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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생각하기로 해, 우리

by 김초아

살이 쪘다. 몇 달 사이에 눈에 띄게 찐 것이다.

글을 쓰려고 죽치고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일까. 어쩌면 날씨가 더워도 늘 먹던 음식이 맛있게만 느껴지는 것 때문 일 수도 있겠다. 또, 나름의 글을 구상한다고 안 쓰던 머리를 써서 그런지 자꾸만 단 걸 찾고, 고소한 걸 찾는 통에 꽤 참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새로운 동네로 이사하니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안 그래도 집순이인데 그 바람에 더욱 바깥을 나가지 않게 된 탓이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서는 그나마 종종 차 한잔 마시자는 연락이라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

어찌 보면 퍽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반면, 때론 광고 메시지만 울리는 휴대전화에 서운했다.

그때 그 사람들이 보고 싶어졌다.




'그래도 삼백 쪽은 써야 책 한 권을 낼 수 있지 않을까?'

아직 백 쪽도 쓰지 못한 미완성 글을 하나, 둘 읽었다. 보면서 난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니 또 어지러웠다. 글을 쓰기 위해 엉덩이에 좀이 쑤시도록 오래 앉아 있었는데. 건강과 그나마 유지했던 몸무게도 포기하고 이리도 글을 썼는데. 제자리인 것 같다는 생각에 또 속상했고, 과자를 꺼냈다.


그렇게 자판을 무던히도 괴롭히던 때, 아주 예전에 두 달 정도 다녔던 요가원에서 배웠던 동작들이 떠올랐다. 집순이가 그나마 좋아하는 운동은 요가와 명상, 108배였고 그래도 잘하는 것이 하나 있다면 버티는 것이었다. 엄청난 실력은 아니지만 요가를 할 때면 몸뚱이의 근육은 찢어질 듯 아팠지만 마음은 개운해졌다.

'그래, 다시 하자.'

자리를 박차고 체중계에 올랐다. 그리고 내가 짊어진 것들의 숫자를 알게 되니 다시금 움직여야겠다는 의욕이 샘솟았다.




요가 영상을 찾아보다 오체투지를 알게 되었다. 이전에 하던 108배보다 더욱 참회하는 마음과 감사한 마음을 담아 하는 절이라고 스님은 설명했다. 그냥 하는 절이 아니고 바닥에 납작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렇게 나는 매일 오체투지를 하기로 결심했다.




첫째 날, 뭣도 모르고 호기롭게 시작한 오체투지에 호되게 당했다. 서른 번 하니 숨이 턱 막혔고 쉰 번쯤 되니 머리가 몽롱해졌다. 그냥 하던 108배 와는 차원이 달랐다. 일흔 번쯤 되니 땀이 줄줄 났고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라도 포기할까 싶었지만 여태 한 것이 아까워 108번을 다 채우기로 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았다. 아흔 번쯤 되었을 때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두 팔이 더 떨려왔다.

'방심하면 안 돼. 끝까지 긴장하고 집중해야 해.'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108번을 하고 털썩.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들리는 건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뿐이었다.

'아, 심장이 잘 뛰고 있구나. 살아있구나. 쿵쾅쿵쾅.'

온몸에 땀이 났고 힘은 온전히 빠졌다.

그렇지만 그만큼의 개운함때문이었을까, 이틀, 삼일을 내리 할 수 있는 힘이 어디선가 생겨났다.



하지만 다음 날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아 하루를 쉬었다.

그랬더니 그 다음날, 절하는 것이 더욱 힘겨웠다.

하루 쉬면 다음 날 수월할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쉬니까 더 힘들었다.

'아, 계속 쭉 해야 하는 거였구나. 아파도, 힘들어도 쉬지 말고 했었어야 했나 봐.'




그렇게 오체투지를 하며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면, 납작 엎드려 절을 하니 세상 모든 힘든 일은 그다지 힘들지 않은 일이 돼버린다는 것이었다. 당장 떨리는 두 팔이, 지금 덜덜거리는 두 다리가 가장 힘든 일이었다. 멍해진 정신을 가다듬고 후, 숨을 내쉬니 짊어지고 있던 고민은 그저 단순하게 생각하면 될 욕심에 불과했다.


살이 찌면 빼면 되는 것, 작가가 되고 싶으면 계속 글을 쓰면 되는 것,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면 계속 사랑하면 되는 것.

설령 당신이 날 아프게 할지라도 내가 사랑한다면 그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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