 이름 석자를 적었다.
“저는 친구들이 웃으며 "초아야!" 하고 저의 이름을 반갑게 불러주는 걸 들을 때 가장 기분이 좋아요.”
그 말이 끝나자 같은 조의 친구들은 나를 보고 웃으며 "초아야, 초아야!" 하며 나를 불렀고 우린 다 같이 해맑게 웃었다.
맞아, 그랬지. 그런 적이 있었지.
또 문득, 고마운 사람이 떠올랐다. 같은 엄마임에도 나의 이름을 물어주었던 사람. 첫째 엄마, 둘째 엄마, 말고 "초아 씨, 초아 씨." 하며 나를 불러준 따듯했던 사람.
어쩌면 그녀는 나조차도 알지 못한, 이름으로 불리길 바라는 마음을 알고 있었던 걸까.
따스했던 목소리가 순식간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 조금은 어딘가에 기대고 싶은 것일 수도 있겠다는 나약한 생각이 들었다.
머리를 부러 저었다. 그럴 땐가, 하면서.
그리고 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밖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